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는 창녀가 아니었다


페미니즘으로 본 성서 속의 여인들

: BARBARA KANTROWITZ 기자

올해의 여성이라 할 수 있는 이 뜻밖의 인물은 초특급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이자 학계의 뜨거운 연구 대상이며, 소문에 따르면 매우 유명하고 권세있는 남자의 ‘특별한 친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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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천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그녀를 막달라 마리아로 불러 왔지만 그것은 고향이 막달라였기 때문이고 어쩌면 본명이 미리암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그녀를 예수에 의해 구원받은 창녀로 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말이 없다. 이제 고대 문헌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녀가 그리스도의 가장 헌신적인 추종자였고, 어쩌면 그의 오른팔이자 재정적 후원자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같은 수정주의적 관점을 토대로 ‘다빈치 코드’(The Da Vinch Code)라는 소설이 태어났다.
이 책은 4백30만부가 팔리면서 36주 동안 뉴욕 타임스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작가 댄 브라운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부활을 지켜본 최초의 목격자(신약에서 그녀의 가장 중요한 역할), 그 이상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다소 허구적인 가설들뿐 아니라 예수의 최초 추종자들에 관한 믿을 만한 새 사실들을 끌어들였다.
크게 성공한 이 소설은 많은 신학자들을 격분시킨 동시에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현대 교회에서 위상 정립을 위해 투쟁하는 자신들에 대한 우화로 간주하는 여성들 사이에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 모든 것은 옛 성경 재해석의 전통에 현대적 의미를 불어넣으려는 신세대 여류 성경학자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들은 주요 경전들이 그동안 남성 중심적 시각으로 왜곡돼 왔다는 판단 아래 바로잡기에 나섰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성모 마리아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이 남성을 통해 이룩한 역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적인 예로 성경에 등장하는 약 3천명의 인물 가운데 여성은 10% 미만이다. 여류 성경학자들은 수세기 동안 묻혀진 이야기들을 복원하는 한편 막달라 마리아나 이브와 같은 친숙한 성경 속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들을 재해석함으로써 그같은 불균형을 극복하려 한다. 동시에 고대 여성들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성경 시대를 면밀히 연구하고 있다.

이런 경향은 신앙의 계파를 떠나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 여성들은 여성 시각으로 성경을 재해석하는 독자적 성경공부 모임을 연다. 유대교도들은 아브라함·이삭·야곱을 나열하는 기도문에 그들의 아내인 사라·레베카·라헬의 이름을 추가한다. 유월절에 모세뿐 아니라 그의 누이 미리암(히브리인 가정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애굽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어린 모세를 살림)을 기리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는 잇따른 사제 성추행 스캔들 이후 가톨릭 교회에서 입지를 넓히려고 애쓰는 여신도들에게 새로운 역할 모델로 떠올랐다.
펜실베이니아주의 싱킹 스프링에서 사는 소아과 의사 조 켈리(38)는 “내 딸이 신앙에 관한 한 오빠와 똑같이 존중받는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전 그녀의 딸 메리 시아(7)는 이 다음에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종교토론 모임에 나가는 켈리는 “그 꿈을 간직하렴. 언젠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딸을 격려했다.

이 여성들은 막달라 마리아가 용기를 북돋워 준다고 말한다. 흔히 슬픔과 눈물로 묘사되는 관습적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결코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강인하고 기품있는 여성이었다. 흔히 여성이 남편·부친·남자형제 등 남자 가족과의 관계로 존재가 규정되던 시대에 그녀는 태어난 고장의 이름으로 지칭됐다. 학자들은 그녀가 예수의 목회 활동을 경제적으로 후원한 여성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남자 사도들이 도망갔을 때 그녀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에 묻히고 부활하는 현장을 목격함으로써 그리스도 역사의 결정적 대목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여자는 남자 목격자가 없을 때만 법적 진술을 할 수 있던 시대에 그것은 대단히 특별한 역할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그녀의 역할은 폄하돼 왔다.
“막달라 마리아는 구원받은 죄인의 이미지로 그려져 왔다”고 교회의 여성 평등권을 주장하는 여성 가톨릭 단체 미래교회의 공동 창립자 크리스틴 셴크 수녀는 말했다. 7월 22일을 막달라 마리아를 기리는 축일로 제정하는 데 기여한 셴크는 “베드로 역시 죄사함을 받은 죄인이었지만 오늘날 그렇게 기억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플로리다주 게인즈빌에서 사는 케이시 키더와 같은 가톨릭 여성은 막달라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그녀에 관한 수십권의 논문과 문학서적을 연구하는 독서모임을 결성하고, ‘Macdalene. org’나 ‘Beliefnet. com’ 같은 종교 웹 사이트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에 대해 토론을 벌인다. 때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면서 지금까지의 믿음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신앙이 더욱 돈독해진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사는 여대생 프랜시스 가르시아(26)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지만 지금은 침례교회에 다닌다. 그녀는 ‘다빈치 코드’를 읽으며 초기 기독교 형성에 기여한 여성의 공헌이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은폐돼 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그 책은 나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나는 많은 자료를 찾아가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고 그녀는 말했다.

