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 - 오사카 게이키치 미스터리 소설선
오사카 게이키치 지음, 이현욱 외 옮김 / 위북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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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일본 최고의 단편 추리소설가

얼굴 없는 시신, 사라진 발자국

뒤바뀐 가해자와 피해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추리력

[침입자]는 오사카 게이키치라는 작가가 쓴 8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1930년대에 쓰였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당시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플롯이 탄탄하다. 일본 미스터리가 풍기는 기묘함과 그로테스크함도 잘 담아내고 있다. 귀신이나 유령의 장난과 같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면도 마음에 든다. 제대로 된 단서가 부족하고 시간대가 뒤틀리는 등 사건의 앞뒤가 맞지 않아서 요망한 귀신의 소행으로 남을 뻔한 찝찝한 사건들을, 명석한 프로파일러들이 과학적 추리를 동원하여 명쾌하게 해결한다.

이 단편들 가운데서 특히 좋았던 작품은 역시 첫 번째 단편 [탄굴귀] 였다. 1937년 작가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서 이루어낸 역작이라고 하니 역시 피와 땀은 인간을 배신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탄굴귀]는 최근 내가 읽은 단편 중 거의 최고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미스터리로서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었다. 읽는 내내 의혹 + 놀라움 + 분노 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다만 작가가 1943년 태평양 전쟁 때 징집되어 1945년 33년의 나이로 사망하였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가 쓴 다른 좋은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거라 생각하니 아쉬울 뿐이다.

어쨌건 인상 깊었던 작품들을 둘러보자면,

[탄굴귀] 150미터 깊이에 있는 탄광 속에서 일하는 광부들 이야기. 누군가의 실수로 탄광 내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하여 큰불이 나고, 모두가 대피하지만 한 명의 광부가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런데 그를 구해내지 않고 통로를 폐쇄해버린 주동자들이 연달아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것은 과연 원혼의 소행일까?

하지만 '그럴듯함'은 '논리'가 아니며, 일차원적인 분석일 뿐입니다.

당신의 추리가 아무리 그럴듯한 암시가 풍부해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탄굴을 빠져나왔다'라는

엄청난 모순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탄굴귀 중 59쪽



[추운 밤이 걷히고] 동료 선생님인 산시로씨는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된 상태인데, 어느 날 그의 부인과 사촌 동생이 누군가의 손에 끔찍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되고 아이가 납치된 정황이 보인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남아 있기는 하나 길의 중간에 갑자기 끊겨있다. 도망가던 범인이 하늘로 솟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나는 신들린 듯이 눈의 벌판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직 멈추지 않은 음침한 종소리가 악마의 비웃음처럼

맑은 공기를 떨게 했다.

추운 밤이 걷히고 90쪽

[침입자] 그림을 그리러 조용한 별장으로 간 화가 가와구치와 아내 그리고 친구인 곤고.

그러나 가와구치가 후지산을 그린 그림을 채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2층 동쪽으로 나 있는 방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남쪽으로만 보이는 후지산을 그가 어떻게 그렸을까? 남쪽 방에 가 있던 아내 후지가 용의자로 지목이 된다. 과연 그녀가 범인이 맞을까?

그러니까 이 그림은 이 방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니고

확실히 저 남쪽 방 창문으로만 보이는 풍경입니다.

뭐, 내일 한번 시험해 보시든지요.

침입자 115쪽

위에 언급한 단편들 외에도 [백요], [꼭두각시 재판], [세 명의 미치광이], [긴자 유령]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고래 떼] 역시 잔인한 살인 사건에 얽힌 사연들과 충격적인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주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 프로파일러들의 뛰어난 사고능력에 매번 감탄했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안타까운 살인 사건들과 작은 단서를 가지고도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해결사들의 모습에서 에드거 엘런 포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들의 영향이 엿보였다. 지금 출간되는 추리소설에 견주어봤을 때 완성도가 결코 뒤지지 않는 [침입자]를 읽을 만한 미스터리 소설로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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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세계
고요한 외 지음 / &(앤드)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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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문을 두드리면

