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심리학 -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분석 마인드 북스 4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강희진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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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리뷰를 쓸 때, 되도록이면 요약본이나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보지 않고 먼저 작성하는 편이다. 그런데 글을 완성한 후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다 보면 꼭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내 생각 이외의 것을 많이 짚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고민해볼 수 있었구나 라는 뒤늦은 후회 비슷한 감정이 밀려온다고 할까?

 

제목은 이상했다. ‘여자의 심리학이 뭐야? 그러나 출판사는 부제에서 성공했다.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당신을 위한 심리 분석

 

내가 여자이기에 이 책에서 공감을 하였지만, 남자가 아니기에 생기는 질문은, ‘남자는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는가? 이런 문제는 여자들에게 주로 나타난다는 것인가?’ 였다. 남자라고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그러나 여자들이 아무래도 사회적인 영향을 더 받는 탓에, 즉 나 자신이라는 self에 대한 뿌리가 비교적 약한 경우가 많기에 저자, 베르벨 바르데츠키는 그녀의 클리닉 경험을 바탕으로 여자들의 심리 문제를 파헤친다.

나르시시즘이란 무엇인가? 내가 짐작하고 기억하던 나르시시즘이란 거울을 바라보며 그 안의 사람을 쓰다듬고 감탄하는, 쉽게 표현하여 일명 심각한 공주병인 특별히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실질적으로 나르시시즘이란 그렇게 한 가지 증상만 가진 것이 아니라고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솔직하게 읽다가 짜증날 가능성도 있다. 멀쩡하게 보이던 내가 병원을 가서 상담 치료를 받아봐야 할 환자가 된듯한 조금은 매스꺼운 기운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예전에 어떤 심리학 박사도 언급을 하였듯이, 정신 질환으로 부를만한 병명은 정말 엄청난 수에 달하고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그 범주를 피할 현대인은 거의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으며 본인의 상태를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나 자신,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한 도구로 삼아보자.

고백하건대 나는 심리학을 잘 모른다. 꼼꼼하게 읽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 접한 심리학 용어들, 유기, 분리, 방어 체제 등 여러 것들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나 약간의 책들을 읽어보았고 주섬주섬 접한 정보들과 학부 때 들은 몇몇 강의들이 전부이다. 하지만 가장 강력하게 남아있는 것은 프로이트가 주장한 이론들이다. 그의 이론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라고 이미 여러 세대에 걸쳐 밝혀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 미치는 효과를 정립한 학자는 그가 아니던가? 그래서 나름대로 내 어린 시절을 비춰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이 비추고자 하는 충동이라 함은 자연스러운 과거 성찰이 아니다. 진지하고, 도구를 가진 치밀한 바라봄이다. 왜냐하면 심리학을 공부할 때마다 거북스러운 부분이 바로 어린 시절이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특별히 잘못되거나 결여된 부분이 없다. 그런데 문제의 원인을 그 쪽에서 찾아보라기에, 어디 제대로 파봐야겠다는 충동이다. ‘여자의 심리학에 등장하는 사례의 여성들은 과거를 고백한다. 그렇게 뭉뚱그리고 있던 꼬인 기억을 고백하면서 실타래를 풀어간다. 이 책을 구성하는 4개의 장 중에서도 치유책을 제안하는 부분은 마지막 장밖에 없다. 3/4를 분석에 할애하였다. 심리 치료가 바로 그런 것이라고 보인다. 진단이 어렵고 그 진단 과정이 바로 치료의 큰 단계이다. 정확하게 파악된 문제와 원인이 이미 치료의 반을 넘어선다. 휴우, 나를 진단해보고 싶다. 그러나 위험이 있다.

경험에 비추면서 동정심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문제는 이러한 동정심과 공감대는 증상의 치료보다는 유지에 더 크게 기여한다는 점이다. (72)”

마냥 공감하고 내 뒷모습을 살피려 노력하는 것은 치료보다 증상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는 것, 명상하는 것으로 우리의 뇌는 감정과 사건, 또는 상황을 끌어당긴다. 보통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는 내 의견, 생각, 기분이 적절하게 표현된 것을 읽으며 기쁨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환자들의 치료 과정에 너무 심취되어 버리고 동일시하게 되면 저자가 지적한 바와 같이 치료가 아닌 더 깊은 수령으로 빠지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해본다. 사실 나부터 그러했다. 처음에는 공감하였고, 다음으론 화가 났고, 마지막에는 이미 이 안에서 나를 매치 시키고 있었다. 결국 나의 부족함을 찾아 보는 작업은 한편으로는 슬픈 현실이 되어 버린다.

 


<인상에 남는 구절들>

 

나르시시즘이 자기 자신을 축으로 삼아 빙빙 도는 행위만은 아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 보면 거기에는 자기 자신과 자신이 지닌 한계를 필사적으로 찾으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9)

 

1.      여성적 나르시시즘이란?

 

자신에 대한 깊은 회의와 열등감, 고독, 고립, 혼란스러운 감정 등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환자들은 자신의 고통과 고민에 대해 말하는 것을 꺼렸다. 설사 말을 한다 하더라도 마치 남의 일인 양 격양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정적으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 이야기했다.

è     내 입장을 언급할 때에도 부끄러워서일까? 3자 이야기를 하듯 말하는 습관.

무척 당당한 동시에 연약하기 짝이 없었다. (26)

이 책은 깊은 자기회의에 시달리는 사람,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29)

è     끝까지 읽은 후 이 책에서 받은 해결책이 모호하게 여겨진다.

영혼의 허기란 절망, 지루함, 슬픔, 고독 등을 의미한다. (31)

이 여성들에게 있어 체중 증가는 살찌고 못난 모습이 되는 것을 의미하고, 살이 찐다는 것은 매력이 없어지는 것,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것, 그래서 남들이 자신을 미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39)

è     솔직히 부쩍 이런 생각이 늘었다.

이 상황에서 카린이 생각하는문제는 단순히 남자친구가 전화를 안 했다는 사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카린에게 있어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자친구가 감히자신에게 전화하는 일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불경죄 (44)

자기애적 분노는 버림받았다는 몸짓이자 애착관계를 향한 외침으로 해석될 수 있다. 존 보울비는 사람 및 애착관계에 대한 아이의 소망이 계속 충족되지 않을 경우(예를 들어 갓난아이가 오랫동안 울도록 그냥 방치되는 경우), 분노가 지닌 원래의 목표를 비껴가는 가까이 오지마, 난 네가 싫어라는 신호와 가까이 와줘, 난 네가 필요해라는 신호 두 개가 동시에 내포된 역기능적 분노(dysfunktionale Wut)가 양산된다. 나아가 그런 의미에서 자기애적 분노는 버림받는 것에 대한 표현인 동시에 자기방어의 수단이기도 하다.” (47)

나르시시즘의 확장된 영역이란 자신이 가진 능력에 아이가(혹은 배우자가) 가진 능력을 더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51)

è     이 정도 특성은 대다수의 부모, 자식, 부부가 가진 특성으로 보인다.

감정표현을 억제당한 아이, 감정을 거부당하고 반영받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한다. 내면에 싹튼 감정을 의심하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자아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53)

거부당한 아이든 과보호를 받은 아이든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을 맛볼 수밖에 없게 된다. (55)

거짓 독립심, 남성들은 진정한 관계를 구축하기를 꺼리고 자기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살아간다. ‘관계 거부자

여성적 나르시시즘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면서까지 주변 환경에 적응하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필사적으로 공생관계를 구축하려 하는 것.

상대방과 진정한 동화를 이뤄내지는 못한다.

이 여성들이 대인관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혼자가 되는 상황을 피하고 이를 통해 안정감을 얻으려는 것뿐이다. ‘관계 수용자’ (65)

경험에 비추면서 동정심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문제는 이러한 동정심과 공감대는 증상의 치료보다는 유지에 더 크게 기여한다는 점이다. (72)

 

2.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인한 상처

 

태어난 후 최초의 몇 년이 이후의 성장과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여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미 입증되었다. (83)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가 아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이후 아이가 갖게 될 기본적 신뢰감 혹은 불신감에 영향을 미친다. (88)

아이가 기본적 신뢰를 갖고 있는지 아닌지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생후 몇 개월 동안의 공생기간을 긍정적으로 보낸 아이라면 낯선 사람을 호기심과 감탄으로 대한다. 만약 아이가 낯선 사람을 볼 때마다 겁을 먹고 방어적 반응을 보인다면 이는 기본적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89)

è     저자의 주장에 따르자면, ‘아이가 낯을 가려요.’ 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부모가 아이에게 적절한 애착을 주지 못했어요라는 고백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인가? 단순한 성격의 탓은 아닌가?

교류분석법에 자주 등장하는 개념으로, 존재의 정당성을 갖지 못한 사람은 대개 불안감, 위협의식, 자기 자신을 포함한 인간 전체 및 세상에 대한 불신, 불안감과 공포심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93)

è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 확인이 주는 효과

아이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의 신호를 올바르게 해석할수록 긍정적인 감정을 개발한다. 그러나 아이가 울 때마다 배가 고픈 거라고 해석하며 젖만 먹이면 아이도 자신의 신체적 요구와 감정적 요구를 혼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안아달라는 신호를 보낼 때마다 엄마가 젖만 먹이면 그 아이는 나중에도 외로움을 식사와 간식으로 때우려고 할 것이다. 그런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가기 배가 고픈 것인지 외로운 것인지 구분을 못할 가능성이 크다.

