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방콕에서 너무나 유쾌한 시간을 보낸 뒤 막 파타야에 도착했을 때였다.
호텔 창 밖을 바라보며 비오는수영장에 나갈까
아님 쇼핑을 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는 다투기 시작했다.


작년이었다. 하루키의 가벼움에 다시 한번 감탄하며 단편 중 <방콕 서프라이즈>를 방콕에서 읽어야하지 하는 마음으로 이 단편을 가방에 챙겼었다.

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어디에서는 무얼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또 어떤 경험을 했냐고 묻는다면 그 모든 여행에서 바다와 하늘을 보았고, 스튜어디스(혹은 스튜어드)와 호텔인포데스크 소년과 친절한 서퍼샵의 점원들을 만났고, 늘 잠을 자거나 저녁 느즈막히 산책을 하거나 태닝을 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여행이 그런 식이었다.

그녀와의 다툼은 아주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고백하건데 사실 나는 굉장히 비겁한 인간이다. 상처입거나 귀찮아지거나 또는 마음이 쓰여질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구석이 있다. 그런 내가 누군가와 크게 다툰다는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날 어쩌다 일이 그렇게 되어 버렸다. 할 말을 다 했는데도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고 이렇게까지 하는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와 왜 이런 쓸 데 없는 소모를 했을까하는 자괴감에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주섬주섬 CDP를 챙겨 음악을 들었고 나는 침대에 돌아누워 이 책을 읽었다.

굉장히 재미있고 중간중간 피식하게 하는 이 소설을 여행지의 호텔에서 침침한 기분으로 읽었던 그 시추에이션이 아직도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남아서 날 미소짓게 한다. 사실 난 그 심각한 상황에서도 너무나 기발한 문장에 감탄하며 조용히, 은밀히 웃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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