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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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님, 오셨다면 <딱> 소리를 내주세요.

거리의 마술사 제니, 우당탕 기상천외한 수사에 뛰어들다

거리의 마술사인 제니의 모험 이야기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남들의 눈을 속이는 환상술사, 즉 마술사가 같은 계열인 심령술사들의 속임수를 밝혀낸다는 설정이 다소 모순적이긴 하나 대단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 작품. 또한 조나탕 베르베르가 한국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작가인 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드님이란 사실도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어쩐지... 메인 스토리 사이에 끼워 넣은 탐정 지침서와 돌아가신 제니 아버님이 일기처럼 남긴 마술의 길, 즉 여러 마술 기법에 대한 안내서를 보고 조금 아버지 냄새가 난다 했지.

이야기는 1888년 뉴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 제니는 매우 재능 있지만 아직은 거리에서 공연할 수밖에 없는, 가진 것 없는 젊은 마술사이다. 구경꾼들이 내는 몇 푼의 동전들이 그녀가 벌어들이는 소득의 전부이다. 그야말로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입장. 그러던 어느 날 제니는 그동안 그녀의 재능을 눈여겨봐온 핑커턴 탐정 사무소 소장 로버트 핑커턴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제니가 솔깃할 만한 제법 큰돈을 제시하면서 그녀를 탐정으로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데. 그녀가 할 일은 바로 심령 술사인 폭스 자매의 속임수를 밝혀내는 것!

마술사로서의 재능도 뛰어나지만 눈치도 빠르고 굉장히 똑똑한 제니. 그녀는 자신의 인간적인 매력과 친화력을 이용하여 폭스 자매 중 좀 더 젊은 쪽인 마거릿과 친구가 되는데 성공한다. 이제 폭스 자매가 심령술을 하는 동안 어떻게 "딱" 소리를 내는지 알아내고 그들의 속임수를 만천하에 알릴 일만 남았다. 소매에 기계를 감추는 걸까? 아님 관절로 소리를 내는 걸까? 하지만 일은 제니가 생각했던 것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심령술에 대해서 공격하는 무리들이 많았던 지라 폭스 자매는 평소에 그에 대비해왔고, 또 제니를 마땅찮아 하는 어떤 인물의 방해공작에 의해서 그녀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제니와 로버트는 폭스 자매들 중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케이트 폭스를 찾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하게 되는데......

소설의 배경은 1800년대 후반 뉴욕이다. 남북전쟁 이후 약간 어수선한 미국의 분위기를 아주 생생하게 담고 있는 소설이다. 당시에 심령주의 운동이 굉장히 인기가 있었고 거의 미국을 휩쓸다시피했지만,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청교도가 지배하는 국가로써 기독교 단체의 힘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에 폭스 자매들처럼 심령을 부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억압하는 분위기도 존재했다. 사람들이 심령주의에 물들지 않기를 바랐던 여러 종교들이 로버트 핑커턴과 같은 탐정들을 시켜서 심령 술사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모색해왔던 것. 중간중간 작가가 끼워 넣은 핑커턴 탐정 지침서를 통해 당시에 있었던 마녀사냥과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독자들에게 소개된다는 면도 흥미진진하다.

조나탕 베르베르의 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는 여러 면에서 독자들에게 큰 만족감을 선사한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었던 당시 아버지의 길을 이어받아 꿋꿋하게 마술사의 길을 가는 제니. 마술에 대한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속임수를 금방 파악해 내는 영리함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돈 때문에 탐정 일을 하게 되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이라던가 사람들 속에 금방 녹아들어 가는 친화력 등등은 로버트 핑커턴이 그녀를 고용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뿐 아니라 1800년대 후반 미국을 휩쓸었던 심령주의 분위기는 폭스 자매의 인기를 통해 잘 드러나고 그런 분위기를 억압하려고 애썼던 종교 단체들이 오히려 더 전전긍긍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심령술사 활동에 환멸을 느끼고 숨어버린 케이트를 결국 찾아내는 로버트 핑커턴과 제니.. 과연 그들은 폭스 자매의 거짓과 심령술이 사기라는 것을 밝혀낼 수 있을까? 베르베르 집안 특유의 재기 발랄한 문체와 흥미로운 배경지식이 돋보이는 소설 [심령들이 잠들지 않는 그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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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2
유지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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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도...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고백하고도...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괴물이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괴물이어서, 서로의 상한 영혼을 알아봤던 것이 아니었을까? "

1편에서 급성 백혈병을 앓고 시한부 판정을 받은 뒤 희주의 공방에 와서 미술 치료를 시작한 수현. 킬러의 삶을 살면서 스스로 괴물이라 생각했던 수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 치료를 받으며 깊은 무의식 속 숨어있던 본인의 인간적인 면을 발견하게 된다. 거의 삶을 포기하고 있었기에 죽음을 기다렸던 입장이지만 수현을 걱정해 주고 지지해 주는 여자 희주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살고 싶다는 의지도 품게 된다.

