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사람을 살해할 때도 이렇게 하는 건가,

테러리스트, 푸른 파라솔을 빙글빙글 돌리네.”

독한 위스키로 잊어버리려 했던 어두운 과거가 슬금 슬금 고개를 쳐든다. 결국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었던 것. 원치 않았던 사건들과 인연들이 갑작스레 주인공에게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이 책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의 주인공인 시마무라는 아픈 과거를 묻어둔 채 조용히 살고자 했으나 과거의 망령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진한 위스키향과 진한 고독의 향을 동시에 풍기는 주인공 시마무라... 평범하다 못해 지질하게 보였던 그가 폭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나선다!

배경은 1990년대 일본 신주쿠. 삶에 지쳐버린 듯한, 외롭고 고독해 보이는 한 중년의 남자가 신주쿠 중앙공원에 나타난다. 그는 신주쿠 골목에 있는 작은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시마무라.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한낮 공원에서 마시는, 독하지만 달콤한 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공원에 나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공원 내에서 거대한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다. 그런데 시마무라의 대처가 약간 수상쩍다. 공원에서 알고 지내던 노숙자에게 그날 자신을 봤다는 말을 경찰에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지문이 남은 위스키 병의 존재에 대해서 걱정하는데... 그는 과연 누구일까?

폭발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시마무라에게는 연속적으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폭력단 소속으로 보이는 남자들에게 조용히 지내라는 위협을 듣고 밤늦게 가게로 찾아온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다. 그들 중 한 명은 시마무라에게 그가 공원에서 본 전부, 즉 폭발 사고에 대한 것을 모두 잊으라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더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 경고를 하고 떠난다. 이제 시마무라는 폭발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인 것..... 도대체 조용히 살던 시마무라를 위협하는 인물들은 누구일까?

폭발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는 경찰청 간부도 있었다. 중요 인물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발칵 뒤집힌 신주쿠 경찰서는 '신주쿠 중앙공원 폭발 사건 특별 수사본부'를 수립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한다. 한편, 주인공 시마무라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가게를 접지만 때마침 찾아온 도코라는 20대 여성을 통해 도쿄대 재학 시절 함께 전공투 조직 ( 일종의 학생 운동 조직)에서 활동했던 유코가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뿐 아니라 TV 뉴스를 통해 함께 활동했던 친구 구와노의 신체 일부도 폭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을 알게 된다. 이념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친구들의 연속된 죽음....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같은 조직의 일원이었던 시마무라의 목숨도 위험하지 않을까?

비록 알코올중독자이지만 조용하고 모범적으로 살아가던 주인공의 삶에 제동이 걸린다. 숨기고 살아왔던 지난달들의 과오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경찰도 시마무라를 좇지만 정체 모를 무리들도 그를 쫓고 있다. 시마무라는 평범한 아저씨에서 노련한 수사관으로 변모하게 된다. 노숙자들 틈에서 먹고 자면서 폭발 현장에서 잠시 스쳤던 갈색 머리 청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자와 경찰로 꾸며서 폭발 사건의 유족과 당사자로부터 사건 해결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얻게 된다. 자신에게 위협을 가했던 폭력단의 보스에게 직접 찾아가 자신을 찾아오게 된 정황과 다른 정보를 듣게 되는 시마무라. 그는 보이지 않게 움직이며 흩어져있는 퍼즐들을 찾아내 끼워 맞추기 시작하는데......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은 하드보일드 스릴러가 안겨줄 수 있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어두운 과거를 가졌지만 지금은 현실 부적응자인 알코올중독자가 정신을 차리고 해결사로 변모하는 과정이 짜릿하다. 외로운 늑대가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느낌이다. 이념을 위해 함께 청춘을 바쳤던 친구들과 죄 없는 시민들의 죽음 앞에서 칼날을 빼어든 주인공 시마무라,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쳐 가는데... 과연 그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친구들의 복수를 대신할 수 있을까?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건이지만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듯 조금씩 풀어가는 주인공 덕에 재미있던 책. 막판에 소름 돋는 대반전에 반전을 터트리는 이 소설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잘 쓰인 하드보일드 범죄 스릴러를 기대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지해도 당당한 사람들이 판치는 지금

진실을 지키기 위한 철학적 사고법!

진실과 거짓이 서로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는 지금, 세상은 진실 찾기에 돌입한 것처럼 보인다  출처가 없고 증거를 찾을 수도 없는 가짜 뉴스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고,

대중들은 전문가의 지식을 신뢰하기 보다는 1분 만에 찾아낸 인터넷 검색 결과를 더 신뢰한다.

