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경감 듀 동서 미스터리 북스 80
피터 러브제이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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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문화사의 추리소설선집에는 꽤 재미 있는 책들이 많다. 하지만 어떤 책을 골라야 성공작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겠다.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건 사실 꽤 안타까운 일인데, 책의 겉모양이나 번역의 질에 비해볼 때 가격이 만만치 않게 비싸기 때문에 잘못 골랐다 치면 마음이 아플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가사 크리스티나 앨러리 퀸 같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도 볼 수 있는 유명 가의 작품은 일단 패스, 그리고 되도록 두꺼운 책을 집어들어 가격대 성능비를 높이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이렇게 선택해서 성공한 책이 <월장석>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리뷰를 참고해서 선택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서 고른 책이 <가짜 경감 듀>였다. 전체적인 평은 리뷰의 대체적인 평과 마찬가지로 재미 있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훌륭한 추리소설을 읽고난 후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이나 짜릿함은 크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나는 20세기 초반 또는 아예 빅토리아 시대쯤을 다룬 좀 옛스러운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가짜 경감 듀>가 그런 것처럼 대형 여객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더욱 재밌다. 좁은 공간이면서 일상에서 조금 벗어난 공간이기 때문에 당시 (상류층의) 풍속을 세밀하게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이런 책으로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갈색 옷을 입은 사나이>와 <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이 있다). 이책에서도 호화로운 대형 여객선에서 상류층 사람들이 노닐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멋진 추리소설이었어!'라는 평가를 내리기에는 미진한 점들이 있다. 월터와 알마가 일을 꾸미기로 결정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리디아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또 하나는 리디아의 돈을 가로채기 위해.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들이 갈라서기로 했을 때 어째서 돈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얘기가 없는걸까. 뭔가 치밀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끝머리에 등장한다는 '놀랄만한 반전'도 썩 놀랍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 때문에 작가가 설명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간 부분이 더욱 가려워진다.

동서문화사의 추리소설선집은 옆에다 잔뜩 쌓아놓고 주전부리를 하면서 한권씩 읽어치우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러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그리고 가격을 이 정도로 비싸게 붙이려면 번역을 다시 손보는 정도의 성의는 보여주는 편이 좋았을 거라는 불만이 든다. 이 책도 역시 매끄럽지 않은 번역이 꽤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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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고양이가 원하는 고양이 기르기
조사키 테츠 지음, 김영주 옮김 / 동학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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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일본인이다. 일본은 애묘인이 많은 나라이니 뭔가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일러스트레이션이 풍부하다는 것도 호감도를 높여주었다.

일단, 책은 꽤 재미있는 편이다. 여러모로 유용한 정보도 많다. 하지만 여기 쓰여 있는 것들을 다 따르기에는 불안감이 생긴다. 저자는 수의사가 아니고, 고양이를 연구하는 동물학자도 아닌 전문작가다. 저자가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의 포인트기도 하다. 말하자면, '경험으로 알아본' 고양이 잘 키우기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양이 동호회에만 가입해도 고양이를 네 마리 정도 키워온 사람은 꽤 많다. 그 사람들의 경험이 이 사람보다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내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얻은 정보와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를 목욕시킬 때 고양이 샴푸 대신 사람 샴푸를 쓰는 게 좋다는 의견은 좀 놀랍다. PH 정도만 다를 뿐이지 다른 면에서는 사람 것보다 나쁘다는데, 충분히 납득할만한 근거를 찾기 힘들었다. 고양이 샴푸를 써야 한다는 얘기는 고양이 물품 제조업체의 홍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믿기 힘들었다.