2편에서도 그들은 여전히 치료사와 환자로서 만남을 지속하게 되지만 이번 편에서는 희주와 수현을 평생 불행하게 만들었던 살인 사건들, 그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리고 1편에서는 주로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더듬어가듯 사랑의 감정을 느껴가는 희주와 수현의 로맨스가 주로 스토리에 녹아있다면, 2편에서는 희주 어머니의 살인 사건을 맡아 조사했던 형사의 아들인 정우성 형사가 본격적으로 다시 사건을 들여다보게 되면서 수현이 저질렀던 과거 사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심판의 칼날이 좀 더 수현에게 가까이 다가왔달까? 1편에 비해서 좀 더 스피디하고 흡인력 있다고 느껴졌던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2편으로 들어가 본다.

여전히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결정적 사건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현. 희주는 콜라주라는 미술 기법을 통해서 그의 무의식 속 숨어있는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애쓴다. 희주는 수현에게 "안전한 장소"에 대한 콜라주와 그의 기억 속 "어두운 장소"에 대한 콜라주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새 둥지와 기타 그리고 하얀 꽃잎으로 "안전한 장소"를 만든 수현. 희주는 이미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수현이 생각하는 안전한 장소가 그들이 미술 치료를 하고 있는 그 공방이라는 사실을 알고 감동한다. 그러나 문제는 "어두운 장소"에 대한 콜라주. 수현은 검붉은 꽃잎과 눈물을 흘리는 나신의 여인 등등을 떠올린다. 더불어 얼굴 없는 여자아이와 피를 흘리는 초승달이라는 악몽을 자주 꾼다고 이야기하는 수현... 그들을 가로지르는 사건의 핵심 비밀이 숨어있는 이미지들.. 정신분석을 통해 희주가 알게 될 진실은?

한편 우성은 미국 유학 시절 자신이 배웠던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라는 기법, 즉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누군가의 감정을 알아내는 기법을 통해서 과묵한 남자 수현의 감정을 짚어낸다. 흑곰이라 불리는 한 조폭의 장례식에서 만나게 된 수현이 흑곰의 딸을 바라봤을 때의 얼굴 표정을, 자신이 배운 기법과 비교해 보고는 그가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느꼈던 사실을 알아내는 우성. 수현이 왜 흑곰의 딸에게 죄책감을?? 결국 우성은 과거 몇 년 동안 벌어졌던 조폭 관련 살인 사건들과 수현이 어느 정도 관계가 있을 거라고 추측하게 되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희주와 수현,, 이들의 운명은 과연?

나의 삶을 망가뜨린 장본인을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희주와 수현은 마치 서로 물고 물리는 두 마리의 뱀처럼, 혹은 얽히고설킨 등나무처럼 복잡하게 꼬여버린 운명과 마주하게 된다. 표지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하고 턱하니 사랑에 빠져 버리게 된 것. 개인적으로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믿지 않고 만약에 친구가 그런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면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하고 간섭을 하겠지만, 이들 두 사람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 첫눈에 반한 사랑 " 은 응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천년 혹은 만년 아니면 억겁을 뛰어넘은 생의 끝에 만나게 된 인연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렇게 격렬한 감정이 수반되는 사랑 이야기는 내 취향이 아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좀 너무 신파적이고 과도하게 비극적인 설정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었다. 킬러로 길러진 아름다운 남자 수현, 백혈병에 걸려 죽음만을 기다리다가 운명적 사랑을 만난 상황 등등 그리고 꼬일 대로 꼬여버린 운명이라든가, 현실감도 많이 떨어지고 너무 작위적이다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그러다가 문득 책에 빠져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세상은 요지경이고 별별 일이 다 있으니 이런 상황이 없으란 법도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중에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달까?

