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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건조한 오트밀에 레몬식초 2큰술을 더한 하루
타라 미치코 지음, 김지혜 옮김 / 더난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촘촘히 차곡차곡 쌓아온 시간 손길 하나마다
한 땀 한 땀 삶이 짜여간다
나의 경우 부모님이 바쁘셨던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는 내내 시골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서 지냈었다. 사과 농사를 크게 지으셨던 할머니는, 바쁘신 와중에도 손자 손녀들의 끼니를 잘 챙겨주려고 노력하셨고 그때 먹었던 할머니표 물김치나 된장찌개 맛은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난다. 투박하지만 정감 있었던 할머니의 요리와 손길들... 내 어린 시절의 한 5할 정도는 할머니 댁에서의 삶이 차지한다.
일본 할머니는 어떻게 생활하고 계실까? 8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본인만의 삶에 리듬에 따라 충만한 생활을 이끌어가고 계신다는 "타라 미치코" 할머니. 유튜브 스타가 되어 크나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하는데 그녀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7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난 이후 55년 된 서민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할머니. 2020년 우연히 손자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했고 처음에는 구독자가 가족뿐이었지만 두 달 후에는 구독자가 1만 명, 2022년 기준으로는 15만 명으로 늘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7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할머니가 지향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의 리듬에 맞게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실용적이고 검소한 할머니의 살림 솜씨, 특히 요리 솜씨에 감탄했고 그녀가 삶의 어떤 부분에서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지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매우 긍정적인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30년째 쓰고 있다는 '10년 일기'를 3권째 쓰고 있다는데 기록이 길어지기도 짧아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정적인 내용은 담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한 번씩 꺼내서 읽어본다고 하는데 추억놀이가 얼마나 재미있을지 .. 상상이 된다.
" 세 권째 쓰고 있는 10년 일기. 쓰고 있는 내용이 있을 때는 길게 쓰기도 합니다.
날씨가 맑았다, 보름달이 예뻤다, 등 날씨만 써놓은 날도 있어요.
'피곤하다' 같은 부정적인 내용은 쓰지 않아요. " - 161쪽 -
"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지요. 인간관계가 잘 풀리지 않고 좋지 않을 때도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고 좋은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 - 204쪽-
그러나 역시 내가 주부라서 그런지 책 속 내용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녀의 부엌살림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간단하지만 맛깔스러워 보이는 반찬을 뚝딱 만들어내는 솜씨에 감탄하고 말았다.
" 혼자 먹기 딱 좋은 나만의 식단을 알차게 꾸립니다 " - 62쪽 -
" 예쁜 그릇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56쪽-
혼자 살다 보면 식사를 아무렇게나 하기 쉽다. 하지만 타라 미치코 할머니의 경우 프로 혼밥러라고 해야 할까? 혼자 하는 식사에 놓인 반찬이 이렇게 맛깔스러워 보일 수가 없다. 예를 들자면 시금치 깻가루 무침은 시금치 삶고 깻가루와 간장으로 바로 무쳐내면 되고 무 오이 간장 절임은 깍둑썰기를 한 무와 오이에 간장을 뿌린 뒤 몇 시간 재워두기만 하면 된다. 이 요리 외에도 달걀, 어묵, 양파로 간단히 볶아낸 사츠마아게 볶음밥도 굉장히 맛있어 보였다.
요리도 요리지만 평생 모아 오고 있다는 예쁜 접시와 그릇들도 요리를 한층 맛있어 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역시 보기에 좋은 떡이 맛도 좋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만의 원칙을 담아서 이끌어오고 있는 충만한 삶! 타라 미치코 할머니가 이끄는 삶은 은은한 빛을 내면서 유튜브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것 같다. 연세에 비해서 굉장히 젊게 사시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긍정적인 마음 자세와 규칙적인 생활 태도 등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사는 삶도 좋아 보였다. 인간관계는 난로와 같은 것이라고 하는 말이 있다. 가까워지면 너무 뜨겁고 멀어지면 너무 춥고. 할머니는 독립적인 생활을 지향하면서 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 좋아 보였다. 순간순간에 충실하고 사람에 목매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충분히 삶을 만끽하면 살아가는 그런 인생... 나의 노년도 타라 미치코 할머니의 삶을 닮았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