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심리학 - 상담학 총서 상담학총서
존 웰우드 지음, 김명권.주혜명 옮김 / 학지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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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의 번역서를 읽다가 우연히 존 웰우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자아초월심리학 내지는 심리학과 영성을 통합한 새로운 정신과학이 그렇게 낯설지 않은 개념이다. 존 웰우드는 30여 년 전부터 심리학과 영성(명상)을 상호보완적으로 통합하는 작업을 해 온 임상심리학자다.

 

인간의 정신/마음/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심리학과 영성(명상)은 얼핏 비슷하면서도 판이하게 상반된 면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개별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자아의 문제에 있어서 심리학과 영성(명상), 특히 불교적 명상 체계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심리학이 건강한 자아의식을 형성하고 지지하는데 일조한다면, 영성(명상)은 그러한 자아 구조의 기반이 한낱 환상, 허위임을 밝혀 제한된 자아의식으로부터 해방을 이끌어 낸다.

 

웰우드는 전문적인 임상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로서의 수업뿐만 아니라 오랜 동안 티베트 불교 명상 수련을 통해 이 비슷하지만 다른 두 개의 길이 창조적이며 상호보완적으로 통합이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다. 프로이트와 부처의 결합이라 할 수 있는 웰우드의 작업은 인격과 존재, 세속과 출세간, 물질과 공, 자아와 무아라는 서로 대립된 개념, 상황, 세계를 통일시킨다. 동양적 영성을 현대 서구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오랫동안 두 가지 길 모두에서 성실한 수련을 한 그의 통찰력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오늘날의 심리학자뿐 아니라 전통적 영성의 한계에 갖혀 있는 국내의 영성 수련자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제공한다.

 

영성 수련자들에게 가장 요긴한 대목은, 영적 깨달음이 개인의 심리적 문제나 관계의 문제를 단박에 없애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러한 자아와 관계의 문제를 회피, 또는 방어하는 수단으로서 영적인 수행에 이용하는 것을 '영적 우회'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소위 영적 깨달음 이전과 이후에도 개인의 심리적 문제, 관계의 문제 해결에 있어서 심리학적 접근의 유용성을 설득력 있게 피력하고 있는 부분도 눈여겨 볼 만하다. 불교에서도 진제(眞諦, 절대적 진리)와 속제(俗諦, 상대적 진리)의 문제를 다룬다. 비록 진제외 속제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진리의 적용에 있어서 분명 상황에 따른 차이가 있다. 절대적 진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생명력 없는 마른 진리일 뿐이고, 상대적 진리에만 집착하는 것은 천변만화하는 상황 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절대적 진리에 굳건히 발을 딛고 매일매일의 구체적 현실 속에 상대적 진리를 자유자재하게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이고 온전한 존재의 모습일 것이다. 

 

학술서적이라 번역과 문체가 대중적이지는 못하다. 특히 문장이 한 번 읽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데 원문이 그런 것인지 번역자의 탓인지 모르겠다. 조금 더 분명한 문장으로 구성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구체적인 심리적 문제나 영성 수련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심리학과 영성의 통합과 관련하여 심리학자와 영성 수련자 모두에게 매우 유용한 도움을 주는 책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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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필살기 - 텔레비전, 영화, 광고, 인터넷에서 찾아낸 우리말 절대 상식
공규택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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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우리말 필살기>의 저자와는 개인적으로 같은 대학 같은 과 2년 선후배 사이다. 학교 다닐 땐 이 후배가 이렇게 학구적인 친구인지 몰랐었다. 후생가외(後生可畏)라더니.... 어쨌든 꾸준히 우리 말과 우리 말 교육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써 오던 이 친구가 이번엔 우리 말 상식과 관련된 책을 한 권 더 세상에 내놓았다.

 

나도 명색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우리 말을 가르치는 국어 선생인데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게 우리 말이다.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아서 라고 겸손을 떨고 싶지만 사실은 우리 말 어휘 어법을 그리 심각하게, 애정을 가지고 공부해 본 적도, 그렇게 하려는 의지를 내어 본 적도 솔직히 없다. 문법에 대한 선천적 거부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을 공부하며 느꼈던 절망감이 새삼 온몸을 전율케 만든다. 도대체 왜 이따위 것을 배워야 하는지...

