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입자
LEDERMAN / 에드텍(홍릉과학출판사)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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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우리의 과학은 어디까지 가고 있는가?

우리 과학이 무엇을 찾고 있는가?

그럼 우리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한 실험을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 속에서 과학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특히 물리학은 지금 물질이 어디서 부터 나왔는지를 알려고 하는

거대한 실험을 2008년 시작했다.

다름 아닌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한 충돌 실험이다.

 

이 실험이 성공을 한다면 우리는 드디어 우리의 질량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것을 알 수 있는 대단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여기 이책 "신의 입자"에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조금 오래된 책이여서 지금의 실험결과와는 다소 다른 결과 값이 있기는 하지만

이책이 처음 나왔을 때는 대단히 신선한 내용이었다.

 

올해 유럽연합 가속기 연구소에서 실시하는 실험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금 물리학의 황금기가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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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구조 - 시간과 공간, 그 근원을 찾아서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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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구조를 알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

아니 어떤 노력이 아니다.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아마도 브라이언 그린은 우리에게 그 답을 알려 주려고 하는 듯 하다.

전편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초끈이론을 설명하는 책이였다면

이번 책은 그 속편 격이다.

초끈이론이 어떻게 우리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책

그의 글을 읽다보면 점점 책속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게한다.

어렵고 힘든 물리학의 이론이지만 그 이론을 가지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설명을 한다.

그리고 그 설명을 우리는 책속에서 넌지시 엿본다.

참 짜릿하고 발칙한 상상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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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전10권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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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3주간 대한민국 빨치산이었다.』

 2008년 태백산맥이라는 소설을 한손에 들고 기나긴 여름 방학을 맞이 했다. 대학시절 선배들이 꼭 읽어보라고 권유를 하던 책! 그러나 글을 읽기 싫어하고 노는 것을 즐기던 나에게 태백산맥은 너무도 긴 소설이었다. 그 소설을 다시금 내 손에 들고 읽기를 시작한 날 무언가에 홀리듯 미친듯이 책을 읽어 내려간 것 같다.

 마치 남부군의 일원이 되어서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들의 삶을 눈앞에 펼쳐 놓고 그리듯 그렇게 책을 읽은 듯 하다. 책을 읽은 동안 매일 밤 나는 지리산을 헤메이고 전남 벌교를 헤메이며 여기 저기 우리나라의 참상을 보고 있었다. 시대를 초월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현장을 찾아가고 있었다. 비록 꿈속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그 참혹한 현상을 보며 가끔 편하게 잠을 청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다.

 10권의 책을 읽기 위해 몇번을 감슴을 치고 눈시울을 적셨는지 모르겠다.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그 역사를 딛고 일어선 지금의 순간들.... 우리가 많은 생각을 하고 산다고들 하지만 정말 그 생각들이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것인지 어떤 뜻을 가고 있어야 하는지 잠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당황함을 보기도 했다.

 우리는 역사의 커다란 흐름위에 서있는 한점이다. 그 한점들이 모여서 길게 늘어설 때 한줄기의 역사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그 역사의 한줄기위에 서있는 오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저마다의 가슴 속에 이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이 든다. 

 처음 10권의 책을 보면서 너무 많은 양이 아닌가 했지만 10권을 다 읽고 난 후 10권의 책이 조금 모자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몇년뒤 다시 태백산맥을 읽을 때 다시 큰 한숨을 쉬며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태백산맥』작가의 말 중에서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시대를 흔히들 ‘민족사의 매몰시대’ ‘`현대사의 실종시대’라고 한다. 그것은 곧 그 시대가 그만큼 치열했고 격랑이 심했으며, 분단사 속에서 또 그만큼 왜곡과 굴절이 심했음을 의미한다. 그 시대의 진실과 참모습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복원하고 되살리느냐가 바로 분단극복이고 통일지향일 것이다. 그 시대의 복원은 바로 오늘을 푸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작업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현장을 찾아다녔다. 소설은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일 수만은 없으며, 엄연한 역사사실 앞에서 소설을 쓰는 자는 제멋대로일 수가 없는 것이다.『태백산맥』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렇게 증언을 토대로 하고 확인을 거친 것들이다.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엮으면서 나는 시대정신에 냉정하고자 했고, 우리의 오늘을 투영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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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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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라는 나라는 고리타분한 성리학을 신봉하는 따분한 사람들의

나라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현재 우리들 사유 속에

가장 깊게 침투해 있는 부분이 아무래도 양반 사대부라고 하는 그런 유학

사상이 아닐까 한다.

