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맨발 ㅣ 창비시선 238
문태준 지음 / 창비 / 2004년 8월
평점 :
나는 거미줄처럼 얽힌 책읽기를 좋아한다. 그러니까 일단 읽은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책 속에서 소개된 책을 다시 찾아 읽어보는 것. 문태준이란 시인을 알게 된 것 역시, 바로 전에 읽은 공지영의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너를 응원할 것이다>를 통해서다.
98년에서 2000년까지, 스물 한 살에서 스물 세 살까지 시에 미쳐있던 시절에는 창비와 문지에서 나온 시집을 죄다 섭렵할 정도였는데... 어느 덧 시와는 담을 쌓고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괜찮은 시인도 이제야 알게 됐다.
그의 이력이 조금 의아스럽다. 시인이면서 불교방송의 피디다. 그런 그의 이력을 보면서 난 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타협해버렸다고만 생각해왔는데, 감춰둔 시에 대한 연정을 꺼내봐도 좋을 지 묻게 되는 밤이다.
그의 시는, 시집 제목처럼 거추장스러운 세상의 가식을 벗어버린 맨발과 같은 느낌이다. 나아가 그 맨발로 흙먼지 풀풀 날리는 그 옛날 우리들의 고향으로 돌아간 듯한 평안함을 준다.
찾아보니 이미 소월문학상, 미당문학상,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힐 만큼 꽤 명성을 쌓았다. 뭐 이런 상 나부래기며 명예 따위가 뭘 그리 중요하겠는가마는, 지적 허영으로 똘똘 뭉쳐있거나 경제며 문화까지 그저 미국적인 삶을 좇아가는 지금의 세태에서 우리 전통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인정해도 좋을 것 같다.
어물전 개조개 한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맨발' 중에서
당신과 나 사이/ 이곳의 어둠과 저 건너 마을의 어둠 사이에/ 큰 둥근 바퀴 같은 강이 흐릅니다 // 강 건너 마을에서 소가 웁니다 / 찬 강에 는개가 축축하게 젖도록 우는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 낮 동안 새끼를 이별했거나 잃어버린 사랑이 있었거나/ 목이 쉬도록 우느 소를 어찌할 수 없습니다 / 우는 소의 희고 둥근 눈망울을 잊을 수 없습니다 // 어리숙한 아에게도 어느 때는 당신 생각이 납니다
................................................................'저물어 가는 강마을에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