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리처드 H. 탈러 & 카스 R. 선스타인 지음, 안진환 옮김, 최정규 감수 / 리더스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크게 넛지의 아이디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1부, 넛지의 적용이 가능한 사례의 연구인 2부와 3부, 그리고 4부의 넛지에 대한 반론의 정리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나는 1부와 4부의 비판 부분을 읽었다. 사례를 과도하게 집어 넣는 건 미국 학자들의 책의 상당수에서 보이는 현상인데, 판례법 국가라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튼, 책을 읽다보니 이 '넛지'라는 개념이 꽤 정치적인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저자들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니 하는 괴상한 논변으로 자신들이 주창한 넛징이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변호하고 있는 것일 테고. 그리고 이준구 선생님이 '한국 실정에는 그다지 맞지 않는 책'이라고 하셨던 것도 좀 이해가 된다. 한국은 개입이 많아서 문제인 나라이니까. 뭐 굳이 정치적 논쟁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한국에서? 관이 까라면 까는거지.

   신고전파 경제학은 공공재의 과소공급 등 정부실패가 일어나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장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심히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 이론적 근거: 인간의 합리성rationality. 사람의 효용은 주관적인 것이므로, 시장에서 행동하는 개별 행위주체들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가장 높은 효용을 가져다 주는 것인지를 안다. 따라서 각자의 자율적인 판단에 의해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면 개인의 효용은 극대화되며 시장은 파레토효율을 달성하므로, 쓸 데 없이 국가가 개입해서 선택가능성 중 일부를 봉쇄하는 것은 잘해봤자 본전이고 사회후생을 깎아먹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언제나 해결책은 간단하다. 선택 가능한 번들을 최대한 늘릴 것.

   행동경제학은 그렇다면 기존의 경제학과 어느 부분에서 그 시각을 달리하는가? 행동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도래한 경제학의 새로운 연구분야이지만, 행동경제학자들도 합리적 인간(책에서는 이콘econ이라고 부른다)을 가정이 유지될 경우 외부성 없는 경제에서 그들이 외적 제약 없이 선택한 결과가 파레토효율을 달성한다는 점에 의의를 제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행동경제학자는 다만 그 합리성 가정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할 뿐이다. 즉 사람은 경제학의 가정마냥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 그리고 합리성에 대한 의문의 제기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이 비합리적인 행위가 개인의 일탈적 행위가 아니라 어떤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람의 직관적 통찰이 체계적으로 삐그덕거린다는 이 휴리스틱heuristic이 있는 한, 현실 세계에서 어떠한 개입도 없이 풀어놓으면 왈라스균형은 커녕 망하기 일쑤이다.

   인지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밝혀진 휴리스틱은 합리성 가정보다는 훨씬 그럴 듯하다. 사실 이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남자의 90%는 자기 외모가 평균 이상인 줄 알고 여자의 90%는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며 클러치 상황에서의 통산타율이 평균타율에 수렴한다는 통계자료를 눈앞에 들이밀어도 클러치 히터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수두룩한가 하면 심지어 한효주의 외모가 상위 10%라는 사람도 나오는 판국이니! 그리고 그 유명한 조삼모사.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이런 인식의 에러 경향이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존재한다.

   저자들도 밝히고 있듯이 넛지는 이 행동경제학에 기반한 개념이다. 넛지는 팔꿈치로 툭 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내버려 두면 사람은 휴리스틱에 의해 비합리적 선택을 하니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툭 치자는 것이고, 선택 설계의 방식 중 하나이다. 저자들의 개념 정의: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다."(p.21)

   툭 치다니!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닌가! 정부 개입에 식겁하는 미국에서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저자들은 이러한 비판을 강하게 인식하는 것 같다. "오해는 개입주의에는 항상 강요가 수반된다는 생각이다."(p.29) 그리고 선택 설계는 개입은 하지만 강요는 없다. 넛지는 "사람들이 더 오랫동안 더 건강하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만들기 위해 선택 설계자가 그들의 행동방식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합당"(p.20)하다는 점에서 개입주의적이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바람직하지 않은 대안은 버릴 수 있어야 한다"(p.20)는 점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적이라고 한다. 요컨대 넛징은 개입이지만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므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내 생각에 이 넛지는 개입을 비판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인 후생감소를 피해나간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정책수단인 것 같다. 다만 나는 선택 설계자 쪽이 아니라 선택자 쪽이니, 넛지는 나한테 어떤 점에서 좋을까? 합리적 선택을 위해 내가 끙끙대지 않아도 설계를 잘만 따라가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저자들의 표현을 따르자면 숙고 시스템을 끙끙거리면서 쓰지 않아도 자동 시스템만 써도 휴리스틱이 알아서 보정되니까. 그런데 문제점. 넛지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선택 설계자가 선택자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선택을 설계하여야 한다. 그런데 만약 자신의 이익이나 제3자의 이익을 위해서 선택 설계를 할 경우? 책날개에 있는 인용문: "고객의 구매 의사를 묻는 것만으로도 구매율을 35% 올릴 수 있다." 이는 넛지의 일종이지만 고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판매자를 위한 것이다. 즉 휴리스틱을 악용해서 선택자를 엿먹이고 자신이 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선택 설계를 할 위험성이 분명히 있다. pp.349-352에는 이런 내용의 비판이 실려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저자들의 대응: "우리는 계획 설계가 선택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계획 설계자들이 정보를 더 많이 수집하도록 독려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쁜 계획들에 대해서는 자유주의에 입각한 검사를 수행할 것을 주장함으로써 적절하게 검토되지 않았거나 불순한 동기를 가진 계획들을 걸러내는 강력한 보호 수단을 창출하고자 한다. 계획 설계자에 대한 점검이 개인의 이기심에 좌우되는 상황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교정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pp.352-353) 결국은 개인은 이콘이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결정적으로는, 이콘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 아니 그런데, 애초에 인간이 이콘이 아니므로 넛지를 해야 한다면서 좋은 넛지와 나쁜 넛지를 구별하기 위해서는 이콘이 되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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