 유학사상 난 왠지 유학이라고 하는 것이 참 위선 적인 사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양반이라고 하는 신분 계층에 있는 사람들은 유학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많은

백성들과 민중들을 옭아 매는 역활을 하는 강한 무기로 행세를 했으며 그 이면에

양반들은 인간의 본성을 몰래 나타내는 그런 사회 통제 수단이 아니였나 싶다.

이렇듯 나의 고정 관념 속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닥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나의 뿌리를 찾는 일에서 나는 조선을 찾아 올라가서 마치

조선이라는 시기에 만들어놓은 찬란한 문화 또는 세계최초 등등을 남발하며

자랑을 하려고 든다.  이런 이중의 잦대를 들이대고 있으니 내가 바라보는 조선의

시각이 제대로 되어 있을 법하지 않다.

 

여기 또하나 조선에 대한 생각을 해주는 책이 있다. 이 책속에 조선은 성리학 그것도 주자가

해석한 내용을 가지고 그것에만 맹신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광신(?)은 아마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고 또 기득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도구로서

군림하게 하는 하나의 장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든다.

 거부하지 않으리라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진 "금속활자"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활자 였으며

우리나라의 가장 위대한 발명인 "한글"은 무엇을 위해 창제 된것인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아주 녹녹한 어조로 써내려 간다.

 

지금 이순간 나도 생각을 해본다. 과연 우리의 생각과 여러가지 논의 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구호와 같은 학생들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이 나라를 위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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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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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끝날까를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그 삶의 끝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삶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삶의 중심에 서있어야 할까?

 

몇년전 들뢰즈라는 프랑스 철학자에 대해 공부를 한적이 있다. 그의 철학적 사유

"의미의 논리"를 배우며 참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질 들뢰즈는 88세였던가?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그 나이에 자살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아주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이다. 철학을 공부했고 그 철학적

사유가 인정받아 대학교 교수도 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사유하는 하나의 새로운 철학 사조를 만들었다. 그런 그가 자살을 한다?

의문이 드는 사건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평한다 들뢰즈의 자살은 그의 철학을 완성하는 하나의 마지막 사유 였다고한다.

들뢰즈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침대에서 수동적으로 맞이 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사건을

받아 들였다는 다소 우리가 듣기에는 모호한 설명을 한다.

 

여기 이 책속의 두 여주인공 유디트와 미미 그들오 아마 그런 죽음을 맞이 한걸까? 혹 자살 안내자는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알려주는 사람일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소설의 구조가 너무 헐렁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소설은 자살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마치 짧은 카툰을 그리듯 한 것

같다.  그 카둔이 아주 놀라울 정도로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도 아쉬움이 없었겠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어딘지 모를 서투름이 많이 묻어나고 다분히 의도적인 사건의 전개가 눈에

보인다.

 

또한 잘 연결되지 않는 작중화자의 비엔나행 아마도 유디트의 부탁이라고 하는것을 보면 그녀가

유디트를 닮았다고 하여 클림트의 고향인 비엔나를 간 것으로 보이는 다소 어정정한 설정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인 등 소설속에 나오는 연관의 고리가 너무 의도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거칠은 붓 터치가 명화를 만들듯이 거칠은 글도 좋은 소설을 만들수 있다.

그러나 그 거칠은 붓 터치에는 순수함이 뭇어 나야 한다.

그렇듯 기교가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함의 글......

 

10년전 작가가 초년 시설에 쓴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순수성이 많이 결여된 기교만이 덧칠해진 

작품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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