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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216
황인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평점 :
사랑하다 헤어져본 사람들은 안다. 사랑한 만큼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는 것을... 이 시집은 추측컨대 이별한 후에 쓴 시들을 모아놓은 것 같다. 어찌할 수 없는 헤어진 이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받지 못한 자의 처절한 증오가 깔려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시인 특유의 발랄함 때문인지 시집의 제목처럼 전체적으로 침울한 느낌을 주진 않는다. 침울하면서도 소중하다는 시인의 표현처럼, 어두우면서 경쾌하고, 슬프면서도 상쾌한 느낌을 준다. 날씨로 표현하면 호랑이 장가간다는 그런 날, 그러니까 비오는 데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그런 날이랄까.
이별을 넘어선 사랑, 슬픔을 넘어선 평화로움, 죽음을 넘어선 생명력이 전해져온다. 그래서 이 시집은 쉰 일곱편의 이별 노래이자, 뒤집어 생각하면 쉰 일곱편의 사랑 노래이기도 하다.
내 심장에서
느티나무 같은 밤이 자란다
너를 향해
내 발바닥엔 잔뿌리들 간지러이 뻗치고
너를 만지고 싶어서
내 모든 팔들에
속속 잎새들 돋아난다.
........................................'밤의 노래' 중에서
언젠가 진짜 죽음이 내게로 올 때
그는 내게서 조금도 신선합을 맛보지 못하리라.
빌어먹을
가짜 죽음들!
퍽이나도 집적거려놓았군.
그는 나를 맛없게 삼키리라
.....................................'언젠가 진짜' 중에서
나는 비가 되었어요.
나는 빗방울이 되었어요.
난 날개 달린 빗방울이 되었어요.
나는 신나게 날아가.
유리창을 열어둬.
네 이마에 부딪힐 거야.
네 눈썹에 부딪힐 거야.
유리창을 열어둬.
비가 온다구!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중에서
만약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쓰리고 아플 때면)
내 영혼은 분명
금이 가 있을 것이다.
격통 속에서만 나는 내 영혼을 느낀다.
금이 간 영혼을.
.....................................'기도' 중에서
알아?
네가 있어서
세상에 태어난 게
덜 외롭다.
....................................'일요일의 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