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정신의 객관성을 결여한 '열등한 성이며 모든 점에서 남성에게 뒤떨어지는 제 2의성'이라면서 여성에게 종족번식을 위한 존재란 자리만을 허용한 쇼펜하우어도 유럽의 혼인법에 대해서는 귀기울릴만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물론 그 분석의 동기는 이성이 없는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 일부 일처제를 시행하다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지만서도, 그 분석의 결론인 일부일처제가 오히려 전체 여성의 권리를 신장한 것은 아니라는데 동의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시절과 지금의 사회까지의 그 갭 사이에 역사적으로 일부일처제가 여권신장과 결혼 제도의 안정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쇼펜하우어가 그런 결론을 내린 데는 당시의 사회가 숨어 있다. 지참금이 있어야만 결혼하던 시대에 결혼할 수 있는 여성은 특권층의 여성이었다. 결혼은 일종의 권리와 지위였다. 여성이 경제적 수단이 없던 시대에 돈이 없어 결혼하지 못한 여성들은 누군가의 정부나 친척등에 의탁하거나 사창가로 흘러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쇼펜하우어의 생각이었다. 그에 의하면 이들이 런던에만 해도 당시 8만명이었다고 하는데,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팔자좋은 여자들은 남자들의 유혹으로부터 안전했으므로, 이들은 어찌보면 일부일처제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팔자좋은 여자의 경우에도 원치않는 결혼에 응낙을 하거나 노처녀로 평생 살아가거나의 양갈래 밖에 없으니 일부일처제가 그리 좋은 제도가 아니란 것이다. 축첩제도는 종교개혁이전가지는 불명예로 간주되지 않았다고 한다. 만연하는 간통이나 매음의 상대가 되는 것보다는 보다는 첩의 지위를 부여하는 축첩제도의 일부다처제가 여성에겐 더 인간적인 제도라는 것인데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축첩은 남자가 많은 여자를 돌보는 자유 뿐만 아니라 의무를 행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을 통시대적으로 해석해 쇼펜하우어의 얘기를 비난한다는 것은 넌센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첩이 간통이나 불륜-이 말도 일부일처제적 시각에서 나온 말로 윤리적 판단이 들어간 말이라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다른 편의상 쓴다-보다는 훨씬 인격적인 제도라는 데엔 동의한다. 축첩은 원나잇 스탠드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이고 제도며 혼인의 기회를 한 번 더 부여한 것이다. 사실 이것을 오늘날 적용하자면 쌍방향이 가능해야, 다시말해 일처다부가 가능해야 남녀평등이라 하겠지만 그게 다 의식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아직은 이른 얘기다.

오늘날도 결혼이란 것을 해 자녀를 양육하자면 돈이 들고 젊은이들만의 노력으론 적령기에 방 한칸 구하기 힘든 실정이다. 역시 부모의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젊은이들은 동거로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 결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무엇을 가졌든지 무언가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회에서 전통적인 결혼 형태를 최우선시 하거나 윤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법적 결혼, 혹은 일부일처제가 통시대적인 선과 악의 카테고리에 속하는 것이 아님은 역사적으로 분명하다. 편의상 생긴 제도는 그것이 편의적일 때 시한이 유효하다. 오늘날의 결혼 형태는 변해야 하고 변할 것이다. 그러나 결혼이 가지는 의미나 본질은 변하지 않을 지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은 변하고 있다. 동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듯이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도 낯설지 않을 날이 올지 모른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 한 사람과 해로하는 일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릴만큼 귀해질 수도 있다.

 

늘 하는 얘기지만 제도가 융통성없이 완고하면 오히려 제도밖이 극성을 부린다. 여성부같은 제도권 속의 여성운동자들은 일면만 보고 결과적으론 기득권에 속한 여성의 권익만 보호하려 한다. 결혼과 이혼이 힘든 사회에서 어떻게 사랑만 믿고 결혼을 할 것이며, 간통과 음지의 사랑이 피지 않을 것인가. 사창가를 단속하여 없애버리면 윤락산업이 주택가로 숨어든다. 여성의 권익은 여성만을 보호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고 상대방인 남성을 함께 존중하고 보호해야 이룩된다. 이혼의 경우 자녀의 양육을 서로 원하지 않는 세태에 양육권을 가진 남성의 권리는 권리가 아닐 수 있다. 정책은 현실을 감안해야지 당위만 강조해 수립되어질 수 없다. 청교도사회를 우리가 살만한 사회로 기억하지 않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의 여성에 대한 독설은 반면교사로 귀기울일만 하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시몬느 드 보봐르가 <제2의성>도 이성과 독자적 판단력을 갖추었음을 강조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사상은 사회를 선도하기도 하고 그 사회의 현상을 추인하기도 한다. 쇼펜하우어가 유용한 시대가 있는 반면 보봐르가 유용한 시대가 있다.

