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앙리 마티스 그림,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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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내가 만든 첫 책이다. " _ 앙리 마티스

스테판 말라르메와 앙리 마티스, 두 거장의 예술혼의 결정판

시는 너무 함축적이고 난해해서 쉽게 읽히지 않는 문학 장르라서 지금까지 요리조리 피해왔는데, 봄이 느닷없이 찾아오듯 시집 하나가 갑작스럽게 내 삶에 들어왔다. 그것도 매우 난해하다고 알려진 스테판 말라르메 시인의 시 모음집인 [목신의 오후]라는 작품이. 낯선 세계를 탐구하려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하지만 이것도 하나의 기회라면 기회!!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말라르메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소화해 보기로 굳게 마음먹어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화가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반면 디테일에 무심한 그의 작품은 어느 정도 안정감을 안겨준다. 선이 굵은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불안했던 마음도 풀어지는 느낌이 든다.

사실 이 책 [목신의 오후]를 읽게 된 것도 앙리 마티스 화가가 손수 말라르메의 시를 고르고 그에 어울리는 삽화를 창작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는 소개말 때문이었다.


스테판 말라르메라는 시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해서 시를 읽기 전에 해설을 조금 읽어보았다. 거기서 그의 시 세계가 " 자아와 세계, 현실과 이상이라는 분리된 이원성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거기에서 기인한 불만과 좌절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 어렵지만 어두운 지하실을 더듬더듬 나아가듯 시인의 감성에 접근해 본다. 아마도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시인이 거친 속세를 살아내기가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더러운 시궁창을 끊임없이 걸어가는 여정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니까.

전반적으로 그의 시는 다소 침울함과 우울함 그리고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에 등장하는 [창]이라는 시는 아마도 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느낀 복잡한 심경을 담아서 쓴 시인 것 같았다. 병원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과 표정 없는 의료진들 그리고 생기 없는 흰 벽만 바라봐야 하는 그 무기력함이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환자들은 크나큰 절망을 느낄 것인데, 하물며 민감한 촉수를 가진 시인이라면? 창으로 비치는 찬란한 햇빛이 원망스러울 것이고, 그 원망이 극에 달하면? 햇빛이 머무르는 천국으로 가고 싶을지도 모른다.


" 침울한 병원이 지겨워, 텅 빈 벽이 지루해진 큰 십자가 쪽으로

진부한 흰색 커튼을 타고 피어오르는 역한 향냄새가 지겨워.

그 속을 알 수 없는 죽어가는 병자는 늙은 등을 다시 일으켜,

(... 중략...)

내 꿈을 왕관으로 쓰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전생의 하늘에서!

- 말라르메의 시 (창) 중 -

말라르메는 일상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많은 시를 썼다. 그중 [목신의 오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수 신인 "목신 판"을 주제로 한 전원시이다. 엄청난 성욕을 지닌 호색한으로 묘사되는 이 목신은 아름다운 님프와의 사랑을 꿈꾸며 시링크스라는 님프의 꽁무니를 좇는다. 하지만 두려움에 떨던 이 님프는 갈대로 즉시 변해버리고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목신은 그 갈대를 꺾어 피리로 만들어불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 도피의 악기, 오 얄궂은 피리 시링크스여,

그러니 호숫가에 다시 꽃 피어 나를 기다려라!

나를 둘러싼 소문에 우쭐하며, 오래오래 나는 여신들 이야기를 떠벌리리라,

숭배의 그림을 그리고 그네들의 그림자에서 다시 한번 허리띠를 벗기리라.

(.... 중략...)

"나의 시선은 골 풀들을 뚫고 불멸의 목덜미들을 하나하나 뜨겁게 찔렀으니,

그네들은 숲의 하늘에 고통의 비명을 울리며 (... 중략...)

사라지네, 오 보석들아!