 

<우리말 필살기>는 우리말 가운데 아리까리(이거 표준어 아닐텐데...), 알쏭달쏭한 말들의 어원과, 틀리기 쉬운 맞춤법과 표준어, 외래어 규칙들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특히 각 꼭지 제일 앞 부분에 제시되는 돌발퀴즈는 다년 간 시험문제 풀이에 길들어진 우리의 풀이 본능을 자극해 주제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생활 주변에서 찾은 다양한 사례에서 동시대 우리 생활과 직결된 우리말 살이의 구체적인 면을 엿볼 수 있게 한 것도 저자의 탁월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마 저자도 충분히 공감할 테지만, <표준국어대사전>으로 대변되는 일군의 우리말 전공자들, 언어 권력들과 일반 언어 사용자들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하는가는 여전히 문제다. 언어학자들이 언중을 계도하고 계몽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언중들의 구체적인 언어 활용의 다양한 사례들을 수집, 분석, 정리, 이론화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할 것인가? 왜 '짜장면'을 '자장면'이라 발음하고 표기해야 하는가? '누구' 맘대로, '누구'를 위해서? 왜 어느 날 갑자기 '장마비'가 '장맛비'가 되는가? '북어국'이 '북엇국'이 되어야 할 까닭과 필요는 '누가'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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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의 일기 - 통합심리학의 대가 켄 윌버, 그의 이야기
켄 윌버 지음, 김명권, 민회준 옮김 / 학지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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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윌버. 이 신비하기 짝이 없는 인물을 뭐라 규정할 수 있을까? 흔히 통합심리학자, 통합이론가로 알려진 그는 자연과학(과학)과 인문과학(종교), 서양과 동양, 육체와 정신(영혼) 사이의 대통합을 추구하는 이론가이자 영적 탐구자이다. 그의 최초의 책 <의식의 스펙트럼>의 대중적 요약본이라 할 수 있는 <무경계>가 국내의 자아초월 심리학 전공자와 선, 명상, 요가 수행자 사이에 공통으로 유행했었다.

 

그의 아내였던 트레야와의 운명적 만남에서 유방암으로 사별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만큼이나 <켄 윌버의 일기> 역시 이 무시무시한 사상가, 깨달은 학자(판디트)의 내면과 인간적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특이한 독서경험을 제공하는 책이다.  1997년 1월부터 12월 말까지 1년간의 일기 기록을 통해 이 사람의 일상은 물론 그의 주변 친구들, 미국을 중심으로 과거 종교의 어둠에서 과학의 조명 아래 새롭게 등장하는 영성과 관련된 다양한 이론과 그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한 기술을 접할 수 있다.

 

그를 중관철학의 완성자 용수 보살에 비한다거나, 선과 화엄을 회통시킨 규봉 종밀에 빗댄다면 어떨까? 학자라고만 하기엔 어딘가 구루의 냄새가 강하고, 구루라고 하기엔 학자적 풍모가 강한 그. 너무나 거대한 스펙트럼을 가진 그인 만큼 그는 그를 읽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오독되고 오해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일미(一味, One Taste)'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영적 체험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골치아픈 이론적인 이야길랑은 훌훌 건너 뛰고 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기록들...

 

일미에 대해 정말로 이상하고 근본적으로 모순된 점이 있다. 결코 실제로 그 안에 들어가거나 그것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일미를 알았다. 문자 그대로 150억 년 동안 우리는 그것을 알았고 곧 언젠가 그것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면 위대한 탐색은 없었던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상태도 일미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모든 영원함을 지니는 공(空), 모든 무한함에 이르는 완전함. 단지 이것, 이것뿐이다. 이보다 더 분명할 수는 없고 그 때문에 아는 데 보통 평생이 걸린다. 너무 가까워서 손에 쥘 수 없고, 너무나 힘들지 않아 손이 닿을 수 없고, 존재하고 있어서 얻을 수가 없다. 부처는 결코 이것을 얻지 않았다. 지각 있는 존재는 결코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누가 이것을 믿을 것인가?

 

내가 일찍부터 이 사람을 의심했었다. 특히 둘째 문단의 내용만 보면 라마나 마하리시나 마조나 임제의 말이라 해도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은 또 어떤가?