권력을 가진 전 세계 정치인들은 진실을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분열의 씨앗을 뿌리며, 지식의 출처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뜨리는 행동을 한다.

이 책 [진실의 조건]을 쓴 스웨덴이 철학교수인 오사 빅포르스는 현재 우리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 ( 탈 진실: 진실보다 개인적 믿음과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alternative facts, 즉, 대안적 사실이라는 표현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션 스파이시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중이 집결했다고 했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 즉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객관적 현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선전과 거짓 정보에 대해 “이것은 거짓이다”라고 손쉽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과연 “대안적 사실”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저자, 인간은 결핍투성이기에 논리의 오류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사실 인간은 지식 저항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은 본인의 믿음이 우선시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믿음이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지식과 같지 않다”라고 판단을 내린다. 믿음이 실제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예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이 “대안적 사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기인한 사실적 허무주의라는 이념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적 허무주의는 진실 혹은 거짓인 세상에 대한 사실적 진술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즉 다시 말하면, 지구가 둥글지 않을 수도 있고, 사과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내포하는 것이다. 사실적 허무주의자들은 진실과 거짓이 충돌하고 모순이 발생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사 빅포르스는 사실 허무주의란 철학의 대량 살상무기와도 같다고 말하기까지 하며 비판한다.

그녀는 반대 증거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사실에 믿음을 가지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이유로 인간이 가진 다양한 인지 왜곡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중 몇 가지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확증 편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정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

두 번째로 ‘정치적으로’ 의도된 합리화가 있다. 이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적 집단의 믿음과 일치하는 믿음을 고수하길 원하는 심리 기제이다. 마지막으로 역화 현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 증거가 부족하거나 거짓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오히려 우리의 믿음에 반하는 증거가 믿음을 더 강화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짜 뉴스의 범람과 잘못된 믿음으로 인한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그녀는 교사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학생들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방식인 "구성주의" 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교수법이 개별화되고 정형화된 교과 내용이 최소화되자 현실을 바라보는 공유된 인식이 해체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 학교에서는 교육을 바꿀 필요가 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인식 왜곡에 맞서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 예를 들자면 출처의 신뢰성을 주의 깊게 평가하기, 우리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열어두기, 전문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등등이 있다.

여러 철학 개념과 인지 왜곡과 같은 심리 기제에 대한 전문적 설명 등으로 대단히 어려웠던 [진실의 조건] 그러나 현재 우리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편향된 지식이나 주장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정치인들이 얼마나 쉽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어서 매우 뜻깊은 독서였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천천히, 그리고 의미를 곱씹어가면 읽어야 할 깊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독, 삼독을 하면 더욱더 독자가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는 철학서 [진실의 조건] 이었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좀비즈 어웨이 안전가옥 쇼-트 12
배예람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킹덤] 등 좀비 스릴러가 한국에서 큰 히트를 친 후 이제 좀비물은 아주 익숙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영혼을 잃어버린 채 이빨을 드러내고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덤비는 좀비들의 모습은 무시무시하기까지 하다. 그들은 가공할 힘까지 있어서 몇 번의 공격으로는 어림도 없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이제 좀비들은 그 어떤 상상 속 괴물보다도 더 두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 책 [좀비즈 어웨이]에 실린 3편의 단편들은 좀비의 탄생과 출몰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 보여주는 일종의 연작 시리즈인데 특히 [단편] 좀비즈 어웨이의 경우 좀비가 지구를 초토화한 이후 엉망이 되어버린 지구를 다룬 일종의 아포칼립스라는 면이 흥미로웠다.

각 단편들을 조금씩 들여다보자면,


첫 번째 단편 [피구왕 재인] : 피구를 하고 있는데 날아온 게 공이 아니라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사람 머리라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고 머리끝이 쭈뼛 서는 상황이지 않을까? 주인공 재인은 좀비 못지않게 사나운 아이들의 공격을 피해 가며 피구 경기에 집중한다. 다소 소심한 그녀는 날아오는 공을 두려워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친구 혜나의 응원이 있어서 힘이 난다. 외로웠던 재인에게 스스로 다가와 친구가 되어준 고마운 혜나. 그러나 피구 경기 중 갑작스럽게 좀비로 변한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물어뜯는 가운데 어느새 학교는 아수라장이 된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지만, 재인은 혜나를 구하기 위해 7반을 향해 달려가는데...

