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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 - 가난은 일상이지만 인생은 로큰롤 하게!
강이랑 지음 / 좋은생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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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동안 강이랑 작가님의 <죠리퐁은 있는데 우유가 없다>를 읽었다. 손에 착 감기는 부피감, 무겁지 않은 텍스트, 가끔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나라면 저렇게 생각하 수 있었을까 고민하기도 하게 하는 작가님의 하루들. 원래 책을 오래 잡고 읽는 편이라 한 편의 책을 다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이번 책은 술술 유쾌하게, 또 감동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저자인 강이랑 작가님은 어린이 문학을 연구하고, 변역하고, 일본에 유학도 다녀오고, 한국에선 어린이 문학 연구 강의를 하신다. 연구비는 세 달에 한 번 입금. 그나마 지금은 연구도 그만 두고 어린이책 집필에 열정을 쏟고 계신다. 말 그대로 전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가난한 삶. 


가난이라는 말과 현상 자체가 사실 나에게는 굉장히 가까우면서도 멀다. 뉴스에서, 칼럼에서, 책에서 발견하는 가난은 때론 너무 가까운 것 같고, 중상위층 집에서 운 좋게 태어나 한 번도 경제적 어려움 움을 실감해본 적 없는 나에겐 굉장히 먼 것 같다. 


친구가 조리퐁 한 상자를 보낸 날은 연구비가 들어오기 직전이었다. 회사원으로 따지자면 월급이 들어오기 직전의 가장 궁핍한 시기라고나 할까. (중략) 그런데 때가 되어도 연구비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지인들이 보내준 쌀과 김치가 있어서 냉장고에 있는 채소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중략) 나는 수시로 현금 인출기를 들락거리며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이제 우유를 살 돈도 없다. 


물론 세상 모든 가난한 이가 유쾌할 수는 없겠지. 작가님의 삶도 가난한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의 삶일 테다. 어쨌든 작가님은 친구들과, 공부하며 만난 사람들과, 함께 번역을 하는 사람들과 없는 것도 나누고 영감을 나누고 일감을 나눈다. 그러니까 작가님이 추천한 동화책의 작가의 말처럼 "로큰롤한 기분"으로. 


동화책 작가로, 연구가로, 번역가로 활동하신 만큼 만난 아이들도 많다. 일본어 발음이 어색해서, 아직 일본어에 능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동화책을 낭독해주지 못하면 어떡하지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함께 즐거워하고, 뒷내용을 궁금해하고,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로 다가오던 아이들에 관한 얘기. 


동심은 단순히 아이의 마음일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우열을 가리지 않는 마음이다. 함꼐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아이가 좋다, 어른이 좋다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고, 결국 때에 따라 유연하게 어른의 마음과 아이의 마음을 선택해서 가져야 한다는 작가님의 말에 동의한다. 


그리고 좋은 그림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과정도, 지진한 삶도 견뎌내겠다는 작가님의 다짐이 나 또한 새로이 다짐하게 했다. 가끔 일상이 버거울 때면 꿈이고 자기계발이고 취미고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온다. 그런데 결국 나도 작가님처럼 최종적으로 그리는 내 이상이 있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선 "고생했어. 내일은 더 즐겁게 놀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거. 그걸 새삼 다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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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달리기가 싫어 - 달리고 싶지만 달리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애증의 러닝 가이드
브렌던 레너드 지음, 김효정 옮김 / 좋은생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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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키로미터를 뛴 러너의 달리기 에세이. 특별히 전문적으로 달리기를 배워본 적도, 마라톤에서 우승을 노릴 정도로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를 '러너'라고 정의내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랄까. 


저자는 러너가 되기 위해선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도, 전문적인 장비가 필요한 것도, 우수한 기록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과연 러너라고 생각하는가이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달리기는 운동복을 입고 신발을 신고 나가서 달리는 순간까지도 하기 싫고 불편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주 잠깐 달리기가 기분 좋고 상쾌해진다. 


달릴 때마다 단 몇 초, 몇 분이라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 경쾌하고 우아하게 달리다 보면, 앞으로 무엇을 하든 그 움직임에 활력과 자신감이 드러날 것이다.