 

일미를 '의식'이나 '각성'으로 묘사하는 것은 전혀 옳지 못하다. 너무 성급하고 인지적이기 때문이다. 일미는 존재의 꾸밈없는 감각과 더 비슷하다. 우리는 이미 이 감각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고 실재하는 현존의 감각인 것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감각이나 체험과는 아주 다르다. 이 존재의 꾸밈없는 감각은 오거나 가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시간이 그것을 통해 흐른다고 해도, 그 자신의 감각을 구성하는 조직의 하나처럼 그것은 전혀 시간 안에 있지 않다. 존재의 꾸밈없는 감각은 체험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체험이 오가는 광대한 개방성이자 모든 지각이 움직이는 무한의 광활함이며, 그 스스로의 유희의 형태가 그 안에서 일어나 잠시 머물렀다가 지나가는 위대한 영이다. 작은 자아가 모든 공간의 광대한 확장 속에서 풀릴 때 우리 스스로의 나-나다. 존재의 꾸밈없는 감각은 현존의 꾸밈없는 감각이자 일미의 꾸밈없는 감각이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미 존재를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중략)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지금, 그렇지 않은가?

 

(중략) 영은 현존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체험 속에서 항상적인 유일한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가까이 아주 조심스럽게 바라보면 빅뱅 이후와 그전부터 이미 가지고 있었다고 깨닫게 될 것은, 존재의 꾸밈없는 감각 그 자체, 미묘하고 항상적이며 배경이 되는 의식이다. 우리가 그때부터 존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느낌이 존재의 꾸밈없는 감각인 이 무한한 순간 속에 우리가 진실로 시간 앞서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 또 언제나 항상 지금.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인식하게 된 문제의식은, 오매일여(悟昧一如)를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하느냐다. 이 책에 기록된 켄 윌버의 개인적 체험에 의하면 깨어있는 상태, 꿈꾸는 상태, 꿈도 없는 깊은 잠의 상태 모두에 동일하게 항상적인 의식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전 성철 스님의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에 대한 언급을 말도 안 되는 헛소리 내지는 오해라고 치부했었는데, 정확히 말해서 아직 나 자신이 이 오매일여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대혜 스님 역시 이 문제를 가지고 한 동안 씨름했다는데 과연 난관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지금 바로 이 순간의 이 의식 말고, 깨어 있는 상태, 꿈꾸는 상태, 꿈도 없는 깊은 잠의 상태를 모두 관통하는 또다른 의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놀라운 일미는 어디에 있는가? 자, 누가 이 페이지를 읽고 있는가? 누가 그 눈 밖으로 보고 있는가? 누가 그 귀로 듣고 있는가? 바로 지금 누가 이 세계를 보고 있는가? 그 보는 자, 그 언제나 존재하는 주시자, 그것이 이 순간 그리고 모든 순간에 비이원적 계시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그대 자신의 즉각적인 참나다. 그대 자신의 참나로서 안식하라. 즉, 이 페이지와 이 방, 이 세계를 분명히 바로보는 것으로서 안식하라. 모든 세계가 일어나고 있는 광대하고 순수한 공(空)으로서 안식하라. 그러고서 세계가 그 참나와 하나가 아닌지를 보라. 주시자로서 꾸밈없이 안식하는 이 순간 주시자의 감각과 세계의 감각은 하나이며 같은 감각이라는 것에 주목하라("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을 때 종도 없고 나도 없고 그저 종소리가 있을 뿐이다."). 이 존재의 꾸밈없는 감각 속에서 그대가 바로 세계다.

 

보라! 단지 이것만이 있다. 

 

켄 윌버는 놀라운 텍스트다. 이제껏 분열되었던 육신과 정신, 영혼의 모든 단계를 통합하여 인간 의식의 최후 지점까지 이성적 탐구를 가하는 새로운 과학의 개척자이다. 누가 알겠는가? 앞으로 1~2백 년 후엔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깨달음의 이론과 실제' 내지는 '비이원적 의식 상태'를 과학 시간의 실험 과제로 다룰 날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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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선
박건주 지음 / 운주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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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선'은 중국 선종의 초조인 보리 달마로부터 5조 홍인 문하의 신수(북종)와 혜능(남종, 6조), 그리고 혜능 문하의 신회(7조)까지의 선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주로 <능가경>을 소의경전으로 삼은 능가선법의 선사들의 가르침이라 볼 수 있다. 국내에서 특히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연구 업적을 쌓고 있는 전남대 박건주 교수가 오늘날 간화선법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서 달마선법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달마선법이 <능가경>의 근본 종지에 바탕한 자교오종(藉敎悟宗, 경전에 근거하여 종지를 깨달음), 선교일치(禪敎一致),  불이중도(不二中道)의 가르침임을 초기 선종사서와 여러 대승경론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혜능~임제 계통의 선법이 후대에 유행하면서 의도적으로 점법으로 폄하된 신수 계통의 북종선이 점법과 돈법을 겸비한 가르침으로서 달마선법에 벗어난 가르침이 아니란 사실을 변론하여 초기 선종사를 치우치지 않은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열어 주고 있다. 