우리 시대는 새로운 여성론이 씌여야 한다. 그 대명사로 우리는 누굴 꼽을 것인가? 주목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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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고장나는 바람에 얼마전 서점에서 사둔 안톤 체홉의 단편집을 읽었다. 사실 까마득한 학창시절에 <벚꽃동산>과 <귀여운 여인>을 읽은 게 전부여서 궁금하기도 한 작가였다. 그에겐 자신의 소설 곳곳에 자조적으로 '제법 잘 쓰지만 톨스토이나 뚜르게네프보다는 못하다'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장편의 호흡을 가지지 못해서 그렇지 삶과 세상을 보는 눈은 그들 못지 않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시가 짧은 언어 속에 하나의 의견을 집어넣듯 단편 소설 작가는 그런 촌철살인의 기지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는 과연 단편소설의 대가다웠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이야기 하려다 그 앞 편에 있는 <다락방이 있는 집(The house with the Mezzanine)>에 인상적인 작가의 견해가 있어서 그 쪽으로 선회했다. 얼마전 본 신영복 선생이 쓴 '진정한 연민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같이 비를 맞는 것'이란 글귀에서 느꼈던 심사와 평상시 교회나 이웃, 그리고 나 자신이 '자선'이란 명목으로 행하는 행위에서 가졌던 회의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있어서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시골의 친구 장원에 머물던 풍경화가인 주인공이 이웃 장원, 볼차니코프가의 두 자매를 방문하던 시절의 얘기다. 큰 딸 리사는 이웃에 봉사하기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서 농민교육, 보건소 건설, 계몽 등을 활발히 하는 활동적인 처녀였는데, 신념이 강한 만큼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 자기의 눈 밖에 것들은 수용하지 못하고 주위사람에게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강요하고 간섭하였다. 반면에 둘째 미슈시는 책을 읽고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따뜻하고 매력적인 처녀였다. 풍경화가는 이 미슈시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리다가 그와 토론한 끝에 그를 위험인물로 낙인찍고 동생을 피신시켜 버려 그들의 풋사랑은 불발되어 가슴 속에 봉인된다.

리다는 그 신념에 자신의 삶을 가둠으로써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은 되어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 인간은 지기와 닮은 나약한 존재를 좋아하는 법이다.

체홉은 그의 단편 <결투>에서도 그런 주제를 언뜻 비춘 적이 있다. 신념가들이 바르고 옳고 강하고 도덕적인 것들을 내세우며 인간 세상에 해로운 것들을 일소하겠다고 나서는 것에 대해, 술, 여자, 나약함, 부도덕, 우유부단, 게으름, 패배자, 잉여적인 것들이 인간이 서로를 연민하며 살게 하는 밑걸음이 된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인간은 슬픔과 고통으로 연대하는 것이며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다음은 화가와 큰 딸 리다의 봉사활동에 관한 토론이다. 리다는 어려운 처지의 이웃과 농민들을 위해 문맹퇴치를 위한 학교설립, 보건소 건설, 근면등 생활태도 교육 등을 골자로 하는 교양인의 의무라 여기고 풍경화가에게 동참을 강요한다. 그는 그것이 오히려 그들에게 무엇 하나를 주지 않으면서 그저 그들의 생활을 간섭하고 더욱 더 욕구를 증대시켜 더 많이 일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할 뿐이라 하였다. 함께 비를 맞지 않으면서 비를 내리게 하고 그 손에 우산을 주어주는 방식은 부당하다는 날카로운 지적이 숨어있다. 사실 자선이나 봉사활동이 결국은 체제의 안정에 기여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장치조차 없는 체제는 무너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영리하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체제를 지탱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그런 장치는 구비해야 스스로의 발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 중요한 것은 안나가 산욕열로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러한 안나나 마블라나 페라게야들이 모두 아침 일찍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구부려 일하고 힘겨운 노동때문에 병들고, 평생 �주리고 병들어 지낼 자식들 생각에 두려워 덜고, 평생 죽음과 병을 염려하고, 평생 의사 신세를 지고,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닌데도 체력을 소모하여 늙어 버려서, 그 결과 냄새나는 더러운 곳에서 진흙에 파묻혀 죽어간다는 사실이지요.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성장하면 또 그들의 어머니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되고, 이렇게 해서 몇 백년이 지나도 몇십억이라는 인간이 동물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그것도 겨우 빵 한조각 때문에 말입니다. 그들이 느끼는 공포는 결코 없어지지 않앗어요. 이런 상황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그들이 영혼에 대해서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굶주림과 추위와 동물적인 공포와 끝없는 노동이 마치 눈사태처럼 줄줄이 엄습해 와서 정신적인 활동에의 길을 완전히 막아 버린 것입니다. 더우기 정신적인 활동이야말로 인간을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것, 인간에게 있어서 살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 아니겟습니까? 당신들은 병원과 학교를 통해 그들을 구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사슬을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더 노예상태로 몰아넣을 뿐이오. 왜냐하면 당신은 그들의 생활 속에 새로운 편견을 가지고 가서는 그들의 욕구를 증대시키고 있으니가요. 자치회에 피부질환치료고약과 팜플렛 대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전보다 더 많이 허리굽혀 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것들은 굳이 말하지 않는다 하여도 말입니다."