-<난 달리기가 싫어> 13쪽

달리기의 불편한 감각을 이겨낸 사람은 삶의 다른 불편함도 버틸 수 있는 내성이 생긴다. 그래서 무엇을 하더라도 조금 더 자신감 있게 당당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달리기는 훈련이 오래 필요하다. 단거리 마라톤이든 중장거리 마라톤이든 실제로 뛰는 시간보다  달리기 위해 훈련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나는 러너가 아니라 못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명사는 잊고 동사를 하라.

-오스틴 클레온(Austin Klean), <킵고잉: 좋은 날도 힘든 날도 나를 나아가게 하는 10가지 방법>

'나'라는 명사는 잊고 '달린다'는 동사만 수행하다보면 달리기를 할 수 있다. 혹은 아직은 시간이 부족하고 제대로 운동할 여유가 없어 라며 언젠가 제대로 운동을 시작하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주 동안 말만 하고 다짐만 하는 것보다 하루 5분이라도 뛰고 오는 게 훨씬 낫다.


10킬로미터든 42.195킬로미터든 어마어마한 거리를 달리고야 말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일단 그럴싸한 거리부터 시작하자. 블로그 '젠 해비츠Zen Habits'를 운영하는 리오 바보타Leo Babauta의 말마따나 시작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쉬워야 한다."

-<난 달리기가 싫어> 29쪽

저자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쉬운" 목표를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높은 목표를 잡으면 금새 지치고 포기한다. 처음엔 잘하지 못해도 된다는 좋은 핑계도 있다! 일단 쉬운 목표부터 잡고 실천하라. 


나는 달리기를 해본 사람도 아니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지!' 하고 손뼉을 탁 치는 순간이 많았다. 처음 운동을 대하는 자세, 힘든 운동을 굳이 하는 이유, 지치지 않고 오래 꾸준히 달리는 법 등 저자가 정말 달리기를 애증한다는 것을 읽으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앞으로 퇴근 후 10분이라도 집 앞 공원 산책이라도 나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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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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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숙 씨는 이제부턴 저항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들을 뒤로 밀어놓고 달려가려는 시의 머리채를 확 잡아챌 것이다. 같이 가! 하고 외치며. -<헬프 미 시스터>, 271쪽


유해한 것들이 넘쳐나서 더 이상 무엇이 유해한지 구분하지 않는 시대구분이 불가능하거나 모호하다기보단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구분을 포기한 것에 가깝다그렇다면 모든 게 명확히 정의되어 있고 확고한 기준이 있는 법에 기댈까그러기엔 법이 정의를 대변하지 않으며 결국 승리하는 건 기득권의 체제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렇다면 벼랑 끝에 몰린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어디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을까.


이서수 작가의 신작, <헬프 미 시스터>는 너무 현실적이라 되려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한 인터뷰에서 병렬구조의 이야기가 각자의 사정을 잘 드러내주는 구조라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수경, 여숙(수경의 母), 보라(여숙의 친구의 딸), 우재(수경의 남편), 양천식(수경의 父), 은지(준후의 여자친구), 준후(수경의 조카)─ 다소 많은 인물들의 ─ 이야기가 차례대로 서술된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삶, 과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황하는 삶, 적응하기도 전해 발빠르게 도망가는 삶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850원을 받기 위해 걷지 않고 뛰어야 하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할까. 성폭행, 가해자의 (자칭) 반성과 고소 취하, 투자 실패로 얻은 빚더미, 아무도 관심 없는 플랫폼 노동자의 실제 삶, 채팅앱으로 청소년들을 꾀어내는 어른들… <헬프 미 시스터>는 너무 자주 일어나는 우리 삶의 비참함을 비추면서 그 속에서도 연대와 희망을 발견하려 한다.