- 말라르메의 시 [목신의 오후] 중 -

죽음과 지하 그리고 저승을 동경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말라르메와 비슷한 감정대를 공유하는 자이다. 비록 인간의 물질성을 거부하지는 않았으나, 말라르메는 인간의 한계 안에서 괴로워하며 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 것들의 찬란함과 격렬함을 노래하였다.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간절하게 바라는 무엇이 있다고 말하는 시인 말레르메. 그의 시들은 어느 정도 광기에 물들어있다. 구원을 바라며 하늘과 땅을 향해 소리치는 옛 제사장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어 고유의 암시와 상징에 주목해 독자적인 시 세계를 구축한 "말라르메" 시인과 20세기 미술의 혁명가 앙리 마티스의 협업이 낳은 책 [목신의 오후].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말라르메 시가 표현한 이미지를 마티스 에칭화가 가느다란 선으로 구현해 내었다. 언어가 다 표현해 내지 못하는 강렬한 감정을 앙리 마티스의 그림이 보충해 주는 듯한 [목신의 오후]. 커피가 당기는 오후에 시와 그림을 동시에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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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여인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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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는 한 남자가 새로 이사한 집에서 박스를 열어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매우 소중한 것이라도 발견한 양, 다급하게 안에 있던 앨범과 사진들을 꺼내 바닥에 펼쳐놓는다. 그 사진들은 여러 모양의 십자가들이 찍힌 것들이고 그중 하나의 뒤편에 누군가가 익숙한 필치로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놓았다. 극단을 이끌어가는 그 남자는 문득, 30년 전 부산의 한 동네에서 누이처럼 친하게 지낸 혼혈인 "헬린 킴 혹은 김혜련"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사람의 아들] 등으로 한때 한국 문학계의 거인으로 손꼽혔던 분인 이문열 작가의 신작 [리투아니아의 여인]을 읽게 되었다. 작품 구상에서 집필까지 18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니, 사유의 깊이와 통찰력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 이야기는 작은 극단의 연출가로 시작해서 뮤지컬 제작으로 저변을 확대해나가는 한 연출가의 여정기로 볼 수도 있겠으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비밀스레 간직한 (아닌척하면서) 타 인종에 대한 편견과 알량한 민족 정체성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불특정 다수의 무차별적인 악의가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다. 묵직한 메시지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리투아니아의 여인] 속으로 들어가 본다.

[리투아니아 여인]의 줄거리를 잠깐 요약하자면, 부산의 한 동네 친구였던 '나'와 '혜련' 은 한동안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그러다가 조그만 극단에서 연출을 배우고 있던 '나'가 [리투아니아 남자들]이라는 연극을 올리게 되면서, 리투아니아 엄마를 가졌던 '혜련'에게 10년 만에 연락을 하여 그녀를 음악 감독으로 초청하게 된다. 주인공 '나'와 '혜련'은 서로를 남매처럼 여기지만 사실 '나'는 그녀에게 이성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번번이 누군가와 만나고 있는 '혜련'의 뒤에서 그녀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각각 운명적인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하는 듯 보이지만, 희한하게도 둘 다 이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둘 다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노마드적인 예술가의 삶을 살게 된다. 특히, 혜련의 경우는 리투아니아 조상을 가진 미국인이고 동시에 한국인 아버지를 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다.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어떤 곳에서도 진정으로 머물 수 없는 그녀. 본질적인 고독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김치찌개가 그립고 친구들이 그리워 한국에 오면 그녀의 푸른 눈과 갈색 머리가 더 두드러져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리에 속할 수 없다는 점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예술가로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있다. 혜련의 리투아니아 할머니가 소련의 압제를 피해 미국으로 탈출하는 와중에 3명의 자매 중 한 명만 데리고 온 것. 30년이 흐르고 난 뒤에 분노와 절망에 가득 찬 늙은 이모들이 찾아와 어린이들처럼 어머니에게 그때 왜 그랬냐고 퍼붓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겠지만 이모들의 슬픔이 진하게 느껴졌달까? 그리고 이 책의 중심인 '나'와 '혜련'의 사랑도 인상 깊었다. 사랑인 듯 사랑 아닌 사랑 같은 그들의 밀당 이야기는, 뭐랄까? 애초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세상을 배회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한 남자.... 결국엔 그들은 사랑보다는 오래가는 우정을 택하게 된다.