미술치료를 통해서 무의식이 이렇게 드러날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신기했고 정우성 형사의 마이크로 익스프레션이라는 얼굴 표정 분석 기법도 신기했다. 무엇보다도 얄궂은 운명도 극복해 내는 희주와 수현의 뜨겁고도 순수한 사랑이 정말 인상 깊었다. 감정적으로 깊게 몰입하게끔 만들었던 책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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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1
유지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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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은 결국, 용서받을 수 있을까?

당신은 인간 내면의 감출 수 없는 본성을 피할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남의 목숨을 빼앗아가며 살아가는 남자 수현. 매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냉정한 킬러이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이 일은 쉽지 않았던지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다. 의사는 포기하지 말라며 치료를 권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는 듯한 이 초연한 남자는 치료받기를 거부한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우울증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것으로 생각한 정신과 의사의 권유에 의해서 수현은 미술 치료를 받게 된다.

한편 미술치료사인 희주는 자신의 공방에 찾아온 환자 수현을 보고 두려운 마음을 품게 된다. 그냥 단순 환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눈빛이 너무나 냉혹하고 살기까지 어렸기 때문. 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을 통해 들여다본 그의 마음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악과 선, 강함과 약함, 어른과 소년.. 그의 마음속에는 이렇게 서로 상충하는 면이 함께 들어 있었던 것. 눈빛에 살기를 띄고 무표정하며 잔인해 보이는 한 남자에게서 소년 같은 순수함을 발견하게 되는 그녀.

이 책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은 설정 자체가 굉장히 복잡하고 흥미진진하다. 어릴 적에 엄마가 누군가에게 살해되고 평생 그 기억에 갇힌 채 살아가는 여자 희주. 유명 화가였던 엄마가 남긴 유작을 팔아치우고 젊은 여자와 결혼해 버린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그리고 유학을 가서 만난 연인에게 버림을 받고는 거의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살아온 그녀. 그런데 환자로 찾아온 수현도 굴곡 있는 인생이라면 만만찮다. 부모님을 잃고 보육원을 전전하다가 너무나 그리워했던 사랑하는 누나와 함께 살게 된다. 누나와 함께 산 2년은 천국이었다. 그러나 함께 산지 채 2년도 되지 않아서 누나가 한 공사장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이후로 삶의 의미를 잃은 채 킬러로 살아온 인생.. 스스로를 끔찍한 괴물이라 믿으며 죽음이 찾아온 것을 반기고 있었는데, 그런데,, 살고 싶게 만드는 여자가 나타났다!

사실 희주는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살인자를 찾아달라고 흥신소에 의뢰를 해놓은 상태였는데 그 흥신소에 소속된 킬러가 바로 수현이었던 것. 이렇게 의뢰인과 킬러가 치료사와 환자로 만나게 되었다. 희주는 수현이 킬러란 사실을 아무것도 모른 채 일주일에 한 번씩 그를 만나게 되는데, 수현이 그리는 그림을 통해 황폐해 보이는 그의 내면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순수함에 점점 끌리게 된다. 누나가 죽은 이후로 마음에 빗장을 굳게 걸은 채 살아온 수현도 미술 치료를 통해 점점 마음을 열면서 희주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치명적인 비밀이 있었으니...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은 어릴 적 봤던 홍콩 누아르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비정하고 잔인한 살인 사건과 피의 복수가 있으나 그 이면에 소년과 소녀가 손 맞잡고 동산을 거니는 듯한 순수함이 엿보인다. 평소에는 냉혈하고 무자비한 킬러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은 남자의 순정이 두드러진달까? 이 책은 그러나 이런 드라마적인 요소 이외에도 수현이 미술치료를 할 때 받는 정신분석 과정이 대단히 흥미롭다. 마치 진짜 수현이라는 사람이 그린 것처럼 그가 그린 그림이 사진으로 등장하고 희주가 꼼꼼하게 분석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단순히 그림 하나 만으로도 환자의 심리를 낱낱이 분석해 내는 희주의 능력에 감탄을 했고 동시에 내가 미술치료를 받는다면 나의 무의식은 나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스릴러 로맨스? 혹은 로맨틱 스릴러? 정확하게 규정할 순 없겠지만 이 책은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냉정한 분석 뒤에는 서로를 향한 뜨거운 애정이 느껴지는.. 그런 독특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1권 밖에 읽지 못했지만 굉장히 흥미로워서 2권을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치 앞의 운명도 모른 채 서로에게 빠져드는 연인을 그리는 소설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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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타라 미치코 지음, 김지혜 옮김 / 더난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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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히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 손길 하나마다

