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 상
이철용 지음 / 사랑과사람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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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몇권짜리 만화책을 본 일이 있다.

 

주인공은 서울대를 휴학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국내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여행을 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여자를 밝히고, 어눌한 몸짓과 비논리적인 말로 여자들에게 핀잔을 듣고, 성추행범 같은 대접을 받지만, 이내 현실에 지쳐있던 그녀들은 그의 방법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미 그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린 후다. 유치했지만, 나름 봐줄만 했다.

 

마광수는 '헤픈 여자가 좋다'고 말한다. 장미 여관으로 가자고도 말한다. 스스로의 욕망을 감추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고, 실천적인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 건강한 인간상이라는 것을 그는 표현하고 있다. 자신과 같이 자자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가 원한다면 헤픈여자가 되어도 좋다는 것이다. 법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헤픈 여자의 삶을 추구하며 누구나가 원하는 삶을 살다 갈 것을 마광수는 한 없는 애정으로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공지영은 딸에게 "칭찬받고 춤추는 고래가 되지 말라"고 가르친다. 공지영의 그 말을 듣기 이미 오래전에 나는 칭찬받고 춤추는 고래로 살지 말라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칭찬이 응원이 되고, 힘이 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칭찬을 듣기 위해 누군가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말라는 것이다. 그 대상이 부모이건, 상사이건, 혹은 하느님이라 할지라도 칭찬받기 위한 행동으로 자신의 시아를 가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철용은 달랐다.

 

이철용은 칭찬받고 춤추는 여자들을 따먹은 이야기로 (상, 하)두권의 책을 채워 놓았다.

미칠 노릇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 그들의 성에 간섭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성이란 인간의 종족보존이라는 절대적 본능에 따라 인간이 떨쳐버릴 수 없는 욕망이다. 이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거나 아파하는 상황이 내 아이들에게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추가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철용이와 같은 인물을 알아보는 혜안과 칭찬받고 춤추는 고래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일정 수준의 정체성을 확보한 성인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거짓을 말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연습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여자를 따먹기 위해 여자들이 좋아하는 표현들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것이 나에겐 적지않은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 책에도 추천해주고 싶은 부분은 있다. 직업여성들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액자소설처럼 서술한 부분에서 '나와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한번쯤 읽어보아야 할 부분이 아니었는가 싶다. 단지, 여자 따먹는 이야기에 이러한 소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묻혀진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책은 여자 따먹는 것을 즐기는 것까지는 좋은데, 자랑하기 위해 출판유통을 낭비하고, 나아가 누군가의 기둥서방이 되어 살아가려는 이들의 교과서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크다는 것이다.

 

서문과는 너무나 다른 글의 흐름에 적잖은 당혹감을 느낀다.

정말 이철용이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은 바람이 있었다면, 번 벌로의 "매춘의 역사"를 권하는 것이 노력과 성과에 있어 부합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나라(사실 '인류')에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약자일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약자의 마음을 보듬어야 하는 것은 강자의 본모습으로 공감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도 여자가 살아가기에는 좋은 나라는 아니다. 단지 내 아내의 입에서 "우리나라는 여자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곳이다"라는 철딱서니 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내 노력과 수고에 대한 보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철용의 글에서, 그녀들을 향한 안타까움은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병신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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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수전 이야기 - 조선 최고의 암행어사 룰루랄라 우리고전 우리역사 17
박병선 지음 / 청년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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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책을 읽지 않는 놈이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다.

 

일명 '국어책 읽듯이' 책을 읽지도 않는다.

 

가끔은 책을 읽다가 감정을 못이겨 울기도 한다.(청개구리 이야기,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등)

 

그런데, 이 놈은 시켜야 책을 읽는다.

 

귀도 무지하게 얇아서 칭찬이나, 경쟁의 표현을 하면 관심을 갖는다.

 

그래도 책은 않읽는다.

 

이번엔 고학년이 읽을 것 같은 책을 골랐다.

 

역사, 권선징악, 영웅 등의 이야기에 이 놈이 심취해보기를 바라며 책을 골랐다.

 

할머니 집에 가 있는 사이 내가 먼저 읽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된다"는 나의 주장이 이 책 머리에 나온다.

 

당시의 선비들이야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상식처럼 알고 있지만,

 

이렇게 활자로 되어 있으니 아들 녀석이 무언가 깨닿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알테니 스포일러 짓거리는 잠시 접고,

 

요약하면,

 

암행어사 출두는 두번 외친다. 나머지는 암행의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아들 녀석이 야단맞을 일만 발견하면 된다.

 

"한 대 맞을래? 이 책 읽을래?"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이 놈 커서 뭐가되려고... 쯔쯔쯔...

 

나와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 박무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부럽다.

 

"암행어사 출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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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전쟁 제3부 - 에필로그를 위한 전쟁
안정효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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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친분이 없는 것을 핑계삼아 존칭을 생략한다.)

 

나는 안정효를 사랑한다.