여권운동가들의 정치 의제로 시작된 여성주의적 성경 읽기는 이제 좀더 진지한 탐구의 영역으로 접어들었다. 버나데트 브루텐의 연구는 그같은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대 말 당시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 다니던 브루텐은 성경의 여성들에 대한 연구는 이미 충분히 이뤄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현재 브랜다이스대 기독교과 교수로 재직 중인 브루텐은 초기 성경을 연구함으로써 성 바울이 말한 ‘사도들’ 가운데 유니우스가 실은 유니아라는 여성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남성 중심주의에 젖은 번역가들이 수세기 동안 그녀의 이름을 남성형으로 오역해온 것이다. 브루텐의 발견은 유니아라는 이름이 1989년 발간된 개정판 표준성경에 실림으로써 공식화됐다.

오늘날 여류 성서학자들은 수십개 연구기관에 포진해 있으며 적어도 두개 대학(하버드대와 캘리포니아주의 클레어몬트 대학원)은 종교 속의 여성이라는 연구 분야에 대한 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런 여류학자들은 ‘성경 속의 여성’이라는 사전과 여성용 성경, 그리고 신약 성서와 초기 기독교 문학에 대한 페미니스트적 주석을 내놓았다.
밴더빌트 신학대학에서 신약성서를 가르치는 에이미-질 러바인 교수는 성경의 여성에 대한 문헌들이 “도서관이나 강의실이나 서점 등으로 점점 더 많이 쏟아져 나온다. 그것들은 더 이상 정화되거나 낭만적으로 수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엄격하게 역사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여러 문화를 아우르는 글들”이라고 말했다.

이런 새로운 해석 방식들은 애니타 디아먼트의 1997년 베스트셀러 ‘여자들에 관한 마지막 진실’(The Red Tent) 이후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성경의 여성에 대한 많은 문학적 해석들을 통해 대중문화에도 편입됐다.

사람들이 막달라 마리아에게 매력을 느껴온 것은 역사도 오래되고 나름대로 사연도 풍부하다. 조지타운대의 문화 역사가 다이앤 아포스톨로스-카파도나는 지난해 뉴욕에 있는 미국 성서공회에서 열린 막달라 마리아의 초상화 전시회의 학예연구원 일을 맡았다. 그녀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인물은 융합과 오역·재해석·정정 등을 겪었다. 그녀는 기독교가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예술의 모든 매체로 표현돼 왔고 예수 부활의 목격자, 남자를 유혹하는 요부, 참회를 상징하는 수척하고 고립된 어머니, 새 삶을 상징하는 다시 태어난 아름다운 여성 등으로 묘사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녀의 이미지는 개과천선한 창녀로 남아 있다.

학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의 나쁜 평판이 591년 그레고리우스 대교황이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은 이름없는 죄인과 막달라 마리아를 포함해 성경에 등장하는 몇몇 여성을 한 인물로 묘사하는 설교를 한 데서 유래했다고 비난했다. 교황청은 1969년 그레고리우스의 설교를 공식적으로 번복했지만 그 이미지는 꽤 최근까지도 우리의 뇌리에 남아 있었다. 디트로이트 머시대의 종교학 교수로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이라는 책을 쓴 제인 셰이버그는 “그런 이미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은 전설과 예술사에서 창녀의 대명사가 됐다”고 말했다.

