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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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된 사랑, 이야기일 거라고 쉽게 넘겨 짚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잠시나마 그런 생각을 한 데 대해 작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세간의 화제가 된 나이를 초월한 사랑이나 적나라한 성애 묘사로 이 책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달을 가르키는데 손가락 끝만 본' 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은교>는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육신의 세포들이 서서히 주검으로 변해가는 인생의 끝자락에 선 한 남자의 삶에 대한 마지막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한 십대 소녀와 제자 간의 얽히고 섥힌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 절정을 확인하고 떠나는 한 시인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 애절하고 격렬하기까지 하다.

 

'이적요' 시인이 살아낸 지금의 십 대가 경험하지 못한 질곡의 현대사를 관통해온, 어쩌면 문단의 부조리와 문학의 속절없음으로 인해 한동안 절필을 선언했을 지도 모를, 노작가의 삶의 내공과 중간중간 삽입된 짤막한 인용 글귀들이 읽는 맛을 더한다. 그래서일까. 작가가 스스로를 미쳤다고 말하며 한 달반만에 써내려간 책을, 버스간에서 하루 반나절 만에 단숨에 읽어내려갔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앞에서 사랑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짜릿한 흔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은교>의 책 표지에 작가는 '은교는 불멸의 표상이다'라고 적고 있다. 

 

한동안 무기력증에 빠졌던 내 어깨 위에, 은교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잠시 내려앉아 생의 욕망을 일깨워주고 떠난 한 마리 새로 기억될 것 같다.  

 

 

p 61.

바타유는 “에로티즘, 그것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썼다. 에로티즘을 통해, 창조적 본능과 죽음을 향한 파멸적 본능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촌철살인의 잠언이었다.

p 194.

"죽음은 삶의 한 가지 에피소드처럼, 끝내 멈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다는 인식에, 나는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갔다“라고 톨스토이는 썼다. 나는 친애하는 톨스토이에게 기꺼이 동의했다. 멸망은 필연이다. 받아들여 그것을 친구로 삼는다면 최상의 죽음을 얻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또한 내 육체가 최종적인 해체와 멸망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만약 은교를 만나지 않았다면 죽음을 순조롭게 받아들이기 위한 나의 노력은 좀더 깊은 진전을 이루었을지 몰랐다. 아니다. 그 반대가 되지 않았다고 어떻게 단언하겠는가. 단언하거니와, 은교가 내 죽음의 열차를 더 빠르게 달려가도록 내몬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말하는 게 옳다. 은교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이다.

 

p 205.

두 사람만의 상점에서 서로 만나서

두 사람만의 술을 우리들은 마신다

너는 조금 나는 많이

늘 마시는 술을 마시면서

낮에 있었던 이야기며 일의 이야기

남의 소문이며 내일의 스케줄을

그리고 갑자기 어둠 속에서의 입맞춤

- 이와다 히로시, <미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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