한 땀 한 땀 삶이 짜여간다

나의 경우 부모님이 바쁘셨던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는 내내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었다. 사과 농사를 크게 지으셨던 할머니는, 바쁘신 와중에도 손자 손녀들의 끼니를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셨고 그때 먹었던 할머니표 물김치나 된장찌개 맛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었던 할머니의 요리와 손길들... 내 어린 시절의 한 5할 정도는 할머니 댁에서의 삶이 차지한다.

일본 할머니는 어떻게 생활하고 계실까? 8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본인만의 삶에 리듬에 따라 충만한 생활을 이끌어가고 계신다는 "타라 미치코" 할머니. 유튜브 스타가 되어 크나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7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55년 된 서민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할머니. 2020년 우연히 손자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했고 처음에는 구독자가 가족뿐이었지만 두 달 후에는 구독자가 1만 명, 2022년 기준으로는 15만 명으로 늘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7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할머니가 지향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의 리듬에 맞게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적이고 검소한 할머니의 살림 솜씨, 특히 요리 솜씨에 감탄했고 그녀가 삶의 어떤 부분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지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매우 긍정적인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30년째 쓰고 있다는 '10년 일기'를 3권째 쓰고 있다는데 기록이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내용은 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한 번씩 꺼내서 읽어본다고 하는데 추억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 상상이 된다.

" 세 권째 쓰고 있는 10년 일기. 쓰고 있는 내용이 있을 때는 길게 쓰기도 합니다. 

날씨가 맑았다, 보름달이 예뻤다, 등 날씨만 써놓은 날도 있어요.

'피곤하다' 같은 부정적인 내용은 쓰지 않아요. " - 161쪽 -

"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지요.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고 좋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 - 204쪽-

그러나 역시 내가 주부라서 그런지 책 속 내용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녀의 부엌살림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간단하지만 맛깔스러워 보이는 반찬을 뚝딱 만들어내는 솜씨에 감탄하고 말았다.

" 혼자 먹기 딱 좋은 나만의 식단을 알차게 꾸립니다 " - 62쪽 -

" 예쁜 그릇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56쪽-

혼자 살다 보면 식사를 아무렇게나 하기 쉽다. 하지만 타라 미치코 할머니의 경우 프로 혼밥러라고 해야 할까? 혼자 하는 식사에 놓인 반찬이 이렇게 맛깔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시금치 깻가루 무침은 시금치 삶고 깻가루와 간장으로 바로 무쳐내면 되고 무 오이 간장 절임은 깍둑썰기를 한 무와 오이에 간장을 뿌린 뒤 몇 시간 재워두기만 하면 된다. 이 요리 외에도 달걀, 어묵, 양파로 간단히 볶아낸 사츠마아게 볶음밥도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요리도 요리지만 평생 모아 오고 있다는 예쁜 접시와 그릇들도 요리를 한층 맛있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역시 보기에 좋은 떡이 맛도 좋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원칙을 담아서 이끌어오고 있는 충만한 삶! 타라 미치코 할머니가 이끄는 삶은 은은한 빛을 내면서 유튜브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것 같다. 연세에 비해서 굉장히 젊게 사시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긍정적인 마음 자세와 규칙적인 생활 태도 등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삶도 좋아 보였다. 인간관계는 난로와 같은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가까워지면 너무 뜨겁고 멀어지면 너무 춥고. 할머니는 독립적인 생활을 지향하면서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다.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사람에 목매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충분히 삶을 만끽하면 살아가는 그런 인생... 나의 노년도 타라 미치코 할머니의 삶을 닮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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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
한새마 지음 / 북오션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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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꽃을 의미한다는 "라플레시아". 이 꽃은 특히 고기가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를 풍겨서 파리들이 왕창 꼬인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파리가 꽃가루를 옮기면 금방 죽어버린다고 하니.. 그로테스크한 그 외면에 비해 생명력은 짧은 듯. 잔혹 범죄를 주로 전담하는 광역 수사대 팀장 강시호의 등에 이렇게 차마 꽃이라고 표현하기 힘든 거대한 꽃이 문신으로 떡하니 새겨져있다. 왜 하필이면 라플레시아일까?