 

'농민교육, 쓸데없는 교훈이나 재담이 적혀있는 팜플렛, 보건소, 그런 것으로 문맹이나 사망률을 줄일 순 없는 일입니다. 필요한 것은 인간을 괴로운 육체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일입니다. 그들의 멍에를 풀어주어 잠시라도 쉬게 해주는 일입니다....중략>

 

언뜻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관도  보인다. 이 단편에서 이런 토론이 백미이긴 하지만 미완으로 끝난 사랑을 세월이 흐른 후 더듬는 주인공의 마지막 몇 마디를 덧 붙이지 않을 수 없다.작가 박완서가 그리고 시인 김용택이 떠올리던 그 남자 혹은 그 여자네 집처럼 한 사람이 담긴 아련한 장소를 떠올리며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시간을 안타까이 매만지듯 이 글을 읽었다.

 

"다락방이 있는 그 집에 대한 기억도 요즈음엔 거의 흐려져 버렸다. 그러나 가끔 글을 쓸 때나 독서를 할 때면 그날 밤 창문에 비추던 녹색 불빛과 한밤중에 추위에 곱은 손을 비비면서 사랑에 취해 들길을 돌던 나 자신의 발소리가 웬일인지 문득 생각나곤 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드문 일이지만, 슬픈 고독에 매달려서 어쩔 수 없이 추억에 잠기거나 할 때면 어쩐지 저쪽에서도 나를 생각하고 있겠지, 기다리고 있어 주겠지, 그리하여 두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겠지, 이런 생각이 조금씩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것이다.

미슈시, 그대는 어디에 있는가?"

 

그대는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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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은 순진한 마음으로 종교를 믿는 사람이다. 그 종교가 그리스도교건 이슬람교건 불교이건 호텐토트의 신이건, 에스키모의 신이건, 천황상제인건 그 교리와 은총늘 그대로 믿는다.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러니 그  신앙에 좌우당한다. <카마라조프가의 형제들> 속에 나오는 이반의 <대심문관>이 말한 "수억을 헤아리는 어린애 같은 인류'가 이 족속에 속할지는 모른다.

 이와는 달리 신앙주의자는 신앙을 신앙 외적인 목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부류를 말한다. 그 대표적인 예를 문학작품 속에서 찾으면 스탕달의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 같은 사람이다. 줄리앙 소렐은 출세하기 위한 수단이면 군인이 되건 승려가 되건 마음의 구애를 받지 않을 위인이다. 신앙주의자는 갖고 있지도 않은 신앙을 가진 척 한다. 신앙을 갖고 있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범상한 신앙 생활엔 만족할 수 없어 세속적인 지배 권력으로 대입시키지 않곤 배겨내지 못하는 사람도 이 부류에 든다.

 또는 많은 사람을 자기와 같은 신앙으로 인도하기 위해 약간의 술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실천하는 사람도 신앙주의자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런데 생존경쟁의 양상을 띤 생활의 현장에서 이러한 신앙주의자일수록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과 의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신앙의 본연에서 일탈하여 세속인 이상으로 세속적인 수렁에서 헤매는 결과를 빚는다. 기독교의 분파, 불교 승단의 분열 등은 신앙인들을 신앙주의자들이 압도한 때문이라고 나는 풀이한다.

