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여인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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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이사벨라 데스테, 루크레치아 보르자, 카테리나 스포르차 부분만을 읽었다.

   이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처녀작이고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96년에 출판된 이 책의 한국어 초판이다. 따라서 이 서평에서 인용 페이지는 내가 가진 책에 의했고, 새로 나온 양장본과 페이지가 일치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시오노 나나미는 무엇에 매료되는가? 단순하게 말하면 르네상스나 로마라고 하겠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그는 관능적인 대상에 끌린다. 그리고 그 관능은 세상의 윤리나 도덕, 그의 표현에 따르면 "비좁은 정신주의"(p.63)를 넘어서는 것에서 나온다. 예컨대 시오노 나나미가 빠져들었던 대표적인 남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루비콘 앞에서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자신을 세계 전체보다 우선시한다. 외부로부터 부여된 규칙에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을 믿으며 자신의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은 관능적이다. 

   자신만을 믿는 이 대담함의 근원은 무엇일까? 책의 1부의 주인공인 이사벨라 데스테가 그의 서재에 걸어놓았던 좌우명은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nec spe, nec metu)"였다. 저자는 이 경구에 대해 <<침묵하는 소수>>에서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내가 처녀작, 그것도 제1부부터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라는 격언을 어째서 망설이지도 않고 부제로 썼을까? 그것은 결코 주인공이 그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부제는 종종 내용 전체의 기조음을 암시하고 싶을 때 쓰는 수법이다. '꿈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라는 말은 제1부 <이사벨라 데스테>에만 한하지 않고, 아예 이것을 책 제목으로 정하자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작품 전체를 흐르고 있다. 결국 나는 그 후에도 처녀작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중심축으로 삼아 계속 글을 쓰고 있다."(<<침묵하는 소수>>, p.12)

   작가에게 있어서 자신의 글의 중심축은 곧 자신의 삶의 중심축이다. 본디 꿈과 두려움은 모두 미래에 속한 것이다.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꿈꾸고,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두려워한다. 그래서 꿈도 두려움도 없는 삶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삶, 그래서 현실만을 살아가는 삶이다. "이사벨라에게는 눈앞에 있는 현실이 곧 인생이었다. 설령 그 현실이 청결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해도, 그게 바로 인생이었다."(p.91)

   현실만을 살아가는 삶에서 기댈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다. 이런 삶에 도덕이나 윤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서양에서 도덕과 윤리의 근원은 어디였던가? 종교. 그런데 종교적인 삶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히는 삶이다. 따라서 르네상스적 삶, 현실의 삶에서 종교는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보르자 가문의 사람들이 종교적인 삶을 살았던가? 체사레 보르자는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고자 미련 없이 주홍색 법의를 벗어던졌다. 카테리나 스포르차 역시 모든 것을 잃은 다음, 현세에서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해진 다음에야 종교에 기울었다. 그래서 이런 삶은 결국 모든 것을 회의의 눈으로 바라본다. 특정한 가치를 도그마화하지 않는 삶. 모든 삶의 가치와 도덕과 윤리를 상대주의적으로 바라보는 삶. 그러나 이런 삶을 살아나갈 수 있는 것은 지극히 강인한 몇몇 사람 뿐이다. 평생 무엇에 기대지 않고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에포케epoche의 상태로 살아나갈 수 있기 위해서는, 부박하게 흔들리는 연약한 삶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가혹할 정도의 자기 단련이 요구된다. "활기차고 대담한 영혼, 냉철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합리적 정신"(p.22)에 입각해 삶을 살아나갈 때,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가 "정신과 육체, 선과 악이 명쾌하면서도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공존하는 것"(p.63)이라고 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식의 조화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이사벨라 데스테처럼 "시대를 초월하지도 않았지만 시대에 떠밀려가지도 않았던"(p.22), 주어진 시대를 충실히 살아나갔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두 여자의 삶과 대조했을 때 이는 명확해진다. 루크레치아 보르자는 떠밀려갔고, 카테리나 스포르차는 꺾였으나, 이사벨라 데스테는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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