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조네 <잠자는 비너스> 1510년 경

 

타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마네 <올랭피아> 1863년

 

그림은 판다님의 서재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http://www.aladin.co.kr/foryou/mypaper/mypaperitem.asp?UID=1805431425&CNO=784425183&PaperId=461883&CType=1

 

내 벗은 몸을 보라, 나 역시 너를 보리니


마네의 누드모델 빅토린, 부끄럼 없이 관객 바라보는
당돌한 눈빛으로 관심…개성적인 파리지엔

: 이주헌 아트스페이스 서울 관장


"누르스름한 배를 드러낸 이 오달리스크는 도대체 뭔가? 올랭피아를 표현한답시고 어디선가 주워온 모델 같은데, 올랭피아라니? 어떤 올랭피아? 그것은 고급 창녀일 뿐이다. 천박한 처녀를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마네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 그는 걸레를 그렸으니까."

 

마네가 가로 누운 여성 누드를 주제로 그린 ‘올랭피아’(1863)는 1865년 살롱 전에 내걸렸다가 화단 안팎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대단했던 비난의 강도만큼이나 오늘날 19세기를 대표하는 걸작의 하나로 찬사를 받는 이 그림은, 그만큼 시대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작품이다.

이 위대한 걸작의 모델은 빅토린 뫼랑(1844∼1927)이다. 마네가 어떤 여인에게 모델을 서 달라고 부탁했다가 그 여인이 주저하자 “싫으면 관두라지,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으니까”라고 했다는 바로 그 빅토린이다.

‘올랭피아’에서 빅토린은 좀 당돌해 보인다. 무엇보다 관자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길이 매우 당당하다. 옷을 벗은 여자가 전혀 부끄럼 없이 다른 사람을 쏘아보는 것, 그것은 여염집 여인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관자를 바라보는 서양 누드 그림은 이전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비너스로서, 혹은 다른 전설이나 로맨틱한 이야기 속의 히로인으로서 관자를 바라보는 존재였다. 그것도 은근하게…. 이 그림에서처럼 모델이 다른 외피를 쓰지 않고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놓는 그림을 보기란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당시 왜 그토록 많은 비난이 이 그림에 쏟아지게 했는가를 잘 나타내주는 부분이다.

서양미술에 있어 누드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의미했다. 미적 이상의 절정이었다. 그만큼 누드는 동경과 꿈·기대·소망·이상을 담은 저 하늘의 아름다움이어야 했다. 물론 누드에는 진한 에로티시즘이 담겨 있다.

하지만 땅의 에로티시즘을 하늘의 이상으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진정한 누드’는 탄생할 수 있다. 이런 관념이 그때까지의 누드 미술에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런데 마네는 그 하늘의 아름다움을 땅의 추함으로 곤두박질시킨 것이다.

비너스도 아니고 님프도 아닌 그 벌거벗은 여인은 돈을 받고 몸을 파는 저 사창가의 창부와 다를 바 없었다.

벌건 대낮에 이 창부에게 지고의 예술적 경배를 드리기 위해 정장과 드레스를 갖춰 입고 우아하게 전시장에 입장한 관객들로서는 분통이 터지고 욕설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 창부의 고객이란 말인가?

더 이상 신화나 전설에 기대지 않고 살아 있는 시대의 이미지로 누드를 그리려 한 마네, 그리고 이에 거부감을 갖고 맹렬히 마네를 비난했던 당대의 ‘우둔한’ 비평가들과 관람객들.

우리는 이 둘의 싸움에서 끝내 마네가 승리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는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비록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역사를 선도한 마네는 끝내 영광의 옥좌에 앉았다.

하지만 오늘날 모델이 됐던 빅토린을 알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마네의 의도에 따라 ‘날것’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놓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던지는 ‘외설’ ‘음란’ ‘창부’ ‘걸레’ 따위의 말이나 들어야 했던 빅토린.

그럼에도 모델 일을 주저하는 다른 여인에게 마네가 “그래도 나에게는 빅토린이 있다”고 말한 데서 알 수 있듯 그녀는 현실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던 듯하다. 이와 관련해 그녀의 기질을 엿볼 수 있는 비평가 귀스타브 제프루아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인상적이다.