è     어린시절에 있는 일들이 이렇게 효과가 크구나.

하지만 식욕이 실망으로 인해 발동되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식욕은 완전히 사라졌고, 조금 슬픈 기분이 들면서 자기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8)

신체에 대한 자의식 없이 자신에 대한 자의식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 몸은 나의 일부가 아니라 나 자체라 해도 좋다. 내 몸을 바라보는 관점 및 내 몸에 대한 평가가 곧 나 자신에 대한 시각이자 평가가 된다.

è     Because of my body status, I’m losing myself.

행복이 날씬한 몸매만으로 얻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109)

è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주어주는 효과는 상당히 크기 때문에 날씬한 몸매를 지향한다.

뚱뚱한 여성들은 오히려 실제보다 자기가 더 날씬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10)

è     Oh my gosh!

심장이 타들어가고 가슴팍이 아려온다고 말했다. 심장은 인간의 신체기관 중에서도 사랑과 수용, 애정 등 다양한 감정과 가장 많은 연관성을 지닌 기관이다. 그 부분이 타들어간다는 말은 타인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결핍되었다는 말이다. (120)

è     심장에 느끼는 그 고통이 정말 감정과 연관되어 있구나.

아이가 자율성을 발달시킨 두에 다시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려면 먼저 분리가 이뤄져야 한다. 콜리저는 이렇게 말했다. “우선 이별에 대해 충분히 슬퍼한 후에야 새로운 사람에 대해 마음을 열 수 있다.

개성화 (individuation) (124)

자존감이 약한 여성들에게 있어서 분리는 한계상황을 의미한다. (126)

누군가와 헤어져야 할 때면 전 그냥 말없이 사라질 거에요. 눈물도 흘리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말이죠. 그냥 그 사람은 제게 있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셈 칠거에요.” 이런 식이라면 케르스틴은 사랑받지 못하고 버림만 받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이다. (128)

è     이런 유혹을 누구나 느끼지 않을까? 하지만 그 두려움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상적인 헤어짐을 가질 때 진정 아름다운 이별이 될 터인데. 나는 그 중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냥 깨끗하고 투명한 늪으로 조용히 빨려 들어가는 작별이 내가 가진 이미지로 보인다.

감정적 공복상태, 더 이상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없다는 두려움 등이 물리적인 공복감과 식탐으로 변형되는 것이다. 이때 먹는 행위는 (중독성이든 아니든) 버림받은 슬픔을 표현하는 도구다. 나아가 자존감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극, 끝없는 나락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발로다.

이들은 아무런 계획 없이 여가와 주말을 맞거나 혼자 저녁을 보내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 외부로부터의 관심과 인정이 결핍되면 자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130)

è     그렇다면 중요성테마는 강점이 아니라 해소하지 못한 부분, 심리학적 문제인가?

è     약속 중독이나 계획 중독과 같은 이 행위를 어찌 바라보아야 하지? 어려운 문제이네.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내가 요청하기 전에 치료공동체 중 누군가가 먼저 내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131)

è     요청이나 부탁이란 단어들의 이미지는 쭈볏쭈볏 곤두서있는 내 신경이야.

대략 생후 18개월쯤, 아이들은 이 시기에 말하자면 나르시시즘의 최고봉을 경험한다. 적어도 자기들이 보기에는 자기만큼 전지전능한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 아이들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뼈아프게 깨닫는다.

위대함(우월감)과 능력의 한계(열등감)를 동시에 체험한다.

è     인생에서 늘 체험한다오!

부모의 지원과 아이 자신의 현실 인식 (140-1)

자기애적 인격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자립과 의존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이어주는 끈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자주성을 버리지 않고도 남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개발하는 동시에 남들의 도움도 기꺼이 받으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143)

많은 어머니들이 임신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과 자녀를 위해 원래 자신이 품었던 원대한 꿈을 포기한다. 이러한 결정은 이후 그들의 가슴 속에 양면적 감정을 일으킨다. 인생에 있어 중대한 무언가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런 의심을 상쇄해 주는 수단이 바로 가족을 잘 돌보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이다.

è     수단이라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표현이 아닌가? 또한 자녀를 키우는 것을 잃어버린 어머니 역시도 무언가를 놓친 듯한 의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된다. 과연 어느 쪽이 더 행복하다고 이런 사실만 가지고 구분 지을 수 없다. 사실과 감정인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희생으로 대체해 온 어머니들에게 있어 딸의 독립은 존재가치의 하락이나 상실을 뜻한다. (154)

è     엄마들이 이렇게 느낄까? 그럼 집착하지 않는 부모는?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게 되나?

여성성을 인정하고 적극 개발할수록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고 남녀관계에서도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배우자(남자친구)를 경쟁자로 보는 시각을 접기만 한다면 여성으로서의, 그리고 당당한 파트너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159)

원래 세 살쯤이면 독립심과 개성의 발달이 마감되고, 아이는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기만의 고유한 자아를 체험한다. (191)

진정한 삶을 방해하는 지나친 완벽주의와 도덕심을 버리고 자신의 감정과 진정한 욕구에 충실한 것이 치유의 길인 것이다. (197)

날씬한 몸매는 매력과 성공, 인기, 활력, 건강을 상징하고, 뚱뚱한 몸매는 의지박약, 무절제, 소외, 고독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개인적 고통일 뿐 아니라 왜곡된 사회발전에 따른 질병이라는 것이다. 여성들은 이런 맥락을 간파하고 수동적 희생자의 입장에서 탈피해야 한다. (220)

인간의 성장발달에 관한 연구자료들을 보면, 타인의 인정 등 외부적 자극을 통해 자존감을 획득하려는 경향이 남자보다는 여자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난다. 남들의 시각이 자기평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남의 말에 더 쉽게 좌우되고, 외부적 자극을 자기평가의 기준으로 삼으며, 중심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있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로렌스는 여성을 응시되는 성이라고 정의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노출되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어딜 가든 여자는 늘 응시의 대상이다. 남자들만 여자를 외모로 평가하는 게 아니다. 같은 여자들도 외모를 보고 다른 여자를 판단한다. 따라서 여자들은 해당 사회가 요구하는 미적 기준과 매력 포인트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그래야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고, 소외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221)

 

3.      극과 극을 오가는 삶

 

자존감이 약한 여성들은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것과 욕구가 충족되는 것을 동일선상에 놓는데, 이 또한 구두적 우월감의 특징에 속한다. 이들은 자체검열을 통해 수많은 욕구들 중 실현 가능한 것만을 통과시킨다. 실현 불가능하거나 놀림감이 될 만한 욕구는 절대 발설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아예 마음속에 떠올리지도 않는다. 문제는, 상대방이 자신의 욕구를 말하지 않아도 눈치 채고 알아서 충족시켜주기를 바란다는 데에 있다.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은 절망을 받아들이고 참아내는 인내심이 매우 부족하고,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244-5)

è     지금 깨달은 사실 한 가지. 내 상태를 설명하는 것에 감탄할 필요는 적다. 해결책을 제시한 것에서 감탄해보자.

 

4.      여성적 나르시시즘의 치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할 수 있다는 신뢰

내가 죽이고 싶은 건 내 존재 전부가 아니라 그중 일부일 뿐이라는 내용이었어요. (319)

진정한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거쳐야 할 체험들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유기체험이다. (326)

è     나는 저자가 왜 유기 체험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 이것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늘 겪는 일이 아니던가? 그 체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심각한 유기 체험과 일상에서 겪는 그 쓸쓸함과 다른가? , 이 부분은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을 때 그러한 인생의 기회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자비로운 신이 우리에게 그 기회를 공짜로선물해 주는 것이다. (348)

자립심은 일상생활 속의 사소하고 구체적인 노력들을 통해 자라난다. (354)

진정한 의존은 공생적 융합관계와 전혀 다른 것이다. 진정한 의존은 자신의 한계를 잃지 않고 상대에게 자신을 맡길 수 있는 능력이다.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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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리더십
다니엘 골먼 지음, 장석훈 옮김 / 청림출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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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사>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
감성지능, EQ의 창시자이자『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 『감성지능으로 일하기(WORKING WITH EMOTIONAL INTELLIGENCE)』 등과 같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 하버드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러트거스 대학원에서 '노동 현장에서의 사회적, 감성적 학습에 관한 컨소시엄'을 맡고 있다. 「타임」 지에 기고한 글로 두 번에 걸쳐 퓰리처 상 후보에도 오른 바 있는 골먼은, 행동과학을 대중에게 널리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과학진흥협회의 특별회원으로 선출되었고 미국 심리학회가 수여하는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저서인 『SQ 사회지능』도 그의 것인지 몰랐다. 이번 리뷰를 일부러 약간(?) 거만하게 쓰게 된 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면서 이 ‘SQ 사회지능이란 책을 함께 읽어보면 각 저자들의 의견이 비교가 되겠구나 했었는데 알지도 못하면서 착각했던 것 같다. 2002년도에 감성의 리더십이 나왔고 사회 지능은 2006년에 출간되었는데, 그 사이에 더 다듬어진 골먼의 다른 글이 어서 읽고 싶다.

