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이 글의 목적은 성매매를 국가가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타당하다면 과연 어느 정도까지 국가가 개입할 수 있는가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다. 나는 올해 들어 친구들과 성매매에 대해서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들이 합의할 수 있었던 내용은 개인이 성매매를 하는 것이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매매가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면, 국가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처벌 등의 수단을 통해서 금지시켜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팽팽한 대립이 있었다. 성매매를 국가가 규제하는 것을 찬성하는 쪽은 주로 개인의 성을 사고파는 것 자체에 대한 도덕적인 불쾌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여기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예를 들어 어떤 여성이 정말 할 일도 없고 집에서 아이들은 굶는데 먹고 살기 위해서는 몸을 파는 수밖에 없어서 성매매를 했다면, 성에 대해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그를 처벌하는 것이 과연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추상적인 도덕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소위 장자연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그 동안 누구나 미루어 짐작하고 있던, 그러나 드러나지는 않았던 엔터테인먼트 산업계의 추잡한 실상을 드러내었고, '추악한 포식자'들이 약자를 어떻게 착취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그러나 성매매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이 사건의 구조는 정확히 위에서 예를 들었던 성매매의 구조와 일치한다. 사회적인 약자(신인 연예인들)이 있고, 상황은 그들을 성접대로 내몬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구조의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신인 연예인들이 원하는 배역을 줄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성접대와 교환하여 연예인들이 원하는 것을 내어준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우리는 성을 판매하는 입장에 있는 연예인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권력과 착취의 측면을 사상하고 본다면 성매매는 교환계약의 일종이다. 이 글에서 나는 개인의 몸에 대한 원칙적 처분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성매매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개인은 자기가 가진 재화를 타인이 가진 것과 교환함으로써 자신의 효용을 증대시킬 수 있다. 따라서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은 개인의 효용수준을 감퇴시킨다. 국가가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성매매의 규제를 이유로 한 제3자의 효용증가수준이 매매당사자의 효용감소수준보다 클 것, 즉 규제로 인해 사회후생의 수준이 증가될 것이 필요조건이 될 것이다. 단지 도덕적인 잣대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모든 도덕과 윤리는 궁극적으로 그 도덕공동체에 속하는 개개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는 도덕과 윤리에 대해서 이른바 결과주의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2. 자유
  
   나는 작년에 서점에서 성매매를 했던 프랑스 대학생의 수기를 서서 잠시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돈이 없어서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팔아야 했던 자신의 비참함과, 몸을 팔아 돈을 버는 과정에서 느낀 인격적 모독감과 성매매의 비인간성을 사뭇 비장한 어투로 토로하고 있었다. 나는 한편으로 그의 비참한 사정에 공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성매매가 그렇게도 인간을 타락시키고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다면 그 사실을 느꼈을 때 그만 두었다면 되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위의 여성이 결국 성매매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논의를 좀 더 간단하게 하기 위해 위 프랑스 여성(밀라디라고 하자.)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바꿔보자. 어떤 사회가 성매매에 대해 법적 규제를 가하지 않고, 행위주체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1)성매매를 하고, 대학에 진학한다(A)
2)성매매를 하지 않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다(B)

   B를 선택한 사람에게는 성매매에 대한 법적 규제는 의미가 없다. 성매매에 대해 법적 규제를 할 경우 A가 행위자에게 가져다주는 효용이 감소할 것인데, 규제가 없는 상황에서도 A를 선택하지 않고 B를 선택하였으므로 법적 규제는 행위자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법적 규제는 밀라디와 같이 B를 선택한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밀라디는 성매매 경험의 참혹함을 말하고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이다. 밀라디는 비참함을 느낄 때마다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상태와 자신의 처지를 비교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밀라디의 예산제약 밖에 있는 선택지이다. 성매매를 하고 대학에 진학한다는, 그가 실제로 선택한 행위는 성매매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행위에 비할 때 명백히 현시선호되고 있다.
 
   이제 성매매를 법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 성매매의 법적 규제는 밀라디가 A를 선택할 때의 효용을 줄일 것이다. 그 결과 밀라디는 그 자신의 선택을 B로 바꿀 수도 있고, 여전히 A를 유지할 수도 있다. 밀라디가 어떤 행위를 선택할지는 그의 선호체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밀라디가 어떤 행위를 선택하든간에 효용수준은 법적 규제 이전보다는 감소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성매매를 규제하는 것은 밀라디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 없다.

   이러한 결과는 성매매의 반대당사자인 남자의 경우에도 다를 것이 없다. 밀라디와 성매매계약을 체결한 남자에게 있어서, 성매매를 하는 행위는 그렇지 않은 행위에 비해 더 많은 효용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규제는 성매매의 효용을 낮춘다. 결국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은 당사자의 효용수준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3. 제한의 정당성

   성매매를 행하는 양당사자의 효용수준을 규제 이전에 비해 감소시킴에도 불구하고 성매매를 금지하는 것이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당사자 이외의 제3자의 효용이 성매매 금지를 통해 증가하고, 그 증가폭이 당사자의 효용의 감소폭보다 커야 할 것이다. 요컨대, 규제를 통한 사회후생수준의 증가는 성매매 금지를 정당화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보통 우리는 이런 상태를 일컬어 '공익에 의한 제한'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공익이 더 크다면 우리는 성매매를 제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 제37조 제2항은 이러한 기본권제한의 일반원칙을 선언하고 있는데,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본질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규정이 그것이다.