마침내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2’의 이야기

"2의 세계"라는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2라는 숫자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 때문이었다. 딱딱하고 냉정한 숫자로서의 2가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으로 녹여낸 2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가 매우 궁금했다. 앞서 나가는 1들이 모인 완전한 세상에 뒤처지는 2들이 괴로워하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모양처럼 1이라는 평면적이고 지루한 세상과 대비되는, 2라는 입체적인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일까? 일곱 명의 개성 강한 작가들이 빚어내는 일곱 가지 "2의 세계". 그들은 1이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2이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를 보는 다양한 시선 덕분에 독서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일곱 가지 이야기들 중에서 좀 더 재밌게 읽은 이야기들을 꼽자면,

[모노레일 찾기] 영원히 서로에게 닿지 못하고 한 곳에서만 맴도는 모노레일처럼, 다른 누군가의 주변에서만 맴도는 두 사람의 이야기.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동안 절연 상태였던 국영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는 "나". 친구이자 한때는 연인이었던 국영의 아내, 현실을 직접 만나고 나니 옛 감정이 물씬 되살아난다. 그러나 여전히 국영을 잊지 못하는 현실을 보며 "나"는 자신과 현실은 영원히 서로 만날 수 없는 모노 레일 같다고 느낀다.

“ 하긴 모노레일을 타고 멀리 갈 수는 없지. 출발점과 종점이 같으니까. 돌고 돌아도 그 자리니까. 이 모노레일을 타고 돌고 돌아 국영 씨에게 갈 수 있다면...”

[코너스툴]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인 비정상적인 세상에 던져진 이인 (異人)의 이야기. 여성 작가들의 모임에서 만난 20대 인기 여작가를 보고는 20년 전 과거를 떠올리는 주인공 나. 20년 전 "코너스툴"이라는 책방을 운영하던 주인 남자 "박호산" 과 한동안 책, 문학,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박호산"이라는 존재를 사랑하게 된 주인공.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고 대신 그의 아내로부터 연락을 받게 되는데..... 자유롭고 순수한 사랑에 대해 지독히 오해하는 1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던 작품.

“내가 네 아빠를 사랑한다는 것. 그와 가슴 깊은 곳에 잠재한 마음까지 오롯이 나눌 수 있기를, 이야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는 것. 그 간절한 마음을, 나는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는 내 이야기를 너만은 귀 기울여 들어주고, 온전히 믿어주고, 진실하게 표현해 줄 수 있을 거라고.”


[2의 감옥] 감옥이란 말이 무색하게 유쾌 발랄하게 느껴졌던 작품. 동수는 잘생겼지만 어딘가 2% 모자라다. 아리는 그런 동수를 좋아하긴 하지만 어느샌가부터 동수를 닮은 조각미남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강변을 함께 걷던 아리와 동수는 용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그 조각미남을 함께 목격하게 되고, 그를 목격한 그날 동수는 2의 세계라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끌려들어 가게 되는데.... 제발 나보다 완벽한 도플갱어를 만나지 않기를 빌게 되는 유쾌한 단편.

" 하지만 당신이나 나와 같은 운명을 지칭하는 용어가 있죠, 바로 2% 부족한 도플갱어. 거의 같은 퍼펙트에게 짓밟혀서 찌그러진 막걸리 병처럼 변해버린 운명."

[다음이 있다면] 슬펐지만 내일을 꿈꾸게 하는 작품이었다. 갑작스러운 사촌의 죽음 앞에 황망해하는 미진. 하지만 가족과 친척들은 사촌의 영정을 앞에 두고 그가 얼마나 나약했고 소심하고 패기가 없었는지 만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빠릿빠릿한 세상에서 다소 뒤처졌던 미진과 사촌. 장례식 이후 미진은 방에서 나오지 않았고 그 누구도 그녀의 은둔이 사촌의 죽음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지나친 카페에서 3개월 동안만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다는 걸 알고 지원하게 되는데.... 다음이 없는 세상이란 얼마나 불행한가?

"카페의 문을 열고 나간 뒤 어디로 가서 무얼 해야 할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철들지 않음, 자리 잡지 못함이 아직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증거 같았다."