 

하얀전쟁이 3권짜리였다는 것을 2년전에 알게되었다. 1권을 읽은 것이 아마도 고등학교 때 쯤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영화가 나와서 보았고, 부족한 이해를 안성기의 연기력으로 메웠던 기억이다.

 

2년전 2권을 읽었다. 2권과 3권을 샀는데, 2권-전쟁의 숲을 다 읽고 3권을 읽던중에 택시에 두고 내렸다. 그래서 얼마전 3권을 다시 구입했다. 3권-에필로그를 위한 전쟁이라는 제목처럼 나에게도 에필로그가 필요했던 것이다.

 

전쟁이 남겨놓은 기나긴 고통을 담아낸 1권, 한정된 시간과 공간속에서 마치 연극과도 같은 흡입력을 보여주었던 2권과는 또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낸 3권은 에필로그라는 단어의 적절함에 또한번 안정효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잠자리에서 아내에게 읽어주던 단편 "혼선"의 기억은 소설에서 처럼 내 신혼과도 적잖은 기억의 공감대를 이루고 있으며, 그 부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쌍둥이네 집도... 하하하...

 

중편 낭만파 남편의 편지는 사뭇 내 모습을 보는듯하다. 결혼전 크리스마스 때 24통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냈던 나도 나름의 낭만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소설에서 남편이 받은 충격을 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라면 아내 앞에 '짠'하고 나타나 아내가 서운해하는 모습과 감추고 싶어할 무언가를 들춰내어 훗날의 이야기 거리를 하나더 만들어냈을 것이다.

나도 가끔 다른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실제로 만나기도 하면서 아내의 행동에 대한 분노는 커녕 서운함 조차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도 20년 전에 태어났다면 그랬을지 모르지만... 하하하...

 

에필로그를 위한 에필로그는 마치 나를 위한 에필로그였던 것 같다.

 

어찌 안정효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은 안정효의 차지가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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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조선왕조실록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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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어느 마을에 강상죄가 발생했단다.

 

강상죄란 유교국가 조선에서는 대역죄 다음가는 크나큰 죄로서, 요즘말로 하면 '하극상'이다.

 

이번 사건은 밥그릇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 죽인 사건이다.

 

왕은 처음에 이 죄인을 사형에 처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골치 아픈 사안이 하나 있었는데,

 

아버지와 아들이 겸상(!)을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밥상에서 밥을 먹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지만, 요즘도 밥상 머리에서 말하지 말라는 말을 종종 하는 어른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다보니 그때는 오죽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밥먹을 때는 개도 안건드린다는데,

 

'아버지가 얼마나 아들의 성질을 긁었으면 그런 일이 벌어졌겠는가'하는 이해로 변해간다.

 

결국 왕은 사형을 철회하고, 정상을 참작하라는 지시를 내리게 된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가 몇몇 있는데, 광해군이 역시 성군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임진왜란을 수습하고, 세자에서 쫒겨날 위기에서 왕이 된 광해군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핍박받는 서민들의 삶을 어느 왕보다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경험이 그에게 주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다 읽고 5학년인 딸아이에게 '읽어볼래?'라고 물으니 읽으려고 꺼낸 책을 덮어놓고 희희락락하는 모습이 너무 좋다.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준다,

 

(경고 : 국사시험에 나올 듯한 내용은 전혀 담고 있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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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1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윤정 옮김 / 손안의책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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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산쟁이다.

 

16년째 개발을 하고 있어 뼛속까지 전산쟁이다.

 

부처님이 나타나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나는 믿지 않는다.

 

물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롭고 영원한 계약'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을 가지고 살아간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이런 나에게 학교라는 공간안에서의 시간이 멈춘다는 것은 상상이 어렵다.

 

나는 환타지도 읽지 않는다.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과 같은 소설은 영화가 나와도 보지 않는다.

 

'삭막한 삶'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나는 그렇다.

 

현실과 현상을 직시하는 것이 내 직업의 특징이다. 현실을 무한한 상상력으로 덧칠하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오히려 그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흔해빠진 귀신이나 좀비가 나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멈춰버린 학교, 8명의 학생, 그러나 이 가운데 한명은 이미 5월 축제 때 죽은 친구이다.

 

2권, 3권을 읽어보면 누구인지 알수 있겠지만, 나는 2권, 3권을 읽기를 포기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설정과 모든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캐릭터들의 대응이 새롭게 느껴질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일본에들은 이렇게 감정표현이 무딘가?

 

번역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일본어야 우리말과 어순이 같아 번역이 꼬일 것도 없을 것 같다.

 

물론 단어의 선택과 한국인들의 정서에 와닿는 표현은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일본 사람들 자체가 우리 입장에서는 표현이 미숙한 것 같다.

 

일본인에 대한 민족적 감정을 담아 표현하자면,

 

원숭이와 인간이 다른 것 가운데 하나는 감정의 표현에 있다고 한다.

 

마치 키아누 리브스가 톰크루즈를 흉내내고 있는 듯한 수준의 표현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내가 미스터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역시 미스터리는 내가 읽을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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