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양복 입고 있어요? 위드북스 13
아멜리에 프리드 지음, 약키 글라익 그림, 유혜자 옮김 / 삼성당아이(여명미디어)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할아버지의 빨간 손수건]에 이어 계속되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아멜리에 프리드와 약키 글라익이 함께 만든 책으로 이들이 같이 만든 다른 책으로는 이혼한 엄마의 새로운 사랑찾기에 받아들이기 힘든 아이의 눈으로 본 동화 [아빠는 내 눈에만 보여요]가 있습니다. 이 두 책만 보아도 이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언지 알 수 있는 거 같아요.
쉽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그런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여겨지네요.

[할아버지 양복 입고 있어요]는 도저히 할아버지의 죽음이 무언지 알 수 없는 아주 어린 꼬마 브루노의 이야기입니다.
브루노가 보기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그냥 자고 있을 뿐입니다. 또 장례식에 가고 싶은 이유도 다만 사람이 땅에 묻히면 흙이 된다고 하니 그게 참 신기하여 그 자리에 꼭 있고 싶다는 그것일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묘지로 가는 동안 브루노는 우스운 광경을 보고 큰소리로 웃기도 합니다.

저 어렸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오랜 시간 자리에 누워계셨던 엄마로 인해 늘 모든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던 집에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와 떠들썩해지고 음식하는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아주 어린 꼬마도 아니었건만 저는 그게 너무나 신기하고 마냥 신이 났더랬습니다.
물론 엄마가 돌아가셨다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오시는 친척마다 우리를 안으시며 아이고...이 어린 것들을 두고 어찌....그러시며 우셨으니까요. 하지만 당장은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윗층에서 우리끼리 신나게 놀아도 아무도 뭐라고 안하고 내일이면 차를 타고 할아버지 산소에도 간다고 하니 그게 소풍이라도 가는 양 정말 신이 났던 기억이 참...마음을 씁쓸하게 합니다.
어려서 그랬지....하면서도 말입니다.

어린 브루노가 느끼는 어리둥절함이 고스란히 제게는 예전의 제 모습과 오버랩되었습니다.
겨자빵을 먹어도 뭐라고 하지 않는 그 상황....그때 저도 그랬답니다.
방에 이불을 펴 논 상태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그날은 부엌에만 가면 음식이 잔뜩 있고 또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하고.. 그 접시를 방으로 가지고 가서 키득거리며 웃던 생각이 납니다.

이제 더 이상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느껴가는 브루노...
전에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나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물어보곤 했는데 이제는 할아버지도 안계시고 어디에 계신지 물어봐도 제대로 말해주는 사람도 없고... 브루노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자꾸자꾸 엄마에게 물어보지요. 설명만 잘 해주면 이해할 수 있다고 소리치지만 정말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주시겠다고 약속해놓고 어떻게 그걸 지키지 않은 채 돌아가신 걸까? 영원히 낚시를 배우지 못할 것만 같고 할아버지만이 할 수 있었던 즐거운 일들이 생각나면서 이해할 수 없는 그 상황에 화가 나다가 그러다가 갑자기 참기 어려운 슬픔이 가슴 속에 밀려오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이 무엇인지 브루노에게 이제야 실감이 온 것이지요.

사람의 부재가 당장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죽음 뿐 만이 아니라 우리가 연애를 할 때도 말입니다.
너무너무 사랑했던 연인일지라도...헤어지면 당장 죽을 것만 같았기에 차마 헤어지자는 말을 못했지요. 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헤어지고 다음날 되니 멀쩡히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그렇게 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신기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듯이 몇날며칠 죽을 듯이 열이 나고 아파야 하는데 왜 나는 이리도 멀쩡한 것이냐....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이 맞는가....그게 정말정말 이상했는데 그와 나누었던 시간들의 부분들이 어떤 자극점마다 아프게 살아나서 참 미칠 것 같고 힘들고 그러지 않던가요?
헤어졌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으니 그렇게 멀쩡하게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생생하게 현실로 다가오게 되는 그 순간이 있는 거지요.

그렇게 처음에는 가슴을 찌르는 것처럼 아프고 몸 속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줄어들게 되고 점차 브루노는 할아버지가 지금 있는 곳에서 행복하다면 자신도 조금은 행복하게 지내도 될 것 같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원히 잊지 않을께요...라고 약속을 할 때마다 할아버지가 멀리서 쳐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는 것만 같구요.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지막 맺는 이야기입니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사건과 맞물려지는 그 마무리에 대해 마지막 맺는 말까지 읽게 되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답니다. 그래...그렇지...맞아..라는 말이 절로 입밖으로 새어나오면서 브루노의 정말정말 아이다움에 웃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를 맺는 작가에 대해 감탄하게 되더군요.
할아버지를 영원히 기억할께요...와 같은 평범하고도 식상한 마무리가 아닌 그 유쾌함에 대해서 말이지요.

또 죽음과 영혼이라는 쉽지 않은 주제에 대해서도 브루노를 통해 이야기해볼 수도 있어서 생각꺼리가 많아집니다.
"내가 할아버지를 좋아했던 건 할아버지의 영혼 때문이었어요?"
"하늘이 (영혼들로) 꽉 차면 그때는 어떻게 돼요?" 와 같은 브루노의 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은 언제 죽냐고 묻는 질문에 아빠가 말해주는 인디언속담 "매일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라는 말도 멋지구요.

초등학생 정도는 되어야 맛깔스럽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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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6 2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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