 

리처드 보이애치스(RICHARD BOYATZIS)
케이스웨스턴리더브 대학 웨더헤드 경영대학원 조직행동학과의 학과장. 맥버앤컴퍼니(MCBER & CO.)의 최고경영자와 헤이그룹(HAY GROUP)의 이사직을 역임했다. 인간의 동기와 자기주도적 행동의 변화, 리더십, 경영 수완 등을 주제로 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유능한 관리자(THE COMPETENT MANAGER)』 등이 있다.

애니 맥키(ANNIE MCKEE)
펜실베이니아대 교육대학원 교수이자 경영 컨설턴트. 현재 워튼 경영대학원의 어레스티 최고경영자 연구소에서 감성지능, 리더십 능력 계발, 경영 교육 등을 주제로 한 활발한 강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자가 3명이다. 이 사실 또한 모르고 읽었다. 은근히 스킵하면서, 완전하지 않은 정보를 가지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책을 쓴 것이지? 보통 저자가 두 명이 넘어갈 때엔 서로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하던데 이렇게 한 사람이 정리된 것 또한 괜찮은 방식이군. 아니면 그렇기에 내용이 더 혼돈스러운가?

옮긴이 장석훈

서강대와 프랑스 리용 2대학에서 철학, 불문학,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현재 출판기획자와 번역자 및 출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프랑스의 출판 문화를 소개하는 '도도부깽'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역서로는『백만장자 마인드』, 『고통 받는 몸의 역사』, 『과학의 즐거움』, 『그들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자아』 등 다수가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독후감>

 

실망했다. 제목에서 확 와 닿았었다. ‘EQ의 창시자 다니엘 골먼감성 리더십의 조건을 최초로 증명한 책이라는 말에서. 처음에는 좋았다. 신선했다. 물론 리더라 함은 전문가와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은 귀에 박히도록 듣고 알아 왔지만 감성을 리더의 첫 조건으로 내세울 만큼 강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니치시장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이미 다 아는 내용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결론적으로 다 읽은 후에도 무슨 이야기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 , 이 책의 매력, 이 책만의 개성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지막에 나온 정리 글을 보면서 이 책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구나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자신의 감성을 개발하여 리더십을 강화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고 생각되지만 나는 교과서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학창 시절에 교과서란 참고서와 강의가 필요한 책이었다. 그리고 기본적인 것이고 원론적인 것이 강한 책이었다. 나는 감성의 리더십을 대학 텍스트로 쓰기에 적절하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다니엘 골먼을 나이 지긋한 석좌 교수님처럼 상상했다. 400여 페이지나 되는 EQ 창시자 다니엘 골먼이 쓴 책인데 이렇게 불평부터 늘어놓게 되어서 유감이지만 두 가지 정도만 더 트집을 잡아야겠다.

 

첫째로, 끼어들기 방식(하이픈 두 개를 이용하여 추가 설명이나 용례를 끼어 넣는 방식) – 나도 글을 쓸 때 자주 이용하는 글쓰기 방식이다. 두 문장을 만들 것을 한 문장으로 만들면서 왠지 깔끔해 보이기도 하고, 끄적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것처럼 느꼈다. 문장 기호를 사용한다는 것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 방식은 글을 읽는 사람의 집중을 자꾸만 끊게 된다. 내가 예민한 것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어처럼 주어와 매치되는 조사를 쓰는 언어에서 끼어 들기 글로 인한 조사의 불일치는 마치 거칠한 잡곡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우선 글이 쉽고 술술 익혀야 하는데, 그런 효과가 떨어졌었다.

 

둘째로, 예시를 많이 들었지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았다. – 저자는 리더십의 다양한 유형으로 4가지를 제시한다. ‘전망제시형 리더, 코치형 리더, 관계 중시형 리더, 민주형 리더그리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리더로 선도형 리더, 지시형 리더를 언급한다. 그리고 리더십 유형별로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그 사례가 왜 이렇게 빈약한 것일까? 단순히 편집의 탓으로 돌려야 하는 것인가? 편집이 미약해서 임팩트가 나오지 않은 것인가? 즉 구분이 명확하지 못했다. 사례와 저자의 이론이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어 있지 않고 약간 어색하게 석여 있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례들에 등장하는 리더들은 컨설턴트와 상담을 하였다. 그리고 고치게 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것도 인위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사례로 들기에는 무슨 경제학 그래프도 아니고, 다른 요인들이 배제되어 있는 단순한 경우로 판단되었다.

 

사회에서, 특히 대기업일수록 일은 사원에서 대리급까지의 직원들이 한다.’는 의견이 있다. 나는 감성의 리더십을 읽으며 그 주장을 자주 떠올리고 공감하였다. 결국 리더란 그 중에서도 여기서 주 대상이 되고 있는 중간 관리자 이상 되는, 과장급 이상의 관리자들이라 함은 헬퍼가 된다고 생각한다. 관리자들의 감성 능력이 중요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들은 대리급까지의 또는 넓게 과장까지 포함하더라도, 이러한 실무자들이 최적의 상태에서 일을 하여 그들의 역량을 한껏 발휘하도록 돕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지식 노동자들의 성과는 판단하기 어렵다. 누군가가 어떤 직원들을 두고, “저 사람 일 잘해.” 라고 말할 때, 나의 질문은 늘 비슷하다. “어떻게 알아요? 어떻게 하길래 잘 하는 건데요?” 그러면 상대도 한 두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워한다. 피터 드러커가 말한 것처럼 제조 라인의 있는 사람들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처럼 왜냐하면 저 사람은 한 시간에 100개를 생산하거든. 평균이 80개인데 말이야.” 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식 근로자들에게 일을 잘 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된다. 그리고 그 여건이라 함은 단순히 사무실이 크고 깨끗하고 컴퓨터가 빠른 그런 외적인, 측정 가능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란 기계처럼 공식이 맞고 용량이 허락될 때 그만큼 뇌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굉장히 자의적이고 탄력적인 것이 머리로 하는 작업이다. 호의를 더 끌어내주고, 자의를 끌어내줄 때 진정한 업무 성과가 올라간다. 그래서 인간의 고유한 부분인 감성을 터치해줄 수 있는 리더의 자질이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 저자는 초반부에서는 감성의 중요성을 뇌의 구조를 가지고 근거 있는 논리를 펼치고 후반부에서는 이것을 계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더십이라 함은 절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길러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정확하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은, 리더십을 기르는 훈련이 절대 쉽거나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무언가를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도 더 힘들다고 말한다. 바로 이렇기에 슬슬 물러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그 필요와 동기를 발견하고 계발해야 한다고 하는데, 차라리 그만큼의 각고의 노력으로 실무 능력을 더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사원직급의 내가 가질 수 있는 작은 불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 자체가 동기 부여와 지침서 두 가지의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내가 만약 관리자의 입장이라면 더 공감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나의 뒷목을 때리는 그런 자극은 줄 수 없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염려해본다.

 

 

<인상적인 구절>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능을 우리의 신으로 받드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지능에는 강한 근육이 있지만 인격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그저 봉사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6)

사원들로부터 강한 호응을 얻어 내는 것이 리더의 기본 역할 (9)

 

1부 감성의 힘

Chapter ONE 가장 위대한 리더십

위대한 리더는 그의 감성을 통해 지도력을 행사한다.

리더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그것의 성공 여부는 그들이 그것을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달렸다. (21)

리더의 언행이 감성에 미치는 영향력

è     이것은 어려운 문제이다. 대개 뛰어난 리더들은 유머 감각과 함께 감정을 상하게 또는 합당한 말이기에 그냥 넘어가야겠다고 여기게 하는 그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감정은 전염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감성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지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감성적으로 구원할 수 있다. (26)

가령 서로 모르는 세 사람이 몇 분간 말 없이 마주 앉아 있을 경우, 그 중에서 가장 감정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서도 다른 두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염시키게 된다.

걸려들게

공유

각 집단의 구성원들이 서로 공유하는 기분은 그들이 직업상 겪어야 하는 격렬한 인상과는 별개의 것이다. 프로 스포츠 팀을 조사해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 팀 성적의 오르내림과는 무관하게 선수들은 며칠 혹은 몇 주 동안이나 같은 기분을 공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28)

è     보통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을 보여지는 결과에 의해 각자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는데 또 다른 조사 결과가 있군.

리더는 사람들의 기분을 좌우한다.

감정의 수프

가장 강한 맛을 내는 조미료를 넣는 사람이 바로 리더다. (29)

특히 각 구성원들이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는 난감한 상황에서는 리더의 반응을 곧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면 리더가 감정의 기준을 설정한다고도 할 수 있다. (30)

우리의 마음을 끄는 리더

감성 지능을 갖춘 리더는 변연계 부분에 매력이 넘치는 사람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è     강점 혁명 책에 기준하면 이런 것은 될 수 없는 부분으로도 인정해야 한다.