자생(自生)을 강조하며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라고 설파하는 말들이 거짓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잘 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 사건 뒤에 남겨진 성폭행 피해자들, ‘사업자로 분류되지만 안전도, 수입도 보장되지 못하며 언제든 실직할 위험을 안고 뛰는 플랫폼 노동자들 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언제까지 과거에 메여 있을 거야!라든가, 본인이 노력하지 않아서 저임금 노동자가 된 거면서 누구 탓을 해?라든가. 우리는 소수자를, 피해자를 매도하는 말들에 쉽게 노출된다.


타인의 삶은 미지다.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삶에 공감할 수 없지만, 새로운 시작을 빌어줄 수는 있으니까, 무서워 말라고 함께 변화를 마주하고 발을 뻗어 보자고 용기를 줄 수는 있으니까.


<헬프 미 시스터>는 수려하거나 세련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투박한 문체와 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들 덕분에 우리는 주변의 일상을 더 일상처럼 느껴볼 수 있다. 현실은 늘 찬란하거나 황홀하지 않으니까. 때로 우리는 가장 좋은 때와 가장 나쁜 때를 함께 겪기도 하며, 거칠고 박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열망을 참지 못하며, 누군가는 함께 싸워주기 위해, 사람이 아닌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것. 그게 우리의 희망이 아닐까?



수경은 보라의 말을 들으며 보라의 등을 계속 쓰다듬고 있는 동안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언니,라는 말을 들으면 좋을 텐데. 그때도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언니라는 말엔 누군가를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지켜주는 존재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수경은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허리가 굽고 눈썹이 모두 흰색으로 변하더라도 언니,라고 누군가 불러준다면 저절로 강해질 것 같았다. -<헬프 미 시스터>,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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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의 기쁨
남유하 저자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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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하의 소설은 현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었던 공포, 기묘한 감정, 펼치지 못해 억눌렸던 욕망 등이 남유하의 소설에선 적극적으로, 때론 통쾌하게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며 악몽처럼 펼쳐진다. <양꼬치의 기쁨>을 마냥 괴이소설로 읽고 웃어 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소개란에 남유하는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글을 쓴다고 소개되어 있다. 각 단편은 귀신, 타임리프, 외계인의 출현 등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의 나열이지만 그녀의 소설은 결코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상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현실이 입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열 개의 단편 (<기억의 꿈>과 <내 이름은 제니>는 연장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나로 봐도 무방하다) 속에는 우리가 모두 약자라는 자리에서 한 번쯤 느껴봤던 불편함과 억압된 분노가 녹아 있다.




여성의 결혼


남편은 어머니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밥을 먹으라고 했을 뿐인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며 화를 냈다.

 -<닫혀 있는 방> 중

"당신은 항상 혼자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죠.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데 말이에요. 그래서 너무 당연한 건데도 간과할 때가 많더라구요.

 -<뒤로 가는 사람들> 중


결혼의 베일이 벗겨지고 친절과 배려로 가장한 위선과 이기심을 발견했을 때 보통 우리는 어떻게 했던가. 차라리 고통을 잊기 위해 자신의 처지를 순응하거나, 잘못된 결혼을 선택한 자신의 근시안을 탓하고 견디며 살거나, 혹은 최후의 수단으로 갈라서기를 선택하거나.


과거에 비해 여성의 권한이 확대되었고, 따라서 여성의 억압이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생각하는 이들도 존재하리라. 하지만 <닫혀 있는 방>을 읽어보자. 결혼한 남녀로 독립된 공간을 원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예민하게 군다'며 핀잔을 준다. 게다가 어머니의 '밥 먹으라'는 친절을 악의로 받아들이는 못된 여자 취급한다. 둘이 새 집을 구하고 겪는 기괴한 일들 ─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 신경을 거스르는 악취 등 ─ 은 욕심을 낸 아내의 탓으로 돌아간다.


<뒤로 가는 사람들>의 남편은 집에서는 시간이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리프'를 이용해 자신이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 당신하고 행복하게 잘 살려고" 했다고 말한다.


남유하는 이런 식의 자기변명을 허용하지 않는다. 요즘 표현으로 말하자면 남유하의 소설 속 인물들은 '참지 않는다.' 그녀들은 행동한다.