"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혜나를 위해 공을 날렸다."

두 번째 단편 [좀비즈 어웨이] : 바이러스가 퍼지고 감염자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세상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국한 2동 거주자인 연정은 백신의 효능으로 인해 살아남았다. 정부의 가산점 정책 때문에 사람들은 좀비 머리 찾기에 혈안이고, 연정이 일하는 정육점의 사장은 그녀에게 좀비 머리를 찾아오라고 닦달한다. 수색을 위해 거리로 나선 연정은 무너져가는 한 반점에 들어가게 되고, 오랜만에 맡아본 짜장면 냄새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의 목소리..... 깜짝 놀란 연정의 눈에 제멋대로 움직이는 뜯어진 팔과 말하는 머리가 보인다. 머리 아래가 다 뜯겨나간 채 말을 하는 괴상한 존재의 이름은 김성하.. 그녀는 얼떨떨하게 서 있던 연정에게 간절한 부탁을 한 가지 하는데....

" 이제 새로운 마법의 문장을 읊는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성하의 팔이 내 어깨에 매달렸다. 나는 성하의 손을 토닥거렸다."

세 번째 단편 [ 참살이 404] 경쟁 대열에서 뒤처져버린 스스로를 패배자로 여기며 자신감을 잃어버린 주인공 소영. 유서를 써둔 채 정신과를 왔다 갔다 하던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JBU라는 다단계 회사의 신입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하게 된다. 거기서 회장이 권하는 참살이 404라는 드링크를 마신 후 온몸에 에너지가 가득 찬 느낌을 얻는 소영. 이후 회사에 취직하여 성실하게 일하지만 소영은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설상가상으로 자신이 데려온 고교 동창 보영과 비교를 당하면서 점점 다시 유서를 썼던 그 당시의 심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활기차게 일하던 직장 동료 수혁이 갑자기 눈과 목에서 피를 뿜어내고 끔찍한 비명소리를 지르며 바닥으로 쓰러지는데....

*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네, 소영아. 그러니까 네가 그냥 소영인 거야. 보영이 될 수 없는 거야. 평생 그냥 소영으로 살다가 죽는 거야. 어디선가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어떤 장소보다 안전해야 할 학교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하고 어제 다정했던 후배 그리고 친구를 죽여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 피 웅덩이와 흩어진 장기들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친구를 구하러 가는 재인의 뒷모습이 안타까웠지만 동시에 대견했던 [피구왕 재인], 좀비 이후의 세계, 그 불안함과 스산함이 잘 표현된 단편 [좀비즈 어웨이]는 처참하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희망을 찾아 떠나는 두 여자의 유쾌한 여행길을 비추는 한편의 로드무비 같았다. [참살이 404]는 이용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어디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씁쓸했던 단편이었다다. 잔인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며 강렬한 동시에 신선한 자극을 선사했던 좀비 스릴러 [좀비즈 어웨이]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빅티켓
조 R. 랜스데일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의의 깃발을 휘두르며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네 나름의 방식으로 나만큼이나 망가져 있어."

숨가쁜 추격전과 생생하고 현장감 넘치는 과거 텍사스의 어느 지역의 모습 그리고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완성도 높은 서부극이 탄생했다!! 추리나 스릴러와의 다른 매력이 있는 서부극, 정확히 말하면 현금 사냥꾼들의 추적기를 다룬 이야기 [빅티켓], 법이 통하지 않고 총을 빨리 쏘는 놈이 대장인 이 살벌한 곳에서, 오직 여동생을 구출하기 위해 팀을 꾸린 주인공 잭과 등장인물들의 끈질긴 추격전이 펼쳐진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이 책의 경우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잘 구현이 되어서 더욱 더 재미있는 것 같다. 특히 머리가 좋은 난쟁이 쇼티가 약간 둔한 유스터스를 놀려먹는 장면이 흥미롭다. 유스터스를 폭발 직전까지 놀려먹는 고약한 쇼티가 알고 보면 매우 지적이고 철학자같은 면모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석유가 막 발견되고 자동차가 말과 경쟁하며 조금씩 굴러가기 시작한 20세기 초 미국의 서부. 문명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주인공 잭이 등장하는 텍사스 지역은 악당이 활개치고 보안관이 벌벌 떠는 무법지대,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든 곳이다. 마을에 천연두가 퍼지면서 부모님이 그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잭은 여동생 룰라와 함께 할아버지를 따라 캔자스에 사는 이모댁으로 향한다. 고아가 되었지만 든든한 할아버지와 행복한 나날을 꿈꾸기도 전에, 그들은 강을 건너려는 한 무리와 만나게 되는데,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굉장히 위험해 보인다.

