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늑대 베틀북 그림책 42
마가렛 섀넌 글 그림, 정해왕 옮김 / 베틀북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표지부터 확 눈을 사로잡습니다.

초록숲과 푸른하늘, 거기에 선명하게 대비된 커다랗지만 유쾌해보이는 빨간늑대.
책장을 쫙~ 펼쳐보면 늑대가 부수고 나온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건물의 깃발꽂힌 지붕이 휙~ 날아가는 것이 보입니다.

첫장에서부터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네요.
늑대의 눈망울이 너무 맑고 신나보이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습니다 ^^

첫내용은 옛날에 로젤루핀이라는 공주가 있었어요로 시작됩니다. 전통적인 옛이야기의 도입부를 충실히 따라가네요 ^^
그런데 이 공주는 높은 탑 꼭대기방에 갇혀 살았지요. 임금님은 바깥세상이 몹시 거칠고 험하므로 공주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일을 한다고 말하는데 과연?

여기서 라푼젤이 퍼뜩 떠오르면서 거기서 모티브를 따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제 제멋대로의 생각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로젤루핀 공주의 머리결이 와우~ 정말 탐스럽군요)

늘 안타까이 창가에 매달려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로젤루핀..
분수대를 빙빙 돌며 노는 또래아이들을 보며 자신을 이리 가둔 아빠에 대해 생각했겠지요. 원망과 한탄을 섞어서 말이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라지만 정말 이것이 내가 원하는 일도 아니고 이렇게 함으로써 내가 행복한 것도 아닌데... 나도 저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저렇게 편하게 어울려 놀고 싶다라고 얼마나 얼마나 바랄까요.

아마도 제 아들들이 확실하게 나타내지를 못해서 그렇지...마음 속에서 늘 부르짖고 바라는 것이 이 로젤루핀의 마음 아닐까 싶어요.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TV만화를 보고 그와 관련된 캐릭터장난감을 가지고 싶고 유치뽕짝인 캐릭터가 크게 새겨진 옷이며 신발을 신고 싶다..   는 그런 소망...

교육이라는 거창한 이유로 그렇게 금지하고 가려왔던 일들이 사실은 아이들에게 큰 상실감으로 새겨지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요즘에야 저를 참...심란하게 만들고 있거든요.
일곱살이 되던 생일날 로젤루핀 앞으로 이상야릇한 선물이 도착합니다.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그 선물상자 안에는 여러가지 색깔의 털실뭉치와 쪽지가 한장 들어있었어요.

네가 원하는 걸 짜렴

생전 처음 로젤루핀에게는 자신의 원대로 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주어진 겁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껄껄껄 웃어 제끼며 아빠한테 멋진 목도리나 하나 짜달라고 말하지요.
여태 자기가 원하는 데로 자기가 생각한 데로 로젤루핀을 키우고 있던 임금님으로서는 로젤루핀이 그 스스로의 뜻대로 뭔가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우습고도 무시할정도의 사소한 일이었을까요?
(여기서는 룸펠슈틸츠헨 이야기가 살며시 스치고 지나가는구만요 ^^
탑 속에 갇힌 채 황금실을 자아야만 했던 룸펠슈틸츠헨.
그녀에게도 자유는 없었지요.
아버지의 거짓말로 왕비가 되고 왕의 명령으로 탑에 갇힌 채 황금실이나 잣고...)


그날 밤새 자신의 원대로 빨간 늑대옷을 만든 로젤루핀은 말합니다.

나처럼 어린 공주한테는 바깥세상이 너무 위험하다고?
그렇다면 차라리 커다란 빨간 늑대가 되는 게 낫겠어


그리고 일어난 일은?  그래요,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신나고도 즐거운 탈출이지요.
늑대가 되어 돌탑 지붕을 뚫고 나오는 로젤루핀의 오른쪽으로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도
측하해주는 듯 합니다.

그런데 이게 참 또 뜻밖의 반응이 임금님에게서 보여집니다.
늑대가 공주를 잡아먹었다고 생각하면서 공주를 잡아먹은 나쁜 늑대를 어떻게 해치울 생각은 않고 단지 먹을 것을 잔뜩 주어 자신들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나약하고 소극적인 모습.
약자에게는 군림하지만 자신보다 강자에게는 곧바로 "수구리!" 를 외치는 듯한 그런 모습


 옆에 실쭉하니 서 있는 시골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재미나는군요.
특히나 가운데 코도 크고 키도 큰 아저씨가 재미있습니다.
이 아저씨는 이 책에서 두 장면에 출연하는 엑스트러인데요, 두 장면다 아주 맛깔스러운 표정과 제스추어로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냈네요. 꼭 임현식 아저씨같은 그런 엑스트러..ㅋㅋ

신나게 신나게 자유를 만끽하던 로젤루핀은 그전부터 늘 바라던 대로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참~~ 사람이란 이렇게 누군가와 함께 살아야하는 사회적인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어? 털실로 짠 옷이라는 데서 또 하나의 실마리가 시작되는군요.
근데 말이죠, 제 아들은 왜 이렇게 되는지 이해를 못해요.
언제 실을 가지고 뭔가를 짜봤어야 말이죠. 아님 엄마가 짜는 걸 구경이라도 해보았던지.
그래서 이거, 나중에 대바늘과 실을 사다가 목도리라도 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야 실이 풀리게 되면  그 짜여진 물건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무사하고도 다행스럽게(?) 로젤루핀은 다시 그 전보다 더 높고 튼튼해진 탑 안으로 돌아오고 임금님은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어리석음을 한껏 발휘하여 이번에는 진짜로 멋진 목도리를 짜달라고 합니다.
과연? 그 뒷이야기는?

뒷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좀 그렇다는 분들도 계시던데, 사실 아이들은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예요.

아, 이렇게 된거야? 으하하하 웃긴다! 신난다! 너도 당해봐라! 이런 유쾌상쾌통쾌함을 느낄 뿐일걸요?

그건 이 이야기의 구조가 옛이야기의 전형을 확실하게 따라가면서 또 그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거든요.
공주라는 특정계급, 옛날이라는 모호한 시간적 배경, 약자인 공주와 강자인 임금님의 구도,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기 보다는 사건 위주로 죽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등등등.
그래서 더더욱 아이들은 단순하고도 즐겁게만 받아들이지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듯이 그렇게 복잡하고 미묘하게 보지 않을 거예요.

그림이 정말 멋집니다. 적당히 화려하면서도 풍부한 색감이며 원근감,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재미난 표현이 보는 즐거움을 더해주네요.
저자인 마가렛 새년이 체코의 한 아름다운 성곽마을에서 염감을 얻어 구상한 이야기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 마을에 일곱달 동안이나 머물렀다는 비하인드스토리도 정말 감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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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24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밀키웨이 2004-04-24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트온냐...
자꾸 그런 말씀만 하시면 섭하옵니다...흑

2004-04-26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oonimy 2004-04-28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밀키님 서평 따라 다니며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네요

밀키웨이 2004-04-2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옴마? 고맙습니다 ^^
근데 수니미님은 뉘시옵니까?
제가 사람 알아보는 재주가 정말 없사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