비록 상상 속의 승리이더라도, 남유하의 여성들은 복수한다. 나는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야 한다면 '침묵하던 자들의 복수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복수극이라는 표현이 다소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악몽이 결국 혈투 끝 승리로 보여지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남편 양꼬치라는 거죠?

아내가 물었다.

 -<양꼬치의 기쁨> 중




여성의 외모


'여자라면.' 이 수식어가 여성을 얼마나 억압해 왔는지 가장 잘 드러내주는 단편은 단연 <내 이름은 제니>이다.


여성의 억압은 때론 같은 여성에게서 파생되기도 한다. 구관습을 답습한 여성들은 자신들이 배우고 살아온 대로 '여성성'이 여성의 정체성과 가치를 결정 짓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들은 ─ 같은 여성이면서 권력층을 기꺼이 대변함으로써 여성혐오의 계승을 이어나가는 이들  여성의 제한적인 지위와 역할을 유지시키는 데 중요하고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


애프터를 못 받은 진짜 이유?

아마도 그들이 '인형'을 바랐기 때문이 아닐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아래 뇌라고는 들어 있지 않은, 바비 인형 같은 여자(남자들은 그런 여자가 실제로 있을 거라고 믿는 걸까?).

 -<내 이름은 제니> 중

엄마가 절대 늦게까지 있지 말라고,

처음 만난 남자와 열 시를 넘기면 '싸구려' 같다고 했는데.

 -<내 이름은 제니> 중


이렇게 변두리로 밀려난 여성들은 또 다른 남성들의 표적이 된다. 제니의 경우를 보자. 제니는 자신이 엄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남자의 작은 친절에 쉽게 매료되며 그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착각한다.


결국 남자가 버리고 간 제니를 다시 주워오는 건 다른 남자이다. 단순히 '여자'가 필요했던 남자. 하지만 그 또한 쓸모가 다 하자 제니를 사창가에 팔아 버린다. 제니는 언제 '제니'로 존재할 수 있을까? 제니는 '여성'이라는 성별로만 가치를 부여받는 인물인가?


<내 이름은 제니>와 결을 달리 하지만 <흉터>는 어떠한가.


아영이는 얼굴의 흉터로 비가시적인 '다른 취급'을 받았다. 언니는 언제든 품에 안고 있지만 아영이에게는 조심스럽게 대한다는 이유로 한 번도 제대로 안아준 적 없던 엄마, 화를 내지도 핀잔을 주지도 않는 엄마, 흉터가 옮을까봐 슬금슬금 도망갔다고 하는 반 아이들.


우리가 배려한다고, 조심한다고 차별하는 존재들은 우리의 배려를 어떤 식으로 느끼고 받아들일까. 우리의 친절과 배려는 결국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자기위선일지도 모른다.




존재의 상실


그렇다고 남유하의 소설을 단순한 여성주의 소설로만 보는 것은 이 소설의 입체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다. 매 챕터마다 전율을 느끼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은 단연 <초신당>과 <상실형>이었는데 전자는 마치 <곡성>과 같은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후자는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형벌이 '있을 법하지만 있지 않은' 일이기에 그랬다.


상실형은 죄인의 신체 일부를 '상실'하도록 하는 형벌로, 살인이나 강간. 방화 등 중죄를 저지른 피고에게 선고된다. 상실형은 죄질에 따라 1에서 10 단계로 구형되었다. 

 -<상실형> 중


김의 범죄의 진위여부는 밝혀지지 않지만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무언가를 '상실'한다는 것의 감각을 느끼고 그 잔혹성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초신당>의 구절을 인용하자면 "돌아갈 일상이 없"는 삶의 공포를 함께 느껴본다.




일상의 파괴


남유하 작가는 말한다. 진짜 공포는 이제껏 참아 왔던 이들이 더는 침묵하지 않고 일어설 때 펼쳐질 것이라고.

