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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5.17사건으로 사형 언도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신군부는 자기네들과 손잡으면 살려주겠다고 계속 유혹했다. 그러나 굴복할 수는 없었다. 죽음도 두렵지만, 내가 믿는 하느님과 국민의 역사가 더 두려웠다.
................................................................'본문' 중에서
전라도 태생인 내게 김대중 전대통령은 아주 어릴 적부터 '선생님'으로 각인됐다. 대체 뭐가 그토록 대단한 사람인 지를 알기도 전에 그가 박해받는 전라도 태생의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내 주위의 사람들을 그토록 이성적으로 마비시켰다는 사실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그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는 지도 모르겠다. 나는 고백컨대 그에 대해 정말 몰랐다. 그냥 막연하게 그저 대단한 사람이라는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해서 탄생한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어딘지 내키지 않는데가 있는 분이라는 정도가 내가 내린 잠정적 결론이었다.
오히려 그를 다시 보게 된 건, 은퇴 이후에도 사회를 향한 거침없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아이처럼 서럽게 펑펑 울던 그. 그러면서 "내 몸의 반쪽이 무너져린 것 같다"던 그는 불과 87일만에 남은 반쪽마저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향년 86세,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참 흔들림없이 한결같은 길을 걸어온, 가시는 그 날까지 늘 '깨어'있었던 당신께 마음으로부터 깊은 존경을 보내고 싶다.
'배움'은 그가 얼마나 큰 그릇의 사람인 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국민을 최고로 생각한 대통령,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고 생각한 사람, 민주주의와 자신의 아내와 세상의 이름모를 들꽃까지도 참 사랑했던 사람.
국민 알기를 과연 어떻게 아는지 자못 궁금한 현직 대통령을 보며 탄식해야만 하수상한 시절, 김 전대통령이 남긴 주옥같은 말들이 단비가 되어 가슴을 적셨다. 잇따른 두 대통령의 서거를 보며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에 앞서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과연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는 그 유산을 어떻게 이어나갈 지를 더 고민해야할 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