또 한가지, 고양이가 어릴 때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되지만 커서는 사람 우유를 줘도 괜찮다는 얘기도 지금까지 들어온 이야기와는 너무 달랐다. 괜찮은지 확인해보기 위해 사람 우유를 줘볼 생각은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정보를 유용했다라고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가장 인도적인 암고양이 피임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챕터는, 제목만 그럴싸하지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저자가 얘기하는 인도적인 피임법이란 호르몬제를 투여해서 임신한 것 같은 상태를 만드는 '임플란트 피임법'이다. 약제를 실리콘 속에 넣어 등쪽을 약간 절개해 넣는 것이다. 어차피 수술이 필요한 방법인 데다가 1년에 한번씩 새것으로 교체해주어야 한다. 게다가 인공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하는 것이 건강에 좋을리 없다고 생각한다. 수고양이의 경우에는 거의 모든 암컷이 중성화 수술을 하니까 남성성을 일부러 억제할 필요는 없다는 식이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저자가 중년의 남성이기 때문인지, 간간히 책 여기저기서 성차별적이거나 아저씨 같은 발언들이 등장하는 것 또한 약간 눈쌀을 찌푸리게 한다.

일본 책이기 때문에 일본의 고양이 사료나 캔 등의 이름이나 가격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것이 썩 한국의 실정에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단점도 있다. 편집자가 한국의 경우는 얼마 정도다 라는 식의 편집자주를 붙여놓긴 했지만 충분한 편은 아니다.

반면 장점도 있다. 특히 고양이가 아픈 경우에의 대처법을 쓴 부분이 아주 좋았다. 이 사람은 수의사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인 모양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도 키우는 고양이가 아플 때마다 당황해서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은 아니다. 그래서 간단한 치료법이나 대처법을 설명한 부분은 꽤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백신과 각종 검사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설명해놓은 부분도 좋다. 수의사가 권하면 뭔지도 모른 채 아픈 고양이가 낫기만을 바라며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것이 썩 개운한 마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양이는 계속 아프고, 청구서는 엄청날 때 화가 났던 경험은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정도가 아닌가.

또 약간 복잡하긴 하지만 고양이 털색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유전자 결정요인에 따라 설명해놓은 장도 흥미롭다. 숫컷은 삼색고양이가 될수 없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였는지는 몰랐던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것이다. 시판되는 사료의 문제점이나 만들어지는 방법 등을 소개해놓은 것도 꽤 흥미로웠다.

요는, 이 책은 고양이를 키우는 데 왕도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의 경험과 책이나 주변사람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기 방식을 만드는 것 밖에는 안심하고 100% 따를 수 있는 법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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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아이스 그리폰 북스 7
스티븐 백스터 지음, 김훈 옮김 / 시공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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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크림 전쟁이 한창인 세바스토폴에서 엄청난 일이 터진다. 러시아군과 대치중이던 영국군은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안티아이스'라는 이상한 물질을 이용한 폭탄을 터뜨린다. 그러나 이 폭탄은 생각보다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고, 터진 지점에서 5-6km 떨어져 있던 아군에게까지 끔찍한 결과를 불러오고 만다.

세월이 지나고 1870년. 영국은 신소재인 안티아이스를 이용해 놀랄만한 기술의 진보를 보았다(영국'만'이 그러한데, 이는 안티아이스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영국이 발견해낸 물질이기 때문이다). 외줄선로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고속철도와 거대한 육상운항선 그리고 비행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 놀라운 발명품들의 뒤에는 조사이어 트래블러라는 천재 과학자가 있다. 이 사람은 1855년의 참사에서도 폭탄을 만들어낸 사람으로 그 이후에는 실생활에 이로운 실용품들만을 만드는 데 힘써왔다.

그리고 국제정세는 이 놀라운 물질의 개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즉, 프랑스와 프로이센의 갈등으로 인한 불안한 상황 말이다. 이러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에는 그다지 관심 없는 철부지 젊으니 네드 비커스와 희대의 천재과학자 트래블러, 그리고 신문기자 홀든 세 사람은 트래블러가 발명한 비행선 '파에톤'에 갖힌 채 우주를 유영하게 된다. 소설의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 우주여행에 관한 부분은 쥘 베른의 소설 [해저2만리]를 연상케 한다(그러나 쥘 베른의 소설이 가진 것만한 매력은 없다).