 

 교회라는 조직없이 신앙을 가꾸어 나가기란 힘들고, 조직 속에 들기만 하면 신앙과는 일탈해야 하는 이 묘한 모순은 그대로 조직으로서의 신앙의 문제라는 중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탐사>,1권, 생각의 나무,171 쪽-----

  

 신앙인을 보면 존경의 념이 든다. 한 가치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의존할 수 있는 단순함, 혹은 초탈함이 사람을 숙연하게 한다. 철학이란 어찌보면 허망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 허망에만 빠져 있으면 허무주의자가 되고 만다. 생각하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의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어찌보면 어리석음을 배우는 길이다. 현명하려 애쓰는 것이 어리석은 길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자각할 때 철학의 허망은 의미가 있다. 이 모순을 넘어서지 못하면 나 같은 생각쟁이는 우울 속에서 헤맬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신앙인은 이 많은 여과를 거치지 않고도 본질을 배워 버린 듯 해서 그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애써서 얻는 것도 값진 것이지만 애쓰지 않고도 얻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천품이 가진 행운이리라. 마치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사랑을 받는 사람처럼 행운아다. 노력하고 애써 얻은 사랑보다 덜 상처를 지닌.

 신앙인처럼 사랑도 의문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행운이다.

긴 편지를 쓸 필요가 없는 사랑, 분석도 생각도 그리움도 필요 없는 사랑.

내게 유용하나 무용하나 따지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통째로 받아들이는 사랑.

신앙인의 신에 대한 사랑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런 신앙이 그런 사랑이 단순한 듯 해도

 사랑의 요체를 저절로 습득한 것은 아닌가 싶어, 삶의 고수를 들여다 본 느낌이 든다. 아무리 의미를캐고 온갖 지식을 동원해 정의를 내리고, 질투를 해도 얻어질 수 없는 경지 말이다. 그런 종교인을 만나거나 그런 천품의 사람을 만나면 나는 고개를 수그리게 된다. 내 자신이 그러한 것과는 quf개로.

 

 그러나 신앙주의자에 이르면 매끄러운 처세주의자를 보는 느낌이 들어 거북하다. 신앙의 알맹이가 없는 허위를 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성공과 노력이 신앙인을 확대하고 종교를 세세토록 계승시키는 데 필요불가결한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 조직을 무턱대고 경원할 수만은 없다. 조직없이 몇 천년을 원형보존을 하면서 내려오는 종교란 없다. 도스토예프스키에 나오는 카톨릭조직의 수장을 대표하는 <대심문관>이 나사렛 예수 앞에서 떳떳이 떠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다. 천상의 왕국이 지상의 왕국의 조직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자신감 말이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모든 것들 중에서 성공주의자들의 피와 땀의 결과인 것이 얼마나 많은가를 돌아보면, 자족하는 삶에 마냥 초연한 듯 찬양만 할 수 없다. 그들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 않을 도리라 없다. 거기에 사람사는 모순이 있다. 빵없는 자유가 힘들듯이 조직없는 개인이 살아갈 방도가 없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신앙이 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강화될 수 밖에 없는데 그 제도 속에 들어가면 신앙과 일탈해야 하는 모순을 말한 이병주의 지적은 종교적 조직 뿐만아니라 여타 제도에 관해서 여러 시사를 해준다. 사랑과 결혼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제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도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야만 지속력을 지니고 생활을 통해 강화되어 간다. 그러나 실제 사랑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지속되는 결혼은 드물다.  타협이 남을 뿐이다. 무정부주의나 무교회주의를 꿈꾸듯 느슨한 형태의 결혼 제도를 꿈꾸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삶의 현실은 모순태다.

"사람은 탁한 강물이다. 이 탁한 강물을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고 받아들이려면 바다가 되어야 한다."니체의 <자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귀절이다. 모순을 넘어 바다의 경지를 이룰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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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는 고통의 순간에 신은 어디 있는가의 문제를 17세기 일본 기독교 선교 당시의 박해상황을 소재로 하여 치밀하게 묻고 있다.
성화를 밟아 신앙을 부인해야만 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 즉 종교적 신앙과  인간적 실존이 상치되는 순간, 로마교황청의 파견 신부 로드리고는 십자가 앞에서 침묵하는 신을 향해 그리스도를 반추하며 신의 침묵의 의미를 묻게 된다. 그는 신인 그리스도가 인간으로서 이땅에 와 십자가에 그대로 못밖힌 의미가 바로 인간적 고통을 끌어안고 나누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라면 여기 고통박고 박해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성화를 밟았으리라고. 신앙은 그리스도의 정신에 있는 것이지 맹목적인 교리나 상징, 제도의 순종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엔도 슈사쿠는 말하고 싶었으리라.

