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당나라의 유우석이 그의 시에서 ‘전략과 용병술이 일세를 호령하였다將略兵機命世雄'고 우아하게 표현한 바와 같이 한신은 당세에 비할 바 없는 군략의 천재였다. 유방의 막하에서 그를 도와 항우를 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가져다 준 데에 그와 비견될 만한 공을 세운 사람은 거의 없으며 아마 유방이 언급한 세 공신 중 나머지 두 명, 장량과 소하 정도만이 공적에 있어서 그와 필적할 것이다. 그런데 기량과 공훈의 양면에서 한신은 최고였음에도 불구하고 천하가 평정된 이후 그는 유방의 묵인 하에 여후에게 모살되었다. 한신은 왜 팽(烹)당하였는가? 이 글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한 것이다.  

   한자오치는 pp.222-224에서 한신이 유방의 미움을 산 이유를 몇 가지 나열한다. 한신이 제나라를 멸한 후 멋대로 제나라 왕위를 승인해 달라고 유방에게 조른 일, 고릉 전투에 약속을 지키지 않고 참전하지 않다가 영토를 주겠다는 언약을 받고서야 뒤늦게 참전한 일, 그리고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고사. “이상 세 가지는 어떤 제왕도 용납할 수 없는 언행입니다. 그렇다면 한신이 마냥 억울하게 죽은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p.224) 

   나는 한신의 이러한 일화들을 읽으면서 한신이 자기과시욕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신은 소하의 천거에 의해 유방에게 발탁되기 이전에도 자신의 기량의 크기를 스스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한신은 자신의 대장군 취임 연설에서 항우의 기질에 대해 놀랍도록 예리하게 통찰한 후 천하의 형세를 분석하여 천명과 민심이 유방에게 있음을 역설하는데, 논지가 실로 정연하여 명나라 왕세정이 말한 바와 같이 제갈량이 융중에서 유비에게 말한 천하삼분지계 정도만이 그러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젊어서는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었고, 항우의 막하에서는 말직에 머물렀으며 유방에게 와서도 한동안 그러하였다. 일신의 기량은 천하를 뒤덮을 정도였고 한신 자신도 그러한 자신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으니 한신은 얼마나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싶어하였겠는가? 한신이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하였다는 것은 <회음후열전>에서 기술하고 있는, 젋었을 때의 치욕을 잊지 않고 초나라 왕으로 봉하여진 후에 자신을 가랑이 사이로 지나가게 했던 불량배를 불러 초나라의 관료에 임명한 일화를 보아도 알 수 있다. 한신의 말: “그래서 오늘날 과인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들 보았는가?”(p.215) 한신은 복수조차도 자신의 기량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했다. 

   한신은 자신의 광채를 부러 감추지 않았으며 한자오치가 인용한 고사들은 한신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다다익선의 고사에서 보듯이 한신은 자신의 주군인 유방 앞에서도 자신의 기량이 유방보다 우위에 있음을 거리낌없이 직설적으로 말하였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압도적인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저런 행동을 할 수가 없으며 한신은 실제로도 자신의 자신감을 정당화할 만한 일신의 재능을 갖추었다. 한신의 재능과 태도는 유방을 두렵게 했고, 유방이 가졌던 그 두려움이 천하를 얻은 후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한신의 자기과시가 그를 죽였다는 점은 장량과 대조해보면 더욱 확실해진다. 한신과 장량은 유방이 패업을 달성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두 사람이며 그 재능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 것이다. “막사에 앉아 전략을 짜고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정한다.”는 유방의 장량에 대한 촌평은 장량의 위대함을 간결하게 요약한다. 재능과 공적에 있어서 엇비슷하였던 두 사람이었는데 어째서 한신과 달리 장량은 천수를 누렸는가? 장량의 처세가 그를 살렸다: "조언을 하거나 건의하는 경우, 장량은 대개 유방이 먼저 물어야만 입을 열었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도록 하고 장량은 상황을 봐가면서 보충할 것이 있는지 결정했습니다. 요컨대 장량은 신중했으므로 행동은 느렸지만, 일단 행동하면 반드시 성공했습니다. 또한 조언하거나 건의할 때도 적정선에서 그치고 말았지, 유방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끝까지 밀어붙인 적이 없었습니다."(p.246) 물론 이 외에도 장량이 살아남은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장량은 애초에 필생의 목적이 자신의 조국인 한(韓)나라의 복수를 하는 것이었기에 그 이외의 목적, 그러니까 부귀공명에는 초연하였다. 그리고 장량은 군대를 직접 지휘하여 전쟁을 수행한 한신과는 달리 모사謀事였기 때문에 수중에 직접적인 병권을 쥐지 아니하였다는 점에서 유방을 위협할 요소가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신과는 달리 자신을 내세워 과시하지 않는 장량의 태도가 장량을 통일 이후의 숙청기에 살아남게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신은 자신의 재능과 기량을 감춤 없이 과시하였고 자신의 군주를 위협했다. 물론 한신은 유방을 배신할 마음이 없었다. 사마천은 <회음후열전>에서 괴통의 독립 권유를 한신이 거부한 내용을 자세하게 서술함으로써 한신에게 죄가 없음을 변호한다. 한자오치의 지적대로 한신은 자신을 등용하여 능력을 마음껏 펼치게 해준 유방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공훈을 세워 제후왕에 봉하여지는 정도로 만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신의 최종적인 목표가 그 정도였다면, 그러니까 지존의 자리가 아닌 제후의 위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면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기량을 감추어야 했다. 자신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은 일신의 재능 뿐만 아니라 지위까지도 합당한 위치에 있는 사람 뿐이다. 어쩌면 한신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가졌던 목표가 그의 기량에 비해 작은 것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능이 야망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 무너지고, 야망이 재능에 미치지 못하면 재능을 시기하는 자에 의해 몰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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