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나비면 당연히 날 수 있는데 그것도 몰라?"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자마자 대뜸 아이는 이렇게 말을 뱉어냅니다. 알에서 애벌레가 나오고 그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에서 예쁜 날개를 가진 나비가 나오는 그 자연적인 순서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아이는 나비라면 그 누구라도 다 날 수 있다! 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이 못생기고 엉뚱한 나비는 바보스럽고 멍청하기만 하다고 여겨지나 봅니다. 하긴....저도 그렇고 이제껏 아이가 읽어온 그림책들 모두가 애벌레가 멋진 날개를 가진 나비가 되고 싶어하는 그것에만 촛점을 맞추었지 나비도 날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전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나비가 날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걸까? 이 나비는 나중에는 어떻게 해서 날았을까?"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잠시 곰곰 생각을 해보던 아이는 시간이랑 사랑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렇게 확실한 명사를 쓴 것은 아니지만요. 그런데 요즘 애들은 사랑이라는 말도 참 거침없이 사용하고 무엇에든지 사랑이라고 답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것을 너무 빨리 터득하나 봅니다...^^;;;) "나비가 날려면 날개가 마르고 튼튼해질 때까지 좀 기다려야 되고 또 엄마가 부르니까 엄마 보고 싶어서 가려니까 저절로 날게 되는 거지..."라구요. ''''''''으...과학그림책을 너무 일찌감치 많이 보여주고 거기에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등등의 닭살스러운 사랑에 관한 그림책도 많이 보여준 티가 나는구나....ㅠㅠ'''''''' 한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
"그럼 나비가 이사람 저사람 만나고 다닌 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을까?" 다시 질문을 했습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뭐라고 답을 못하겠는지 그냥 씨익 웃고 마는 아이에게 뭔가 그럴듯한 멋진 대답을 해주려고 끙끙매다가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아마도 나비는 자신이 나비라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럽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무언가 도구가 없으면 전혀 날 수 없고 높은 곳에서 떨어짐으로 해서 잠시 공중에 머무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진짜로 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비는 그냥 나비이기에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잖아. 또....나비가 그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기에 진짜로 ''''''''난다''''''''는 것과 ''''''''잠시 공중에 붕 떠있는 것''''''''과의 차이를 확실히 알게 되었잖아. 그러니까 나비는 그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자신이 나비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고 행복했을거야"
이렇게 말을 해주고 나서......아차! 후회했습니다. 이런 건....나중에 아이가 자기 혼자서 느끼게 놔두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내가 느낀 것과는 또 다른 것을 느끼고 생각했을텐데 섣불리 이렇게 엄마가 느낀 것을 말해줌으로써 아이의 생각을 막아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내 자신의 경솔함이 그리 안타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왜 이 꼬마나비가 처음에 날 수 없었는지... 다빈치를 만나고 빠삐용을 만나고 중국에 가서 연을 타고 날기도 했으면 이제는 스스로 날 수 있을만도 한데....왜 끝까지 자신이 날수 없다고 생각하고 슬퍼했는지... 눈물을 흘릴 그 즈음에 이미 나비는 혼자서 충분히 날 수 있었는데 말이지... 에릭 칼의 [배고픈 애벌레]에서부터 시작된 나비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완전 박살내버린 이 못생기고 엉뚱한 나비.. 그 나비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찾아내게 되는 갖가지 희한한 그림들.... 그걸 보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나중에... 좀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때 다시 한번 아이에게 묻고 싶습니다.
"꼬마나비가 왜 날지 못했을까? 꼬마나비가 사람들을 안 만났으면 어땠을까? 그 사람들을 괜히 만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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