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룡 15
노기자카 타로 그림, 나가이 아키라 글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대여점에서 빌려읽음. 

   부유한 자가 살고, 가난한 자는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 보통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 목숨만 목숨이고 돈 없는 사람 목숨은 목숨이 아니냐'고 항변한다. 이 항변은 사람의 생명이 빈부에 관계 없이 동등한 가치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부자의 목숨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감정적, 정치적 호소로서의 측면을 제외하고 볼 때 이러한 논변은 타당한가? pp.160-162에서 키토의 후배 의사는 아사다에게 키토파로의 합류를 권유하면서 생명의 가치에 관하여 말하는데, 후배 의사의 말은 부자를 구하는 일의 정당성을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설득력을 갖고 옹호한다: "만약, 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똑같은 환자가 2명 있을 때 둘 중 하나밖에 구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것이 부자와 가난뱅이라면 자네는 어느 쪽을 구하겠나? 인간의 생명은 평등한 거야. 부자든, 가난뱅이든 차이가 없지. 키토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계셔. ....... 그러니까, 키토 선생님은 망설이지 않고 부자를 구하실 거야. 의료에는 돈이 들어. 그러니 목숨의 가치가 같다면 돈을 받을 수 있는 인간을 구하지 않으면 안 돼. 장래에 그 돈으로 더 많은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빈자는 돈이 없어서 죽지만, 자신의 생명의 가치가 낮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높지 않기 때문에, 즉 생명의 가치가 모두 같기에 죽는다. 이 공리주의적 통찰은 지극히 냉혹한 결론에 도달하지만 그 결론의 감정적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난한 자의 항변대로 사람의 생명은 재산의 빈부에 관계 없이 동일한 가치를 가진다. 그렇다면 현재의 하나만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하나와 장래의 추가적인 생명까지 구할 것인가? 이 냉혹한 논리를 밀고 나가면 갈림길에서 언제나 빈자는 죽을 것이며 부자는 살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것만으로 죽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된다면, 반대로 부유하다는 것때문에 감정적 언설에 밀려서 죽는 것은 부당하지 않다는 말인가?  예컨대 빈자를 죽이고 부자를 살려 그 대가로 돈을 받아 난치병 치료에 투자하는 행위를, 사람 차별한다고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가난한 자들은 이 반문들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 짧은 대화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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