수십 년 전 일본에서는 옴진리교가 살포한 사린가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침 통근 지하철 속 그 정신없는 와중에 독가스 살포라니 .. 양심도 없는 놈들 같으니..... 최근 우리나라에도 사이비 종교 문제가 아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 주로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쉬운 젊은이들을 노리고 접근한다니 교활하고 야비하기 그지없다. 이 소설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철저히 망가뜨리는 사이비 종교와 그 속에서 군림하며 사람들을 착취하는 추악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을 다룬다.

어릴 적 작은 어선에서 시체꽃 모양으로 죽은 여동생과 함께 발견된 시호. 그녀의 등에는 시체꽃 모양이 문신으로 새져겨 있었다. 아들을 잃은 강규식 형사에게 입양된 그녀는 이후 여동생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자 형사가 된다. 낮에는 주로 잔혹한 범죄 현장을 뛰는 형사로, 밤에는 라플레시아 문신을 새겨주는 타투이스트로 바쁘게 살아가는 그녀. 인간관계는 사치.. 드라이하게 살아가며 오직 여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만을 좇는다. 이 소설에서는 특히 강시호의 액션이 두드러지는데, 소설의 첫 장면에서 불법 격투기장에 들어가 몸소 격투를 벌이며 범죄자들을 때려잡는 모습은 진짜 박진감 그 자체였다!

그러던 중 대부 업체를 운영하는 신영호라는 사람이 한 고급 아파트 안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원한에 의한 죽음이었는지 어땠는지 얼굴은 곤죽이 되어 있고 범행에 쓰인듯한 다짐육 망치와 약간의 살점 그리고 치아가 식기세척기 안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보안과 경비가 매우 삼엄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살인이라는 점이다. 오직 지문으로만 드나들 수 있는 이 아파트를 드나든 사람은 본인 신영호와 아들 신태광, 가사도우미 김희령뿐이다. 그렇다면, 이건 흔히들 이야기하는 밀실 살인? 

한편 소설의 다른 화자인 민서는 가난한 집안 환경으로 인해서 힘들게 살아가는 청춘이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갑질 손님에게 시달리면서 살아가던 그때 인생의 멘토라고 할 만한 사람인, 제이 언니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할머니 손에 자란 제이 언니, 그러나 밝고 따뜻하며 인간적인 그녀에게 반해버린 민서는 제이 언니가 이끄는 한 공동체에 발을 내딛게 된다. 장터에서 열심히 물건도 팔고 밴드 공연도 하며 노숙자 쉼터에서 봉사활동도 하는 건전한 공동체로 보이던 그 종교 단체... 그러나 그들이 숨기고 있던 추악하고 거짓된 욕망.. 그 비밀스러운 모습이 민서 앞에 드러나는데...

계간 미스터리와 엘릭시스 미스터리 부문에서 수상을 한 한새마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등장인물이나 스토리 면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등장인물의 경우, 여동생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죽음에 대한 자책감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그리고 단서 하나라도 얻기 위해 현장을 발로 뛰며 고군분투하는 형사 강시호. 그녀가 가진 놀라운 범죄 해결력에 뛰어난 액션까지! 걸크러쉬가 따로 없다. 거기에 걸쭉한 사투리를 쓰는, 눈치코치 없는 우 형사가 콤비를 이루며 다소 코믹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점도 마치 감초처럼 느껴졌다.

스토리 구성에서도 나무랄 데가 없는 듯. 강시호가 위험을 무릅쓰고 잔혹한 범죄현장을 뛰어다니는 것도, 밤마다 시체꽃 문신을 새겨가며 이와 관련된 단서를 얻는 것도 결국엔 여동생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고 하는 것. 끈질긴 추적 끝에 강시호가 타고 있던 어선에서 많은 아이들이 죽은 이유와 그녀의 등에 시체꽃 문신이 새겨진 이유가 밝혀지는데.. 그 더러운 욕망의 민낯을 보고 나니 씁쓸하기 그지없다. 개인과 사회는 동떨어질 수 없는 것. 추악한 욕망과 본래의 목적을 숨긴 채, 순수한 젊은이들을 가스라이팅해가며 몸을 불려가는 사이비 종교 관련자들.. 그 나쁜 놈들을 다 색출해서 관련자들을 다 감방에 처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시호의 액션이 그야말로 화려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더욱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 [잔혹범죄전담팀 라플레시아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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