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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더라',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혼자만 건강하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외쳐대는 고집쟁이 농사꾼으로 나무와 풀을 사랑하는 사람. 전우익 선생의 모습을 짧게 추려내어 적어보면 아마 위와 같을 것이다. 이제 이 겨울도 그 끝을 향해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겨울의 위력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강추위로 인해서 결코 우리들에게 있어 만만치 않은 상대이다. 쌀쌀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기에 마음 한켠에서는 칼바람이 휘몰아쳐 온다. 이런때 일수록 마음을 따뜻하면서도 인생을 살아가는 참 지혜를 제시해 주는 그런 보양식 같은 책이 필요한 시점인데 이런 요구를 무리 없이 소화해내는 책이 있으니 바로 이 책이다.
MBC의 '책을 읽읍시다' 코너를 통해서 전국민에게 더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그간에도 이 책은 스테디 셀러로써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었다. 최근에 다시 전우익 선생이 작성한 책 제일 앞쪽의 글귀는 이 모든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듯 보이는데, 이 부분을 특히 머릿속에 되뇌여서 음미해 볼 필요성이 있어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 없니더.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그가 현기 스님, 현숙 보살님, 현응 스님 등에게 자신의 일상적인 살아가는 모습과 그곳에서 느껴진 단상들을 자연스레 써서 보낸 편지가 춘하추동의 모습으로 담겨져 월별로 엮여져 나온 형식의 책이다. 농사꾼의 주된 관심사가 농사짓는 일이듯 이 책에는 도라지 캐는 모습을 비롯해 흙 이기는 이야기, 나무심는 모습 등의 자잘한 내용들이 크게 도드라지지 않고 정갈하게 담겨져 있다. 좀더 안으로 파고들어 가보자. 책의 서두 부분에 실린 신경림의 '깊은 산속의 약초 같은 사람'은 신경림이 바라보고 오랜 기간동안 사귀면서 느낀 전우익이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전우익 선생의 담배피는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8페이지 가량 실려 있다.농업만이 그리고 식물만이 창조적인 것이라 생각하며 '인간과 동물은 소비만 하고, 식물만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전우익 선생의 나무와 풀에 대한 철학에 많은 것을 배우고 '사람들이 모두 입만 가지고 있지 귀가 없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한다'는 부분에선 더욱 많은 것을 깨우쳤고 공감이 갔으리라.
이 세상의 현실은 저자가 글을 썼던 시점인 1990년대나 2000년대인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음은 모든 이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리라. 위쪽에 있는 소위 위정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언제 제대로 농사꾼들의 소리에 귀를 귀울여 왔었던가. 매번 돌아오는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때만 되면 농사꾼들을 위한 공약(公約)은 항상 공약(空約)이 되기 일쑤니 그의 푸념섞인 목소리는 그래서 더욱 동감이 간다.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우리 한국인의 근본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농민들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아울러 '나'보다는 '우리'라는 더 넓은 테두리 안에서 우리 자신이 성장하고 한 걸음 더 성숙할 수 있는 계기를 배웠으면 한다.
이 책은 전우익 선생이 편지글을 모아서 엮은 책이긴 하지만 그 편지를 받는 대상에는 한정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아깝고 좋은 글들이 그저 쌍방에 오고가는 편지로 끝맺음 되었다면 우리는 아쉽게도 이렇게 좋은 글들을 만날 기회조차 누려보지 못했으리라. 우선 이렇게 글로나마 전우익 선생의 자연철학과 그만의 삶의 철학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배워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약 130페이지 정도되는 가벼운 분량에 간간히 전우익 선생의 모습이 담긴 흑백톤의 사진이 곁들여져 있어 마음먹고 독서한다면 단번에 달음박질해 한 권을 끝낼 수 있으리라. 그러나 아무래도 이 책의 매력을 십분 느끼기 위해선 천천히 정독하며 여러날에 걸쳐서 읽어 내려감이 그 글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리라. 전우익 선생의 글 맛을 어느 정도 음미한 나의 손은 벌써 그가 집필한 다른 책으로 어느새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