이것은 학자들이 소위 ‘마리아의 혼동’이라고 부르는 문제에서 유래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약에는 마리아라는 여성이 많이 등장하며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교회의 남성 지배권에 위협이 됐기 때문에 오명을 뒤집어썼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부활한 예수를 처음 목격하고 그 소식을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남자 사도들에게 가장 먼저 전했던 ‘사도들의 사도’였던 그녀는 분명 평범한 추종자 이상의 존재였다. 예수에 대해 정통과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가 결국 이단으로 탄압받은 기독교인들이 쓴 몇권의 영지(靈知)주의 복음서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높은 이해력 때문에 베드로와 대등한 인물로 묘사된다. 예컨대 빌립보서에서 그녀는 예수와 자주 ‘키스를 나눈’ 가까운 동반자로 묘사된다.

‘막달라 마리아의 복음’의 저자이며 초기 교회 여성의 역할에 대한 전문가이기도 한 하버드 신학대학의 케어런 킹은 막달라 마리아가 베드로의 지위를 위협했기 때문에 질투의 표적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부(성서의 증언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해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정립한 사람들)들은 그녀를 개과천선한 창녀로 묘사함으로써 “여성도 통솔력을 가질 수 있다는 논의 자체를 차단해 버렸고” 여성이 신의 계시를 받기에 합당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킹은 또 그런 왜곡 때문에 그녀는 여성판 ‘돌아온 방탕아’인 구원받은 죄인의 상징이 됐다고 말했다. 그녀를 용서한 예수가 누구인들 용서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다빈치 코드’에서 저자 브라운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에 대해 ‘아내’라는 한가지 영향력을 더 갖고 있었다고 은근히 말한다.

그녀가 예수의 아내였다는 가설은 수세기 전 제기됐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시 유대 남자들은 거의 모두 결혼을 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도 안된다고 일축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사람은 예수는 모든 면에서 상궤를 벗어난 인물이었기 때문에 굳이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아내의 지위로 격하시키는 것은 그녀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드폴대(시카고) 종교학과의 존 도미닉 크로산 명예교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인물의 중요성을 오직 예수와의 성적 관계로만 연결시킴으로서 그녀를 심하게 모욕하는 행위는 그만두자. 그녀가 예수의 부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중요한 인물이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힐러리가 빌 클린턴과 결혼했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두 여인 모두 독자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다”고 말했다.

새로 발견된 막달라 마리아의 중요성에서 교회 내 역할에 대한 자신의 앞길을 찾는 여성들은 그 점을 통감한다. 말기 환자들을 돌보는 워싱턴주 스포케인 밸리 출신의 목사 매기 알보(49)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용기를 얻어 가톨릭 교회와 협상을 벌인 끝에 연고자 없이 죽은 행려병자들의 시신을 교회 공동묘지에 묻기로 했다. 그녀는 “마리아는 내가 믿음을 갖고 앞으로 나서서 예수님과 같은 일을 하도록 가르쳤다. 나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되고 싶다…. 입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으로서”라고 말했다.

현대 재조명 작업의 덕을 보는 성경 속 여성 위인은 막달라 마리아만이 아니다. 많은 학자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여성인 이브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히브리 원전을 연구했다. 이브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수세기에 걸친 신화와 예술적 해석의 산물이다. 널리 잘못 알려진 성경 상식 하나는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아담에게 준 과일이 사과라는 것이다. 학자들은 사실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듀크대 성경학과의 캐럴 마이어스 교수는 “밀턴이 ‘실락원’에서 그렇게 말했고 일부 르네상스 화가들이 그림에 사과를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그것이 사과가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마이어스는 “창세기에는 사과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아담의 미혹', ‘유혹’, ‘이브의 저주’, ‘인간의 타락’, ‘죄’ 혹은 ‘원죄’라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전통적으로 천지창조 이야기는 죄에 대한 책임은 여성에게 있으며 그러므로 여성은 남성의 보조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해 왔다.