리더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집단 내부에 그의 감정이 퍼지는 강도도 커진다. (31)

업무 집단 내에서 즐거움과 열기는 아주 쉽게 퍼지는데 반해 분노는 전염성이 훨씬 떨어지며 우울한 기분은 거의 번지지 않는다고 한다. 좋은 기분이 보다 잘 전염된다는 것은 업무 성취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소 (32)

è     분노와 같은 감정은 그저 무시하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싶어하는 리더는 바로 사람들 사이에 즐거운 기분을 자아내는 리더이다. (34)

사람들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이 업무 환경의 질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다고 한다. 일을 하는 동안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시간상의 비율은 직원들의 일에 대한 만족도와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하는 마음을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지침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37)

 

Chapter TWO 마음을 움직이는 리더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의 파장이 일치할 때 그들이 동시에 뭔가를 느낄 때 그들은 공감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6)

사람을 당혹하게 하는 첫마디 말은 일종의 감정적인 복수 행위나 마찬가지다. (49)

감정의 폭발이 발생하는 것은 전전두엽 부위의 회로가 감정의 충동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해서다. (61)

 

Chapter THREE 감성과 리더십

공감이란 뇌의 기능 면에서 볼 때 사람들의 정서 중 추가 일제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웃음 (67)

감성지능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된다. (74)

자신의 맡은 바 일에 완전히 몰입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일에서 진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으며, 그러한 즐거움이야말로 진정한 동기부여의 원천이다. 물론 보너스니 포상이니 하는 것도 어느 정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좀더 적극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자극제 역할을 하기는 한다. 하지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동기부여만으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업무 수행 능력을 이끌어낼 수 없다. (80-1)

오늘날의 리더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창조하면서 자신들의 회사를 키워나가야 하기 때문에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82)

예측을 계속함에 따라 서서히 감을 잡게 된 것이다. 즉 우리의 뇌는 시행착오를 통해 교훈을 이끌어낸다.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사실을 바탕으로 직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83)

노력하는 학생과 같은 성실함을 갖춘 우리의 뇌는 경험을 통해 교훈을 습득하여 다음에 그와 유사한 고비, 난관 혹은 절정의 순간에 처할 때 더 잘 대처하도록 만들어준다. (84)

자기관리 능력은 자기인식 능력 자신의 감정을 헤아릴 줄 알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자 하든지 분명히 아는 것 에서 비롯된다. (85)

부정적 감정은 뇌의 사고 능력을 오로지 현 사안에만 몰입하도록 만든다. (86)

따라서 자기관리의 능력 꾸준히 자기 자신과 나누는 내면의 대화라고 할 수 있는 은 우리가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감성지능의 한 요소다. (87)

또한 자기관리 능력은 리더를 솔직할 수 있도록 만든다. 솔직함은 리더십의 덕목일 뿐만 아니라 조직의 힘이 되기도 한다. (89)

 

Chapter FOUR 리더십의 다양한 유형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리더의 능력은 바른 것을 말할 줄 아는 올바른 성품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고 (99)

 

Chapter FIVE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리더십

가령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위기에 처한 사업을 관리해야 하는 리더에게는 시형 리더십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사업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에 빨리 적응하게 하는 데 특히 초기에는 효과적이다. (139)

è     그러나 이 방법에는 진정 효과적이고 현명한 지적 대안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리더들 가운데는 간혹 높은 시가총액이나 지나치게 과감한 구조조정과 같은 것으로 환상에 불과한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있다. (142)

사람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첫번째 이유는 바로 보스에 대한 불만이었다. (146)

è     왜냐하면 보스가 교통정리를 해주지 않는 이상 해결될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리더십 유형을 활용하는 것은 효과적인 리더십 발휘를 위한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이것은 사람을 채용하고, 승진을 시키고 그 외에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는 데도 적용된다. 간단히 말해서 누군가를 리더의 자리에 앉히고자 한다면 네 가지 이상의 다양한 리더십 유형을 융통성 있게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는 말이다. (154)

 

2/ 새로운 리더 만들기

Chapter SIX 감성 리더가 되는 법

허니문 효과란 향상의 조짐이 3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것 (171)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리더십 능력을 키우고자 한다면 리더십 훈련을 하고자 하는 동기와 어떤 생각을 갖고 그것을 배우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172)

위대한 리더는 일상의 삶과 일터에서의 학습을 통해 자신을 유능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능력을 하나씩 배워가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 드러났다. 리더십 능력들은 모든 리더가 어떤 경우나 상황에서든 배울 수 있는 것이다. (175)

변연계는 신피질에 비해 학습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더 많은 연습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위험 분석에 능통해지는 것보다 감정이입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180)

è     이렇게 어렵게 하여 리더가 되어야 하나?

제대로 된 리더십 계발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발적 학습의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이다. (186)

첫번째 발견: 나의 이상적 자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두번째 발견: 나의 현실적 자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세번째 발견: 나의 학습 계획 어떻게 나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줄여나갈 것인가?

네번째 발견: 새로 익힌 행동방식, 사고방식, 감정의 방식을 실행에 옮기고 연습을 통해 익히기

다섯번째 발견: 성공적인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가기(190-1)

 

Chapter SEVEN 감성 리더로서의 새로운 출발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의무적 자아와 이성적 자아를 혼동하며 자신의 본심과 다른 일을 하며 산다. 바로 그 때문에 리더십 계발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이성적 자아를 드러내는 단계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많은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전제를 보면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일을 최대한 잘하고 싶어한다는 것 정도다. (202)

피드백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제거함으로써 그 피드백을 받는 사람들이 부담을 가지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MIT에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이처럼 중립화된 피드백은 사실상 별로 쓸모가 없음이 드러났다. (223)

 

Chapter EIGHT 변화하는 리더십

삶이란 배움을 위한 실험실과도 같다. 구체적인 행동 목표에만 초점을 맞추는 학습 계획보다는 자신의 이성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를 비교한 결과를 바탕으로 세운 학습 계획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235)

뛰어난 운동선수는 연습 시간은 엄청나게 많지만 정작 실전에서 뛰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 반면, 기업의 경영자들은 연습 시간은 전혀 없고 오로지 실전을 위한 시간뿐이다. (261)

정신적 반복 훈련

상상의 힘이 생물학적으로도 강력한 힘을 발휘 (267)

 

3 / 감성 조직 만들기

Chapter NINE 팀의 감성적 현실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스스로 제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바로 규범을 따르느냐의 여부에 의한 것이다. 결국 규범이 사람들의 행동방식을 지배하는 것이다.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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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지도 -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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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 조사

 

리처드 니스벳은 미국 미시간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로 동서양의 차이에 대한 연구에 주목해왔다. 그는 그의 책 『생각의 지도』는 그동안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를 실험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통념들을 과학으로 증명해 주는 리처드 니스벳의 글을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동양인은 애니메이션을 보여줄 때에도 전체와 부분이라는 관계 속에서 사물을 파악하지만 서양인은 사물 그 자체를 파악한다. 동양인은 같은 갈등 이야기를 들을 때 조화를 중시하며 융화를 주장하지만 서양은 양자택일의 논쟁문화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차이가 동ㆍ서양의 경제, 사상, 교육 전 분야에 걸쳐 차이를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과학적 실험을 통하여 두 가지의 극명하게 다른 문화가 충돌하거나 어느 한 쪽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중간지점을 찾아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의 책을 통하여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가진 새로운 시각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게 되는 독자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그의 책은 또 다른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Yes24 제공 정보)

 최인철 교수가 한국어 번역본을 맡겠다고 하였을 때 한사코 말렸다고 역자는 후기에서 밝히고 있다.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과 연구에 대한 열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저자는 스승의 저서를 번역하겠다고 한 최인철 교수에게서 한국의 문화를 본 것이 아닐까? 유교주의적 사상이 몸에 배어 있어서 스승을 섬기려는 그 마음을 읽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더욱 최인철 교수가 할 연구의 가능성의 여지를 막지 않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2> 독후감

 

좀 전에 미국인 동료(Jodi)와 통화를 하였다. 택시를 타고 같이 어디를 가기로 했는데 예약을 변경해야 했었다. 그런데 Jodi는 스페인어를 전혀 못 하기 때문에 내가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하기로 하고 Jodi에게서 번호를 받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하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Well, you need to change our reservation, because he cannot speak English.

(네가 예약을 번경해야 할 것이야. 왜냐하면 그 기사가 영어를 못 하기 때문이야.)

이럴 때 미국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같은 입장이었다면 나는 “내가 스페인어를 못 하니깐 네가 통화를 해 봐”라고 말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페인어가 국어인 나라에서 스페인어를 몰라서 영어를 쓰는 것은 내 사정인데, 이 미국 친구에게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 중심이 그녀에게 있는 것이다.

 

과테말라로 가져올 책을 고르던 때에 ‘컬처 코드’나 ‘생각의 지도’는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였다. 우선적으로 회사 내에서 동료들과 부딪히며 그들을 이해하고자, 그리고 이 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더 알고 다가가고자. ‘컬처 코드’를 요약본만 읽어봤었기에 괜히 더 전문적인 책이 구미가 당겨서 ‘생각의 지도’를 가져 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음으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기대한 만큼 넓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 같다.