   동 조항은 크게 기본권제한의 사유와 그 한계를 명시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라는 세 가지를 원인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의 자유 제한으로 인한 공익이 그로 인해 감소되는 사인의 효용을 능가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동 원인을 이유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그 제한의 수준은 필요최소한도에 의하여야 하며,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동일한 수준의 제3자의 효용이 달성되는 한, 제한되는 당사자의 자유의 제한은 필요최소한도로 하는 것이 사회후생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사회후생이 금지에 의해 증가하였는지, 혹은 감소하였는지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에 있다. 현실적으로 성매매 금지로 인한 사회후생의 증감을 명확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특정한 기준을 제시한 후, 그 기준이 충족되었는지의 여부를 가지고 후생의 증가하였는지의 판단에 갈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그 기준으로 '수인가능성'이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즉 어떤 개인의 행위를 다른 사람이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면, 그 행위를 제한하는 결과 감소하는 행위자의 효용보다 증가하는 제3자의 효용이 크다고 간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제3자가 참을 수 있다면, 그 행위의 제한은 사회후생을 감소시킨다.

   그렇다면 성매매를 금지함으로써 사회후생은 증대하는가? 구체적으로, 성매매를 금지함으로써 제3자는 어떤 추가적인 효용을 얻는가? 엄격한 도덕주의자라면 성매매를 금지한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유쾌함을 얻을지도 모르나, 그 외에는 직접 성매매 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제3자가 가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효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통 성매매를 규제하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들은 성매매를 허용하게 된다면 사람들의 성에 대한 관념이 혼탁해져 사회적 혼란이 올 것이라는 점을 주된 이유로 주장하지만, 이는 미끄러진 경사면의 오류의 전형이다. 성매매를 허용한다고 한국이 소돔과 고모라 같이 될 것인지는 명확하지도 않으며,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가 된다고 하더라고 그 결과가 성매매를 허용하였기 때문에 도래한 것인지 역시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내 생각에는 성매매를 금지함으로써 사람들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실제로 성매매가 이루어짐으로써 발생하는 도덕적 불쾌감을 해소하는 것 이외에는 없는 것 같다. 물론 도덕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역시 성매매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성매매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관념은 실제로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 개인의 행위를 억제하는 구실을 한다. 성매매를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더라도, 성매매를 하지 않아도 삶을 살아가는 데에 지장이 없는 사람들은 굳이 더 쉽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유로 성매매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명품 가방이 갖고 싶어서’ 성매매를 하는 사람도 많이 생길 것이지만, 이러한 사람에 대해서는 도덕적 비난을 하면 족하다. 우리가 효도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법적인 제재를 가하진 않지만 도덕적 비난을 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런 도덕적 비난과 법적 제재는 다른 문제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의 제한은 그 행위가 수인 불가능한 피해를 제3자에게 가져오는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성매매를 금지한 결과 얻게 되는 도덕적 불쾌감의 해소라는 가치가, 신인 연예인들이나 밀라디가 성매매를 통하여 얻고자 했던 행복을 얻지 못하게 하면서까지 얻어야 할 정도로 내게 가져다주는 효용이 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4. 결론

   이 글에서 나는 성매매를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음을 논증하려고 했다. 성매매에 대한 법적 제재가 정당화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그로 인하여 사회후생이 증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성매매를 금지함으로 인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성매매는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는 도덕적 만족감의 충족인 반면, 그것을 금지함으로 인해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보통 이런 사람들은 사회의 최약 계층이다)은 삶을 살아갈 유일한 기회를 박탈당한다. 밀라디가 성매매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며, 신인 연예인이 성접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배역을 얻지 못하였을 것이다.

   물론 성매매를 하지 않으면 대학에 가지 못하거나, 배역을 얻어내지 못하는 사회적 상태는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이다. 국가와 사회는 이런 사회적 약자들이 성매매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성매매가 부도덕하다는 관념 하나 때문에 성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마저 박탈한다. 성매매를 국가와 사회가 권장할 이유는 없다. 다만 성매매를 금지해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들이 어떠한 행위도 하지 못하고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리게 하는 것보다는, 극단적인 방법이나마 선택해서 상황을 타개할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보다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결국 어떤 선택이 자기에게 가져다주는 효용을 판단하는 주체는 그 자신이니 말이다. 밀라디가 고민하면서도 결국 몸을 팔아, 그 대가로 대학에 갔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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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러브 2009-11-03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9년 1학기 경제학연습(이준구) 레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