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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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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여러분의 손에 다정하고도 믿음직하게 놓여 있는 이 책은 책들의 비밀스런 생애를 그 어떤 기획보다도 더 강력하게 결정짓는 저 우연들의 하나에 힘입고 있다. 화가이자 도안가이며 삽화가인 크빈트 부흐홀츠는 어느날 우리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우리들에게 그의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미하엘 크뤼거의 서문中

 

이름에 Buch가 들어간 이 사람은 어쩌면 이렇게 '책'을 그리도록 운명지어졌는지도 모른다.


작가들에게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을 한장씩 보내고 그에대한 글을 써주기를 부탁한다.
밀란 쿤데라, 미셸 투르니에, 아모스 오즈, 오르한 파묵, 수잔 손탁, 요슈타인 가아더, 존 버거! , 마르틴 발저, 페터 회, 미하엘 크뤼거, 라피크 샤미. 정도가 낯익은 이름이었고, 그 외의 작가들에 대한 배경지식은 없지만, 이 책은 어쨌든 부흐홀츠에 의한 부흐홀츠를 위한 책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모든 그림이 '책' 으로만 이루어져있는건아니다. 저 문 아래가 책 같이 생겼나? 글쎄. 저 바닥에 흩어진건 책(종이)겠지? 무튼, 모든 그림에서 다 책을 찾아야하는건 아니라구.

이 그림은 W.G. 제발트의 '오래된 학교의 안뜰' 과 매치되어있다.
닫힌(잠긴)문과 야트막한 담 뒤로 보이는 수평선과 하늘.
묘하게 향수를 자극하는 그림이다. 이스탄불의 돌마바체궁의 뒷뜰에서 나는 이런 광경을 보았다.
세라핀 아부아비바 부인에 의하면, 이 그림은 1930년대 부인이 다니던 포르토 베키오의 오래된 학교의 안뜰이기도 하다.



작가의 이름은 맨 아래에 나와 있고, 독자로 하여금, 작가의 이름을 억지로라도 먼저 볼 수밖에 없게 하지 않는 친절한 배려로, 작가 이름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다만, 글과 그림의 기가막힌 하모니를 볼 때에는 부러 눈을 아래로 돌려 작가 이름을 확인한다. 이 그림과 글

날은 뜨겁다. 저 남자는 책을 읽고 있다- 그러나 그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새는 배가 고프다. 평평한 육지가 저 멀리 보인다. 새는 몇 차례 원을 그리며 돈다- 이것이 그림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존 버거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나의 이 미스테리한 그림은
오르한 파묵의 글과 함께한다. 요즘 아주 머리 쥐어뜯으며 한장한장 읽어내고 있는 '새로운 인생'과 겹친다.
생명을 가진 책. 작가의 영혼이( 마음이) 담겨 있는 책. 작가/독자의 인생을 좌지우지해 '새로운 인생'으로 이끄는 존재로서의 '책'



유명한 작가(미셸 투르니에)의 글이라서가 아니라, 저 눈밭의 테이블이 너무 맘에 들어서가 아니라, 책을 자기키보다 더 높게 쌓아 올린 쟁반을 서빙하는 웨이터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이 글의 제목 때문에 나는 이 장이 맘에 든다. '조르주 심농의 마지막 날'



달빛아래 잔디위에 책을 이불삼아 잠드.는건 수잔 손탁이고
형광등 불빛아래 오래된 싱글침대 위에 책을 이불삼아 잠드.는건 나다.
책을 읽다가 저렇게 펼쳐서 허리, 엉덩이, 어깨 등 잠결에 손 닿는대로 몸 위에 얹고, 아니 덮고 잠이 든다.



초생달을 물고 있는 책 'LUNA'
맘에 드는 이미지다.

독특하고 환상적인 책이다. Buchholz의 BuchBilder Buch.
페터회가 말하길,

'나는 그 이후로 그를 보지 못했다.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한저 출판사에 알아보니 그는 전화도 없다고 한다. 나는 이제 그의 그림들에서만 그를 만나고 있다. 그림들은 점점 더 역설적이 되어간다. 희미하게 어른거리고, 불안하며, 비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번뜩이는 형안의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 빛은 점점 더 강렬해지고 모험적이 되어 간다. 그가 말했던 대로이다. 모든 그림에서 그는 점점 더 원천으로 다가가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크빈트 부흐홀츠가 점점 더 성장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성장하는 것은 그의 그림들인 것이다. 크빈트 부흐홀츠는 점차로 사라져 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느낀다. 최근의 그림들은 거의 아무런 자기 의식도 없이 그려졌다. 곧 화필을 쥐고 있는 손만 남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은 그림만 남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그것마저도 없어지고, 아마 빛만 있게 될 것이다.' 115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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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2007-02-07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보다 그림이 더 좋던데요. 음미하는 맛이랄까. 글 보기 전에 그림부터 죽 둘러보고 글을 봤는데 그림이 더 남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