 

저자는 후대의 간화선법을 선정에 치우쳐 교학의 이법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일면 타당한 비판이면서 다른 일면에선 너무 지나친 편견이란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송대 이후 문자선, 문학선이 등장하여 여러 폐해가 있어 온 것은 사실이고, 그 반동으로 대혜 종고에 의해 간화선법이 제창되었다. 선법도 하나의 법(현상)인지라 고정된 것이 아니다. 무유정법(無有定法 : 고정된 법은 없다)이라 했듯이 상황과 조건,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선법도 그에 대응하여 변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달마를 비롯한 초기 선사들의 선법은 그 당시 조건과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가르침이었고, 혜능 이후 당대 5가 7종의 선법과 송대의 간화선법 역시 그 당시 역사적 흐름에 대응한 가르침이다. 가르침의 현상적인 면에서는 변화가 있다 할 수 있겠으나 그 근본종지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 진여자성은 무념, 무주, 무생, 무상이기에 유심(唯心)은 곧 일심(一心)이며, 곧 무심(無心)이다. 따라서 능(주관)과 소(객관), 아와 법이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기에 수행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무수(無修)의 수, 곧 돈수(頓修)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대혜의 간화선법도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며 무수한 대승경론을 통해 인증하고 있다.

 

역대 선사들 가운데 경론에 무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자무식으로 알려진 혜능조차 <단경>에서 <금강경>, <유마경>, <열반경> 등 대승경론을 끌어 자신의 주장을 뒷바침하고 있다. 다만 경론에 의거하되 그 언구에 집착하거나 머무르지 않고 자재하게 언구를 살려 쓰기에 격외의 선문답 역시 대승경론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간화선법과의 대비를 통해 달마선법의 장점과 특성을 강조할 수는 있겠으나 어떠한 법도 일면만 가진 것이 아님을 저자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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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수업 미래를 바꾸는 행복한 교육 시리즈 2
배광호 지음 / 다산에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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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수업>은 대구 경북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계신 배광호 선생님의 독창적인 수업모형에 대한 책이다. '하늘 국어'란 브랜드까지 갖춘 선생님의 수업은 기존의 이상과 실제가 괴리된 교육현실에서 어떻게 자신의 행복에서 비롯하여 세상 다른 모든 것을 이롭게 한다는 교육과정상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하나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 모두 행복한 수업이야말로 최고의 수업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관, 학생관, 수업관, 교재관, 평가관 등등 수업을 중심에 둔 모든 영역에서 자기 내면을 관찰하고 모든 목표와 기준이 잠정적이란 사실을 깨달아 자유자재로 자기 내면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수업의 인지적 측면은 물론 정서적, 나아가 영적 측면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어찌보면 혁명적인 교육관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로운 소통을 기반으로 이미 온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학생의 내적 역량을 자발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고의 수업, 행복한 수업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장에 소개하고 있는 1년 동안 진행되는 자신의 '하늘 국어' 모형 가운데 '학생 선생님 수업(학생이 교과 내용을 수업하는 것)'과 '세미나(학생 개개인이 관심있는 분야를 연구하여 20분 정도 발표하고 질의 토론하는 것)', 수업일지 쓰는 것 등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실제 수업에 적용하고 활용해 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선생님들의 참신한 수업모형 개발이 더욱 활성화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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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호 2011-02-0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 책을 이렇게 자세히 읽으시고 핵심을 정확히 정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생들의 무한가능성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으면서도 우리의 공교육 환경에서도 무리없이 해낼 수 있는 방법과 철학적 바탕을 계속 만들고 다듬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무한한 용기를 주신 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설날 명절도 즐겁고 복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