우선적으로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 이 ‘생각의 지도’는 사실 “약도”이다. 지도처럼 세밀하게 되어 있지 않다. 그럴 수가 없다.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약도를 그려 주고 우선 찾아갈 수 있게 돕는 역할은 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마지막에 결론을 내렸듯이 사람들은 서로 닮아가고 있다. - 내 개인적인 견해일지 모르지만 동양인들의 서구화가 더 강하다고 보인다. – 그래서 동양인이지만 서양인의 성향을, 그리고 서양인이지만 그 반대의 것을 지닌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이 지도로 잣대를 삼게 되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 있다. 마치 개발도상국에서 우후죽순으로 건물이 들어서서 몇 년 지난 지도를 들고 가면 오히려 더 헤매듯이. 그러므로 큰 길만 우선적으로 보면서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스스로 적용하는 배움이다. 좀 전에 있던 Jodi와의 일에서 나는 ‘생각의 지도’에서 읽은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배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Jodi의 이 반응처럼 나에게 긍정적인 부분을 부각하게 되면 나는 위축 들지 않아도 된다. 이 곳에서 만나는 많은 한국인들이 스페인어를 못 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들이 한국어를 못 해서, 영어를 못 해서.’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한다. 물론 언어뿐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그렇지만.

 

리처드 니스벳은 어느 정도까지 연구, 조사를 한 것일까? 동양은 주로 일본, 중국, 한국으로 한정되어 있고 서양도 미국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과테말라 사람들의 특성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스리랑카나 인도네시아, 이런 국가들은 어느 범주로 넣어야 할까?

 

 

<3> 인용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을 이해하는 내용과 부합하는 사고 방식을 사용한다. (17)

왜 동양인들은 어떤 일이 발생하고 나면 ‘내가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지’라는 후견 지명 효과를 강하게 보일까? (19)

특정한 사회적 행위들은 특정한 세계관을 가져오고, 그 세계관은 특정한 사고 과정을 유발하며, 그 사고 과정은 역으로 원래의 사회적 행위들과 세계관을 다시 강화시킨다. (20)

 

1. 동양의 도와 서양의 삼단논법

 

그리스에서는 국가의 중대사에서부터 매우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공개적인 논쟁을 통하여 결정되었다.

‘호기심’ 아리스토텔레스는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주장했다. (29)

è     나는 호기심보다는 그 호기심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고 과정이 인간의 특성이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동물들도 호기심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그것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여가란 다름 아닌 지식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è     멋지다!

그리스에서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중국에서는 조화로운 인간 관계가 중요했다. (21)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습관적으로 행한 작업 중 하나는 사물의 속성을 분석하고, 그 추상화된 속성에 의거하여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35)

è     나는 이런 방법이 좋다. Old-fashioned studying pattern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음양 이론’ 음양의 원리란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 (40)

 

2.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자기 개념(self-concept), 미국과 캐나다인들은 주로 성격 형용사(친절하다, 근면하다)를 사용하거나 자신의 행동(나는 캠핑을 자주 한다)을 서술한다. 이에 반해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주로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적 맥락을 동원하여 대답하고(예를 들어, ‘나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직장에서 아주 열심히 일한다’), 또한 자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53)

è     동양은 ‘소속감, 소외감’이 강하고 서양은 ‘외로움’이 강하다.

동양인들에게 있어 개인의 만족감은 자신이 집단 성원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그들과 화목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54)

è     배운 것, 느끼는 것, 아는 것이 다르다.

저맥락 사회인 서양에서는 사람을 맥락에서 떼어내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개인은 맥락에 속박되지 않은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이 집단에서 저 집단으로, 이 상황에서 저 상황으로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 그러나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 인간이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유동적인 존재로서 주변 맥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55)

è     존댓말, 식사나 진지가 따로 있는 것을 설명한다.

중국어에는 영어의 ‘individualism’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56)

미국인들은 항상 남의 눈에 띄고 싶어하나 한국인들은 늘 남들 정도만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57)

è     ‘강점 혁명’의 34가지 범주 중 ‘중요성’을 가진 미국인들이 많다고 볼 수 있는가?

자존감을 추구하는 서양인들과 자기비판(self-criticism)을 통해 자기 향상을 추구하는 동양인들을 극명하게 대비 (59)

è     서양인들을 보면 심히 자신감 있어 보이는 것이 이런 이유겠지.

동양인들은 인간 관계 속에 조화롭게 ‘적응’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자기비판을 하지만, 서양인들은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동양인들은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간 관계의 조화를 추구하지만, 서양인들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인간 관계를 희생해서라도 정의를 추구한다. 동양인들은 위계 질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집단의 통제를 수용하지만, 서양인들은 형평성을 존중하고 개인의 자유를 선호한다. 동양인들은 모순과 논쟁을 회피하지만 서양인들은 법률, 정치, 과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논쟁을 끌어들인다. (80)

è     요즘 크게 느끼는 대화 소재가 별로 없다는 부분 - 이런 식으로 다양한 영역에 관심이 없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매우 지엽적인 것들만 이야기하고 논의하다 보니깐 다른 사람들의 실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초점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è     동양인들도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지 않을까? 아니, 마음은 그럴지라도 행동 패턴에서 그렇게 도출되는 것을 꺼릴 수 있다.

è     정의 추구? ‘컬처 코드’에서는 이것이 꼭 옳다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이나 그 책이나 모두 ‘문화의 상대성’을 결론으로 끌어낸다. 다른 방식이겠지만.

동양과 서양 내에서의 국가간 차이 - 예를 들어, 지중해권 국가들과 벨기에, 독일은 신교의 영향이 강하고 앵글로색슨 문화가 강한 전형적인 서양과 동양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패턴을 보였다. (73)

è     국가가 다르면, 지역이 다르면 문화도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인데 미국 문화를 서양 문화로 봐 버리는 오류를 자주 범하게 된다. 바로 붙어있는 중국과 일본 사람의 문화를 우리 나라와 같은 것으로 치부하면 적잖게 당황하고 거부하면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과테말라 현지인들의 특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미국인과는 분명 다르고 예전에 내가 가졌던 생각은 일명 ‘식민지 근성’이었는데.

‘자유롭고 활발한 토론(lively discussion) -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옳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77)

è     진정으로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심한 논쟁 후에 감정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나는 아직 이 문제에 있어 민감하다.

 

3.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서양인은 개별적 ‘사물’을 보고 있고, 동양인은 연속적인 ‘물질’을 보고 있는 것이다. (84)

자연을 등장시키는 광고는 서양에서보다 동양에서 훨씬 더 효과적이다. (86)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배경이 중국 사람들에게는 기억을 위한 단서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중국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의를 많이 기울인다는 간접적 증거이기도 하다.

서양인들은 과거를 기억할 때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회상하지만, 동양인에게는 그런 경향이 약하게 발견된다. (89)

배경 조작은 미국인보다 일본인에게 더 큰 영향을 주었다. 반응 시간에 있어서도, 원래의 사물이 낯선 배경과 제시되면 일본인들의 기억 반응은 늦어졌지만 미국인들은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93)

동양인들은 자신이 세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보다 자신을 통제해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믿을 때 더 행복감을 느꼈다. 서양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가 중요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일체감이 중요한 것이다. (98)

분명 동양인들은 여럿이 있을 때 편안해 하는 듯하다. (100)

è     불편함 속의 편안함을 그대, 서양인들은 아는가?

 

4.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일본의 교실에서는 ‘왜(why)’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how)’라는 질문이 미국의 교실에 비해 2배 정도 많이 오간다.

와타나베는 미국인의 이러한 역사 분석을 ‘후행적(backward)’이라고 규정했다. 왜냐하면, 사건들이 ‘결과->원인’의 순서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와타나베는 이러한 분석이 서양인의 목표 지향적 사고와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목표 지향적 사고에서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모델을 나중에 설정하기 때문이다. (124)

‘어떤 요인이 어떤 사건과 관계없다고 판단 내리기를 꺼리는 경향’, 다시 말해 ‘무수히 많은 요인들이 어떤 사건에 관계되어 있다고 믿는 경향’이 종합주의적 사고와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125)

그 정보를 무시하지 못하고, ‘내 그럴 줄 알았지’ 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동양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대해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사실 (128-9)

 

5.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영어는 ‘주어’에 매우 집착한다. 심지어 ‘비가 온다’라는 표현을 할 때에도 ‘It is raining’ 이라고 해서 ‘It’을 주어로 쓸 정도이다. (150)

가령, 일본어나 중국어, 한국어에서는 ‘나(I)’를 표현하는 말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다르다. 동양 언어에서 구체적인 맥락과 인간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151)

동등 이중언어자(Coordinate bilingual)’들은 제2외국어를 비교적 늦은 나이에 배워, 그것을 한정된 맥락에서만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언어에 따라 세상에 대한 정신적 표상이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복합 이중언어자(Compound bilingual)’들은 아주 어린 나이에 제2외국어를 배워 어떤 언어에서든 세상에 대한 표상이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153)

그들에게 영어를 쓰는 것은 세상에 대한 전혀 다른 조직화를 이끌어내는 촉매제와 같은 것이었다.