이런 오류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억압해 왔다. 주종 관계는 양쪽 모두에게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웨이크 포레스트대 성경학과의 필리스 트리블 교수는 말했다. 트리블은 오랫동안 많은 여성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온 성경 구절들을 좀더 평등한 내용으로 재번역한다. 하나님이 이브에게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고 한 구절을 두고 트리블은 일반적 묘사가 명령형으로 바뀐 가부장적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히브리 원전을 보면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남편이 너를 다스린다고 나와 있을 뿐이다. 그것은 현상을 그대로 묘사한 말일 뿐”이라고 트리블은 주장했다.

성경이 만들어진 고대 문화에서 실제로 남자는 여자를 다스렸다. 남자는 여자를 소유했고 종종 노예처럼 팔기도 했다. 특히 하갈이라는 노예는 현대 미국의 히스패닉·흑인 여성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다. 여성의 관점이 남성과 다를 수 있듯이 소수계 여성의 관점도 백인 여성과 다를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과 수많은 자손을 약속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 사라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고 나이도 많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이집트인 하녀 하갈과 동침해 아들을 낳을 것을 권했다.

아들이 태어나자 하갈은 질투심에 사로잡힌 사라보다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했고 사라는 아브라함을 부추겨 하갈을 멀리 쫓아버린다. 결국 하나님은 하갈에게 직접 말을 걸어(그런 영광을 입은 것은 이브 다음으로는 하갈이 최초였다) 아들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지어주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그후 사라도 임신하고 90세에 이삭을 낳는다. 유대인들은 이삭을 통해 아브라함과 정신적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이 이야기에서 하갈의 목소리가 전면에 부각된 적은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밴더빌트 신학대학 히브리 성경학과의 레니타 윔스 부교수는 “아프리카인이자 노예였던 하갈이라는 인물은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우리는 노예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성경 속의 여성을 소재로 책을 몇권 쓴 메건 매케나는 캘리포니아 모텔의 성경낭독 모임에서 하갈이라는 인물이 히스패닉 여성 잡역부들에게 강하게 와닿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엘살바도르 출신의 한 불법 여성 이민자가 더듬거리는 영어로 “이제 사라는 항상 찬밥 취급을 당하는 기분이 어떤지 알았을 것”이라고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본받을 인물을 찾는 현대 여성들에게는 그동안 간과돼 왔던 성경 속의 용기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도 역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라합이라는 여성은 창녀인데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을 집에 숨겨줌으로써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함락시키도록 도왔다. 그런 용기 덕분에 라합과 그녀의 자녀들만이 이스라엘의 여리고성 함락 당시 목숨을 건졌다.

사사기에 나오는 가장 탁월한 전사는 드보라라는 여성으로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간 지휘관이자 판사였다. 그녀가 모시는 장군이 그녀 없이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던 것이다. 드보라는 여자만이 적장(敵將) 시스라를 붙잡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 여성이 바로 야엘인데 시스라는 도망치다가 하필이면 그녀의 천막으로 숨어든다. 야엘은 시스라에게 음식을 주고 잠자리를 봐준 다음 잠든 사이에 천막용 말뚝을 그의 머리에 대고 방망이로 때려박았다.

정경과 외경을 포함한 기독교 성서를 통틀어 페미니스트의 원형을 가장 강하게 보여주는 것은 유딧서(일반적인 개신교의 성경 안에는 포함되지 않음)인데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을 구한 여장부를 다룬 내용이다. 밴더빌트대의 러바인 교수는 유딧이 “말하자면 유대인 원더우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이 이웃 강대국으로부터 위협받게 되면서 유딧이 활약할 기회가 마련됐다. 이스라엘의 남성 지도자들은 항복할 준비를 하지만 아름답고 신앙심 깊은 과부 유딧은 다른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딧은 가장 멋있는 옷을 골라 입고 적진으로 들어갔다. 홀로페르네스 장군은 유딧의 미모에 넋이 나가 유혹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유딧은 홀로페르네스의 천막에 혼자 남게 되자 그의 목을 베어 음식 주머니에 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로써 적군은 도망쳤다. 예루살렘과 성전을 포함한 전 이스라엘이 화를 면했으며, 유딧(학자들은 그녀를 두고 이스라엘을 의인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은 일상생활로 돌아갔다.