무리들과 시비 끝에 할아버지는 총을 맞아 돌아가시고 룰라가 그들에게 납치된다. 마침 강에 불어닥친 태풍 덕분에 목숨을 구하게 된 잭. 그러나 혼자 힘으로는 룰라를 구출할 수 없다. 그 지역 보안관에게 도움을 받고자 보안관실로 찾아가지만 이미 그는 은행 강도들에게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알고보니 그 무리가 은행강도들) 겁을 잔뜩 먹은 부보안관은 다른 직업을 갖겠다며 도망가버린다.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낙담한 책.... 그러나 신이 도우신건가? 잭 앞에 거대한 몸집의 흑인과 그의 반려돼지가 나타난다.


유스터스라는 이름의 그 흑인은 평소에는 시체 매장일을 하지만 원래는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를 좇는 사냥꾼이다. 그에게는 파트너인 쇼티라는 이름의 난쟁이가 있는데 그가 동의하는 조건으로 유스터스는 잭의 여동생을 구출하는 일에 함께 하기로 한다. 사실 난쟁이 쇼티는 대단히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이고 실질적 리더라서 그가 빠지면 안된다. 잭이 할아버지가 남긴 토지 문서를 넘기기로 하자 그들은 기꺼이 추적에 참여하지만, 사실은 은행 강도들에게 걸린 현상금이 그들의 목표이다.

정체모를 흑인과 돼지... 그리고 난쟁이라... 무시무시한 악당들을 소탕하기에는 다소 믿음직스럽지 않은 구성이지만 알고 보면 이들은 꽤 프로페셔널하다. 술에는 약하지만 유스터스의 경우, 라이플의 개머리판만으로 장정을 때려눕힐 수 있다. 반려돼지는 단단한 코와 억센 입으로 공격자들을 물어뜯는다. 쇼티는 서커스 출신이라는 다소 어두운 과거를 가졌지만 그만의 전략이 항상 있는, 한마디로 뛰어난 리더감이다. 당시 엄청난 차별과 놀림을 받던 이들은 서로를 연민으로 대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로 놀려먹고 비아냥거리기 일쑤다. 정말 친한 친구들끼리 욕(?)하고 놀려가며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다소 순진한 십대 소년 잭은, 비꼬기 일쑤인 쇼티와 부딪치기도 하지만, 냉철한 현실의식을 가진 그로부터 한수 배우기도 한다.

거칠고 사악한 범죄자들 손에 여동생 룰라가 잡혀 있다. 그녀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모를 상황... 잭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잭을 비롯한 추적자들은 범죄자들이 향한 것으로 보이는 [빅티켓]이라는 흉흉한 장소로 향한다. 쉽게 잡힐 줄 알았던 무리의 흔적은 잘 보이지도 않고 추적은 매우 길고 지루하고 힘들다. 하지만 저자 랜스데일이 매우 기발하고 독특한 캐릭터들을 창조한 덕분에 소설 자체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토지 문서와 현상금이라는 이해관계를 통해 뭉쳤지만 이런 저런 사건을 통해 우정을 꽃피워나가는 무리들. 저자 랜스데일은 어둡고 비극적인 역사를 가진 서부지대와 그 속에서 정의를 실천하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매우 현장감있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하루에도 몇 사람이나 죽어나가는 거칠고 황량한 황무지 속 엉뚱한 캐릭터들이 주고받는 유머가 배꼽을 잡는, 이 소설은 좀 단짠단짠, 냉탕온탕 같은 매력이 있다. 저자 조 R. 랜스데일이라는 작가의 세계가 궁금하다.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거칠고 냉정하지만 다소 엉뚱한 사나이들의 추격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으로!!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장자리
리디아 유크나비치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쪽도 저쪽도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당신이 어디에 있듯 나는 이해한다.”

[가장자리]는 단편 소설집이다. 위태롭게 삶의 가장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곳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위험하고 힘들고 불안하고 어둡다. 각 단편들은 충분히 묘사되고 서술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의 한 장면을 마치 사진 찍듯이 포착해 내는 작가. 글은 온통 이미지로 가득하다. 어떤 이야기들은 불온하지만 동시에 매우 아름답다. 일일이 설명하기보다는 보여주기를 원하는 작가 리디아 유크나비치. 그녀는 우리가 읽기보다는 경험하고 느끼길 바란다. 물처럼 유연하지만 몸처럼 감각적인 그녀의 글.