이문열 작가님이 절필 선언을 하셨나 싶을 정도로 그동안 작품 활동이 없으셨는데, 신작을 만나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1970년대와 80년대가 주로 배경이 되기 때문에 다소 고루하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분들이 읽으면 정말 좋아할 만한 내용들이 나온다. 뮤지컬에 문외한인 나조차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괜찮은 공연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투아니아 민족이 경험한 분열과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한 개인이 겪어야 했던 외로움과 고독을 이야기했던 [리투아니아 여인]. 생각할 거리가 있고 메시지가 분명한 문학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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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 이브 생로랑 삽화 및 필사 수록본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이브 생로랑 그림, 방미경 옮김 / 북레시피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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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담 보바리는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절망적인 혼란 상태에 빠진 여자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남자인 플로베르가 어쩌면 이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았을까? 싶을 정도로, 고전문학 [마담 보바리]는 순진하기 짝이 없던 아가씨가 잘못된 사랑의 열정에 휘말려 점점 타락하게 되는 상황을 너무나 잘 묘사하고 있다. 마담 보바리, 즉 엠마가 한때의 불장난 같은 사랑, 혹은 성애에 빠져서 인생을 조금씩 잃어버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누구에게 인지 모를 울화통이 터져나갔다. 엠마를 꼬여낸 뒤 냉정하게 차버린 양아치 로돌프에게 인지, 아니면 엠마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는 방법을 몰랐던 둔한 남편 샤를에게 인지, 아니면 소중한 인생을 시궁창으로 던져버린 엠마 본인인지... 하여간 책을 읽는 동안 계속 울화통이 터져나갔다. 이것은 고전인가? 아니면 고전의 옷을 입은 " 부부의 세계 " 인가?

샤를 보바리와 혼인하여 마담 보바리가 되기 전, 엠마는 농장을 꾸리는 아버지를 도와서 성실하게 집안을 관리했다. 만약에 샤를이 엠마 아버지의 다친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서 시골로 오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그녀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혹시 모르지, 근처에 사는 비슷한 수준의 농부나 장사꾼과 결혼해서 그럭저럭 만족하고 살았을지도.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샤를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한 엠마의 모습이 도저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다. 깊고 검은 눈동자의 아름다운 엠마, 그녀는 귀족의 아내가 될 수도 있고, 무도회에 가서도 남자의 시선을 끌고, 빛을 발하는 그런 종류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이기 전에 너무나 평범한 샤를. 샤를은 그녀가 그냥 아내로 자신의 곁에 머물러 주길 원했다. 자신을 위해 집안 살림을 도맡고 남편을 지지해 주는 그런 종류의 여인 말이다. 샤를은 성공한 사람이지만 지루한 편이고 관습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융통성 제로. 아내와 좀 더 친밀해지고자 노력은 하는데 어쩐지 둘의 사이는 삐걱거리기만 한다. 샤를이 낭만적인 사랑 혹은 열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너무나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사실 샤를은 성실하고 아내에게 충실하지만, 엠마가 책을 통해서 배운 이상적인 " 사랑 "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사랑의 언어와 제스처를 모르는 사람이다. 엠마는 사랑이 너무너무 고파서 죽을 지경이다.

좌절과 절망은 쌓이고 쌓여, 마침내 고여있던 흙탕물이 썩어가는 것처럼 그녀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낯설지만 환상적인 남정네들과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을 몹시도 바라게 된 것. 그러나, 엠마가 책에서 읽었던, 혹은 혼자 상상했던 남녀상열지사는 사실 현실에서는 조금 불가능한 것. 그것은 현대에도 마찬가지이다. 부부는 그냥 의리로 살아가는 것이다. ( 제 생각입니다 ) 책 속에서 펼쳐지는 환상은,,, 그냥 뭐랄까? 만들어진, 플라스틱 같은 사랑인데 말이다.. 쩝. 어쨌든 남편과의 거리로 인해서 생긴 외로움은 조금씩 그녀를 갉아먹으며 성품까지 변화시킨다. 그녀의 유순했던 성품은 조금씩 음흉하고 세속적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아! 내가 만일 엠마의 언니였다면 머리채를 잡아끌고 와서 방 안에 가둬놨을 텐데..... 너무도 안타까운 이 상황. 마담 보바리는 남자들에게 외로움이라는 페로몬을 뿌리고 다니며 그들을 본인 쪽으로 끌어당긴다. 잘생기고 훤칠하지만 여자에게 손톱만큼의 책임감도 없던 양아치 로돌프, 그리고 엠마에 대한 큰 애정도 없으면서 단지 힘든 현실을 잊어보려 그녀를 만난 어린 레옹, 그들과 치명적인 사랑을 시작하게 된 엠마. 엠마는 환상적인 나날을 보냈을 수도 있지만, 그들과의 애정 행각은, 독자들의 예상대로 엠마에게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만을 남기게 된다.