숫자 2가 표현해낼 수 있는 다채로움에 한번, 그리고 각 단편이 전달하는 깊이 있는 메시지에 한 번 더 놀랬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가득 찬 1의 세상에 2라는 색다름을 던진 시도였던 것 같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세상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모두가 비슷비슷하게만 살아가는 세상에서 혼자 조금 다르게 살아간다고 해서 큰일이 나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한 작가들의 작품들. 앞으로 2의 세계뿐만 아니라 3,4,5.... 여러 숫자들을 색다르게 해석한 작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일곱 명의 작가들의 다채로운 일곱 색깔 무지개 같았던 작품 [2의 세계]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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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 명예의 전당 - SF Award Winner 2014-2021: 乾
김보영 외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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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SF소설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들게하는 작품집이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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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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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살해할 때도 이렇게 하는 건가,

테러리스트, 푸른 파라솔을 빙글빙글 돌리네.”

독한 위스키로 잊어버리려 했던 어두운 과거가 슬금 슬금 고개를 쳐든다. 결국 과거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었던 것. 원치 않았던 사건들과 인연들이 갑작스레 주인공에게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이 책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의 주인공인 시마무라는 아픈 과거를 묻어둔 채 조용히 살고자 했으나 과거의 망령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진한 위스키향과 진한 고독의 향을 동시에 풍기는 주인공 시마무라... 평범하다 못해 지질하게 보였던 그가 폭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나선다!

배경은 1990년대 일본 신주쿠. 삶에 지쳐버린 듯한, 외롭고 고독해 보이는 한 중년의 남자가 신주쿠 중앙공원에 나타난다. 그는 신주쿠 골목에 있는 작은 바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시마무라.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한낮 공원에서 마시는, 독하지만 달콤한 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공원에 나가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공원 내에서 거대한 폭발 사고가 발생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한다. 그런데 시마무라의 대처가 약간 수상쩍다. 공원에서 알고 지내던 노숙자에게 그날 자신을 봤다는 말을 경찰에게 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자신의 지문이 남은 위스키 병의 존재에 대해서 걱정하는데... 그는 과연 누구일까?

폭발 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시마무라에게는 연속적으로 이상한 일이 발생한다. 한눈에 보기에도 폭력단 소속으로 보이는 남자들에게 조용히 지내라는 위협을 듣고 밤늦게 가게로 찾아온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들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당한다. 그들 중 한 명은 시마무라에게 그가 공원에서 본 전부, 즉 폭발 사고에 대한 것을 모두 잊으라고 하며 그렇지 않으면 더 험한 꼴을 당할 것이라 경고를 하고 떠난다. 이제 시마무라는 폭발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인 것..... 도대체 조용히 살던 시마무라를 위협하는 인물들은 누구일까?

폭발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 중에는 경찰청 간부도 있었다. 중요 인물이 목숨을 잃는 바람에 발칵 뒤집힌 신주쿠 경찰서는 '신주쿠 중앙공원 폭발 사건 특별 수사본부'를 수립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한다. 한편, 주인공 시마무라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고 가게를 접지만 때마침 찾아온 도코라는 20대 여성을 통해 도쿄대 재학 시절 함께 전공투 조직 ( 일종의 학생 운동 조직)에서 활동했던 유코가 폭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뿐 아니라 TV 뉴스를 통해 함께 활동했던 친구 구와노의 신체 일부도 폭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을 알게 된다. 이념을 위해 청춘을 바쳤던 친구들의 연속된 죽음....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같은 조직의 일원이었던 시마무라의 목숨도 위험하지 않을까?

비록 알코올중독자이지만 조용하고 모범적으로 살아가던 주인공의 삶에 제동이 걸린다. 숨기고 살아왔던 지난달들의 과오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경찰도 시마무라를 좇지만 정체 모를 무리들도 그를 쫓고 있다. 시마무라는 평범한 아저씨에서 노련한 수사관으로 변모하게 된다. 노숙자들 틈에서 먹고 자면서 폭발 현장에서 잠시 스쳤던 갈색 머리 청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기자와 경찰로 꾸며서 폭발 사건의 유족과 당사자로부터 사건 해결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를 얻게 된다. 자신에게 위협을 가했던 폭력단의 보스에게 직접 찾아가 자신을 찾아오게 된 정황과 다른 정보를 듣게 되는 시마무라. 그는 보이지 않게 움직이며 흩어져있는 퍼즐들을 찾아내 끼워 맞추기 시작하는데......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은 하드보일드 스릴러가 안겨줄 수 있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어두운 과거를 가졌지만 지금은 현실 부적응자인 알코올중독자가 정신을 차리고 해결사로 변모하는 과정이 짜릿하다. 외로운 늑대가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먹잇감을 향해 돌진하는 느낌이다. 이념을 위해 함께 청춘을 바쳤던 친구들과 죄 없는 시민들의 죽음 앞에서 칼날을 빼어든 주인공 시마무라, 집요하게 사건을 파헤쳐 가는데... 과연 그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친구들의 복수를 대신할 수 있을까? 복잡하기 그지없는 사건이지만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듯 조금씩 풀어가는 주인공 덕에 재미있던 책. 막판에 소름 돋는 대반전에 반전을 터트리는 이 소설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잘 쓰인 하드보일드 범죄 스릴러를 기대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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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조건 - 철학이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
오사 빅포르스 지음, 박세연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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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해도 당당한 사람들이 판치는 지금