è     내가 외국어를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첫째, 언어의 효과와 무관한 문화의 효과가 존재한다.

둘째, 문화의 효과와는 독립적인 언어의 효과가 존재한다.

언어 체계가 표상 체계와 관련되어 있는 한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154-5)

 

6.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고대 중국인들은 변증법적 사고라 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장 큰 특징은 모순이 되는 주장들을 타협을 통해 수용하는 것이었다.

1) 변화의 원리 (The principle of change)

2) 모순의 원리 (The principle of contradiction)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 (The principle of relationship, or Holism)

서양 사고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동일률’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167)

중국 학생들은 중용을 찾으려고 노력한 반면 미국 학생들은 어느 쪽에 더 큰 책임이 있는가를 밝히려는 일방향적 접근을 취했던 것이다. (169)

사람들은 누구나 낙천적이면서도 때로는 우울해 하고, 사교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내성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런 뻔한 말을 해주는 심리학자나 점술가, 혹은 누가 되었든 간에 그 사람을 ‘족집게’로 믿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부른다. (177)

대립적인 정서의 동시다발적 경험은 동양인들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180)

대부분의 미국 참가자들은 일관되게 긍정적 정서를 보고하거나, 일관되게 부정적 정서를 보고했다. 그러나 중국과 한국 참가자들에게는 어떠한 연관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긍정적 정서가 충만한 경험과 부정적 정서가 충만한 경험이 완전하게 양립하고 있었다. 공자는 “사람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라고 했는데, 이는 동양인들을 두고 한 말이 틀림없다. (181)

è     So how? Is it a destiny? Cant we fix it? 이런 식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싫다. 왜냐하면 정말 행복하다고 순수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것이 동양인의 특성이라니. 그러니 기쁘면서도 슬픔을 느끼는 것을 설명해도 서양 애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였을 테지. 뭐랄까,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쟁이처럼 보인다. 가장 크게 슬픔을 느끼면서도 기쁨을 느끼는 것인가? 이 감정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나?

 

7. 동양과 서양의 사고 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

 

그리스는 해안가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무역을 중요한 산업 수단으로 삼았다. 그 덕분에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지닌 상인 계층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187)

중국의 중앙집권적 정치 권력 -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촌락 생활은 조화와 화목을 중시하는 행위 규범을 만들어냈다. (188)

고대 중국의 변증법적 사고와 고대 그리스의 논리학은 사회적 갈등의 해결을 위해 개발된 인지적 도구들이다. 조화와 화목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논쟁이나 대결의 전통이 생겨나기 어렵기 때문에 어떤 관점의 차이가 발견되면, 모순을 뛰어넘는 중용의 도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논쟁이 장려되는 사회에서는 ‘비모순율’이나 ‘형식 논리’같은 절차들이 자연스럽게 개발된다. (194)

장의존성(field-dependence) - 어떤 사물을 지각할 때 주변 맥락의 영향을 받는 정도 (198)

 

8.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

 

미국과 같은 개인주의적 사회에서는 개인 간의 갈등이 법적 대결로 해결되지만, 일본과 같은 집합주의적 사회에서는 중재와 같은 비법적 대응으로 해결된다. 서양에서는 정의의 실현을 원칙으로 하며, 법적 해결을 시도할 때 선과 악은 분명히 구분되며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존재한다는 점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러나 동양에서의 갈등 해결 목적은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쌍방간의 적대감을 해소하는 것이다. 따라서 타협이 가장 선호된다. 서양인들은 보편적인 정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판사나 배심원들이 공평무사한 결정을 내리도록 기대하는 반면, 동양인들은 상황 논리를 중시하는 것이 현명한 갈등 해결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법이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205)

è     서양인들이 ‘승자와 패자를 구분 짓는 것을 경쟁 심리로 봐도 될 것인가?

è     내가 이 책에서 원했던 것이 바로 이런 구체적인 적용점이었다!

è     가끔 ‘단호하다’라는 말을 듣는다. 타협이 없다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내가 정당히 받아야 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으려 할 때.

è     그러나 서양도 서양 나름이듯이, 이 책에서는 미국의 엄청난 변호사의 수를 언급하였지만 과테말라는 또 다르다. 이 곳처럼 국민 소득이 높지 않는 나라에서는 앵겔지수에 변호사 비용이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나 이들 역시 그런 것을 원하는 것일까? 무료 법률 사무소가 있을 때엔 그 곳으로 엄청나게 몰릴 것인가? 아니면 동양인들과 같은 타협을 할까?

è     얼마 전 이 나라의 원주민을 보호하는 법이 재정되고 그에 따른 무료 변호사가 선임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알지 못했던 내가 아는 어떤 한국인이 원주민에게 작은 실수를 함으로 법정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합의를 해본다고 하였는데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동양인들의 시각에서는 다소 무례하고 불손해 보이는 방법이 서양에서는 진리에 이르는 길로 간주된다.

è     나는 어느 쪽에 더 있을까? 자유로운 토론을 원하면서도 동양의 교육에 익숙해서 불손해 보이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지 않을까?

일본의 이러한 초라한 성과(노벨 수상자가 고작 1)에 대하여 혹자는 연장자를 존경하는 유교 전통을 그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일본 내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논쟁과 지적 토론의 부재를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동료들끼리 서로 비판하고 심사하는 것을 무례하게 생각하며, 논쟁과 지적 토론이 과학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206-7)

è     그러나 이렇게 비판과 심사에 있어 객관적인 판단이 어렵지 않은가? 그래서 감정이 인다고 여기는데.

è     사실 피드백을 해줄 때에도 거의 긍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주게 된다. 왜냐하면 단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관계에 있어 불편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누구의 사고 방식이 옳은가?

문화 상대주의. 어떤 문화권이 사고 방식이든 그 문화 사람들에게는 정당하다는 개념 (212)

모순에 대하여 덜 민감한 사고 방식은 지적 호기심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과학적인 사고를 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논쟁을 통하여 진리가 발견되고, 설사 진리의 발견에는 이르지 못한다 해도 유용한 가설들이 세워질 수 있다는 서양의 확신에 대해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217)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이중문화적(bicultural)이다. (229)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 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두 문화는 새로운 통합을 맞이할 것이다.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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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아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 (보급판 문고본)
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제목을 보며 굉장한 비장함을 가졌었다. 이를 악물고 고통스럽다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그런 모습이랄까?

역시 미디어 세대여서 이렇게 영상으로 먼저 받아들인다. 아닌가? 인간의 본능인가?

 

이재철 목사님은 우리, 청년을 가리켜현존하는 미래라고 통칭한다. 가슴 저린 표현이다.

자신의 현존하는 미래이며 우리 가족의 현존하는 미래이며 또한 민족과 인류의 현존하는 미래이다.

이재철 목사님의 글이든 책이든 처음 경험하였다. 그런데 책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특징은 정의를 내리는 방식의 글쓰기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무엇이든 지금 주어진 일에최선을 다한다 것은자기 자신을 극대화한다 것을 의미한다.” 또는

목적이란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다라야 종착점을, 목표란 종착점에 다다르기 위한 방편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적은 하나일 수밖에 없으나 목표는 여럿일 있다.”

이런 식으로 개념 정리를 확실하게 해주시는 분이기에 강의 또한 이렇게 주제별로 이뤄진다고 한다.

 

가지 기억에 남는 구절들을 곱씹어보고 싶다.

실력파 vs 행동파” –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 청년부에서 느꼈던 문제점은 우리들의 사회성과 실력이었다.

패기 넘치는 크리스천 청년들이 교회 활동에 집중하다 보니 사회로 뻗어나가는 부분에서 안일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야망과 비전을 혼동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곤고하게 세우기 보다는 많은 욕심과 노력을 야망으로 치부해서 무시해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사회에서의 성공을 등한시하며 교회에 집중하는 모습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음을 저자는 여실하게 지적해주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일꾼은 베드로와 같은 행동파나 의사였던 누가 또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바울과 같은 실력파이다.

자신이 어느 쪽이던 관계 없다. 그러나 하나를 선택하였다면 비전을 위해 매진하는 노력하는 자세가 청년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나의 경우 실력파가 되길 꿈꾼다. 베드로처럼 순간 결단력이 부족하기에 계속해서 내공을 쌓는 실력가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든지 당장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나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며, 또한 봉사가 바로 삶의 지경을 넓히는 길이다.

하나님 그분 자체를 비전으로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적이 있는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 싶어요.’ 라고 말을 하곤 하였지만 나의 비전 자체가 하나님, 그분이라는 것은 깊은 묵상 커리로 다가온다.

치열한 세상의 경쟁과 풍토 속에 빠져 들지 않는 것이 노아와 같은 의인의 삶이 되겠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 크리스천에게는 훨씬 절대적인 목적이 존재하기에 매일같이 목표를 세워야 한다.

사람들이 종교를 찾는 이유로안정감과 기댐 많이 거론된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와는 사뭇 다른 참신앙이라고 말한다.