 

인간적 진실과 신앙의 진리가  상반될 때 신은 사실 신적인 것을 침묵함으로써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숨은 신' 이상으로 자비로운 신은 없는 것이다.

 

(인상적인 구절)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도둑질을 한다거나 거짓말을 하는 그런 것이 죄가 아니었다. 죄란, 인간이 또 한 인간의 인생을 통과하면서 자신이 거기에 남긴 흔적을 망각하는 데 있었다." 

"매력이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색 바랜 누더기처럼 되어 버린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 

* <침묵>의 줄거리를 크리스챤마음연구원의 김세준 연구원의 칼럼에서 빌어와 소개한다.

(http://soul-healing.org/chnet2/board/index.html?id=103&code=column01&cate=&start=30&category=&word=&viewType=&category_id=&category_name=&gfile=view&sid=)

참, 로드리고의 개명 오카다 산에몬은 실존인물에서 빌어 온 것이다.

  

'침묵'은 일본에 선교를 하던 포르투칼의 신부가 배교했다는 사실이 교황청에 알려지면서 시작된다. 일본 선교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금 보내지는 신부들은 배교한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로드리고라는 열렬한 페레이라의 수제자도 있었다. 그들은 침몰한 정크선처럼 좌초당한 일본선교를 재건하기 위한 불굴의 신앙심과 더불어 그렇게 존경에 마지않던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한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 뒤엉켜 있었다.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승선하는 신부들은 순교자체는 얼마든지 두렵지 않은듯했다. 뜨거운 물을 몸에 조금씩 부으면서 살이 벗겨지는 고문이라든지 열탕에 집어넣는 고문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문에 대한 소식을 접할때에도 신부들에게는 신앙으로 인해 참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을 뿐이다. 이는 페레이라 신부도 마찬가지 였을텐데 어찌 배교가 있을 수 있는지 궁금증은 더해만 갔다. 
 

일본에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로드리고와 가르페 신부는 아직도 잔존한 신도들의 도움으로 신도들에게 성례성사를 베풀고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페레이라 신부의 행적을 찾아봤으나 알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한번 배교한 경험이 있는 일본 청년 기치지로의 밀고로 두 신부는 일본 신자들과 잡히게 된다. 로드리고는 가차없이 참수당하는 가르페 신부와 일본 신자들의 모습속에서도 신앙을 부인하지 않는다. 
 

일본관리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진 성화를 밟게 함으로 신자들을 구별하거나 배교를 유도하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성도들의 모습이 드러나고 성화를 밟기보다 죽음을 택하는 일본 사람들의 신앙을 로드리고 신부는 묵도하게 된다. 어떠한 고문이 닥쳐도 결코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신앙인의 실존, 옆방에서 인간의 미약한 소리가 감옥 관리자의 코고는 소리로 들리지만 실은 고통에 신음하는 신도들의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 몸서리치면서 배교하여 사와노라는 일본 이름으로 살고 있는 페레이라 신부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참혹하리만큼 고통스럽게 신앙으로 인하여 또는 신부를 위하여 죽어가는 일본 성도들의 모습을 견디면서 컴컴한 감옥 벽에 손가락이 문드러 질 정도로 새겨넣은 LAUDATE EUM(주님을 찬양하라)라는 글을 써넣으며 기도했지만 하나님이 무엇하나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 그 하나님의 침묵을 괴로워하며 저들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도 배교햇을 것이라는 페레이라 신부의 말에 로드리고는 성화를 밟기로 결심하게 된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알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어진 것이다 라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많은 일본인들이 밟아서 우묵하게 들어간 성화속의 그분의 얼굴은 괴로운듯이 로드리게 신부의 모습을 보면서 호소하고 있었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한다"

 