“(빅토린은) 역마살이 낀 자유분방한 여인네로, 마네가 하룻밤 풋사랑을 나눈 맥주홀의 바람기 있는 여자이다.…그의 눈빛은 신비롭고 얼굴은 매정한 어린아이 같다.”

빅토린은 그 나름으로 세상에 대한 냉소가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모델을 설 뿐 아니라 그림도 배워 예술에 대한 이해가 있었고 (그는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모델로 일하는 한편 그의 여성들을 위한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또 아카데미 줄리앙의 이브닝 클래스에 다니기도 했다), 더불어 아방가르드 예술가들과 어울리면서 시대를 비웃을 줄도 알았다.

물론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 것인가를 잘 인식하고 있었기에 화가로 활동할 때는 살롱에 여러 차례 출품하는 등 제도권에서의 인정을 갈망하기도 했다.

빅토린의 화가로서의 재능이나 활동이 모델의 그것에 비해 덜 조명돼왔고, 그것이 여성에 대한 시대의 편견 때문이라고 보는 구미의 페미니즘 미술사가들은 그런 점에서 최근 빅토린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빅토린은 1844년 2월18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1860년대에 쿠튀르 화실에서 모델을 서다가 역시 쿠튀르에게서 그림을 배우던 마네를 만났다. 1862년부터 1874년까지 빅토린은 마네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이었다.

한동안 빅토린은 알코올에 절어 일찍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새롭게 밝혀진 기록에 따르면 1927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장수한 편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최후 수십년 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빅토린은 별명이 ‘새우’였다. 자그마한 몸집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그러나 그림을 통해서는 신체의 사이즈 같은 것이 쉽게 측정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예의 뚫어질 듯 쏘아보는 눈동자가 특징적이다.

실제로 빅토린은 강렬한 시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에스파다 옷을 입은 빅토린’ 등 마네의 그림에 등장한 빅토린은 늘 그림 밖을 응시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반항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관심하다는 그런 표정으로 말이다.

머리카락의 색도 적갈색이어서 이런 반항의 뉘앙스를 더욱 부채질한다. 그림 속 빅토린의 타오르는 시선은 그러므로 마네의 연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마네조차 사로잡아 늘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게 한 그의 타고난 자력 같은 것이었다.

‘에스파다 옷을 입은 빅토린’에서 그의 시선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사로잡는다. 투우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지만, 빅토린의 시선은 소에게 가 있지 않다. 그의 진정한 관심은 소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관객이다.

그는 단 한 사람의 관객도 자신의 자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가 지금 이 투우판에 뛰어든 것도 우리의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정면으로 마주한 시선 속에는 더 이상 거짓이나 가식이 존재할 수 없다. 당시 한 비평가는 이렇게 썼다.

“젊은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복장이고, 어울리지 않는 놀이다. 좀 덜 과격한 놀이를 하면 좋을 걸. …솔직히 나더러 과일 잼을 만드는 여자와 황소를 찔러 죽이는 여자 중에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오늘날 스페인에서 여성 투우사도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비평가가 안다면 뭐라고 할까? 빅토린은 바로 그런 시대가 다가오고 있으며, 자신의 시선은 그 시대적 변화를 사람들이 정면으로 바라봐 주기 원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까?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생생한 시대의 현실로 그려진 모델이 파리지엔이였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 파리 화단의 인기 모델들은 대부분 유대계 아니면 이탈리아계였다. 이국적 미모는 누드를 이상화하는 데 훌륭한 밑천이 됐고, 기독교나 그리스·로마 신화 주제를 그리는 데 있어 그와 관련된 인종의 모델이 선호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네는 더 이상 그런 ‘뜬구름 같은 주제’를 그리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타인종 모델을 쓰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는 현실에서 취한 이미지를 생동감 넘치는 시대의 감수성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빅토린은 그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신화를 그리는 그림에서 시대를 그리는 그림으로 넘어가는 이 역사적인 분기점에서 그는 가장 현대적이고 개성적인 파리지엔을 만났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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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02년 11월 12일 662호  http://magazine.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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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f 2014-05-1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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