애정행각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담 보바리에게는 또 다른 큰 문제가 있었다. 남편인 샤를이 돈을 많이 벌었지만 엠마의 어마어마한 물질적 욕망을 다 채워줄 수는 없었다. 당시 플로베르는 돈만 많고 교양이 없는 부자들이 결국엔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많이 본 게 아닐까?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쓸데없는 물건을 구매하고 애인들의 애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에게 비싼 물건을 사주는 엠마의 욕망이 가득 찬 두 눈동자가 보이는 듯하다. 그녀는 결국 돈만 밝히는, 매우 부도덕하고 사악한 상인인 뢰뢰에게 걸려서 차용증을 계속 쓰던 끝에, 원금을 훌쩍 넘어서는 채무의 늪에 빠지게 된다. 남편인 샤를이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은 시간문제, 그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자신의 인생과 샤를, 그리고 소중한 딸의 인생까지 쓰레기통으로 처박은 것을 깨달은 엠마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되는데....


한심한 마담 보바리라 손가락질 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과연 엠마만 비난을 들어야 하나? 여기서 마담 보바리의 편을 들자면, 그녀는 사실 책을 많이 읽고 호기심도 많고 지루한 현실보다는 가슴 뛰는 이상을 바라는, 그런 인물로 묘사된다. 여자에게 제한이 많았던 당시 사회 말고, 그녀가 시간 여행을 해서 현대 사회로 왔다면, 상황은 좀 달라졌을 거라고 본다.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작가가 되었을 수도, 예술가가 되었을 수도, 혹은 큰 사업체를 이끄는 리더가 되었을 수도 있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부적절한 애정 행각과 그로 인한 금전의 손실이 그 당시에는 큰 논란을 낳았을 수도 있지만, 엠마가 지금 살아있다면? 과연 서로 맞지 않는 샤를과의 결혼 생활을 그냥 유지하고 살았을까? 그냥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양아치같은 남자를 만나건, 한참 연하를 만나건, 사랑에 실패하고 눈물바람으로 삶을 살아가더라도 그건 자신의 몫. 엠마에게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또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천재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이 그린 삽화 13점이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열 다섯 살에 그렸다는 삽화는 당시 귀족들의 사교 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면도 있지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여주인공 마담 보바리의 아름다운 모습과 순수했던 순간을 보여주기도 한다. 남자들과 춤추며 행복해하는 엠마...... 앞으로 있을 불행은 전혀 모른 채 홍조를 띤 얼굴이 슬프게 보이기까지한다. 이 책 [마담 보바리]가 고전이기에 현대물을 읽는 것보다는 힘들 거라는 예측을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대책 없는 이 마담 보바리가 빵빵 터트리는 사건에 가슴 떨면서 책에 푹 빠져들었다. 사슴 같은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엠마, 마담 보바리. 그녀의 이야기가 오늘 내 가슴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더 이상 그녀를 판단하게 되지 않는다, 단지 슬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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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 조선을 뒤흔든 예언서, <귀경잡록>이야기
박해로 지음 / 북오션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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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죽지 않는 자가

살육의 새벽을 피로 물들인다

과연 조선 시대에도 외계인과 좀비가 존재했을까? 라는 질문을 하게 만들어준,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SF 좀비물인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를 읽었다. [신을 받으라]와 [섭주] 그리고 [전율의 환각]과 같은 초현실적인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쓴 박해로 저자의 신작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상상 속의 예언서인 [귀경 잡록]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책에는 온 우주를 아우르는 육십오능음양군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고, 그가 부리는 원린자들 (외계인들) 이 조선을 장악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려있다. [귀경 잡록]은 비록 삿된 내용을 품고 있다하여 금서가 되었지만, 비밀리에 [귀경 잡록] 을 읽고 원린자를 모시는 집단이 있었으니....

