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
김남희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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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까지, 길의 끝까지 가고 싶었던 열망,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에서도, 흰등처럼 굽은 흙길에서도, 나는 늘 길 위에 서면 목말랐고, 초조했다.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비록 그 '세상의 끝'에서 내가 만나는 것이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된 집"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가고 싶었다. 

나이 서른을 넘긴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도 소극적이고,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무모하게 덤비기보다는 성공 가능성을 미리 계산하고 결정하는 편이며, 매사에 까다롭고 냉정한 면도 많은 사람이다. 욕심을 버리고자 애를 쓰지만, 여전히 허영심 많은 속물이며,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세계여행조차 잃을 것이 두려워 떠나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는 겁쟁이다.    

그런 내가 '아름다운 여행을 하는, 용기있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중략> 나는 걷고 싶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만큼 걸어봄으로써 내 존재의 깊이를 확인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길의 끝까지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그저 나 자신을 보기 위해서였으며,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였는데, 어느 새 나는 나를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식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었다.  

"사는 게 바로 줄타기 같은 거 아니겠냐. 외줄 위에 서서 무섭다고 앞으로 안 나가고 버티면 결국엔 힘이 빠져 떨어지고 말잖아. 하지만 위태위태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한 발씩 앞으로 디디면 떨어지지 않지. 균형을 잡기 위해 양팔을 벌려 혼자 힘으로 나갈 수도 있을테고, 장대 같은 것에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좋으 건 누군가 옆에서 잡아주고, 거기 의지해 나가는 거 아니겠냐?" 

지친 몸과 마음으로 걷는 길. 아스팔트 위로 기어나온 여치를 피하려다 밟아 죽였다. 풀섶에 가만히 있지, 그 안에서 그냥 다른 여자들처럼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갈 것이지, 기어이 밖으로 나오다 밟혀 죽은 여치가 꼭 나 같아서 도로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길 위에서 울며 보낸 오후가 저문다.  

 ....................................................................'본문' 중에서  

 

 
   

뒤늦게 2009년 서른 둘의 한 해를 돌아다본다. 어떻게 살았을까. 뭘 계획했고, 뭘 실천했나. 2009년엔 꼭 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었다. 책 100권 읽기, 장기여행, 그리고 나와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일.  굵직굵직한 계획이었지만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었다. 결론은 세 가지 모두 실패.  

끼워맞추기 식으로나마 3일간의 짧은 일본 여행, 100권 읽기 중 마흔 여권의 책 읽기... 그게 성과 라면 성과랄까. 말장난 같지만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로 위로해본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얻은 게 참 많다. 알라딘 플래티넘 회원 등극이 말해줄 정도로 참 책은 원없이 사봤다. 거짓말 조금 보태면 버는 돈은 다 책에다 갖다 바쳤다.  

다 못읽고 쌓아두고 집적거린 책하며, 프로그램 때문에 읽게 된 온갖 잡다한 책들이나 논문 - 역사, 정치, 북한, 자전거, 지렁이 - 을 포함하면 사실 100권은 족히 될테지만 끝장을 보지 못한 건 안쳐주기로 했다. 어쨌든 책과 찐하게 연애한 대가로 도보여행가 김남희 씨를 만나 2009년 해도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일과 사람 못만나는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나와 같은 나이인 서른 둘에 터키대사관을 그만 두고 국토종주를 시작해, 지금은 세계여행을 하고 당당히 여행작가가 된 사람. 그렇고 그런 여행기들이 세상에 넘쳐나는 데도 그녀의 글이 빛났던 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세상 모든 것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따스함과 자신의 안팎을 드러낸 진실함...   

까칠하고 소심하고 겁많기라면 나 역시 그녀에 못지 않을 테다. 맥가이버 칼을 쥐고 국토종주를 떠난 김남희씨의 이야기에 나도 힘을 내보고 싶어졌다. 서른 셋, 아직 어떻게 살아야할 지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해가 가고 나이가 한살 바뀌는 데도 무더져있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실천할 수 있는 세가지 계획만 세워봐야겠다.  

오랫동안 멍하니 서 있었던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괜찮다고 말해준 남희언니께 무한한 감사를~ 더불어 책에 발췌된 고은 선생님의 시가 당신들에게도 힘이 될 수 있기를~ ^^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희망이다  

- 고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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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봉투에서 빠져나오는 방법 제프리 브라운 고양이 시리즈
제프리 브라운 지음, 사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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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득키득. 책장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정말로 키득키득 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그림을 아주 특별하게 잘 그렸다거나 특색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할 정도로 에피소드를 잘 잡아냈고 고양이의 움직임이나 특징을 잘 그려낸 것 같다.  

 

'울지마요'라는 한 에피소드. 아마도 고양이를 키우면서 이런 경험 누구나 있을 거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고양이가 그 까끌한 혓바닥으로 닦아준 그런 경험 말이다. 기특하고 대견한 한편, 감동받아서 더 펑펑 울고 말았던 순간이 떠올라 웃고 만다. 이렇게 자신의 고양이와 쌓은 소소한 추억을 확인할 수 있는 따뜻한 만화라는 생각이다. 만약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이 본다면, 한번쯤 고양이의 매력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질...    

