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3/17 14:48

 

 

安意如(안이루)의 <<人生若只如初见>>(인생이 첫만남 같다면)을 읽습니다.

한나라 성제의 한 후궁인 반첩여가 나그네같은 황제의 마음을 원망하면서 쓴 시를 모티브로 삼아

지은 청대의 시인 纳兰性德의 시의 한 구절을 題名으로 딴 책이지요.

반첩여의 시는 여름 한철 부치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면 접어 한 곳에 두다가

겨울이면 아예 치워버리는 부채에 자신의 신세를 비유한 시입니다.

 

(怨歌行(원가행)-班婕妤(반첩여)

新裂齊紈素(신열제환소) : 제 땅에서 난 비단을 새로 잘라내니
皎潔如霜雪(교결여상설) : 눈 같이 희고 깨끗하여라
裁爲合歡扇(재위합환선) : 잘라서 합환선 부채를 만드니
團圓似明月(단원사명월) : 달 같이 둥글어라
出入君懷袖(출입군회수) : 임의 품 속을 출입하며
動搖微風發(동요미풍발) : 흔들림에 일어나는 바람이어라
常恐秋節至(상공추절지) : 가을이 찾아와
凉飇奪炎熱(량표탈염열) : 서늘한 바람이 더위를 몰아낼까 두렵다오
棄捐篋筍中(기연협순중) :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지면
恩情中道絶(은정중도절) : 임금의 사랑이 중도에서 끊어지고 만다오)

 

처음 궁궐에 들어올 때 그녀를 맞으러 황제는 궁밖을 나와 손을 내밀었지요.

총명한 그녀는 황후가 아닌 비빈의 일생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 내민 손을 맞잡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간직하며 황제의 사후 능묘를 지키고 죽어서도 시위처럼 묻히지요.

 

긴 탄식.

'山盟虽在,情已成空' '산같은 맹세는 남았건만 정은 이미 다해버렸네'

 

또 한 봄이 옵니다.

처음을 생각나게 하는 계절이지요.

산등성이 어딘가서 주자청의 <봄>을 읽으면서 현실의 봄이 아니라

책 속의 봄을 만지던 때가 생각나네요.

마음 속 그대에게 엽서를 썼던가요.

'정이 가고 인연이 다해도 잊지는 않겠노라'고.

-------------------------------

纳兰性德

 

人生若只如初见,何事秋风悲画扇。
等闲变却故人心,却道故心人易变。
骊山语罢清宵半,夜雨霖铃终不怨。

何如薄幸锦衣郎,比翼连枝当日愿。

 

인생이 첫 만남과 같다면,

어찌 가을바람은 화선을 슬프게 하는가?

매정한 임 까닭 없이 마음 바꾸며,

사랑은 원래 쉬 변하는 것이라 말하네.

여산 장생전의 맹세 허사가 되고, 화청궁 밤은 깊어만 가는데

명황은 우림령에 애절한 마음 부치니 귀비는 끝내 원망치 않았네.

어찌 매정한 내 님의 사랑,

그 옛날 비익조와 연리지 되길 원했던 명왕과 귀비의 사랑만 못한가?

(위의 책, 번역: 심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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界上最遥远的距离--泰戈尔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生与死的距离
而是 我站在你面前 你不知道我爱你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the distance between life and death
But you don't know I love you when I stand in front of you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我站在你面前 你不知道我爱你
而是 爱到痴迷 却不能说我爱你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you don't know I love you when I stand in front of you
But I cannot say I love you when I love you so madly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爱到痴迷 却不能说我爱你
而是 想你痛彻心扉 却只能深埋心底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I cannot say I love you when I love you so madly
But I can only bury it in my heart dispite the unbearable yearning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想你痛彻心扉 却只能深埋心底
而是 彼此相爱 却不能够在一起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I can only bury it in my heart dispite the unbearable yearning
But we cannot be together when we love each other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彼此相爱 却不能够在一起
而是 明知道真爱无敌 却装作毫不在意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we cannot be together when we love each other
But we pretend caring nothing even we know love is unconquerable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树与树的距离
而是 同根生长的树枝 却无法在风中相依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the distance between two trees
But the branches cannot depend on each other in wind even they grow from the same root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树枝无法相依
而是 相互了望的星星 却没有交汇的轨迹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the braches cannot depend on each other
But two stars cannot meet even they watch each other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星星之间的轨迹
而是 纵然轨迹交汇 却在转瞬间无处寻觅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the track between two stars
But nowhere to search in a tick after two tracks join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 瞬间便无处寻觅
而是 尚未相遇 便注定无法相聚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not nowhere to search in a tick
But doomed not to be together before they meet