세종 20년 어느 날, 체격 좋고 힘센 사람들이 이상한 꿈을 꾼 후, 그 다음날 천둥소리와 함께 증발되는 기괴한 사건이 여기저기서 발생한다. 이 증발자들은 사라지기 전 육십오능음양군자라는, 온 세상을 다스리는 유일신에 대한 꿈을 꾸었다는 해괴한 발언을 한다. 그 존재는 곧 증발할 자들에게 빛으로 나타나, 세속을 버리고 자신을 받아들이면 위대해질 수 있다는 식으로 그들을 현혹시킨다.

세속의 눈알을 파내고 내세의 신안을 끼워 넣어라.

그리하면 육십오능음양군자를 알현할 시야를 회복하리라.

내일이면 그대는 죽은 학문 대신 시간과 공간의 비밀을 터득할 수 있노라.

이 기괴하고도 허무맹랑해 보이는 사건을 조사하던 포도청 종사관 서만주는 이 사건이 금서 처분을 받은 삿된 책인 [ 귀경 잡록 ] 과 관계가 있고, 특히 찢어진 부분인 33장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뿐 아니라 그는 사람들이 증발된 와중에 들었다던 천둥소리가 사실은 총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화승총을 가진 존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 끝에, 서 종사관은 그를 찾아내지만, 마치 관절이 없는 듯한 너덜거리는 팔다리와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를 가진 화승총의 사나이는 엄청난 속도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한편, 한양 대신 섭주에서 열린 과거 시험장에 웬 미친 남자가 벌거벗은 채 어기적대면서 걸어들어온다. 시체인 듯, 피가 엉겨 붙고 관절을 굽히지 못하던 그는 증발했었던, 이유석이란 자였다. 좀비가 된 이유석은 자신을 막는 감사관의 어깻죽지를 물어뜯고, 누군가의 머리통을 박살 낸다. 이미 죽은 목숨이라 그런지, 아니면 힘이 원래 세서인지 아무리 많은 병사가 덤벼들어도 끄떡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좀비 말고도 체격 좋고 힘센 시체들이 섭주에 나타나서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포도 대장의 허락을 얻은 서 종사관은 급히 천오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섭주로 출발하는데.....

이 책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를 읽고 나니, 사람들이 외계인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그들을 숭상하는 종교까지 창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독서 이후, 나의 세계관이 완전히 뒤집히는 걸 느낀다. 책 속에는 선과 악을 뛰어넘는 거대한 우주적 존재가 있고, 그것이 거느리는 무자비한 원린자들 (외계인들)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아서 호시탐탐 지구 정복을 넘보고 인간들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부린다. 그 원린자들은 마술 능력까지 있어서 사람들을 조종까지 하는 무시무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인 우리는 한시도 마음을 놓아서도 안된다고 이 책은 말하는 듯하다.

과연 좀비로 변한 무적 군대를 무찌를 수 있을까? 그들은 왜 증발했다가 시체로 나타난 것이며,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무리들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이 책에는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외에도 [암행어사]라는 단편도 실려있는데, 두 이야기가 연관이 되어 있어서 먼저 [암행어사]를 읽어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시리즈 [킹덤]과 [데드 워킹]을 보는 듯 좀비들의 생생한 이미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책 [화승총을 가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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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후루타 덴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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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명의 악의가 교차하는 순간,

온 세상이 순식간에 뒤집힌다 ”

일본 추리 소설의 백미는 역시 서술 반전이다! 독자들이 깜짝 ( X100 ) 놀랄 만한 폭발적인 반전이 도사리고 있는 소설인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름 추리 좀 한다고 잘난 척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이야기의 방향을 전혀 짐작 못 했다. 하지만 표지를 잘 보시길. 마그리트의 명화 [연인들]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표지의 그림이 이야기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주고 있다.

