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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까지, 길의 끝까지 가고 싶었던 열망,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에서도, 흰등처럼 굽은 흙길에서도, 나는 늘 길 위에 서면 목말랐고, 초조했다.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비록 그 '세상의 끝'에서 내가 만나는 것이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집"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가고 싶었다.
나이 서른을 넘긴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도 소극적이고,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무모하게 덤비기보다는 성공 가능성을 미리 계산하고 결정하는 편이며, 매사에 까다롭고 냉정한 면도 많은 사람이다. 욕심을 버리고자 애를 쓰지만, 여전히 허영심 많은 속물이며,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세계여행조차 잃을 것이 두려워 떠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는 겁쟁이다.
그런 내가 '아름다운 여행을 하는, 용기있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중략> 나는 걷고 싶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봄으로써 내 존재의 깊이를 확인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길의 끝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나 자신을 보기 위해서였으며,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였는데, 어느 새 나는 나를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식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사는 게 바로 줄타기 같은 거 아니겠냐. 외줄 위에 서서 무섭다고 앞으로 안 나가고 버티면 결국엔 힘이 빠져 떨어지고 말잖아. 하지만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한 발씩 앞으로 디디면 떨어지지 않지. 균형을 잡기 위해 양팔을 벌려 혼자 힘으로 나갈 수도 있을테고, 장대 같은 것에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좋으 건 누군가 옆에서 잡아주고, 거기 의지해 나가는 거 아니겠냐?"
지친 몸과 마음으로 걷는 길. 아스팔트 위로 기어나온 여치를 피하려다 밟아 죽였다. 풀섶에 가만히 있지, 그 안에서 그냥 다른 여자들처럼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갈 것이지, 기어이 밖으로 나오다 밟혀 죽은 여치가 꼭 나 같아서 도로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길 위에서 울며 보낸 오후가 저문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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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2009년 서른 둘의 한 해를 돌아다본다. 어떻게 살았을까. 뭘 계획했고, 뭘 실천했나. 2009년엔 꼭 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었다. 책 100권 읽기, 장기여행, 그리고 나와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 굵직굵직한 계획이었지만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었다. 결론은 세 가지 모두 실패.
끼워맞추기 식으로나마 3일간의 짧은 일본 여행, 100권 읽기 중 마흔 여권의 책 읽기... 그게 성과 라면 성과랄까. 말장난 같지만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로 위로해본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얻은 게 참 많다.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 등극이 말해줄 정도로 참 책은 원없이 사봤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버는 돈은 다 책에다 갖다 바쳤다.
다 못읽고 쌓아두고 집적거린 책하며, 프로그램 때문에 읽게 된 온갖 잡다한 책들이나 논문 - 역사, 정치, 북한, 자전거, 지렁이 - 을 포함하면 사실 100권은 족히 될테지만 끝장을 보지 못한 건 안쳐주기로 했다. 어쨌든 책과 찐하게 연애한 대가로 도보여행가 김남희 씨를 만나 2009년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일과 사람 못만나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나와 같은 나이인 서른 둘에 터키대사관을 그만 두고 국토종주를 시작해, 지금은 세계여행을 하고 당당히 여행작가가 된 사람. 그렇고 그런 여행기들이 세상에 넘쳐나는 데도 그녀의 글이 빛났던 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따스함과 자신의 안팎을 드러낸 진실함...
까칠하고 소심하고 겁많기라면 나 역시 그녀에 못지 않을 테다. 맥가이버 칼을 쥐고 국토종주를 떠난 김남희씨의 이야기에 나도 힘을 내보고 싶어졌다. 서른 셋, 아직 어떻게 살아야할 지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해가 가고 나이가 한살 바뀌는 데도 무더져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실천할 수 있는 세가지 계획만 세워봐야겠다.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괜찮다고 말해준 남희언니께 무한한 감사를~ 더불어 책에 발췌된 고은 선생님의 시가 당신들에게도 힘이 될 수 있기를~ ^^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 고은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