世界上最遥远的距离
是鱼与飞鸟的距离
一个在天 一个却深潜海底
The farthest distance in the world
Is the distance between fish and bird
One is in the sky, another is in the sea

 

-옮겨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생사의 거리가 아니라

내가 네앞에 서있어도

내가 널 사랑하는지를 네가 모른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내가 네 앞에 서있어도 내가 널 사랑하는지를 네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너를 미치도록 사랑함을 네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너를 미치도록 사랑함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갈망이 일어도 그것을 마음 속에 묻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참을 수 없는 갈망이 일어도 그것을 마음 속에만 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함에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사랑하면서도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저항할 수 없을 때조차도 전혀 관심이 없는척 위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두 나무 사이의 거리가 아니라

그것들이 같은 뿌리에서 자랐음에도

바람이 불 때 서로에게 가지를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가지들이 서로 의지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별이 서로를 바라보면서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두 별 사이의 궤도가 아니라

두 궤도 가 만난 순간에도 아무 곳에서도 서로를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만나는 순간에도 찾을 곳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나기도 전에

함께 있지 않도록 운명지워졌다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물고기와 새의 거리다.

하나는 하늘에 있고 다른 하나는 바다에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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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중국의 sina 신랑 포털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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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타고르의 시를 중국에서 변용해 노래가사로 부른 것입니다.

중국 현대시로 오인돼 한국의 블로그에서 소개되어 바로잡으려 소개합니다.

변용된 시 자체는 멋져요. 중국판의 마지막 구절이 와 닿지요.

 

비교해보세요.

 

<世界上最遥远的距离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중국판 변용

 

世界上最遥远的距离 不是生与死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삶과 죽음이 아니라

而是 我就站在你面前               내가 네 앞에 서 있음에도

你却不知道我爱你                   내가 널 사랑하는 지 네가 모른다는 것이다

 

世界上最遥远的距离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不是 我就站在你面前              내가 네 앞에 서 있음에도

你却不知道我爱你                  내가 널 사랑하는 지 네가 모르는 것이 아니라

而是 明明知道彼此相爱           분명히 서로 사랑하는 지 알면서도

却不能在一起                        같이 있지 못하는 것이다


世界上最遥远的距离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不是 明明知道彼此相爱           분명히 서로 사랑하는 지 알면서도

却不能在一起                        같이 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而是 明明无法抵挡这股想念     분명 이 그리움에 저항할 수 없음에도

却还得故意装作丝毫没有把你放在心里일부러 조금도 너에게 관심없는 것처럼 꾸며야

                                            한다는 것이다

 

世界上最遥远的距离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不是 明明无法抵挡这股想念      분명 이 그리움에 저항할 수 없음에도

却还得故意装作丝毫没有把你放在心里일부러 조금도 너에게 관심없는 것처럼 꾸며야

                                            하는 것이 아니라

而是 用自己冷的心                자신의 쓸쓸한 마음으로

对爱你的人掘了一条无法跨越的沟渠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건널 수 없는 도랑을

                                             파야 한다는 것이다

 

2007.05.15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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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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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오랫만에 다시 대했는데 선생의 글도 좋지만 거기 든 예문들도 좋아서 손에 놓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고쳐야 할 점이 있어서 여러 번 숙지하며 읽었다. 이병주 선생이 형용사, 즉 수식어가 없는 문장을 최고의 문장이라 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수식하거나 전거를 드는 게 습관이 된 내 글쓰기 습관을 돌이켜 보게 한 책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남의 머릿 속을 산책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저런 또 인용을 하고 말았다!