새로운 경전 연구는 기독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모 마리아의 인간적 모습까지 들춰낸다. 마리아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 예수 다음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단순히 성모상 정도로만 인식된다. 일부 신학자들은 성모 마리아를 좀더 다각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성모 마리아를 동정녀의 몸으로 예수를 낳은, 우리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인물로 취급하지 말자. 우리가 성모 마리아에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은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라고 윔스 교수는 말했다. 윔스는 마리아를 근접할 수 없는 고귀한 성모 마리아로서가 아닌 평범한 10대 소녀로 재해석한다. 가브리엘 대천사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던 그 운명적인 날 마리아는 모세·이사야·예레미아처럼 공포에 떨었다.

하나님이 사명을 내릴 때 이들 남성은 모두 자신이 너무 어리다거나 그 일을 하기에는 미천한 존재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을 믿었고 그로 인해 보답을 받았다. 하나님은 그녀에게 너무나 절실히 필요했던 친구를 허락했는데 그가 바로 사촌언니 엘리사벳이었다. 오랫동안 불임이었던 엘리사벳 역시 갑자기 기적적으로 아기를 갖게 됐고 아들을 낳았으니 그가 바로 세례 요한으로 알려진 예언자다.

이제서야 비로소 공개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만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이야기에는 현대 여성의 경험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주제가 담겨 있다. 마리아는 아내는 남편에게 상속자가 될 아들을 낳아줘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회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령의 힘으로 잉태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약혼자 요셉의 체면을 떨어뜨렸다. 누가복음에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부분을 보면 마리아는 사촌의 집에서 석달 동안이나 지낸다.

누가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단순한 친척집 방문이 아니었다. 엘리사벳을 통해 히브리의 마지막 예언자 요한이 태어남으로써 구약성서의 역사는 끝나고, 마리아를 통해 예수의 삶·죽음·부활이 가능해짐으로써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마지막 찬양 구절에서 마리아는 당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힘없는 자, 특히 여성을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찬송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종’인 자신이 미천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이제부터 ‘만세대가 나를 복되게 여길 것’이라 예언했고 그 예언은 옳았다.

주님에게 의지하고 또 서로 의지하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은 여자들 간의 우애를 보여주는 성경 속의 일례로,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자신밖에 없었던 구약성서의 인물 다말과는 대조적이다. 창세기 38장에 나오는 다말은 첫 남편이 자식을 남기지 않고 죽자 당시 율법에 따라 시동생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시동생이 나중에 재산을 물려받을 자식을 낳기 싫어서 질외사정으로 피임하자 하나님이 그를 죽게 만든다.

율법에 따라 다말은 셋째 아들에게 시집을 가야 하지만 시아버지 유다는 아들들의 죽음에 다말이 관련된 것 아닌가 의심을 품는다. 그래서 다말을 당시 성년이 안된 셋째 아들과 결혼시키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도록 과부로 선언해 주지도 않는다. 대신 친정아버지에게 보낸다. 그곳에서 다말은 시아버지가 자신을 셋째 아들과 결혼시켜 줄 때까지 정숙하게 지내야 했다. 나중에 다말은 유다를 속여 자신을 임신시키도록 만든다. 결국 유다가 다말을 받아들이고 그녀는 유다가 잃은 두 아들을 대신할 쌍둥이를 낳는 것으로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된다.

다말은 권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남성을 속여야 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수천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각광받게 됐으며 이제 이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성경 속의 여성들이 동시대의 남성들과 동등한 힘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약하거나 수동적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돼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천명의 장정을 먹였다는, 주일학교 아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예로 보자. 성경에 나온 말씀의 실제 뜻은 “여성과 아이를 포함하지 않은 5천명”이라는 뜻이다. 결국 모든 남성에게 처와 적어도 2명의 자식이 있었다고 치면 예수는 실제로 2만명을 먹인 셈이다.

도대체 왜 이 이야기를 기록한 남성은 예수의 기적을 더 대단하게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것일까? 당시에는 여성이나 아이들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제너럴 신학대 신약 연구과의 데이더 굿 교수는 “고대 문서에서는 여성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성경 속의 여성에 대한 학자들의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가 기억할 것은 그렇게 경시됐던 여성들이 승리를 거두거나 복음 전도사로 활동하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는 사실이다. 이브로부터 미리암과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성경 속의 여성은 우리들 신앙 생활의 주역이었고 현재도 그러하다.

With PAT WINGERT and KAREN SPR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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