그렇게 배교한 로드리게 신부에게 사람들은 '배교자 바오로(베드로)'라고 놀림의 노래를 부르곤 하였다. 그럴즈음 자신을 밀고하였던 기치지로가 찾아와 고해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고해를 자신은 이제 신부가 아니라며 거부하는 로드리고에게 기치지로는 울먹이며 말한다.
'이 세상에는 말입니다. 약한자와 강한자가 있습니다. 강한 자는 어떤 고통이라도 극복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만, 저 같이 천성이 약한 자는 성화를 밟으라는 관리의 고문을 받으면...."
그런 가치지로에게 로드리게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강한자도 약한자도 없는 거요. 강한 자보다 약한자가 고통스럽지 않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소. 이 일본 땅에 당신의 고해를 들을 신부가 없다면, 내가 기도의 말씀을 외우겠소. 모든 고해의 마지막에 올리는 기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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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의 <루쉰전>의 서문을 읽다가 선생이 서문에서 번역해 인용한 '루쉰의 유언'중에 오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마 선생은 루쉰같은 위대한 사람은 당연히 남을 용서하는 사람과 사귀라고 유언을 했을 것이라는 논리적 전제에 사로잡히셔서 문장의 내용을 간과하여, 잘못 번역하는 실수를 하신 것 같다.

단 한 줄의 작은 오역이지만 '루쉰의 유언'이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글인 바람에, 그리고 신영복 선생이 독자를 많이 가진 분이라서, 불행히도 선생의 오역이 인터넷에서 너무 많이 떠돌고 말았다. 그래서 바로잡고자 포스트를 올린다.

장문의 번역에는 오역이 없을 수 없다는 점에서, 번역하는 일은 참, 힘든 작업이다.

 

참고로 루쉰유언의 원문을 올린다

 

鲁迅遗嘱

鲁迅未留下正式遗嘱,只是在逝世前一个月写的杂文《且介亭杂文附集·死》中提到在病重时曾经想过要立遗嘱,但也没有写下来,在文章中回想起了几条,原文如下:

       “当时好像很想定了一些,都是写给亲属的,其中有的是:
  一,不得因为丧事,收受任何人的一文钱。——但老朋友的,不在此例。
  二,赶快收敛,埋掉,拉倒。
  三,不要做任何关于纪念的事情。
  四,忘记我,管自己生活。——倘不,那就真是胡涂虫。
  五,孩子长大,倘无才能,可寻点小事情过活,万不可去做空头文学家或美术家。
  六,别人应许给你的事物,不可当真。
  七,损着别人的牙眼,却反对报复,主张宽容的人,万勿和他接近。

       此外自然还有,现在忘记了。只还记得在发热时,又曾想到欧洲人临死时,往往有一种仪式,是请别人宽恕,自己也宽恕了别人。我的怨敌可谓多矣,倘有新式的人问起我来,怎么回答呢?我想了一想,决定的是:让他们怨恨去,我也一个都不宽恕。

       但这仪式并未举行,遗嘱也没有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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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오역이 7항에 있으므로 바로잡는다.

 

오역: 7.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하고는 가까이 하지 말고, 복수를 반대하고 인내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도록 하라.

 교정:     七,损着别人的牙眼,却反对报复,主张宽容的人,万勿和他接近。
               이문장은  자신이 잘못한 일에 사과는 커녕  관용의 덕을 내세워 타인의 관용을   

              강요하는 그런 염치없는 사람과는사귀지 말라는 뜻이다.

               즉 바르게 번역하면 "  7.남의 이와 눈을 상하게 해놓고, 오히려 보복에 반대한다면서 관용을 주장하는 그런 따위의 사람들에겐 절대 접근하지 마라" 이다. 뜻이 윗번역과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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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루쉰의 유언을 번역해 올린다.

 

1. 장례식을 위해  누구의 돈이든지   단 한푼도 받지마라. 단, 친구는 예외다.
2. 즉시 입관하여 묻어버려라.
3. 어떤 기념행사도 하지 마라.
4. 나를 잊고 자기 생활을 돌보아라. 그러지 않으면 정말 어리석다.
5. 아이들은 커서 재능이 없다면,  조그만 직업을 택해  살도록 하라. 절대로 실속 없는 문학자나 미술가가 되지 말도록 하라.
6. 타인의 약속을 믿지 마라.
7. 남의 이와 눈을 상하게 해놓고도  보복에 반대한다면서 관용을 주장하는 그런 사람을 절대 가까이 하지 마라

이 밖에도 또 있지만 잊어버렸다. 열이 몹시 심할 때, 유럽 사람들은 임종시에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너그럽게 용서해주길 바라고 자기도 다른 사람들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의식을 행한다.  나는 원한을 산 사람들이 많은데, 신식 인물들이 내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끝에 나는 결심했다.

그들이 나를 증오하도록 내버려두어라. 나 역시 하나도 용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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