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스탈린의 선택, 1941년 6월
존 루카치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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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이 책은 1941년 6월 22일에 대한 하나의 개요서이다. 주지하다시피 그 날은 제3제국이 소련을 침공한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일이었고, 히틀러의 그 결정은 2차 대전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저자인 존 루카치는 1939년에서부터 1941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이 얇은 책자를 통해 날렵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제목이 암시하듯이(이 책의 원제는 <<June 1941 : Hitler and Stalin>>이다.), 모든 것은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개인의 문제였다: “1941년의, 정확하게는 1941년 6월 22일의 모든 상황은 히틀러와 스탈린 두 사람에게 달려 있었다.”(p.13) 그리고 저자는 그 두 개인의 판단과 결정을 이렇게 요약한다: “1941년 6월 22일, 히틀러는 무슨일이 있어도 러시아와 전쟁을 할 생각이었으므로 러시아에 요구조건을 제시하지 않았다. ... 반면에 스탈린은 독일과의 전쟁을 한사코 원하지 않았다.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었는데도 그는 히틀러와 싸우려 들지 않았다.”(p.14)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점은 이런 것들이다. 도대체 왜 히틀러는 결국 러시아를 침공한 것일까? 역사의 결과가 말해 주듯이, 1941년 6월 21일의 ‘도르트문트’라는, 취소불가능한 명령의 발동은 결과적으로 독일을 패배로 몰아넣었다. 중부와 서부 유럽의 전 부분을 집어삼켰던 히틀러는 나폴레옹의 전례를 알면서도, 또 전선을 양면으로 벌이는 위험성을 감수하면서도 왜 굳이 러시아를 공격한 것일까? 반면, 스탈린은 왜 그렇게 멍청했을까? 처칠이 몇 개월 전부터 그렇게 스탈린에게 경고했음에도, 그리고 모든 정보가 독일이 소련을 침공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은 왜 끝까지 1939년의 리벤트로프-몰로토프 협약(흔히 독-소 불가침 조약이라고 불리는)에 매달리고 히틀러가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저자의 말대로 “2차 세계대전은 히틀러, 처칠, 스탈린, 루스벨트 같은 개인들의 판단과 취향에 영향을 받았고 결정되었다.”(p.14)면, 이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결국 2차 대전을 이해하는 데에 핵심이 된다. 그러므로 이 글의 목적은, 1939년의 독-소 불가침조약으로부터 1941년 6월의 바르바로사 작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 히틀러와 스탈린이 내린 판단과 결정의 원인을 정리해 보는 데에 있다. 거칠게 말하자면, 루카치의 견해는 둘 다 이데올로기의 광신도라기보다는 현실 정치가였다는 것이다.

2. 종래의 통설은, 히틀러가 러시아 침공을 결정하게 된 계기를 그의 이데올로기에서 찾는다. 요약하면 이렇다. 러시아 침공은 히틀러의 정치역정 초기부터 그의 핵심적인 소망이었다. 히틀러는 명백하게 공산주의를 경멸하는 골수 반공주의자였으며, 그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내용인 레벤스라움(Lebensraum)의 내용은 독일 민족의 생활권은 동부 유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컨대 리처드 오베리의 서술: "동부의 대전쟁은 늘 그가 가진 구상의 일부였다. 여기에 레벤스라움(Lebensraum), 즉 생활공간이라는 진정한 내용이 있었다. 히틀러의 계획은 몽상적인 규모를 띠었다. ... 히틀러가 "러시아는 우리의 인도가 되리라!"고 말했다고 전한다."(리처드 오베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pp.94-95) 히틀러가 가진 이데올로기적 광신성이 그를 지배하여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카치는 히틀러의 이데올로기적 광신성에서 원인을 찾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러시아 침공에 대한 히틀러의 결정은 3단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각각의 단계는 결코 불가피한 것도 또 사전에 예측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상당한 망설임 끝에 각 단계에 도달했던 것이다."(p.18) 즉 저자는 히틀러의 결정을 이데올로기적 결정이라기보다는 현실정치(Realpolitik)에 기반한 것으로 파악한다.

   루카치는 소련에 대한 히틀러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결정인 1939년의 독-소 불가침조약과 1941년의 바르바로사 작전의 개시를 모두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그전에 우선, 반공주의자로서의 히틀러: "히틀러가 공산주의자와 공산주의자를 싫어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두 가지 유보사항이 있다. ... 그것은 공산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증오와 공포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p.20) 소비에트 혁명 이후 20세기의 전간기 동안 세계 대부분의 국가는 공산주의를 경계했으며, 반공은 모든 곳에서 인기 있는 정책이었다. 이는 독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사실들을 종합해볼 때, 반공은 히틀러 통치술의 중요한 수단이었다."(p.23) 물론 히틀러가 이데올로기적으로도 공산주의를 싫어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다만 저자는 "춤꾼에게서 춤을 따로 떼어내기 어렵듯이, 히틀러의 반공적인 태도와 반공이 인기 높은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을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p.20) 요컨대 반공주의자로서의 히틀러는 효과적 통치를 위한 수단적인 포장의 성격이 상당 부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히틀러의 반공을 통치수단으로 보는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1939년의 독-소 불가침조약의 체결은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보다 중요한 목적이 생긴다면, 공산주의와의 타협도 가능하지 않겠는가?(마찬가지로 골수 반공주의자인 처칠도,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한 이후 파시즘을 저지하기 위해서 소련을 전면적으로 지원해야 함을 역설했다.) 1939년의 히틀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對)폴란드 시간표였다. 폴란드를 침공하기 위해서는 폴란드의 후방에 있는 러시아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의 시간표에 따르면 폴란드 침공일은 1939년 8월 26일(이 날이 2차 대전의 개전일이다.)이었다. 그 날 전에 관계를 결정지어야 했고, 히틀러는 스탈린이 조약 체결일로 제시한 6월 27일을 앞당겼으며, 조약은 23일에 리벤트로프와 몰로토프의 서명에 의해 체결되었다.