짐작하겠지만 '안티아이스'라는 물질은 핵의 메타포다. 안티아이스는 외계에서 떨어진 물질로 남극지방에만 일부 존재한다. 이것이 남극에만 있는 이유는 온도가 높아지면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때문. 온도를 영하 이하로 유지해야만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한다. 아주 소량을 사용해도 커다란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안티아이스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그리고 이를 널리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발명해낸 과학자가 트래블러다.

원자폭탄을 발명,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파괴시킨 후 죄책감에 빠진 오펜하이머처럼 트래블러 역시 안티아이스 폭탄의 참사를 직접 목격한 후 인명을 살상하는 용도로는 안티아이스를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일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적인 상황이 전개되자 정치가들은 다시 한번 안티아이스 폭탄을 사용하려 하고, 이번에는 트래블러의 도움 따위는 필요치 않다. 결국 트래블러는 안티아이스를 모두 소진시키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 소설은 꽤 재미있지만 썩 추천할만 하지는 않다. 결국 하려는 얘기가 '핵'과 같은 가공할 물질의 위험성을 경고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무대를 꼭 19세기로 잡아야 했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대체소설로서의 존재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책의 편집 디자인은 꽤 마음에 든다. 표지도, 각 챕터 사이의 구분 페이지도 예쁘다. 다만, 시공 그리폰 북스가 요즘에는 하드커버로 출판되는 것 같은데, 예쁘긴 하지만 들고다니면서 보기엔 썩 좋지 않은 책 형태라는 점이 단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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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간의 동반자
제임스 서펠 지음, 윤영애 옮김 / 들녘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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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다루는 주제는 '인간은 왜 애완동물을 옆에 두는가'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돼지 같은 동물은 식용으로, 개나 고양이 등은 애완동물로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어 굳어져 왔는가, 그리고 이런 이분법(?)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무엇인가 같은 주제를 논의하고 있는 책이다. 일견 딱딱해보이는 내용이지만 책을 어렵게 쓰지는 않았다. 원래 영국에서 출판된 지 좀 된 책이고,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이런 주제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던 때라서 개론적인 수준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인듯.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이런 거다. 동물을 키운다고 하면 정서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많다. 혹은 사람보다 동물에 애정을 쏟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일이라는 질책을 받는 경우도 있다. 첫번째 얘기에 대해서는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그러한 얘기가 사실과 다름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통계적으로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폐쇄적이라는 얘기는 틀렸다는 것이다. 동물에 친근감을 가지는 사람이 다른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풀을 넓히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는 것. 물론 소수의 예외도 있음은 인정하고 있지만.

사람보다 동물에 애정을 쏟는 것을 비난하는 것은 보통 이런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세상에 얼마나 굶어죽는 사람이 많은데 동물한테 그렇게 많은 돈을 쓰며 낭비를 하느냐. 그럴 돈과 시간이 있으면 불우이웃이나 도와라.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서펠의 입장이다. 동물이 먹는 것은 사람이 먹지 못하는 것을 원료로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얘기는, 예를 들어 옷을 사입거나 다른 취미활동에 종사하는 것은 비난하지 않으면서 유독 동물에 사랑을 쏟는 행위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이유로 해서 동물에 사랑을 쏟는 것을 비난한다면 이는 전제사회와 다름없다는 얘기.

