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과 작약 꽃대를 보듯 책을 보며 살았다.

지금의 나와 작년 봄의 나가 다를지언데, 타인과 나의 다름은 너무나 당연하다. 

한동안 '서평 책'을 읽는 것의 쓸데없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런 이유로 오래간만에 잡은 서평책이 바로 장석주의 ''불면의 등불이..' 인데, 같은 시기에 샀던 '장석주의 글쓰기'가 생각만 못해서 (이 때 글쓰기 책이고, 서평 책이고 다 필요없어~! 모드) 이 책은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말머리에서.부터 흥미로웠고, (..라기 보다 내가 지금 책 읽고 싶어하는 모드인듯. 봄이쟈나~)


이번에 읽는건 헤세의 정원이야기이다. 

이 책을 나는 이레 버전으로도 가지고 있고, 이레에서 나온 공짜책 버전으로도 가지고 있고, 새로 나온 버전도 있고, 

샵할때 예전에 독일에서 찾아온 분께서 이 책의 독일어 버전(독일책들이 진짜 진짜 멋지다!!)을 가져다 주신 것도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책인데... 왜 장석주의 서평에서 보는 이야기는 새로운걸까. 


















백일홍 이야기.. 


헤세는 화병에서 시들어가는 백일홍에서 모든 생명이 품은 죽음과 삶의 무상함을 나카롭게 직시한다. 백일홍은 강렬하고 경이로운 색깔과 빛나는 생명력을 뽐내는 꽃이지만 화병에 꽂아두면 어느새 시들고 만다. 


화병 속에서 서서히 빛이 바래 죽어가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나는 죽음의 춤을 체험하지. 

삶의 무상함에 대해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중히 받아들일 수 있다네.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거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다네


헤세는 백일홍의 덧없는 시듦에서 삶의 무상성을 엿보고, 그것이 무상한 것이기에 아름답고 사랑스럽다는 결론에 이른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인류의 영혼은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크게 훼손되고, 사람들은 조화와 균형을 잃은 채 비틀거린다. 

사람들 마음마다 공허가 들어차 이다. 사람들은 그 공허를 과장적인 "건강함, 씩씩함, 생각 없는 낙관주의, 모든 심각한 문제 따위는 웃으며 거부하기, 공격적으로 던지는 질문을 겁내며 거부하기, 순간을 즐기며 얻는 생명의 기술"로 대체하려고 애쓴다. 


헤세의 정원 책을 읽으면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게 읽힐 것 같다. 

이전에 읽었을 때는 나는 은행원이었고, 예전과 지금 사이에 봤던 모란디 전시에서도 느끼는 바가 컸는데, '전쟁' 이후 정원일로 도피(?)한 헤세의 복합적인 심정에 더 가까이 갈 수 이을 것 같달까.


덧없는 백일홍의 시듦.에 대해서도 분명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 것이다. 


세상에 좋은 책이 정말 많고, 읽고 또 읽어도 새롭게 재미있고, 새롭게 의미를 얻는 책들이 많으니, 

이 책 안에서 한 번 더 인용한다면, 


왜 책인가? "책은 생명보험이며, 불사를 위한 선금이다.(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라는 문장에 그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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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ragu01 2015-04-2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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