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면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이 어떻게 끝날까를 고민할지도 모르겠다.
그 삶의 끝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야 할까 그런 고민을 하는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삶의 모습에서 나는 어떤 삶의 중심에 서있어야 할까?

 

몇년전 들뢰즈라는 프랑스 철학자에 대해 공부를 한적이 있다. 그의 철학적 사유

"의미의 논리"를 배우며 참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질 들뢰즈는 88세였던가?

정확한 나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그 나이에 자살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 그는 아주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이다. 철학을 공부했고 그 철학적

사유가 인정받아 대학교 교수도 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고

사유하는 하나의 새로운 철학 사조를 만들었다. 그런 그가 자살을 한다?

의문이 드는 사건이다.

 

그러나....

 

혹자는 이렇게 평한다 들뢰즈의 자살은 그의 철학을 완성하는 하나의 마지막 사유 였다고한다.

들뢰즈는 죽음이라는 사건을 침대에서 수동적으로 맞이 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사건을

받아 들였다는 다소 우리가 듣기에는 모호한 설명을 한다.

 

여기 이 책속의 두 여주인공 유디트와 미미 그들오 아마 그런 죽음을 맞이 한걸까? 혹 자살 안내자는

그런 죽음을 맞이하게 알려주는 사람일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소설의 구조가 너무 헐렁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소설은 자살이라는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마치 짧은 카툰을 그리듯 한 것

같다.  그 카둔이 아주 놀라울 정도로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도 아쉬움이 없었겠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어딘지 모를 서투름이 많이 묻어나고 다분히 의도적인 사건의 전개가 눈에

보인다.

 

또한 잘 연결되지 않는 작중화자의 비엔나행 아마도 유디트의 부탁이라고 하는것을 보면 그녀가

유디트를 닮았다고 하여 클림트의 고향인 비엔나를 간 것으로 보이는 다소 어정정한 설정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여인 등 소설속에 나오는 연관의 고리가 너무 의도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거칠은 붓 터치가 명화를 만들듯이 거칠은 글도 좋은 소설을 만들수 있다.

그러나 그 거칠은 붓 터치에는 순수함이 뭇어 나야 한다.

그렇듯 기교가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함의 글......

 

10년전 작가가 초년 시설에 쓴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순수성이 많이 결여된 기교만이 덧칠해진 

작품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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