 -<추천의 말> 박현주


남유하의 글들이 불편하게 느껴졌는가? 그렇다면 그녀의 통렬한 고발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서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가 대변하는 사람들 ─ 누군가의 아내, 어머니, 외모에 강박을 가진 소녀 등 여성이 대부분이다 ─ 이 일상에서 겪는 일이 껄끄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에겐 일상으로 이상할 것 없이 넘어갔던 날들이 누군가에겐 공포이자 악몽이었다는 것. 따라서 침묵이 깨어질 때 우리들의 일상은 함께 파괴된다. 하지만 <추천의 말>에서 소설가(번역가) 박현주가 말했듯 침묵의 중단과 일상의 고발이라는 이 공포에는 "승리감도 함께한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겨울, 아직 침묵 속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함께 이 오싹함의 전율을 느껴보자고 초대의 손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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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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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천선란이 전작 <천 개의 파랑>에서 작가의 말에 쓴 문장이다. <나인>이 출간되기 전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도 저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어느 날 식물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나인, 자신이 외계 행성에서 온 '누브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 뒷산의 식물들이 알려준 살인사건의 전말. 나인은 본인과 같은 '누브족'인 승태와 오랜 친구인 미래, 현재와 함께 모두가 묻으려고 한 살인사건을 세상에 드러내기로 한다. 


"저 선배는 세상에 딱 저 선배 하난데 사라졌잖아."


어차피 아무도 너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말에 나인이 대답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멸종이 있고, 동물, 식물, 외계인의 멸종만 중요하란 법이 무엇이냐고. 한 사람이 세상에 사라졌다는 건, 그 인간 하나가 멸종했다는 것과 같은 거 아니냐고. 


오천 만 대한민국 인구 중 한 명의 사람은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 한 명 사라졌다고 사회가 격변하지도 않고 세상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없어진대로 덮으면 편하게 이전처럼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 자체에, 누군가는 그 사람을 찾는다는 것에, 사회에 양심을 가진 사람이 하나라도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행동할 수는 없는 걸까? 


실종된 나인의 학교 선배 박원우는 외계인을 믿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별종으로, 외계인이나 믿는 유아기적 퇴행이 온 '한심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집에는 돈이 없어서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부모들이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종류의, 있으나 마나 한 존재. 그런 그가 사라졌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종족이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졌다."      _ 작가의 말 중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누군가를 별나다든가, 이상하다든가, 늘 판단과 배제, 소외를 체화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천선란은 <나인>에서 이해받지 못한 인물을 실제 외계인으로 실체화하여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비틀어진 어른들에게서 비틀어진 아이들이 나오고, 그 아이들이 다시 커서 비틀어진 세대를 만들어내고... 천선란은 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살인을 했으면서도 '너 잘못 없다'라고 말하고 덮기에 급급한 돈 많고 권력 있는 부모. 그 밑에서 분명 잘못된 일임에도 '나는 잘못이 없다'라고 끊임 없이 되뇌며 죄책감과 몰양심 사이에서 싸워야 했던 권도현... 


사회는 이미 기계처럼 맞물려 작동하고 있고, 개인은 사회의 견고한 체계를 바꾸지 못할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야 할까? 무모한 이야기처럼 들리더라도 나는 그러지 말자고 얘기하는 천선란의 목소리가 좋다. 


사실 나인을 읽으며 이 네 명의 친구들이 세상의 부조리를 수면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래서 천선란이 그려내는 고등학생이 좋다. 누군가는 철없다, 생각이 짧다, 세상을 모른다 하겠으나 그들이기 때문에 어른이라면 내지 못할 용기를 선뜻 꺼내보이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희망이라는 걸 가지고 살 나이니까. 


어쩌면 혹자는 이 소설에 대해 현실에선 불가능할 얘기를 클리셰로 풀어냈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설령 소설 속 이야기더라도 용기를 갖고 불의를 피하지 않는,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애쓰고 분투하는 삶을 사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입체감 있었고 분명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이렇게 용기를 내겠지, 애꿎은 희망을 꺼내 보았다.

"저 선배는 세상에 딱 저 선배 하난데 사라졌잖아." - P140

아저씨는 그러면 어떻게 살아. 아들이 왜 그 시간에 산에 갔는지, 왜 죽었는지, 왜 이 년 동안 산엠 묻혀 있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평생 살아야 되는 거잖아. 아저씨 그거 궁금해서 어떻게 살아.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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