부적을 붙여놓고 그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 앞에서 내가 변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면에서 되겠죠. 하나님께서 주시겠죠.’라는 표현은 위험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님은 부적이 아니다. 믿는다고 모든 것이 된다는 개념이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분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는 재미있는 종교이다. 처음에 믿게 되면 모든 때려 치우고 기도원에 들어가거나 선교하러 떠나야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절대 우리 사람을 같은 존재로 만드시지 않았기 때문에 역할이 있다.

위치에서 작은 것부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귀하다고 하셨으며 지체들끼리 서로 돕고 협력하여 우리 사회를 하나의 교회,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시는 데에

필요한 달란트를 허락하셨음이다.

 

울더라도 뿌려야 한다는 제목을 다시 생각해본다. 청년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의 강한 용사들에게 재철 목사님께서는 조목조목 챙겨주신다. 인생관을 재정립하길 바라면서 책을 썼다.

나는 책은 초신자가 읽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충분한 사랑을 알지 못한 상황에서는.

자체가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메시지를 단순하게 자기 계발서적처럼 받아들일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뿌리가 다름이 책에서는 발견되기 때문이다.

한홍 목사님께서 쓰신 칼과 칼집 사자의 심장을 가져라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하나님의 말씀의 등불을 들고 길을 열어주는 책이라는 점은

이재철 목사님의 책과 같은 맥락이지만 분명히 분께서는 다른 스타일의 글을 쓰신다.

짧게 읽어본 내가 느끼기로는, 한홍 목사님의 글이 부드럽게 흐르듯이 넘어간다면 이번에 읽은 이재철 목사님의 글은

명료하게 딱딱 짚어가며 파트씩 끝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청년들과 함께 공유하시며 쓰신 책이어서 그렇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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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청년의 때란 자기 가능성의 그릇을 가장 크게 키울 있는, 다시 되풀이되지 않는 절대적 시기 (7)

<하나님의 플러스 알파>

청년들은 자기 사람으로 인해 인류의 미래가 결정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황금같이 귀한 청년 시절을 책임과 최선을 다하여 가꾸어야만 한다.

무엇이든 지금 주어진 일에최선을 다한다 것은자기 자신을 극대화한다 것을 의미한다. (12)

목적이란 인간이 궁극적으로 다다라야 종착점을, 목표란 종착점에 다다르기 위한 방편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적은 하나일 수밖에 없으나 목표는 여럿일 있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는 것은 나의 시간들을 극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14)


중요한 , 그것은 하나님의 플러스 알파를 깨닫고, 하나님의 플러스 알파 속에 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17)

<믿음이 시작하는 >

그렇다면 이들은 그처럼 옹색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렬을 향해 영광하고 환호성을 질렀던가? 그것은 예루살렘 주민들 모두, 마치 <기탄질리> 속에 나오는 걸인처럼, 자신들의 욕망에 집착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욕망에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허상을 빚었기 때문이다. (25)

돌밭과 옥토의 차이는 무엇인가? 옥토는 갈아엎어진 , 완전히 뒤집어진 곳을 의미한다. 뒤집어진 곳에서만 진리는 열매를 맺는다. (29)

<울더라도 뿌려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5)

일본은 태평양전쟁 당시에 완전히 망했다가 한국의 6.25전쟁 덕분에 갑작스럽게 다시 돈을 벌게 졸부들의 나라다. (33)

è     이런 식으로도 한국에서 교육을 시켰었구나.

결과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45)

일본은 전체 크리스천 수에 비해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로 알려지고 있다.

바닷물 속에 포함되어 있는 불과 2.8% 소금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한다. (46)

<크리스천과 문화>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17:23)

십자가는 로마인과 페르시아인이 쓰던 이방인의 형틀이었다. (51)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도구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공이 무엇이든지 간에 진짜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58)

è     하나님께서는 실력파와 행동파를 쓰신다. 나는 실력파의 길로 가겠다. 주님, 들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크리스천과 직업>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14:8)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관점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해답은 명쾌하게 나올 것이다. (62)

훗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하나님께서는너는 너의 직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느냐? 얼마나 집을 샀느냐?” 묻지 않으신다. 대신너는 너의 직업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를 했느냐?” 물으실 것이다. 우리는 정말 사람에게라도 봉사하기 위하여 직업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67)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람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흘려 일하라. 사회는 하나의 교회로 일구어져 것이다. (69)

è     봉사의 목적을 잊지 마라. 나를 높이기 위함이 아니다.

<크리스천과 비전>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29:18)

묵시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비전이다.

방자히 어려워하거나 삼가는 없이 제멋대로 건방지게 구는 태도를 가리킨다.’

하루가 다르게 내일을 향하여 새로워지고 있는 사람

비전이 없는 사람이란, 시선이 눈앞에만 국한되어 있는 사람이다. (70-71)

야망은 욕망의 산물이다.

좀더 밝고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자기 계발은 없고, 오직 도구화된 인간의 욕망만이 존재한다. (73)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나의 비전을 이루려 한다면 그것은 100% 망상이요 야망이다.

하나님 자체를 우리의 비전으로 삼아야 한다. (75)

요셉이 어릴 꾸었던 꿈을 자신의 비전으로 삼았다는 말은 완전히 비성경적이다. (76)

<크리스천과 신앙>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1)

참신앙은 하나님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닐, 절대적인 그분의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이 변화되어 가는

자기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믿음이란 미신 (81)

사람이 죽을 못다 이룬 업적이나 실적을 두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후회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90)

<크리스천과 물질>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벌과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더니 (7:21)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물질은 반드시 생산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 물질이 생산적인 도구로 사용되는 물질은 사람을 타락시키지 않는다.

도박이 죄인 까닭은, 밤새도록 카드나 화투짝을 아무리 돌려도 거기에는 생산이 전혀 없고 오직 소모만 있기 때문이다. (97)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에게 원하는 돈이 오지 않는다면, 자신이 바른 목적으로 돈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일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주머니에 있는 모든 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므로 당연히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위해 사용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98)

<크리스천과 애국> 나의 형제 굴욕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다 (9:3)

애국 애족과 무관한 크리스천은 존재할 수가 없다.

크리스천이란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크리스천은 언제 어디에 있든지 항상 지금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101)

피레네 산맥을 사이에 두고 이쪽과 저쪽에서 의미가 달라지는 애국이라면 그것은 참다운 애국일 수가 없다. – 앙드레 지드 (103)

크리스천들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을 애국 애족의 시발점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104)

è     애국심 제로라고 주장하던 정윤. 내가 싫었던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우리 나라 사랑을 종착점으로 보는 태도. 크리스천의 애국심을 명쾌하게 정의내려주었다.

<크리스천과 역사>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예수라 (13:23)

구속사적 사관, 신본주의 사관, 역사를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란 관점에서 이해하는 (113)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구속 사관을 가질 때에만 정말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115)

<크리스천과 고난> 있는 자들은 들으라 하시니라 (13:9)

고난을 외면한 길가, 돌밭, 가시떨기는 여전히 모습 그대로 있을

마음이 먼저 깨어지고 부수어지고 으깨어져야 한다. (124)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방치해 두시는 경우이다. 그보다 무서운 심판은 없다. 결과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의 파멸이기 때문이다. (126)

타인을 위해 산다는 것은 자기 확장 의미하기 때문이다. (129)

è     돕는다는 것은 생활과 사고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다.

<크리스천과 부활> 어찌하여 자를 죽는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24:25, 26)

청년들이여, 지금 그대를 스쳐 지나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그대의 일생이 된다. 아무런 의미 없이 영원히 죽어지는 인생이 것인가, 아니면 부활의 주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인생이 것인가? 그대가 지혜로운 자라면, 무엇이 바른 해답인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143)

<크리스천과 >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6:9)

“You give God first place ihn your life.”

하나님께 삶의 최우선 순위를 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145)

사탄이 사람을 유혹할 즐겨 쓰는 가지 문장

번만이야, 번도 아니고 한번이라니까!’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해도 . 마지막으로 번만 하는 거야!’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그래? , 보라구! 그렇게들 하고 있잖아!” (147)

실패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게으르거나 방종해도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최선을 다한 뒤에 주어지는 결과에 대하여 자유한다는 말이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을 있는 재료를 공급해 주셨다는 말이 전혀 없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명령만 하셨다. 그럼에도 노아는 방주를 완성했다. 그러니 노아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겠는가? 만약 순간이라도 한눈을 팔았다면 방주의 완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오직 일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던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말이다. (149)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바라는 욕구를 지니고 있기에, 욕구에 부응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음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곤 한다. (150)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10:36) (153)

<크리스천과 용기>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1:9)

오늘의 시대는 투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늘 시대는 진실한 신자를 요구한다. 진실한 신자만이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용기있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다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런 용기의 사람을 통하여 땅의 역사를 바꾸어 가신다. (167)

<크리스천과 효도>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어떻게 하실 것을 내가 알기까지 나의 부모로 나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삼상22:3)

자식에게 부모란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땅의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어떤 경우든지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무조건하는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 (169-170)

<크리스천과 선택> 그러나 가지만 하든지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10:42)

사람이 바른 선택을 하려면, 선택하려는 하나만을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제외되는 나머지를 살펴야 한다.” – 앙드레 지드 (180)

특수한 상황 속에서 성경의 어떤 인물의 자신의 본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사람의 자체를 선택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된다. (182)

è     성경의 인물 중에 누구도 평탄한 삶을 살았던 자는 사람도 없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나님께 울부 짖으며 주님의 축복을 받는다.

