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 어른을 위한 동화 2
안도현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부터였을까?

'연어'를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거꾸로 강을 거슬러 흐르는 대양의 물고기보다,

양상치에 매콤한 소스와 함께 싸먹으면 사르르 녹는 연어 샐러드로 기억하게 된 것은...

 

이 서글픈 현실 앞에서 만난 시인의 동화를

꿀단지 모시듯 두고 조금씩 자주 꺼내 먹었더랬다.

 

연어의 눈물겨운 회귀에 대해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다와 속삭이는 대화, 그들 가운데 갈등과 번민,

그리고 그 속에서 피는 사랑...

 

시인의 상상력은,

그간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는

소중한 나침반이 되었다.

 

 

 

보고 싶다, 라는 말보다 더 간절한 말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은빛연어는 생각한다.

 

.....

 

그리움, 이라고 일컫기엔 너무나 크고, 기다림, 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넓은 이 보고 싶음. 삶이란 게 견딜 수 없는 것이면서 또한 견뎌내야 하는 거래지만, 이 끝없는 보고 싶음 앞에서는 삶도 무엇도 속수무책일 뿐이다.

 

 

<중략>

 

“별이 빛나는 것은 어둠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죠?”

“그렇지”

“그리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땅이 배경이 되어주기 때문이고요?”

“그렇지”

 

 

<중략>

 

 

“사무친다는 게 뭐지”

“아마 내가 너의 가슴 속에 맺히고 싶다는 뜻일 거야”

“무엇으로 맺힌다는 거지?”

“흔적...... 지워지지 않는 흔적.”

 

 

<중략>

 

겨울이 오면 강은 강물이 얼지 않도록 얼음장으로 만든 이불을 덮을 것이다. 강은 그 이불을 겨우내 걷지 않고 연어 알을 제 가슴 속에다 키울 것이다. 가끔 초록강의 푸른 얼음장을 보고 누군가 지나가다가 돌을 던지기도 할 것이고, 그때마다 강은 쩡쩡 소리내어 울 것이다.

봄이 올 때까지는 조심하라고, 가슴 깊은 곳에서 어린 연어가 자라고 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란히, 물고기, 고양이
조앤 그랜트 지음, 조경란 옮김, 닐 커티스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고양이와 물고기 -   

먹고 먹힐 수 잔인한 관계만을 떠올렸던 나는

이 동화를 읽고 세게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우정이 되었건 사랑이 되었던

늘 대하기 편하고  

늘 나와 닮은 사람만을 찾았던   

내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했던 고마운 책. 

 

흑백으로 이뤄진 판화그림과  

글씨는 꼭 직선으로만 배열해야 한다는 고정과념을 깨뜨린 편집도  압권이다.  
   

 

다시 사랑하게 된다면,

바다와 땅이 맞닿는 곳에 함께 살았던 

이들처럼 함께 있기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보집권플랜 - 오연호가 묻고 조국이 답하다
조국.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국, 오연호 두 남자의 만남. 투샷은 충분히 멋졌다. 한국사회의 병폐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그들의 대화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에 충분했다. 경제, 정치, 교육, 남북관계, 검찰 개혁,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딱딱한 책을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며 한시도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모두가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시기에,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허무맹랑한 희망이 아닌, 함께 계획을 세워보자는 구체적인 플랜 말이다.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리기 힘든 이 엄혹한 시절, 그들의 말잔치는 목마른 민중들을 적시는 단비와도 같았다. 독자와 함께 쓴다는 2탄을 또다시 기대해본다.  

 

   
 

 

그는 두 발로 걸어나가기 위해서 검찰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이명박 정권과 검찰은 그가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도록 '토끼몰이'를 했죠. 노무현은 한국 역사에서 검찰을 정권 유지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은 최초의 대통령이었어요.  

 

이명박 정권 후반이 되면 검찰 상층부는 유력 대선주자에게 줄을 서려고 할 겁니다. 그리고 현재 중수부 캐비닛에는 이명박 대통령 측근의 비리에 대한 정보가 쌓여 있을 거고요. 한나라당 친이계로 권력이 넘어간다면 그 정보는 쓰지 않겠죠. 

