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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 창비 / 2005년 3월
평점 :
상허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오랫만에 다시 대했는데 선생의 글도 좋지만 거기 든 예문들도 좋아서 손에 놓지 못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고쳐야 할 점이 있어서 여러 번 숙지하며 읽었다. 이병주 선생이 형용사, 즉 수식어가 없는 문장을 최고의 문장이라 하였던 것이 기억난다. 수식하거나 전거를 드는 게 습관이 된 내 글쓰기 습관을 돌이켜 보게 한 책이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 남의 머릿 속을 산책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저런 또 인용을 하고 말았다!
* <명필 완당 김정희는 "난초를 그리는 데 법이 있어도 안되고 법이 없어도 안된다(寫蘭有法不可無法亦不可)"고 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이태준, <문장강화>, 창비, 임형택 해제, 2005,23쪽-----
<동양 수사이론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도 후스 (胡適)은 그의 <문학개량주의>에서 다음 8가지 조목을 들었다.
(1) 언어만 있고 사물이 없는 글을 짓지 말 것.
( 즉, 엉성한 관념만으로 꾸미지 말라는 것.)
(2) 아프지도 않는데 신음하는 글을 짓지 말 것.
(공연히 오! 아! 류의 애상에 쏠리지 말라는 것.)
(3) 典故를 일삼지 말라는 것.
(4) 현란한 어조와 상투적인 말을 쓰지 말 것.
(허황한 미사여구를 쓰지 말라는 것)
(5) 대구를 중요시 하지 말 것.
(6) 문법에 맞지않는 글을 쓰지 말 것.
(7) 옛사람을 모방하지 말 것.
(8) 속어, 속자를 쓰지 말 것.>
---같은 책,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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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허나 후스는 모두 당시에 만연했던 수사학적 문장의 폐단을 지적하고 글이 자신의 말과 마음을 전하는 진솔한 글이 되기를 원했다. 즉 그들은 글을 아름답게 꾸미려는 태도를 버리고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문장작법이라는 데에 일치했다. . 상허는 말과 글이 같은 것인데 말은 직접 대면하는 것이어서 전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만 글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전달하려면 문장쓰기가 필요할 뿐이라 하였다.
상허가 말하는 새로운 문장작법이란
첫째, 글이 아니라 말을 짓기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표현하려는 것이 마음이고, 생각이고 감정이기 때문에 그에 가까운 것은 글이 아니라 말이다. "글이 곧 말'이란 문장관이 아니라 "말 곧 마음'이라는 말에 입각해 최단거리에서 표현을 계획해야 할 것이다.그러므로 문자는 살되 감정은 죽이지 말고 글을 죽이더라도 먼저 말을 살리는데, 감정을 살리는 데 주력하는 문장작법을 해야한다는 게 그의 요지다.
둘째,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사상의 교환을 중시하는 시대이므로 자신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문장 작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나날이 변화해 가는 생활을 수용해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용어와 문체를 개발하며, 새로운 문장 작법을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매끄러운 수사의 표현이 아니라 어눌하더라도 진실이 담긴 문장, 마음이 담긴 문장이라는 점에서 상허의 문장관은 와 닿는다. 글이 마음의 무게를 다 담진 못하더라도 그것을 넘지 않도록 경계해야 되는 데 쉽지 않다. 마음과 행위에 일치할 수 있는 글만 쓴다면 아마 모두 침묵하게 되리라. 가급적 가깝게 진실되게 쓰는 게 좋은 글의 요건이라는 것일게다.
그러나 글이 기술이나 요령은 아니지만 글자체의 문체의 미학이 있을수도 있다.상허의 문장관을 극단적으로 밀고 가면 글이 지니는 문향이 실용에 묻힐 수도 있다. 장르에 따라 문체의 미학만으로도 ,즉 내용 전달이 아니라 글자체의 글맛 만으로도 읽혀진는 책이 있고 글이 있다. 상허나 후스 둘 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역사성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총체적으로 보면 어느 글이 잘 된 글인가는 내겐 명확하다. 상허의 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상허의 <문장강화>는 문장의 가장 기본적인 요체를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책에서 그가 쓴 문장도 좋은 문장의 모범이 될 정도여서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200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