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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평점 :
혹시, 인간의 삶이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의 삶은 아름답다. 어떤 이는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죽음이 나를 찾아왔을 때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그 때가 되면 부족함은 많았겠지만, 부끄러움은 없는 나의 삶을 회상하고 싶다.
모든 삶에는 죽음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해야만 한다.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고민해보고, 어쩌면, 그 모습을 삶의 목표로 삶아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 낸 영화를 꼽아보면, 처음 생각나는 영화는 '노킹 온 헤픈스 도어'이다. 이 영화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이루지 못한 작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방해를 뚫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만난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어느날 병원으로 부터 재검 통보를 받고 병원에 온 두 남자는 자신들의 시한부 생명을 확인하게 된다. 같은 병실에 있게된 두 사람.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그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의 건강이란 말인가? 폐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적어도 그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폐에 어떤 이상이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것이다. 머지않아 죽음을 맞이하게 될 상황에서 하찮은(?) 건강을 습관처럼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고, 그들은 병원 식당으로 간다. 데낄라를 마시며 취한 그들은 주차장에서 열쇠가 꽂혀진 차를 타고 병원을 나가버린다. 그런데, 그 차 트렁크에는 지하조직의 검은돈이 실려있었던 것이다. 죽음을 해학으로 풀어 낸 이 영화는 줄곳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대한 소망은 결코 그 웃음에 묻혀버리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엘비스 프레슬리가 타고다디던 분홍색의 캐디락을 선물하고 싶어하거나, 두명의 여자와 함께 잠자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은 우리 인생에서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일들이다.
또 다른 영화로는 한석규, 심은하가 주연한 '8월의 크리스마스'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세연(아마도)이라는 이름의 여자와 함께 봤다. 내가 여자에게 관심이 있고, 여유로운 삶을 살던 시절에 그녀를 만났더라면 연인 사이로 발전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죽음을 준비하는 한석규가 아버지 신구에게 VCR 사용법을 알려주는 장면이다. 3분 이상의 롱샷으로 연출되었고, 한석규의 감정표현이 고조되는 그 감정이입의 순간을 내가 앉아있던 곳에서 몇칸 뒤의 남녀가 웃음을 터트리는 바람에 완전하게 공감하지 못했던 기억이있다. 평소처럼 혼자서 영화를 봤더라면 나는 분명 한마디를 했을 것이다.
나중에 책으로 다시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났을 때 다림(아마 심은하의 극중 이름)에게 남긴 편지가 영화와는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쨌거나, 한석규는 '사랑을 간직하고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에게 감사를 전하고 있다.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도 생각이 난다. 책으로 출판되었지만, 책에는 그가 진행했던 마지막 강의 동영상이 포함되어있다. 마지막 강의는 강단에서 오랜 세월 강연을 해오던 교수들이 정년퇴임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강연을 하는 자리를 의미하는 보통명사이다. 이것을 우리는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라는 고유명사로 기억하게 되었다.
췌장암으로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그는 마지막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얘기가 아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서술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학생들의 남은 삶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겨진 자신의 어린 세 자녀들에게 말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마지막에 밝힘으로서 가족과 사랑의 소중함을 더욱 강하게 표현함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인생의 참 된 의미를 말하고 떠나갔다.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그는 프로하키팀(아마도)의 팀원이 되어 경기에 참여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있었다. 해당 팀으로 부터 연락을 받은 것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는 보기 드믈게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으며,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소원들은 그가 생을 마감하기 전에 주위의 도움으로 모두 이루고 떠날 수 있었다고 하니 나 역시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또 다른 책으로는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이 있다. 그녀 또한 암으로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었다. '대단한 책'은 많은 작가나 유명인들이 한번쯤 적는 그런 책이다. '누구누구 콜렉션'이라고 하는 식이다. 요즘도 잘나가는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한다"나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은 그 분들이 직접 쓰신 책이 아니다. 더군다나 법정스님은 자신의 입적 후에 자신의 책이 다시 간행되어 시대에 맞지 않거나, 지나침으로 인한 흉흉함으로 자신의 삶과 삶의 사명이 죽음으로 인해 단절되기를 바라고 떠나셨는데, 그 분의 책이 출간되지 않으니, 그 분의 법명을 넣어 출간되는 책들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 사후에 부활을 이야기하던 수많은 교주들의 모습과도 흡사한 것 같아 씁쓸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대단한 책'은 요네하라 마리가 직접 쓴 책이다. 그녀는 책을 읽고 있다. 서평을 부탁받고 읽는 책의 부담스러움과 우연히 손에 잡힌 책에서 찾아낸 감동, 그리고 암과의 처절한 투병을 위해 읽어야만 했던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가 죽음에 가까워지는 순서로 서술되어 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는, 마치 아주 가까운 지인을 떠나보낸 듯한 착각까지 느끼게 되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사랑이 떠나가면'은 레이 클룬이 사랑하는 아내를 암으로 잃고 난 후에 쓰여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아버지'가 김정현이라는 의사가 친구를 잃고 쓴 소설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냈었다.
앞에 서술한 많은 이야기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어떤 숭고함을 이야기 한다면, '사랑이 떠나가면'은 우리네 현실(네덜란드라는 문화적 차이는 있지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긴병에 장사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들은 무너져간다. 안락사를 준비하지만, 두려움은 계속된다. 다투고, 속이고, 위로하고, 고백하고... 죽음 앞에 어떤이가 의연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그만큼 성숙된 사회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며, 네덜란드에 대한 부러움을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나는 결혼 전에도, 결혼 12년차에 접어든 지금에도 아내에게 요구(당부 아님!)하는 말이 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내 곁에 있을 것"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어떤 사람과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치매가 무서운 병인가? 암이 무서운 병인가?"
상대는 할아버지의 치매로 인해 자기 가정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었는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할머니가 치매를 앓으시면서 별다른 병을 앓지 않으시며 사시다가 어느날 돌아가신 것을 경험했다.
만약 아내와 나 둘중에 한명이 이런 병을 격게 된다면, 그것이 아내라면, 아내는 치매를, 아내가 아니라 나라면, 나는 암을 앓았으면 좋겠다.
나는 아내를 사랑했던 기억을 잃고 싶지 않다. 아내는 그 모든 기억을 잃더라도, 내가 기억해 주니 괜찮을 것이다. 암이라면 내가 앓았으면 좋겠다. 나는 요네하라 마리와 함께 암환자의 투병을 보았다. 랜디 포시, 카르멘에게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보다는 내가 쉬울 것이다. 아내가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볼 용기까지를 갖추지는 못했기 때문에, 암은 내가 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나는 오늘도 나의 죽음을 기꺼이 맞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