천을 덮어쓴 채 키스를 하는 연인. 원작에서는 연인들이 키스만 하는데, 표지 그림 속 연인들은 손으로 서로의 목을 조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신비로운 마그리트의 원작과는 달리, 표지 그림에서는 왠지 모를 분노와 절망이 느껴지고, 싸늘하기까지 하다. 연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너도 나도 부르짖는 사랑의 깊이와 너비는 얼마나 될까? 닭살 돋을 정도로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슬프고 소름 끼쳤던 이야기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주인공 카에데는 도오출판사에서 잘나가는 잡지 [히로인]을 만드는 팀을 이끌고 있다. 여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이 잡지는 주부들 사이에서 꾸준히 인기를 끌어왔지만, 가정주부를 폄하하는 듯한 광고 문구 때문에 카에데에게 온갖 악플과 메일 그리고 전화를 통한 공격이 이어진다. 판매 부수가 떨어질 것을 걱정한 카에데의 상사는 급기야 그녀에게 잠시만 휴식을 취해달라고 권유하는데, 그 말은 바로 팀에서 나가달라는 소리다. 본인이 피땀 흘려 일군 잡지를 그만두기에는 너무 허망하지만 이 정도에 실망하고 쓰러질 카에데가 아니다.

그러던 중, 카에데는 프리랜서 기자인 사키모리라는 사람으로부터 책 출간 프로젝트를 제안받게 된다. 그 즈음에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돈을 별로 들이지 않고도 아이들을 위한 캐릭터 의상을 만드는 게 유행이 되었는데, 그 유행을 이끄는 파워 블로거인 "소라 파파"를 중심으로 책을 만들어보자는 게 그의 제안이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내용과 그에 대한 인터뷰만 있다면 좋은 책을 발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

일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는 카에데는 "소라 파파" 와 게시물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 그의 블로그에 접속한다. 그런데 게시물들을 보고 뭔가 위화감을 느낀 카에데. " 소라 파파"라는 이 블로거가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만족을 위해서 의상 제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그러면서 한 게시물 아래에 이런 댓글을 남긴다.

comment : 당신은 아이를 정말 사랑하나요?

사람에 따라서는 가볍게 넘길 수도 있는 댓글이긴 하지만, 아내가 식물인간이 된 채로 누워있는 상태에서 아이를 외롭게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졸린 눈을 비벼가며 의상을 제작하는 "소라 파파" 입장에서는 댓글 하나에 통제 불가능한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때부터 "소라 파파"는 미친 듯이 온라인을 뒤져서 댓글러의 흔적을 조금씩 찾게 된다.

한편, "소라 파파"와 블로그 상에서 몇 번 설전을 벌인 이후, 카에데는 온라인에서나 오프라인에서 자신을 뒤쫓는 검은 그림자를 느끼게 된다. SNS 친구였던 딸기 밤비라는 닉네임이 갑자기 스토커처럼 행세하고, 누군가가 쓰레기통 안에 있는 음식에 독약을 뿌려서 근처 까마귀들이 사체로 발견된다. 우편함에 있었던 각종 우편물들이 누군가에 의해 도난되고 결국엔 카에데가 인터넷상에 적어놓은 비밀 일기가 온 천하에 공개되면서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악플이 달리기 시작하는데.......

어릴 적 입은 상처로 인해서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는 카에데. 그녀는 겉으로 씩씩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사람에 대한 지독한 두려움을 안은 채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그 사건부터 그녀에게는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검은 어둠이 마음속에 생기고 말았다. "소라 파파"인 다나시마는 밝았던 아내가 베란다에서 떨어져서 식물인간이 된 이후로, 직장 생활과 육아에 지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딸인 미소라에게 의상을 만들어주는 것은 딸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취미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책은 무척 재미있었다. 카에데가 회사에서 겪게 되는 갑작스러운 실패와 아이가 없는 그녀가 직장 동료에게서 느끼는 가벼운 질투심. 그리고 아이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무심한 남편 사토루에 대한 실망... 등등은 여성들이 현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한 부분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드러나는 큰 그림!!!! 진실을 알게 되면서 깜짝 놀랄 독자들의 얼굴 표정이 기대가 된다.

흥미진진한 전개! 다시 읽어보면 여기저기 숨어있는 복선! ( 한 번 더 읽어보니 쏙쏙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빵" 하고 터지는 어마어마한 반전... 여러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특히 서술 반전에 강한 일본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솔직하게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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