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남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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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새로 나온 이 책은 이전의 그녀의 책들과는 다른 미덕들을 더 포함하고 있다. 첫째 하라 마스미의 강렬한, 소설과 꼭 맞는 그림들과 둘째 책 가득한 남미의 사진들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로하여금 단편 일곱개를 빚어내게 한 남미여행 15박16일의 일정이 세세하게 나와있다.( 좀 당황스러웠다!)

한마디로 예쁜 남미여행단편패키지라고 하겠다.
이전까지의 바나나의 책들과는 좀 다르다.
그림과 소설의 만남은 아마도 '요시토모나라'를 우리나라에서 단번에 유명하게 만들었을 '하드보일드 하드럭' 에서도 이미 시도했던 바이다. 요시토모 나라의 책을 보면 바나나 쪽의 제의로 그 일을 하게 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역시 독특하다.

그.러.나. 여행후기같은 '작가의 말' 과 '여행일정' 그리고 사진들은 뭐랄까 바나나의 센티맨탈하고 멜랑꼬리한 글들을 좀 더 독자 가까이로 끌어내렸다고나 할까. 아.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행기로 이 책을 보는 사람은 없겠지만, 당연히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니다. 작가는 보기에 평소에 남미에 대한 환상이 있거나 전문지식이 있거나 했다기보다 15박16일의 첫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소설로 풀어낸듯하기에.

그러나, 그림이나 사진, 여행 일정들을 제껴놓고 본다면 글들은 바나나의 지금까지의 그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제목이 '불륜과 남미' 이듯이 이 책에는 많은 불륜들이 여러 관계중 하나로 나온다. ' 현대에는 연애나 결혼이나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고 말하며 멜랑꼬리를 일상적으로 묘사해 그녀의 글을 읽는내내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것처럼 '불륜'도 그저 하나의 관계중 하나로 일상적인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역시나 대부분의 단편들에서 '죽음' 의 냄새가 짙다. ' 내가 죽은 후의 일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죽음에 대해 무심하다고 말하는 주인공들이 외려 죽음에 대해 무심해지고자 애쓰는 것 같은 모습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하얀스카프의 어머니'들( 군부정치아래 사라졌던 3만여명의 실종자들을 찾는 어머니들의 행진이다) 을 보고 난 후의 느낌이 나온 '하치하니' 에서는 글쎄 뭐랄까. 물론 깊은 인상을 받았겠지만, 관광객. 타자의 시선 그 이상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도 동시에 받았다. 그동안 읽어왔던 남미작가들의 그것들과는 당연히 확실히 다른 관광객적 시선. 나의 시선이기도 하기에 씁쓸했다.

'창밖'이란 단편에서 나온 남미문학에 대한 이야기는 평소 내가 가진 생각과 비슷하다.
' 나는 얘기하면서 남미의 문학을 생각했다. 일본의 부드러고 섬세한 사계절 속에서 읽은 남미의 문학에는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문장은 물론 그 전체의 분위기에 당돌하고 야만적인 생명력이 스며 있고, 아름다움과 생명에 관해서는 살인적인 힘마저 인정하고 있는 듯 보였다. 광기에 가까운 정신의 고양과 동시에 일상에 굳건하게 발 디딘 생활이 이루어지는 세계관이 있었다. 이곳에 오니 그 감각이 강렬하게 디살아나,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듯한 기분도 들었다. 무엇이든 인간의 이성으로 저울질하지 않는 그 힘을 남자든 여자든 대지에서 한껏 빨아들여, 치열한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무수한 기척을 뒤죽박죽 품은 짙은 어둠, 정글에서 날아오는 숨이 탁 막힐 듯 비릿한 공기, 아마도 존재하리라.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무시무시한 색채의 정령들이'

지난 여행의 가방을 미처 풀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는 벌써 남미의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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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9-17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오년전 바나나를 정말 좋아해서 열심히 읽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통 읽지 않았습니다. 제 감성이 멀어졌던 것인지 취향의 문제일지 모르겠지만 바나나의 글이, 정말 읽을만한 가치가 있을지를 의심해보다가 아주 몇 년 만에 읽어봅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하이드 2005-09-1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 했었는데요, 왜, 읽고 나면 생각이 안나잖아요. 근데, 그냥 그렇게 감성적으로 글 쓰는거. 일상을 좀 다르게 보고 그러는거 보는 걸로 만족하려구요. 맞아요. 그러고보니 당시의 감성과 관계가 있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