 참고로 여기는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볼 수 있는 홈페지. http://www.topshelfcomix.com/   

고양이 애호가로서 고양이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예술작품들의 등장을 실로 환영하는 바이다. 그 중 단연  눈에 띄었던 작품은 '초속 5CM'의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의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이었다. 다소 감정과잉형의 '초속 5CM'와는 달리, 고양이 엄마와 고양이의 두 가지 시선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잘 담아낸 수작이다.  나도 우리 네코를 소재로 뭔가를 좀 글적거려봐야겠다. 나름 방송작가 엄마를 둔 아들 녀석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되기를 바라면서... 그나저나 귀차니즘, 혹은 현실에 저당잡힌 인생이 좀 끝나야 우리 네코도 그런 호사를 누려볼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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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
캐티 벤트 그림, 로베르트 발저 글, 조국현 옮김 / 한길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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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받은 책이다. 내가 동화를 좋아한다거나 동화를 쓰고 싶어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건네받은 책이라서 그런 지 더욱 특별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냄새를 풍기는 이 책의 저자 로베르트 발저는 카프카, 헤세로부터 극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한 작가였다고 한다. 우울과 몽상에 시달리던 그는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글도 쓰지 않고 보냈다고 하는데, 그가 정말 미치광이였을 지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였을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마치 책 속 주인공인 빙겔리씨가 문제일 지, 아니면 그를 능멸하는 사람들이 문제일 지처럼 말이다.   

캐티 벤트 - 볼로냐 국제아동도시전시회가 무슨 대회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거기서 그래픽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따뜻한 그림과 발저의 글이 어우러져 멋진 합주를 이뤄내는 것만 같다. 아쉬운 점은 사족처럼 느껴지는 맨 마지막 장인데, 만약 그 한 장이 없었더라면 더욱 수작이 됐을 작품이다. 

쨌거나 책장에 꽂아놓고 두고두고 꺼내볼 만한 소장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헌데 이 책이 초등입학 전 유아 대상으로 소개돼있는데 이제 일곱살이 되는 조카에게 선물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 조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선물해주면 꽤 멋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 근데 그 때까지 이 멋진 생각을 기억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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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송이가 있었습니다 베틀북 그림책 72
크베타 파코브스카 그림, 사이드 글, 이용숙 옮김 / 베틀북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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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어떤 할아버지가 ‘꽃’을 보았고, ‘꽃’은 너무나 힘들고 지친 나머지, 색깔을 찾아 나섰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자신의 마음을 열어서 할아버지의 마음속에 피어난 수많은 아름다운 꽃들을 보여줍니다. ‘꽃’은 할아버지의 마음속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무지개나비를 만나지 못해서 ‘꽃’은 색이 없었습니다. ‘꽃’은 우울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해바라기가 말을 건넸습니다.

“네 빛깔은 기막히게 아름답구나!”
“내 빛깔이라고?”
“그래, 넌 네 빛깔이 마음에 안 드니?”
꽃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해바라기가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 빛깔을 서로 바꿀래?”
꽃은 도리질을 하며 더듬더듬 대답했습니다.
“난 내 빛깔이 더 좋아!”
 

                                                    - <본문> 중에서 
  

 
   

크베타 파코브스카가 '색채와 형태의 마술사'라는 얘기만 듣고 덜컥 집어든 책이다. 예상보다 꽤 커다란 책이 집으로 배달돼왔고, 각 페이지마다 강렬한 이미지들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알록달록, 형형색색의 색깔들은 그 옛날 작고 둥그런 철통 안에 든 과일향 사탕을 꺼내먹는 것 같은 달콤함을 선사했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천재화가라는 파코브스카의 명성 때문인지 이란 출신 동화작가 사이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빛깔 없는 꽃의 자신의 색깔 찾기'라는 내용 역시 참 마음에 들었다.   

사이드의 글과 파코브스카의 그림이 어우러져 꽃의 여행에 동참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아쉬운 점은 글자 크기가 압도당할 만큼 크다는 것인데, 그림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것 같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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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발달 문학과지성 시인선 350
문태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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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시렁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문태준, '百年' 전문  

 
 
   




목울대가 뜨겁게 달아오르더니  기어이 마지막 문장처럼 눈물이 났다. 문태준이란 시인을 참 뒤늦게 알게 됐는데, 이 사람 참 대단하다. 자기 맘대로 사람을 웃고 울린다.  

유행처럼 번진 산문형 시가 아닌 것도 마음에 들고 - 시는 운문일 때 좀 시답지 않나 싶은 나만의 생각이다 - , 우리말과 고유의 정서를 잘 담아낸 것도 참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시인이라고, 작가라고, 소위 지적허영에 빠져 뜻도 알 수 없을 만큼 온갖 잘난 척을 시 속에 담아둔 치기들과 달리, 간결함 속에 강렬함을 담아낼 줄 아는 지혜가 빛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살아보니 깨달은 건 단순함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이요, 쓰다보니 깨달은 건 소박한 음식이 몸에 좋은 것처럼 꾸미지 않은 글이 좋은 글이라는 것.  

진달래꽃이라는 명시가 탄생하기까지 김소월은 3년 동안 퇴고를 반복했다는데, 문태준도 이 한 줄 한 줄, 단어 하나 하나를 두고 얼마나 고심했을 지가 선하다. 상이 무슨 그리 대수랴만은 2006년에 소월시문학상을 수상한 문태준, 그가 현대판 김소월로 오래 오래 남아주길 바란다. 

위의 시가 나를 울렸다면, 마치 억새로 코끝을 간질이는 것 같아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온 시도 한 편 소개하련다.   


   
 
들키지 않도록 살금살금
아무도 없는 부뚜막에서
장독대 낮은 항아리 곁에서
쪼그리고 앉아
토란잎에 춤추는 이슬처럼
생글생글 웃는 아이 

비밀을 갖고 가
저 곳서
혼자 조금씩 자꾸 웃는 아이 

언제였던가, 

간질간질하던 때가
고백을 하고 막 돌아서던 때가
소녀처럼,
샛말간 얼굴로 저 곳서 나를 바라보던 생의 순간은

...................................문태준, '조금씩 자꾸 웃는 아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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