* <명필 완당 김정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법이 있어도 안되고 법이 없어도 안된다(寫蘭有法不可無法亦不可)"고 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태준, <문장강화>, 창비, 임형택 해제, 2005,23쪽-----

 

<동양 수사이론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도 후스 (胡適)은 그의 <문학개량주의>에서 다음 8가지 조목을 들었다.

(1)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말 것.

( 즉, 엉성한 관념만으로 꾸미지 말라는 것.)

(2) 아프지도 않는데 신음하는 글을 짓지 말 것.

(공연히 오! 아! 류의 애상에 쏠리지 말라는 것.)

(3) 典故를 일삼지 말라는 것.

(4) 현란한 어조와 상투적인 말을 쓰지 말 것.

(허황한 미사여구를 쓰지 말라는 것)

(5) 대구를 중요시 하지 말 것.

(6) 문법에 맞지않는 글을 쓰지 말 것.

(7) 옛사람을 모방하지 말 것.

(8) 속어, 속자를 쓰지 말 것.>

---같은 책, 26쪽----

 

----------------------------------

 

상허나 후스는 모두 당시에 만연했던 수사학적 문장의 폐단을 지적하고 글이 자신의 말과 마음을 전하는 진솔한 글이 되기를 원했다. 즉 그들은 글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태도를 버리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문장작법이라는 데에 일치했다. . 상허는 말과 글이 같은 것인데 말은 직접 대면하는 것이어서 전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전달하려면 문장쓰기가 필요할 뿐이라 하였다.

 

상허가 말하는 새로운 문장작법이란

첫째, 글이 아니라 말을 짓기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이 마음이고, 생각이고 감정이기 때문에 그에 가까운 것은 글이 아니라 말이다. "글이 곧 말'이란 문장관이 아니라 "말 곧 마음'이라는 말에 입각해 최단거리에서 표현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문자는 살되 감정은 죽이지 말고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리는데, 감정을 살리는 데 주력하는 문장작법을 해야한다는 게 그의 요지다.

둘째,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사상의 교환을 중시하는 시대이므로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문장 작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나날이 변화해 가는 생활을 수용해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와 문체를 개발하며, 새로운 문장 작법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매끄러운 수사의 표현이 아니라 어눌하더라도 진실이 담긴 문장, 마음이 담긴 문장이라는 점에서 상허의 문장관은 와 닿는다. 글이 마음의 무게를 다 담진 못하더라도 그것을 넘지 않도록 경계해야 되는 데 쉽지 않다. 마음과 행위에 일치할 수 있는 글만 쓴다면 아마 모두 침묵하게 되리라. 가급적 가깝게 진실되게 쓰는 게 좋은 글의 요건이라는 것일게다.

