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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 (양장) ㅣ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천선란이 전작 <천 개의 파랑>에서 작가의 말에 쓴 문장이다. <나인>이 출간되기 전 책의 소개글을 읽으면서도 저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어느 날 식물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 나인, 자신이 외계 행성에서 온 '누브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 뒷산의 식물들이 알려준 살인사건의 전말. 나인은 본인과 같은 '누브족'인 승태와 오랜 친구인 미래, 현재와 함께 모두가 묻으려고 한 살인사건을 세상에 드러내기로 한다.
"저 선배는 세상에 딱 저 선배 하난데 사라졌잖아."
어차피 아무도 너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말에 나인이 대답한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멸종이 있고, 동물, 식물, 외계인의 멸종만 중요하란 법이 무엇이냐고. 한 사람이 세상에 사라졌다는 건, 그 인간 하나가 멸종했다는 것과 같은 거 아니냐고.
오천 만 대한민국 인구 중 한 명의 사람은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사람 한 명 사라졌다고 사회가 격변하지도 않고 세상이 흔들리지도 않는다. 없어진대로 덮으면 편하게 이전처럼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 자체에, 누군가는 그 사람을 찾는다는 것에, 사회에 양심을 가진 사람이 하나라도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행동할 수는 없는 걸까?
실종된 나인의 학교 선배 박원우는 외계인을 믿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별종으로, 외계인이나 믿는 유아기적 퇴행이 온 '한심한' 존재로 취급받는다. 남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집에는 돈이 없어서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부모들이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종류의, 있으나 마나 한 존재. 그런 그가 사라졌기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종족이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해졌다." _ 작가의 말 중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절대 불가능한 일이겠지. 우리는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고, 누군가를 별나다든가, 이상하다든가, 늘 판단과 배제, 소외를 체화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 천선란은 <나인>에서 이해받지 못한 인물을 실제 외계인으로 실체화하여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비틀어진 어른들에게서 비틀어진 아이들이 나오고, 그 아이들이 다시 커서 비틀어진 세대를 만들어내고... 천선란은 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했다.
살인을 했으면서도 '너 잘못 없다'라고 말하고 덮기에 급급한 돈 많고 권력 있는 부모. 그 밑에서 분명 잘못된 일임에도 '나는 잘못이 없다'라고 끊임 없이 되뇌며 죄책감과 몰양심 사이에서 싸워야 했던 권도현...
사회는 이미 기계처럼 맞물려 작동하고 있고, 개인은 사회의 견고한 체계를 바꾸지 못할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해야 할까? 무모한 이야기처럼 들리더라도 나는 그러지 말자고 얘기하는 천선란의 목소리가 좋다.
사실 나인을 읽으며 이 네 명의 친구들이 세상의 부조리를 수면 밖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고등학생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했다. 나는 그래서 천선란이 그려내는 고등학생이 좋다. 누군가는 철없다, 생각이 짧다, 세상을 모른다 하겠으나 그들이기 때문에 어른이라면 내지 못할 용기를 선뜻 꺼내보이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 희망이라는 걸 가지고 살 나이니까.
어쩌면 혹자는 이 소설에 대해 현실에선 불가능할 얘기를 클리셰로 풀어냈다고도 하겠다. 하지만 설령 소설 속 이야기더라도 용기를 갖고 불의를 피하지 않는,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해 애쓰고 분투하는 삶을 사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입체감 있었고 분명 현실에서도 누군가는 이렇게 용기를 내겠지, 애꿎은 희망을 꺼내 보았다.
"저 선배는 세상에 딱 저 선배 하난데 사라졌잖아." - P140
아저씨는 그러면 어떻게 살아. 아들이 왜 그 시간에 산에 갔는지, 왜 죽었는지, 왜 이 년 동안 산엠 묻혀 있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평생 살아야 되는 거잖아. 아저씨 그거 궁금해서 어떻게 살아.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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