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에 둔하다. 본 것도 거의 없다. 호기심에 들어가 본 레진코믹스에서 <먹는 존재> 를 봤다. <굴> 편까지가 공개돼 있었다. <훠궈>를 보고 달라서 오히려 잘 지낼 수 있었던 친구들과 동료들이 떠올랐고 <굴> 편에서 울었다. 이건 소장해야 하는 물건이다. 당장 먹는 존재 1, 2권을 샀고 도착한 그 날 쉬지 않고 `정주행`했다. 가슴에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에피소드는 역시 <훠궈>와 <굴>이다. 이 두 편은 직장생활의 애환을 그린 넘치는 이야기들 가운데에서도 오랫동안 특별한 위치를 차지할 것 같다. 훠궈는 왜 저렇게 살까 싶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실은 직장생활이라는 고충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소화하고 있는 동료라는 것을 말한다. 섞이지 않지만 꼭 붙어 존재하는 홍탕과 백탕마냥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공간. `김광배(상사)도 훠궈에 넣었다 빼면 맛있어질까?` 공동의 적(마감, 악질적인 상사, 갑...)에 맞서 대항하다 보면 때로는 밉던 사람과도 동료애를 나누게 되는 순간을, `어우야` 하게 표현한 에피소드다.

<굴>은, 가끔씩 회사에서 추접한 인간을 목격하다 못해, 말 그대로 앞에 흐물흐물하고 끈적하게 늘어진 굴이라도 있다면 냅다 집어 던지고 싶은,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라도 여기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강렬한 분노와 탈출 욕구가 정점에 달했을 때의 순간을 시원하게 그려냈다. 주인공 양이는 상당부분 작가를 반영한 캐릭터라고 생각되지만, 회사를 십 년째 다니고 있는 독자로서 작가가 실제로 직장에서 그렇게 한 적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에피소드의 미덕은 추접한 상사의 얼굴에 굴을 집어 던지고 가래침을 뱉고 나오는 생각만해도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장면을 잠시 떠올리게 해 주고는 가차없이 현실로 돌려보내기보다는, 주인공을 그 일 이후 그대로 퇴사하게 함으로써 그 해방감을 이어간다. 이후 <먹는 존재>는 다른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며 직장생활이 아닌 다른 현실의 먹방들을 찍어가고, 두세 에피소드 만에 금방 직장물이 아니게 되어버리지만, 이 에피소드의 강렬함은 이후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에도 궁핍함으로 가려지지 않는 해방감을 지속적으로 부여하는 시작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길게 썼지만, 왜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는지 살짝 억울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는 얘기다. 부디 비프 스트로가노프나 후무스 딥 같은 같은 음식명이 등장할 때까지 오래 연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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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부터 노조 상근 일을 하게 되었다.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폭력적인 결정이었다. 그 바람에 며칠째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려, 베스트셀러에 대한 오랜 편견에도 불구하고 <미움받을 용기>까지 읽었다. 내심에 반해 내린 직업적 결정이, 혹시나 멍때리고 대충 살다가 거절을 못하고 사람에게 싫은 소리 하기 싫어 공연한 일에 휩쓸리고 마는 그런 패턴이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아니나다를까, 책은 건질 게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순간만 살아서 이게 뭔가 싶을 정도인데. 이런 책이 필요한 인간형은 따로 있을텐데, 열등 콤플렉스, 인정욕망은 어느 정도는 편집증적인 거라 그런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고 순순히 수긍할 지는 의문이 든다. 여러 모로 보아도 심리학보다는 자기계발서가 맞다.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를 이야기하기 위해 데일 카네기와 스티븐 코비를 동원하는 건 경악스럽기까지 했다(29p). 하지만, 자기계발서로 알고 읽은 것이니 지나치게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바를 순순히 받아들여 나의 노조 상근 행을 해석하자면, 어쩌면 나는 실은 이 일이 하고 싶었는데 결과가 두려워서 내심에 반한 결정이었다는 핑계를 내세우고 있는 것이 된다. 그런 단순화를 수긍하기는 어렵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직면할 힘을 주긴 하는 것 같다. 사실 미움 받을 용기는 예나 지금이나 갖고 있는데, 그냥 만사가 지독하게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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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반양장)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심리학 책 아니고 자기계발서. 타인을 너무 의식하고 자의식과 열등감이 강한 나머지 마음이 병든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대로 살고 있어서 건질 것이 없을 듯함. 저자가 철학을 전공한 것(박사 중퇴함)은 이 책의 내용과 필연적 관련성 없으니 지적인 책일 거라 기대하진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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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수의 <기업가의 방문>. 투쟁기 르포라고만 생각했는데 첫장부터 뒤렌마트의 <노부인의 방문> 인용이 나온다. 형식 면에서 매우 매력적인 책이다. 노영수라는 인물, 르포만큼이나 흥미롭다. 쌍끌이 어선 위에서 체험한 생선 공장의 논리가 두산자본이 지배하기 시작한 중앙대의 작동논리와 슬그머니 겹쳐지는 부분에선 감탄이 나온다. 


두산 자본, 평소 별 호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생각보다 훨씬 저열하고 추잡하다. 대학에 경영논리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두산은 실제로 대학을 경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어떤 철학도 없었다. 두산이 장악한 중앙대에서 '문화센터에 가도 배울 수 있을' 교양과목을 걷어내고 국토대장정으로 반질반질하게 다듬어낸 '인재'들이 그리 대단한 재목들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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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야 토카레바, <눈사태>.

처음 접하는 토카레바 작품. 무엇이 이 작가의 좋은 점일까, 생각하며 읽다가 만난 지점. 아마 끝까지 봐도 이런 지점이 아닐까 싶은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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