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 월의 친구들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0
미샤 담얀 지음, 이명희 옮김, 두산 칼라이 그림 / 마루벌 / 1996년 9월
평점 :
절판


"북풍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한번도 자기의 생활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라는 구절을 읽으니 왠지 지금의 제 모습이 배부른 돼지같이 느껴졌습니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도 없고
도전하고 싶은 대상도 없고
더 나은 미래를 염원하지도 않는.

지금의 내게도 북풍이 찾아온다면...?
그런 의문을 책을 보다 말고 하게 되었답니다.
(아이의 책을 구입하면 제가 먼저 오래오래 들여다보거든요)

이 책은 내용이 다소 시적이고 잔잔하여 자칫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두산 칼라이의 환상적이고 빼어난 일러스트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건이 없이 각 계절의 특징적인 아름다움을 나지막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읽어주는 엄마 자신이 아무런 감흥이 없이 처음에 덜렁 읽어주고 나면 "엄마만 좋아하는 책"에 들어가기 쉬울런지도 모릅니다.

어느 책이나 그렇겠지만 정말 엄마가 좋아서....그거에 푹 빠져서 읽어주다보면
목소리 톤도 그렇고 거기에 배어나오는 감정도 자연스러워지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아이도 열심히 보고 있고 말이죠..
별로 재미없는 내용의 연극인데도 배우가 하도 열성적이고 그의 땀방울이 손에 잡힐 듯 보이기에 어느덧 다만 그 사람의 호흡을 따라가면서 푹 빠져본 그런 경험 없으세요?

책소개를 인터넷으로 보면서 각 계절을 어떻게 형상화했을꼬...정말 궁금했는데
오오...그림을 보는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쉽사리 만나지지 않는 창백한 색조의 그림은 화려하지만 요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런 색감을 쓸 수 있었을까 싶게 독특한 그 색감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우리나라 그림책 인쇄현실을 감안해 볼 때 원화를 보면 거의 자지라질 거 같기도 하고 말이죠.
그리고 특이한 것은 그림마다 보면 말이죠, 하늘에서 컵이며 그릇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어요. 그 달에 대표적인 동물이나 식물도 같이 말이죠.
이게 왜 이리 떠있을꼬...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참 들여다 보았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뭔가 초현실적인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서인가 보다...그러고 있습니다.

아...사설이 길었습니다 ^^;;

북풍이 주는 새해선물로 십이월은 삼월, 유월, 시월을 만나게 됩니다.
열한달 동안 잠을 자고 있다가 자신이 맡은 달에만 깨어나는 달소년들로서는 대단한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짐작하시는 분은 짐작하셨겠지만 삼월 유월 시월 십이월 이 네 달은 각각의 계절을 상징하지요.

변덕스러운 바람과 지저귀는 새들의 삼월
초록빛과 황금빛 속에 귀뚜라미가 노래하는 유월 (음...우리나라에서는 귀뚜라미를 가을의 대표적인 소리로 꼽고 또 그 소리를 "운다"라고 표현하잖아요? 계절적 느낌과 맞물려서 그렇게 다르게 들려지나 봐요.
사실 가을엔 뭘 해도 쓸쓸하잖아요 ^^)
따뜻하고 화창하지만 길어진 그림자가 있고 과수원의 나무들이 옷을 벗는 시월

이 세 달소년을 만나면서 십이월은 자신의 쓸쓸한 달,땅이 얼어붙고 나무가 앙상해진 12월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게 됩니다.
늘 쓸쓸하게 자신의 집에서 일에만 몰두하던 십이월은 이제 그전까지와 달리 눈이 오면 찾아올 친구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귑니다.
날마다 새로운 모험을 떠나게 되고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맞이합니다.
그래서 더이상 외롭지 않아요.
외롭지 않다는 것은 말이죠, 행복하다는 거겠죠?
행복하다는 것은 자기존재의 중요성을 깨닫고 또 자신의 위치에 충실할 때 느낄 수 있는 것이고 말입니다.

아마도 미샤 담얀이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니었을까요?
각 달의 아름다움이 있기에 전체의 아름다움이 있는 거라는 것을 말이죠.
또 그에 깃들어 있는 행복함을 깨닫기를 바란 거라고 제 멋대로 단정지어 버립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제게도 북풍이 불어왔으면 좋겠다고 가만가만 속삭여보았습니다.

미샤 담얀이 그 유명한 노르드 쥬드 출판사(North-South Books)의 설립자인 디미트리예 시디얀스키(Dimitrije Sidjanski)의 필명이라는 것을 [아툭]의 작가소개를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아툭]에서는 이름이 '미샤 다미안'으로 되어 있어서 같은 작가로 검색이 되지 않고 있지만 말이죠.
이 분이 쓰신 책이 참 많은데 아직까지 국내에는 [십이월의 친구들]과 [아툭]만 소개되어 있고 또 노르드-쥬드 출판사의 책들은 거의 대부분 아가월드라는 회사의 전집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아름다운 그림들을 손쉽게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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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키웨이 2004-06-07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산 칼라이의 책으로 국내에 소개된 것으로는 예림당에서 나온 내가 처음 만난 셰익스피어 시리즈 [베니스의 상인]과 [한여름밤의 꿈]이 있습니다.











바람꽃 2004-06-0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키님의 리뷰를 쓰면 그 책이 다시 보인다니까요.^^ 한번 읽어주면서..기대보다는 심심한? 책이네 싶었는데.. 오늘 다시한번 꺼내서 읽어봐야겟습니다. 위 두 책이 또 땡기는구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