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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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옹정제를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중국 독재정치의 최후의 완성자이자 실행자"(p.26)라고 평가한다. 과연 그는 끝내주는 독재군주였는데, 자신에게 천명(天命)이 있다는 신앙에 가까운 믿음 하에 그의 치세 13년간 거의 안 쉬고 하루에 네 시간씩만 자며 착실한 고시생 마냥 천하를 통치했다. 그러니까 그는 명군주의 한 이상형이다. 천하를 위해 사욕을 완전히 버리고 권력을 사용하는. 이에 미야자키는 옹정 치세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옹정제의 독재정치는 이민족 제왕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중국의 제왕들이 도저히 미치지 않을 만큼 고도의 수준에 도달하였다. 아마도 독재정치라는 틀 안에서 이 정도로 발달한 형식은 그 비슷한 예를 찾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p.197) "역사에서는 이른바 명군(名君)이라는 존재가 나타나 끊임없이 군주제의 이상과 실행방법을 고쳐나갔고, 따라서 대중으로부터 무언의 신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옹정제의 독재정치는 그 정점에 위치한다."(p.213) 

   그러나 미야자키가 이 책에서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은 옹정제에 대한 상찬이 아니라 오히려 독재제의 한계이다. 최선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문제점은 결국 군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독재군주라는 정치체제 자체의 한계일 것인데, 미야자키는 옹정제의 정치를 "선의에 넘치는 '악의의 정치' "(p.213)라고 규정한다. 미야자키의 이 언급은 선의의 행동이 반드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옹정제는 사명감을 가지고 천하만민을 위하여 13년의 치세동안 개고생을 했으나 그 결과는 "독재제를 신뢰하게 된 민중은 독재제가 아니면 다스려질 수 없도록 틀지워지는 것이었다."(p.213)라는 것이다. 결국 미야자키는 최선의 독재제라고 할지라도 체제 자체가 가지는 한계점을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에서 양 웬리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에 대해 "그의 존제는 몇 세기에 한번 일어나는 기적 같은 것"이라고 평한 적이 있는데, 나는 <<옹정제>>을 읽고 다나카 요시키가 이 책을 읽었으리라고 거의 확신했다. 양 웬리의 입을 통한 이 언급은 일차적으로는 군주 개인의 능력에 기대는 정치의 한계점-그러니까 군주의 능력은 사람마다 들쑥날쑥하므로(연산군과 세종의 차이를 생각하라) 그에 의존하는 정체도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지만, 더 나아가 미야자키가 지적한 점까지 건드리고 있다. 농민이 가뭄이 들을 때 물을 끌어오려고 노력하기보다 하늘을 쳐다보며 기우제를 지내는 것처럼 군주제 하에서 신민은 삶이 부박하고 힘겨울 때 그 스스로 문제에 맞서기보다는 명군주의 출현이라는 기적을 바란다. 군주제 하에서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으로서의 인간은 거세되고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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