진실을 지키기 위한 철학적 사고법!

진실과 거짓이 서로 팽팽하게 대결하고 있는 지금, 세상은 진실 찾기에 돌입한 것처럼 보인다  출처가 없고 증거를 찾을 수도 없는 가짜 뉴스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고,

대중들은 전문가의 지식을 신뢰하기 보다는 1분 만에 찾아낸 인터넷 검색 결과를 더 신뢰한다.

권력을 가진 전 세계 정치인들은 진실을 적극적으로 왜곡하고,

분열의 씨앗을 뿌리며, 지식의 출처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뜨리는 행동을 한다.

이 책 [진실의 조건]을 쓴 스웨덴이 철학교수인 오사 빅포르스는 현재 우리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 ( 탈 진실: 진실보다 개인적 믿음과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alternative facts, 즉, 대안적 사실이라는 표현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 백악관 대변인이었던 션 스파이시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군중이 집결했다고 했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 즉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객관적 현실에 대해 의문을 품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선전과 거짓 정보에 대해 “이것은 거짓이다”라고 손쉽게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저자는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과연 “대안적 사실”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는 저자, 인간은 결핍투성이기에 논리의 오류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사실 인간은 지식 저항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일단은 본인의 믿음이 우선시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저자는 “믿음이 아무리 강력하다 하더라도 지식과 같지 않다”라고 판단을 내린다. 믿음이 실제 진실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예 뭔가 알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이 “대안적 사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기인한 사실적 허무주의라는 이념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적 허무주의는 진실 혹은 거짓인 세상에 대한 사실적 진술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즉 다시 말하면, 지구가 둥글지 않을 수도 있고, 사과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내포하는 것이다. 사실적 허무주의자들은 진실과 거짓이 충돌하고 모순이 발생하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사 빅포르스는 사실 허무주의란 철학의 대량 살상무기와도 같다고 말하기까지 하며 비판한다.

그녀는 반대 증거가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사실에 믿음을 가지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이유로 인간이 가진 다양한 인지 왜곡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중 몇 가지 소개하자면 첫 번째로 확증 편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이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 시켜주는 정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즉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게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

두 번째로 ‘정치적으로’ 의도된 합리화가 있다. 이것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이념적 집단의 믿음과 일치하는 믿음을 고수하길 원하는 심리 기제이다. 마지막으로 역화 현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믿음이 증거가 부족하거나 거짓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오히려 우리의 믿음에 반하는 증거가 믿음을 더 강화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짜 뉴스의 범람과 잘못된 믿음으로 인한 편향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그녀는 교사의 개입이 최소화되고 학생들 스스로 학습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방식인 "구성주의" 교육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다. 교수법이 개별화되고 정형화된 교과 내용이 최소화되자 현실을 바라보는 공유된 인식이 해체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 학교에서는 교육을 바꿀 필요가 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인식 왜곡에 맞서고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그녀, 예를 들자면 출처의 신뢰성을 주의 깊게 평가하기, 우리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열어두기, 전문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등등이 있다.

여러 철학 개념과 인지 왜곡과 같은 심리 기제에 대한 전문적 설명 등으로 대단히 어려웠던 [진실의 조건] 그러나 현재 우리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편향된 지식이나 주장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상황을 정치인들이 얼마나 쉽게 이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어서 매우 뜻깊은 독서였다.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천천히, 그리고 의미를 곱씹어가면 읽어야 할 깊이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독, 삼독을 하면 더욱더 독자가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는 철학서 [진실의 조건] 이었다.

* 출판사가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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