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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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숙 씨는 이제부턴 저항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들을 뒤로 밀어놓고 달려가려는 시의 머리채를 확 잡아챌 것이다. 같이 가! 하고 외치며. -<헬프 미 시스터>, 271쪽


유해한 것들이 넘쳐나서 더 이상 무엇이 유해한지 구분하지 않는 시대구분이 불가능하거나 모호하다기보단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구분을 포기한 것에 가깝다그렇다면 모든 게 명확히 정의되어 있고 확고한 기준이 있는 법에 기댈까그러기엔 법이 정의를 대변하지 않으며 결국 승리하는 건 기득권의 체제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그렇다면 벼랑 끝에 몰린 우리는 도대체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어디서 안전함을 느낄 수 있을까.


이서수 작가의 신작, <헬프 미 시스터>는 너무 현실적이라 되려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한 인터뷰에서 병렬구조의 이야기가 각자의 사정을 잘 드러내주는 구조라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수경, 여숙(수경의 母), 보라(여숙의 친구의 딸), 우재(수경의 남편), 양천식(수경의 父), 은지(준후의 여자친구), 준후(수경의 조카)─ 다소 많은 인물들의 ─ 이야기가 차례대로 서술된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삶, 과거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방황하는 삶, 적응하기도 전해 발빠르게 도망가는 삶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까. 이 세상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850원을 받기 위해 걷지 않고 뛰어야 하는 삶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할까. 성폭행, 가해자의 (자칭) 반성과 고소 취하, 투자 실패로 얻은 빚더미, 아무도 관심 없는 플랫폼 노동자의 실제 삶, 채팅앱으로 청소년들을 꾀어내는 어른들… <헬프 미 시스터>는 너무 자주 일어나는 우리 삶의 비참함을 비추면서 그 속에서도 연대와 희망을 발견하려 한다.


자생(自生)을 강조하며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라고 설파하는 말들이 거짓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잘 안다. 그러면서도 실제로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들 사건 뒤에 남겨진 성폭행 피해자들, ‘사업자로 분류되지만 안전도, 수입도 보장되지 못하며 언제든 실직할 위험을 안고 뛰는 플랫폼 노동자들 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언제까지 과거에 메여 있을 거야!라든가, 본인이 노력하지 않아서 저임금 노동자가 된 거면서 누구 탓을 해?라든가. 우리는 소수자를, 피해자를 매도하는 말들에 쉽게 노출된다.


타인의 삶은 미지다. 우리는 살아보지 못한 삶에 공감할 수 없지만, 새로운 시작을 빌어줄 수는 있으니까, 무서워 말라고 함께 변화를 마주하고 발을 뻗어 보자고 용기를 줄 수는 있으니까.


<헬프 미 시스터>는 수려하거나 세련된 소설은 아니다. 하지만 투박한 문체와 특별할 것 없는 주인공들 덕분에 우리는 주변의 일상을 더 일상처럼 느껴볼 수 있다. 현실은 늘 찬란하거나 황홀하지 않으니까. 때로 우리는 가장 좋은 때와 가장 나쁜 때를 함께 겪기도 하며, 거칠고 박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열망을 참지 못하며, 누군가는 함께 싸워주기 위해, 사람이 아닌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것. 그게 우리의 희망이 아닐까?



수경은 보라의 말을 들으며 보라의 등을 계속 쓰다듬고 있는 동안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언니,라는 말을 들으면 좋을 텐데. 그때도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언니라는 말엔 누군가를 보듬어주고 안아주고 지켜주는 존재라는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건 강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수경은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허리가 굽고 눈썹이 모두 흰색으로 변하더라도 언니,라고 누군가 불러준다면 저절로 강해질 것 같았다. -<헬프 미 시스터>,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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