또 한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수렵사회와 농경사회에 대한 분석이다. 보통 수렵사회의 경우 동물을 사냥하거나 과일 열매 등을 채집하여 사는 생활이었기 때문에 농경사회가 더욱 풍족했을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전반적인 생활수준은 수렵사회의 경우 더 나았고, 농경사회로의 이전은 지구 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먹을 것의 부족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이행이었으며 그 이후 인간의 생활수준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수렵사회는 자연을 존중하고 심지어 경외감을 갖는 태도에 기반해 있었다면 농경사회는 자연에 대한 지배로 인간의 태도가 옮겨간 바탕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얘기들이 매우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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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 도둑
수잔 올린 지음, 김영신 외 옮김 / 현대문학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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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초도둑>은 영화를 통해 먼저 알게 되었다. [어댑테이션]은 수잔 올린의 <난초도둑>에서 출발한 영화다. '출발한' 영화라고 한 것은, 실은 영화의 내용이 책과는 거의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책의 저자인 수잔 올린을 모욕하고 우습게 만드는 장면이 많아서 이게 정말 원작이 있는 책이며 수잔 올란이 실존인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정말로 <난초도둑>과 수잔 올린이 이 세상에 나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경악스러웠고 덕분에 책을 사서 읽게 되었다. 보통은 난초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고, 다큐라고 해야 하나 르포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이런 식의 책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가 아니었더라면 보지 않았을 책이었다.

수잔 올린은 성공한 기자다. 그는 무엇에 열정적으로 빠져드는 타입의 사람은 아니다. 이성적이지만 감칠맛 나는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의 감수성도 갖추고 있는 보통의 도시인이다. 그는 어느날 난초를 훔치려다 기소된 사람들에 관한 신문기사를 읽게 되고 그를 취재하기 위해 마이애미로 날아간다. 이 책은 난초와 난초에 미친 사람들, 그리고 마이애미 파카하치 지구(난초가 많이 자라는 늪지대)에 대한 수잔 올린의 조사와 기록과 감상을 담은 책이다.

무언가에 미친 사람들. 그게 난초가 되었든 무엇이든 간에, 이런 사람들을 작가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뭔가에 집착하는 일이 거의 없는 편이고, 실은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예를 들어, 연애의 경우 집착하지 않는 게 사는 데 편하다).
수잔 올린은 그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세계가 궁금했고 그렇기 때문에 난초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이 책에는 여러 명의 난초 중독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단연 라로슈다. 라로슈라는 인물은 난초에 중독되기 전에는 거북이, 화석, 보석세공술, 거울에 중독된 바 있었다. 요컨대 무엇인가에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다. 게다가 성격은 자기중심적이며, 언제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서도 도덕적으로 그것을 보충할만한 기이한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뉴욕에 살면서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수잔 올린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아주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데는 이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세상에 대한 매혹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수잔 올린이 취재를 시작하면서 가장 보고싶어했던 난초는 속칭 유령난초라고 불리는 폴리리자 린데니다. 이건 라로슈가 파카하치 지구에서 불법으로 채취한 난초 중 하나이며, 꽃이 핀 상태를 보는 게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고 인공적으로 재배하기도 불가능한 종류의 난초다. 잎이 없이 뿌리와 줄기, 꽃으로만 이루어진 이 난초는 꽃이 피지 않았을 때는 가늘게 얽힌 뿌리만 나무둥치를 붙잡고 있을 뿐이다. 책이 끝날 때까지 올린은 결국 이 난초를 보지 못한다. 이름처럼, 유령같은 존재로 남은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 본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 난초가 매력적인 이유는 아름다운 외형 때문이 아니라 쉽게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나에게는 찾아오지 않는 열정처럼. 궁금하고 매력적이고 끌리기는 그것은 볼 수 없기 때문에 유지되는 감정이다.

책에는 많은 종류의 난초가 등장하지만 난초에 문외한이라고 해서 재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올린이 이 책을 쓰면서 난초에 대해 알게 되었듯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난초에 대해 배우게 된다. 단지 난초만이 아니라 난초중독 현상, 난초중독의 역사, 그리고 미국에서 난초가 어떻게 유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책의 또 하나의 주인공인 마이애미 파카하치 지구와 세미놀 인디언에 대한 부분도 무척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이렇게 난초를 중심으로, 그리고 라로슈를 중심으로 해서 실로 여러가지 층위를 얹혀 책을 구성했기 때문에 풍부한 읽을거리가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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