   독-소 불가침조약이 현실적인 이유에서 체결된 것처럼,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한 것도 저자에 의하면 이데올로기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는 실제적인 이유에 있었다. "그의 사고방식은 광기보다는 체계적 추론이 장악하고 있었다."(p.39) 그 실제적인 이유는 영국이었다. 히틀러의 판단으로는, 공습만으로 영국을 패배시킬 수는 없으며 그들의 희망을 꺾어야 했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영국의 희망은 러시아였다. 영국을 종국적으로 패배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제압하는 방법밖에 없었고, 이 판단이 1941년의 러시아 침공을 낳았다.

3. 스탈린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불분명하다. 이는 아직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철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던 소련의 자료들은 공개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리처드 오베리의 말처럼 "다달이 새로운 발견과 새로운 출판물이 나온다. 구소련의 역사는 들끓고 있다. 2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라면 명확한 역사에 접근하는 어떤 것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글쓰기는 잠정적인 견해이다."(리처드 오베리, <<스탈린과 히틀러의 전쟁>>, p.1) 루카치의 책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히틀러에 비하면, 많은 것이 아직은 베일에 싸여 있다.

   우선, 스탈린이 히틀러와의 동맹을 그렇게도 원한 이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의 납득할 만한 설명틀이 있다. "1939년에 이르러 스탈린은 정치가가 되어 있었다."(p.58) 즉 스탈린은 공산주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가라기보다는 정치가로서 움직였다. 그가 제시하였던 '일국 사회주의'나, 국가권력의 강화의도는 명백히 마르크스주의가 제시하였던 비전과 전망 -세계주의와 국가의 해체- 과는 상치되는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소련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 정치 전략인 것 같다. 소비에트 혁명 이후 러시아는 동유럽을 잃었고,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자본주의 열강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스탈린은 "러시아의 후진성과 취약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925년 '일국(一國) 사회주의'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것은 당시 공산주의 도그마나 전 세계혁명의 전파라는 노선에서 일탈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하자는 원칙의 천명이었다."(p.61)
 
   사실 소련과 제3제국이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당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현실적 상황으로 보든, 이데올로기적으로 보든 그렇다. 1)먼저 당대의 현실적 상황: "1938년과 1939년에 이르러 윈스턴 처칠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소련을 서방 국가들의 동맹에 가담시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양쪽 모두 히틀러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방이 볼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향이었다."(p.65) 파시즘은 소련에 굉장한 위협이었다.  2)게다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보면 사회주의와 파시스트는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파시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의 정의: "공산주의 초기의, 파시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의는 1935년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서 나온 것인데, 그것에 따르면 '권력을 장악한 파시즘은 가장 반동적이고 쇼비니스트적이며 제국주의적인 금융자본주의 요소의 개방적이고 테러적인 독재체제'다. 이 정의는 자본주의 해체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압력이 극단적으로 솟아오를 때 자본가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통제력을 방어하기 위해 테러에 호소하는 체제라 주장했다."(케빈 패스모어, <<파시즘>>, p.35)

   요컨대 마르크스주의적 정의에 의하면 파시즘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극단적 억압 체제인데, 파시즘이 현실적 위협이 된다면, 좀 덜 억압적인 자본주의 열강과 손을 잡고 극독을 제거하는 것이 더 합당한 판단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도 스탈린은 왜 결국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게 된 것일까? 루카치는 몇 가지 논거들을 제시한다. 1)스탈린의 국가권력 강화에 대한 열망과 히틀러에 대한 존경심, 2)독일과의 전쟁 부담을 달갑게 여기지 않음. 스탈린은 히틀러의 독일에서의 성공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서구와의 동맹이 가져올 독일과의 전쟁 가능성을 짊어지기 싫어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 왜 스탈린은 마지막까지 히틀러를 믿었는가? 심지어 모든 정보들이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할 것임을 예견하는 것이었음에도? 스탈린은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그 모든 정보와 조언들을 무시했다. 루카치의 책은 이 부분을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만 오베리의 견해는 이렇다. 1)스탈린은 소련과 같이 대군과 길게 뻗은 국경선을 가진 국가를 침공하려면 공격자에게 2배 이상의 수적 우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히틀러에게는 우위가 없었다. 2)양면 전선의 위험을 무릅쓰는 모험을 히틀러가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3)6월은 전투를 하기에 좋은 날씨를 몇 주 남겨놓지 않았다. 이러한 스탈린의 예견은 히틀러가 침공함으로서 빗나갔지만 히틀러의 패인을 꽤 정확히 짚어낸 것 같다. 독일군은 러시아에서 얼어죽었고, 양면 전선을 벌린 히틀러는 결국 패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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