 

꿈을 꾸는 데만 그친다면 무능한 것이겠죠. 그러니 그 '꿈'을 다른 사람과 같이 꾸면서 현실화해내야죠. 진보, 개혁 진영이 다시 집권한다면 집권 초기에 무엇을 해치울 것인지, 어떠한 '제도적 말뚝'을 박을 것인지 아주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해야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름 오르다 - 이성복 사진에세이
이성복 글, 고남수 사진 / 현대문학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인이 제주의 오름을 찍은 흑백사진 한 장을 보면서 어디까지 사유의 두레박을 넣어 생각을 길어올리는지, 그렇게 길어올린 생각의 덩어리들을 어떻게 빚어서 글로 만들어내는지... 도공으로 치자면 어디서부터 고운 흙을 얻어서 어떻게 주물거리고 또 어떻게 도자기를 빚는지 그 과정을 여과없이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결국 좋은 글이란 깊은 사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시인은 결국 시인이면서 또 철학자일 수밖에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한 책. 그 자신이 언어의 한계를 지적했지만 -언어로 대상을 파악하겠다는 것은 부엌칼로 박테리아를 해부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십년 간 그 치열한 한계와의 싸움을 통해 대가가 되었을 그가 빚어낸, 언어의 한계를 단숨에 무너뜨려버리는 글귀 앞에서 오래 오래 한 페이지에 머무르게 하는 그런 책이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원추형 모기장처럼 작은 오름들을 둘러싸고 있는 큰 산의 희미한 윤곽은 돌아가시기 얼마 전 장모님이 사놓으셨던 피라미드 구조물을 생각나게 한다. 덮개도 없이 알미늄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그것은 좋은 기운을 빨아들이고 나쁜 기운은 몰아낸다는 특수한 장치로, 그 속에서 누워 자면 만병이 낫는다는 것이었다. 마지막 몇 개월을 병원에서 지내셨으니, 장모님이 그것을 얼마나 사용하셨는지 모르겠다. 상을 치른 뒤 분해한 알미늄 파이프를 비닐끈으로 묶으면서 그 속에 미이라처럼 누워 계셨을 장모님을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신비도 그러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사라지지 않는 신비란 없었다. 어떤 신비도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만 신비였으며, 믿음이 끝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사라진 신비가 다시 나타나지 않는 법은 없었다. 아무리 쫓아도 밥상 위로 돌아오는 파리떼처럼 신비는 다른 사람, 다른 물건에 다시 깃들었다 

속되게 말하자면 언어로 대상을 파악하겠다는 것은 부엌칼로 박테리아를 해부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껏해야 언어는 풀잎이 풀잎닾다거나 갈대가 갈대답다는 동어반복으로써 대상 앞에서의 무력감을 표현할 뿐이다. 그 무력감의 고백이야말로 언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며, 그 겸허한 결단에 의해 대상은 관념과 이미지로 이루어진 언어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런 점에서 언어의 자기부정을 통해 사물의 본성을 드러내는 시 또한 '살신성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세상의 무덤들이 삶의 죽음이며 동시에 죽음의 삶이듯이, 하늘의 별과 사막의 우물, 공중의 방패연과 물 위의 방주도 서로 다른 것이 아니리라. 광막한 세상에서 외눈 주사위처럼 내던져진 그것들은 언제, 무슨 까닭으로 던져졌는지, 언제까지 유형의 세월이 계속될 지 알지 못하니, 검은 삼나무들의 흉흉한 장벽으로 둘러쳐진 이곳이야말로 천혜의 도형지가 아니겠는가. 날은 어두워졌는데 오름의 눈 덮인 밤은 더디기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뿌리에게 창비시선 95
나희덕 지음 / 창비 / 199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시집을 다시 손에 쥐면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희덕을 너무 늦게 알았다는 것이다. 소월시 문학상에서 만난 그녀의 시들은 나를 통째 흔들어놓았고 나는 그녀의 처음이 몹시도 궁금했다.  

19년 전에 처음으로 쓰여진 '뿌리에게'라는 처녀시집 역시 기대를 빗겨가지 않았다. 후문에 '산 만큼 쓴다는 말 앞에 스물여섯 해의 삶이라고 내놓기에는 너무나 어설픈 시집'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제는 그녀보다 무려 일곱 살이나 더 살아버린 나로서는 그녀가 정말이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스물  여섯 해 밖에 살지 않고도 수많은 생명을 품고 있는 대지같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처럼 우주를 통째로 껴안고 있는 시인의 넓은 가슴에 머리를 조아릴 수 밖에 없게 시집.  

살아숨쉬는 모든 것들의 절망과 어두움에까지도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줄 것만 같은 시집.   

늦게라도 그녀를 만나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   

 

   
 

              11월 

 

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