우리는 삶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삶의 가장자리에서 헤매고 있을까? 책을 읽다 보니 가장자리에서 허둥대는 것은 책의 등장인물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누구든지 완전히 소속되지 못한 비주류라고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저자 리디아 유크나비치는 매일매일 고비를 느끼며 경계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전쟁 피난민, 장기 배달자, 성매매 여성, 학대받는 여성, 성 소수자, 마약 중독자, 노숙자들의 충격적인 삶이 걸러지지 않은 채 여러 단편 속에서 검은 꽃처럼 피어나고, 그들을 바라보는 독자, 정확히 말해서, 나는 심장이 찔리는 듯한 신체적 고통을 실제로 느낀다. 그녀는 비극과 불행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다.

단편들 중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을 살펴보자면


The pull [이끌림] 은 대단히 아름답게 묘사된 소설이다. 우리는 물에서 태어나 물로 되돌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듯한 작품. 물이 하는 얘기를 들으며 물과 한 몸이 되길 즐기던 소녀는 탱크와 미사일이 수영장과 그녀의 세상을 파괴한 후 피난길에 나선다. 피난선은 바다 중간에서 멈춰버리고 멀리 떨어진 해안가를 향해 용감하게 헤엄치는 소녀와 언니.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바닷속 그녀들은 살기 위해 싸운다. 누가 그녀들을 바다로 빠뜨린 건가?


“ 헤엄치는 여자아이와 언니의 아름다운 몸, 그 밑의 거대한 물을 향한 이끌림, 뗏목 위에서 가망 없이 희망하는 사람들의 눈동자와 심장을 향한 이끌림, 그들 주변에서 끓어오르는 거대하고 그릇된 세계를 향한 이끌림의 끝은 - 이 이야기는 결말이 없다 ”

The organ runner [장기 배달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이다. 주인공 아나스타샤는 8살 때 손목 절단 사고를 당해 한쪽 손을 거의 못 쓴다. 사고 이후 가족들에게 버려진 채 다른 가족에게 입양된 그녀. 세상은 불친절했고 그녀는 장기 배달부로 자라나게 된다. 인위적으로 맺어진 가족들 중 키릴이라는 남자애는 오랫동안 아나스타샤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는 장기를 팔고 다른 누군가는 이식을 받는다.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강하게 자라나 희망을 엿보는 아나스타샤가 대단하게 보였던 작품. 그러나 결말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

“아나스타샤는 미국을 생각했다. 잔혹한 피비린내를 풍기며 찢어지고 꿰매어진 그 기이하고 기형적인 소위 ‘주(state)’라는 것들을, 발 위에 꿰매놓은 손처럼 여전히 위태로운 주와 주 사이의 경계선을 생각했다. ”

Street Walker [거리 위의 사람들] 안전하고 한가로운 동네. 언젠가부터 피 묻은 주사기가 발견되고 거리를 떠도는 남녀가 눈에 띈다. 한때 마약 중독자였던 주인공은 떠돌며 살 수밖에 없는 성매매 여성의 힘든 삶에 깊이 공감하고 그녀를 집으로 초대해 1시간의 휴식을 준다. 동네 사람들은 마약과 성매매를 퇴치하려고 순찰대까지 조직하지만 수선 떠는 그들의 모습이 두려움에 몸과 정신이 마비된 좀비 같다고 느끼는 주인공.

"우리는 전부 균열을 품고 살아간다. 균열의 모양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아니면 균열이 모든 것을 허물어트리면 켜켜이 쌓인 살갗과 지방과 주택 보유자의 삶이, 깔끔한 머리 모양과 잘 먹은 화장이 남는다."


충격적이고 불편하지만 동시에 기괴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작품 [가장자리] 이 책 속 단편들은 물처럼 어둡고 물처럼 무의식적이며 물처럼 유연하다. 문장은 물처럼 흐르고 물처럼 강렬하고 물처럼 리드미컬하다. 스토리라기보다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각 단편들은 날것 그대로의 표현과 강렬한 묘사로 독자들의 마음속에 쑥 하고 들어온다. 누군가에게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불행과 비극을 외면하지 말라고 하는 듯한 저자.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강렬한 고통 속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가장자리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언젠가는 헤엄쳐서 삶에 도달할 우리 모두를 위해서 쓰인 책 [가장자리]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