그러나 글이 기술이나 요령은 아니지만 글자체의 문체의 미학이 있을수도 있다.상허의 문장관을 극단적으로 밀고 가면 글이 지니는 문향이 실용에 묻힐 수도 있다. 장르에 따라 문체의 미학만으로도 ,즉 내용 전달이 아니라 글자체의 글맛 만으로도 읽혀진는 책이 있고 글이 있다. 상허나 후스 둘 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역사성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총체적으로 보면 어느 글이 잘 된 글인가는 내겐 명확하다. 상허의 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상허의 <문장강화>는 문장의 가장 기본적인 요체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책에서 그가 쓴 문장도 좋은 문장의 모범이 될 정도여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200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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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인생을 ‘행복한 것’으로 일컬을 수 있으리만큼 인생이 우리 뜻대로 되어가건 말건 간에, 어쨌든 인생은 그 자체로서 이미 좋은 것 아닌가? 요하네스 프리데만은 이렇게 느꼈으며 인생을 사랑했다. 인생이 우리들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단념한 그가 자신에게 허여된 기쁨을 얼마나 열성을 다하여 곰곰이 즐길 중 아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교외의 녹지대에서 바깥의 봄을 즐기는 산보라든지 어떤 꽃 한 송이의 향내, 또는 어떤 새의 지저귐- 이런 일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교양이 향락 능력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 즉, 교양이란 언제나 향락 능력일 뿐이라는 사실-그는 이 사실도 역시 이해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교양을 쌓았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으며, 그 도시에서 개최되는 연주회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자신도, 연주할 때에[ 아주 이상야릇한 자세가 눈에 띄어서 탈이긴 했지만, 점차로 바이올린을 곧잘 연주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켜내는 데에 성공한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조 하나하나에 기쁨을 느꼈다. 또한 그는 많은 독서를 통하여 점차 문학적 취미를 길렀으며, 문학적 취미라면 그 도시에서 그와 겨룰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는 국내외의 최근 간행물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고, 한 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운율적 매력을 음미할 줄 알았으며, 잘 씌여진 한 편의 세련된 소설이 지니고 있는 은밀한 분위기에 심취할 줄도 알았으며---아! 사람들이 그를 일종의 도락가라고 말한다 해도 아주 지나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즐길 수 있는 것이며, 행복한 체험과 불행한 체험을 구별한다는 것이 거의 허무맹랑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터득해서 깨닫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감정과 기분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것이 구슬픈 것이든 명랑한 것이든 가리지 않고 모두-충족되지 않은 소망들, 즉 동경까지도 역시-잘 가꾸었다. 그는 동경을 사랑하되 동경 그 자체 때문에 사랑했으며 자기자신에게 이르기를, 충족이 되면 이미 최선의 것은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했다. 고요한 봄날 저녁의 감미로운, 괴로운 막연한 고통과 희망이 여름과 더불어 주어지는 모든 충족보다도 더 즐거운 것은 아닐까? -정말이지 그는 일종의 도락가였다. 그 키 작은 프리데만 씨는!>

 

 

<키 작은 프리데만씨>, 토마스만 단편선, 민음사세계문학전집

 

  8권, 안삼환외 옮김, 267-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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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를 위해 창조한 저 고요하고 안온한 행복이 세상에 대한 냉소와 다른 게 무엇인가? 열정을 통과함으로써 얻어진 관조가 아니라면. 열정이 빠진 삶, 깊은 감정의 교류가 없는 표피만 만지는 삶, 기쁨과 고통의 현실에 몰입하지 않고 삶의 오욕을 견뎌내지 않는 삶, 인생에 사람이 빠진 삶...그런 삶을 프리데만은 산 게 아닌가.

 

'거리두기'와 냉소를 넘어서 현실의 삶을 따뜻하게 껴안을 수 있을 때, 저 정신의 빛들이 현실의 프리즘을 통과해 다듬어질 때 프리데만은 진짜 행복을 맛볼 것이다. 한쪽으로 치우친 영혼은 오히려 부패하기 쉽다. 프리데만과 조르바는 본질상 같다.

 

통렬한 자아비판! 그리고 내가 여기저기서 만나는 프리데만들에게 보내는 조언. '딜레탕트' 바로 도락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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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엇인가에 관해 말하게 되면, 이상하게도 그것을 통해 그 무엇인가는 곧 원래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는 저 깊은 심연으로 들어갔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표면으로 올라오면 우리의 창백한 손끝에 묻어있는 물방울은 그 출처인 바다의 물방울과는 더이상 같지가 않다. 우린 신비한 보물로 가득찬 동굴을 발견했다고 잘못 생각했다. 우리가 다시 햇빛아래로 나오면 우리가 가져 온 것은 단지 가짜 보석이나 유리조각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물은 어둠속에서 희미한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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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나온 무질의 작품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 (Die Verwirrungen des Zöglings Törless)>>서두에 인용된 메테어링크 M. Maeterlinck의 글귀입니다. 원래는 모리스 메테를링크가 쓴 <가난한 자들의 보물> 중의 한 장인 <신비주의자의 도덕>에 씌여진 글입니다.무질은 표면의 언어가 영혼의 신비하고 불가해한 세계를 담을 수 없다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서 이글을 인용했죠.

 

 

언어는 대상을 잘 표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또 본질을 파괴하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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