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다소 진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의 마을'이라니... 이 얼마나 진부하고 그 내용이 뭔지 대충 짐작이 갈 만하다라고 판단되어지는 그런 제목입니까? 겉표지에 그려진 그림, 빨간 나무열매가 조롱조롱 열린 나뭇가지 사이로 당나귀를 탄 빨간 바지의 꼬마와 그의 아버지의 정겨운 모습...
거기에 첫내용 조차도 파구만 마을이 환한 꽃동산이 되었다는 봄이야기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무런 사전정보 없이 이 책을 접했다면 바바라 쿠니의 [달구지를 끌고]나 [바구니 달]과 같은 그런 그림책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충분히 그럴 만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분위기이지만 복선이 계속 깔려져 갑니다.
자두와 버찌, 살구열매를 늘 함께 거둬들이던 형이 이번 여름에는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 나갔다, 전쟁터에서 한쪽다리를 잃은 상이용사 아저씨, 남쪽지방에서는 전투가 꽤 심하다는 소식....등등
서정적이고 한가하기 그지 없는 시골마을 장터에서 전쟁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버찌를 다 팔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과일가게 아저씨에 대한 미안함, 파구만 버찌가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자랑스러움, 아빠와 먹으려고 남겨두는 그런 사랑스러움...등 처음으로 장터에 나와 버찌를 파는 야모로 인해 그런 어두움은 금세 묻혀버리고 맙니다.
거기에 야모의 가족은 처음으로 새끼양을 가지게 됩니다. 예전에 우리네 시골에서 송아지 한마리 장만하는 것이 큰 기쁨이고 자랑거리이듯 야모에게 있어서 새끼양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새끼양의 이름을 '봄'이라는 뜻의 '바할'로 지어주면서 야모의 가족들은 온통 희망과 즐거움으로 벅차 오릅니다.
그. 러. 나.
전쟁은 이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버리고 어제까지의 평온하고 일상적인 날들을 한순간 잿더미로 만든다는 것을 이 책은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간단함과 명료함을 접하는 순간, 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기법처럼 일순 제 머리속이 하얗게 빛이 바래지는 그런 충격으로 멍해지고 말았습니다. 비록 전쟁의 그림자가 있었지만 여전히 삶은 아름답고 평온하게 지속되고 있었건만....봄이 오면 더 행복해지고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은 전쟁 앞에서 이렇게 허물어지는구나....충격을 받았습니다.
제목이 그랬기에....더 그랬겠지요. 진부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한 그 제목이 이렇게 가슴아파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내년에는 큰애가 학교에 들어가니 방을 이렇게 좀 꾸며보고.... 몇년쯤 뒤엔 지금보다 좀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가고..... 애들이 좀 컸으니 나도 이제 나만의 자기발전을 이루어보고......아주 소박하지....하하하' 이렇게 내일을 낙관적이고 희망적으로 꿈꾸는데 이 모든 것들이 일순간 다 사그러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두려워졌습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전쟁을 이 땅에서 사라지게 해야만 하는 것인지... 이 책은 전쟁으로 인한 모습을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꿋꿋이 일어난 이야기류에 익숙해진 나머지 전쟁이 마치 고요한 연못에 풍덩 던져진 돌맹이와 같다고만 생각해 왔던 듯 싶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다시 그전처럼 고요해진 연못의 표면과 같아질 것이라구요. 그렇게 전쟁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왔었나 봅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끝내 엄청난 흉터를 남기겠지요.
지금은 아무도 없는 파구만 마을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