마리아가 자기 수준에서 주님을 위해 선택한 것을 비판하지 말고 존중해 주라는 것이다. 주님을 위한 선택인 이상 역시 옳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엇이든 주님을 위해 선택하는 사람만, 다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 역시 주님을 위한 선택으로 존중해 수가 있다. (185)

<크리스천과 경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4:7)

<크리스천과 은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것이니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15:10)

<크리스천과 영감>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 (왕하2:9)

< 역사의 막은 언제 오르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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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로렌 커닝햄.제니스 로저스 지음, 예수전도단 옮김 / 예수전도단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이 책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음성을 어두운 길의 램프처럼 여기면서 한 걸음씩 살아가는 로렌
커닝햄과 제니스 로저스가 공저한 살아있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부제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이다. 그렇지만 방법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story
telling으로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서길 원하는 책이다. 이들도 그렇게
했는데, 나도 안 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라는 동기 부여가 된다. 물론 마지막에
부록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12가지 요점’을 짧게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술술 읽어서 본인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안내 지도의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자, 저자는 말한다. 하나님은 믿지만 그분의 일하심은 믿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최대 문제를 해결하자고. 믿지 못함은 왜 그러한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적도 없고, 설사 보거나
듣더라도 그것이 본인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직접’ 경험하라고. 주님의
음성을 경험하고, 그 빛을 따라 사는 인생이 얼마나 감사하고 찬란한지 그의 전
인생을 통 털어서 설득하고 있다. 느껴보자. 그의 이야기를.



처음에는 부럽다고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들을 보면.
(이러한 약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
인도함 받은 사실을 말하지 말 것도 조언해주고 있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피곤할 것만 같았다. 이유는?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잘못된 오해,
사탄이 만들어 놓은 교묘한 덫 - ‘하나님께서 내가 하기 싫어하시는 것만
강요하실 것 같아. 분명 나는 원하지 않는 긍정적인 것만 말씀해주실 거야. 분명
또 내가 참으라고 하실 거야. 등등’ - 이런 두려움 때문에 피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일침이 가해졌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않는 것이 그렇게
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잘 생각해보자. 나의 정체성은 지금 어디일까?
표면적으로는 모태신앙으로 시작한 평범한, 어쩌면 약간 신실하게 보일 수도
있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속 사람에게 물어보자. Where are you?
숨이 턱 막히는 목마름, 갈증이 온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말씀으로만 살 수
있는 영이 지금 힘들어 하고 있다. 주님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고백하지만
아버지와의 교제와 대화가 단절된 그런 나의 속 사람이 보인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엄청 인생을 힘겹게 살고 있는 것이군. 요즘 들어 어렴풋하게, 마치
추운 겨울에 안경을 끼고 실내에 들어가서 렌즈에 성에가 찼다가 시간이 흐르며
점점 밝아오듯이, 그러한 정도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것에 대해 자신감이랄까
하는 것이 보이고 있다. 이런 것을 얻어가고 있다. 무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인생의 흐름을
타보자, 즐겨보자! 뭐랄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모르고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하고 쉬운 일이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알 수 없는, 끝없는 행복과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이 전부라고 아는 사람들의 끝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부분으로 바라볼 수 있고,
나의 시민권이 있는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기대할 수 있기에, 희망을 가지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너무나도 정말 심각하게
나약한지라, 매일같이 하나님을 묵상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소리에 나의 모든 것이 묻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그러하듯이.

하나님은 정말 친절하신 분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이 아니라 하늘 나라에
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특별한 탤런트와 사명을 갖고 이
땅에 살고 있다. 솔직히 시민권을 땄지만, 나는 입국 전이다. 그러나 입국하게
되는 그 날까지 미리 지켜 주시고, 또 하나하나씩 인도해주신다. 이 세상 그
어느 대사관에서도 이런 특별한 서비스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교만하고 급하고 무지한 ‘나의 작음’ 때문이다. 여권, 비자 모두 주시고
더불어 내가 원하는 만큼 이 위대한 나라에 다른 사람들을 초청할 수 있는
권리도 주셨다. 그 뿐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초청할 때마다 보너스가 팍팍
쌓이고, 사교적이지 못하고 지엽적인 나에게 방법과 비용을 모두 안내해주신다.
그런데?!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서라면 은행 계좌를 채우고, 각종 증명 서류도
군말 없이 제출하는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전 준비과정에는 관심도
없다. 초청은 커녕 예비 시민권자들을 위한 각종 복지와 혜택, 뉴스에도
무감각하다. 아,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인가? 바로 이 때, 이 참 기쁨과 행복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던 로렌과 제니스가 조근조근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와 봐, 이 안에서, 하나님의 바다 같은 사랑 안에서 수영해봐!”

아, 정말 그들이 시원해 보인다. 그런데 나 아직 수영 못 하는 것 같은데? 어랏?
튜브도 준비되어 있다. 한 발씩 담가본다. 발목에 닿는 시원한 물을 느끼며 한
발 더 나아간다. 큰 품으로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들어간다. 평온하다.



   
  <기억에 남는 구절들>



바로 예수님은 이 땅에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금식하고 기도하며
광야에 계셨다. (100)

전화를 끊은 후에 나는 내 침대 옆 녹색 카펫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다.
기도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다. 나는 그 이유를 미처 다 깨닫지
못했지만, 이렇게 따로 떨어져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일하는 것만큼
중요했다. ‘우선 순위’ (103)

나는 갑자기 나와 내 자신의 생각을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며 낭비한 그 모든
시간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104)

“얘야,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너를 사용하실 수 없단다.”

만일 우리가 정결한 마음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좀 더 분명히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회개와 고백은 지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105)

성장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자신들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스스로 듣고
순종하며,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109)

청년들이 그들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몸을 다해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배우게 될 것이다. 자신들이 가르치는 바를 모소 행하면서 살아가는 귀한
선생님들로부터 배우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112)

이 학교는 지식으로 머릿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키우고, 그분의 성품에 대해 배우고, 주님과
하나 되려 하고, 우리도 서로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22)

영혼 깊숙이 치료받는 변화를 체험한 이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있어서
더 깊은 차원으로 나아가려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철저하게 정직한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생활을 살펴볼 때 내가 정결케 되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하나님의 능력이 풀려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결케 하는 그 시간들은 나를 자유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탄은 더 이상 나를
누를 어떤 비밀스러운 죄나 원망하는 마음을 찾아낼 수가 없다. (123)

각 사람이 홀로 하나님께 조용히 나가 고백할 수도 있었다. 사실 구원이
가져오는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죄에 대한 고백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하는 고백은 겸손과 일치를 가져오고, 고백한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과 감정과
몸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준비가 되게 한다. 고백은 영혼을 밝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대로 자신의 죄를 고백할 권리가 있다.
(약 5:16, 요일1장, 그리고 삼하 11장, 12장에서의 다윗과 같이). (124-125)

예언과 마찬가지로 인도하심이 타당성이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하는 것이다. (126)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주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우리를 승리로 인도하실 것이지만 성공 그 자체는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는 데 있어서 가장 위험스런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130)

6일 동안 배를 소유하게 될 것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하나님께
우선권을 두지 못했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던 것에 대해 고백하고
회개했다. 죄를 고백하는 날이 거듭 되었다. (152)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앞에 우리를 던지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53)

예수께서 나사로를 ‘고치지 않기’로 결정한 그 부분인데요. 그분은 친구가
죽을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리고는 그를 ‘부활’시켰어요. 이 경우에 부활은
고쳐주시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어요.

죽음을 선택할 때 우리의 ‘명성’도 함께 죽는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이 죽도록 허락하심으로 말미암아 친히 부활시키셔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릴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이다. (154-155)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는 세 가지 단계를 따랐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권세로 사탄에게 잠잠하도록 명령하고, 두 번째는 상상이나 이미 갖고 있던
생각들로부터 마음을 깨끗게 해주시도록 주님께 구하고, 세 번째는 하나님이
택하신 때와 방법으로 말씀하실 것을 믿으며 기다렸다. (160)

나의 부르심은 분명한 것이었다. 복음의 양면성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172)

끈질김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켰던 때를 기억했다. (178)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이 꼭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를 따르기 위해 네가
지불해야 할 대가는 나를 따르지 않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보다는 훨씬 적은
것이다. (181)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큰 전환점이 올 때마다 이렇게 묻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191)

하나님의 인도는 아주 험난하고 극적인 것이어서 주님보다 일 자체에 영광을
돌리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193)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이 도구가 아니라 부르심에 있기를 원하신다. (206)

왜 젊은이들이 배의 갑판 사이로 기어들어가 깨끗이 청소하는가? 그들은
전도자이기 때문이다. (207)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까지는 다른 이에게 당신이 인도함 받은 것을 말하지 마라.

1.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당신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교만할 수 있다.

2. 아직 내가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말한다면 추측이다.

3.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놓치기 쉽다.

4.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눅 9:36,
전3:7, 막5:19)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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