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레이철 커스크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하루하루가 쉽지가 않습니다.
결혼은 정녕 인생의 무덤?

알링턴파크에 사는 다섯 여자, 그들의 이름은 주부입니다. 의 하루동안의 이야기를 밀도 깊게 꾹꾹 눌러서 하고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알링턴파크는 '런던'의 배드타운bedtown입니다. 계급이 확실한 영국 사회에서 중산층의 이름을 가진 그들이 사는 곳이지요.
 
결혼한 여자들의 자아상실을 다룬다고 해서, 결혼한 여자들만 우울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과 결혼한 남자들에게도 분명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있을테니깐요. 육아와 집안일에 시달리며 자신을 잃어가는 여자들만큼이나 회사에서 영혼을 팔아 여자와 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는 남편들에게도 분명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겠지요. 이번에는 여자들만의 이야기들이지만, 다음번에는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나올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알링턴파크에 사는 '여자들' 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기로 합니다.
 
줄리엣,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의 줄리엣이란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여자는 알링턴파크의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특출났던 어린시절, 그리고 학교 다닐적에도 무언가 멋들어진 직업을 가지고 알링턴파크를 떠나 '난 사람' 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와 자신의 야망이 있었던 그녀지만, 나고 자란 그 도시의 선생님이 되는 것에 그쳤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흡사 비 맞은 잠자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멜라니 바스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입을 벌리고 자신 속에 있는 것들을 다 뱉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녀의 몸은 납덩이로 꽉 차 있었다. 그녀는 돌진하는 시간 앞에서 한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거울 뿐이었다. 그녀 안에는 온통 지나간 날들의 찌꺼기만 가득했다.' 그녀의 삶은 그녀가 경멸했던 그녀 어머니의 삶이'조금 황폐해진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금요일의 문학반 수업만이 그녀의 황폐한 삶을 이어주는 가느다란 실핏줄과도 같습니다. 그날 하루가 그녀가 살아갈 수 있도록 연약하게 충전해주고 있지만, 실상은 그 수업마저도 그녀의 몸부림에 그칩니다. 요즘 아이들, 영국이나 여기나, 요즘 아이들이 어디 '폭풍의 언덕'과도 같은 작품을 진지하게 읽으려 하나요. 어릴적부터 허리까지 긴 그녀의 머리는 남들도 그녀 자신도 '특별'하다고 생각해 온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녀는 머리를 자릅니다.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면서. 줄리엣은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까요? 답은 이미 나왔습니다. 
 
어멘다, 그녀는 완벽한 삶을 꿈꾸며 알링턴파크의 가장 좋은 위치에 가장 좋은 집을 공사해서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그녀를, 그녀의 집을 안 팔리는 작품을 들여 놓은 큐레이터같은 심정으로 만들줄은 몰랐습니다.
 
알링턴파크라는 곳은 알 수 없는 곳입니다. '도심이 아니고 교외였고, 커다란 베드타운에 불과했지만' 삶의 위력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 나름대로의 단단한 현실, 억누를 수 없는 보편적인 현실, 소유욕, 자기 주장, 사물들간의 위계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곳이죠. 알링턴파크가 그녀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이 평범한 교외의 도시가 아니라는 것 정도만 알고 읽으면 될 것입니다.
 
런던에서 온 메이지가 있습니다. 그녀가 오고 싶은 곳이 알링턴파크는 아니였을 것입니다. 그녀는 '런던이 아닌 곳' 으로 가고 싶었고, '런던에서의 자신이 아닌 다른 자신'을 찾고 싶었지만, 사람은 장소를 떠날 수는 있지만, 그곳이 어디건 자신을 떠날 수는 없지요. 그녀는 그런 사실들을 깨닫고, 적응해 나가려합니다.
 
남는 방에 외국인 학생을 들이는 솔리는 그녀의 남은 방에 오는 대만의 베티, 일본학생 가츠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온 파올라까지를 보면서, 자신의 삶과 그네들의 삶을 비교하게 됩니다. 이미 충분히 지루하고, 너덜너덜한 일상에 젖은 그녀에게 그들의 삶은 반짝반짝 빛나보입니다. 자신보다 두살 어릴 뿐인 변호사 출신의 파올라를 보며 그녀는 모너집니다. 파올라가 집을 비운 동안 그녀의 방에서 그녀의 물건들을 봅니다. 천상의 향기를 풍기던 바스 오일 병, 레이스 달린 속옷, 단추나 리본이 달린 속옷, 가터벨트와 거미줄처럼 올이 듬성듬성한 스타킹, 작은 가죽 상자 안 흰색 새틴 천 위의 진주 귀걸이 한 쌍.
 
' 그런 물건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날카로운 것들에 찔린 듯 아팠다.' ... 그런 물건들에 비하면 자신이 입고 있는 해진 청바지나 염주 같은 목걸이는 뭐란 말인가? 그건 지워져 버린 흔적, 비참할 지경으로 초라해진 자신의 여성성이었다. 솔리는 자신에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크리스틴, 그녀에게 알링턴파크에서 사는 것은 신분상승을 의미하고, 그것을 지키고, 거기에 어울리기 위해 독할정도로 안간힘을 씁니다. 독한 말을 하고, 독한 생각을 합니다.
 
 
책의 표지에는 아마도 알링턴파크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야기하는 여자들, 혼자인 여자들, 장보는 여자들, 아이보는 여자들. 제목은 음각으로 꾹꾹 눌려 써 있습니다. '알링턴파크 여자들의 어느 완벽한 하루' 라고요.
 
'완벽한 하루'라는 말은 굳이 '운수좋은 날'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아도 불길해보입니다. 책을 읽고나니 차라리 안심이 됩니다. 평범한 일상은 이미 지옥과 비슷하고,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집니다. 그것의 반어가 '완벽'이라면,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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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12-12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 있어 별 넷은 거의 완벽의 경지인데 하이드님의 별 넷은 어느 정도의 선인지 궁금해요. 암울하고 칙칙한 이 책이 전 무척이나 발랄해 보이는 새벽 세 시 만큼이나 좋았거든요. 아, 이런 일상 때문에 뭔가 필요하다, 라고 말하면 저도 위기의 주부일까요? 결혼이 인생의 무덤은 아니에요. 그것으로 인해 나는 이전에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떤 이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지를 알게 되었지요. 하지만 결혼은 확실한 그 무엇이었어요.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위험하게 발견한 것은, 모성에 대한 것이었어요. 자기 아이가 만약 저 쇠꼬챙이에 걸려 푸줏간에 진열되어 있다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는 그런 장면이요. 그건 마치, 모두가 얌전히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데 나 혼자 벌떡 일어나 유리창을 깨는 것과 같은 일이었으니까요.

좋은 리뷰에요, 잘 읽었습니다.

하이드 2008-12-12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셋은 보통보다 모자람. 별 넷은 보통보다 좋음. 별 다섯은 아주 좋음. 이 정도요? 별에 후한편이죠.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책이었죠. 쉬이 읽어내려가지지가 않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