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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피까지 흘러내릴 때 어김없이 "엄마~"를 찾으며 엉엉 울어버린 기억. 그 때 어딘가에서 달려온 엄마가 두 팔을 활짝 벌려 품에 안고 "우리 딸, 어디 보자. 괜찮니? 호호호~" 엄마의 그 따뜻한 가슴이 좋아서, 엄마의 그 따뜻한 입김이 좋아서, 웃어야만 하는데 우리는 "엉엉엉~~" 더 더 서럽게 울며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렸던 바로 그런 기억 말이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들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이 차츰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면서, 이제 그 기억은 흐려지게 된다. 외려 '우리밀'이라고 해서 사온 밀가루가 알고 보니 '천연 세제'였고, 그걸로 부친 전을 온 식구가 먹어야 하는 수난을 겪게 할 만큼 복잡하고 다난한 세상에서 이제는 점점 아이로 변해가는 엄마를 보며 이제는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시절이 오고 있구나...라는 생각마저 갖게 하는 시절.
나는 이 책을 올 들어 두 번 읽었다. 100권의 목록에서 한권으로 칠 지, 두 권으로 칠 지 고민하다가 두 권으로 치기로 했다. 그 전에는 독서일기를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불과 몇 달 만에 다시 읽었어도 여전히 새롭고 또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더 이상 엄마의 품을, 엄마의 '호호호'를 기대하기 어려워진 시절, 내게는 바로 엄마의 품 같고 엄마의 입김 같은 그런 책이었다고나 할까.
실제로 이 책은 작가 공지영이 자신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겠지만,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 겨냥할 때보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인 딸에게 향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선 지 책 속에서 애틋함과 진정성이 물씬 풍겨나온다. 그리고 그건 아마, 그녀가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유명작가이기에 앞서, 한 여성으로서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 그러니까 세상의 잣대로 치면 결혼과 이혼을 번복하며 세상 사람들의 수많은 질타를 받아야만 했던 실패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비난하고, 또 너무나 단순한 잣대로 사람들을 재단하곤 한다. 누구도 실패를 꿈꾸며 사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자주 우리 인생에서 실패는 자주 얼굴을 드러내고, 아무리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에 맞춰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자의건 타의건 그 기준을 벗어나게 될 때가 적지 않다는 걸, 우린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건 바로 지금의 실패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십여년 전, 한 여성으로서 가수 '백지영'과 '오현경'을 비난했다 - 물론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라는 사실은 차치해두고서라도- . 그녀들은 어쩌면 이 나라를 떠나 살 수 도 있었고, 이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녀들은 더욱 몸을 낮춘 채, 자신의 재능을 가꿔왔고 지금은 그래서 그 손가락질 했던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인 것 같다. 알고 보면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지나가버린 과거나 오지 않을 미래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묵묵히 현재를 걸어가는 것 속에 답이 있다고 말하는...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딸을 둔 엄마의 진심어린 격려는, 길가에 넘어져서 까진 무릎을 부여잡고 어찌할 지 모르고 있던 내게, 오래 전 잊고 있던 엄마의 품과 입김을 느끼게 해줬다. 어쩌면 평생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나약한 존재들인 지 모를 우리들에게 이 책은 두고 두고 읽어도 좋을 그런 책이 아닐런지...
아래는 책 속에 발견한 엄마 냄새가 나는 구절들이다.
- 가야할 것은 분명 가야 하지만 또 다른 한 편 와야할 것들도 분명히 온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자.
-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넌 스무 해를 살았니? 어쩌면 똑같은 일 년을 스무 번 산 것은 아니니?
- 엄마에게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은 아직도 서툴고 힘든 일. 가끔은 꿰매놓은 가슴살의 솔기가 통째로 뜯겨져 나가는 것만 같아. 그러나 그럴 때마다 생각해 본단다. 삶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아서 잠시 맴돌 수는 있지만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말이야. 흘러가는 것, 흘러가야 하는 것, 흐를 수밖에 없고 흐르기를 원하는 그것들을 흘러가게 내버려 둘 때, 그게 누구든, 설사 나 자신이라 해도 그 때 삶은 비로소 자유의 빛깔을 띠게 되지.
- 오늘도 가끔 창밖을 보고 있니? 그래 가끔 눈을 들어 창밖을 보고 이 날씨를 만끽해라. 왜냐하면 오늘이 너에게 주어진 전부의 시간이니까. 오늘만이 네 것이다. 어제에 관해 너는 모든 것을 알았다해도 하나도 고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것은 이미 너의 것은 아니고, 내일 또한 너의 그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그러니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이 네가 사는 삶의 전부. 그러니 온몸으로 그것을 살아라.
- 참 이상하지. 살면서 우리는 가끔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때가 있고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가 있어.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다면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지혜'를 얻는 일이 되겠지. 그런데 이 세상은 말이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때를 훨씬 더 많이 준다.
- 모든 창작은 필연적으로 고독을 연료로 한다.
- 누군가의 말대로 무거운 내 짐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내 날개가 되는 것이지.
- 운명에 대해 승리하는 법은 그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말을 말이야.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배가 파도를 넘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파도 자체를 부정하며 판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파도를 넘어 휘청대면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비유를 하면 좀 이해가 될까.
- 사랑은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게 아니란다. 사랑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아. 다만 사랑 속에 끼워져 있는 사랑 아닌 것들이 우리를 아프게 하지. 누군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너를 아프게 한다면 그건 결코 사랑이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