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톨로지 (스페셜 에디션, 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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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 전'편집'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건과 의미를 각자의 방식으로 편집한다. 이 같은 ‘편집의 방법론’을 통틀어 나는 ‘에디톨로지’라고 명명한다. - < 에디톨로지(SE), 김정운 > 중에서

'에디톨로지', 뭔가 엄청난 게 있어 보이는 제목이지만 핵심 키워드는 편집이다. 책 전반에 걸친 이야기는 기승 전'편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편집으로 이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 세상에 영향을 주고 싶다면 편집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나'답게 살기 위해서도 편집이 필요하다. 이건 여기서 다루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으니 패스~!

부제인 '창조는 편집이다.'가 책의 핵심이다. 인간은 무에서 유를 만들 수 없다. 오직 기존의 것들을 기반으로 편집을 통해 새로워 보이는 것을 만들 뿐이다. 그러니 뭔가 낯설고 기발한 것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것을 알수록 유리하다.


'암기'에서 '검색'으로

과거에는 여러 가지 기술적, 사회적 제약으로 '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었다. 누구나 맘대로 기술과 문자와 문서에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정보 자체가 권력이 아닌 세상이다. 정보 독점은 이제 불가능하다. 세상의 권력은 정보를 엮어내는 편집자들의 몫이다. - < 에디톨로지(SE), 김정운 > 중에서

지금은 과거 소수에게 권력을 쥐여주던 귀한 지식과 정보들이 1년 365일 온종일 사이버 공간에 떠 있다. 한국의 경우 국민 대다수가 문자를 읽을 줄 알며 책이나 문서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제 지식과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까지만 해도 지식이 많은 사람은 대접받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사람들은 그 사람부터 찾았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뭔가가 궁금하다? 손에 쥔 폰으로 검색하면 그만이다. 이미 데이터는 넘쳐난다. 앞으로 많이 암기하고 있는 거로 경쟁하다간 쪽박찰 일만 남는다. 인간의 뇌가 암기로 인터넷과 AI랑 경쟁이 될 리가 없으니 말이다.

정보가 부족한 세상이 아니다. 정보는 넘쳐난다.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세상이다. - < 에디톨로지(SE), 김정운 > 중에서


모든 개인은 예비 창조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살아가며 접하는 모든 자극(데이터)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편집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각자의 방식으로 편집할 수 있다'라고 하자.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많은 이들이 남이 한 편집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의문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행위다. 의문이 생기는 순간 그림의 자극들은 ‘정보’의 수준으로 올라온다. 의문을 가져야 ‘지식’ 구성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질문 없는 삶이 가장 한심한 거다. 도무지 알고 싶은 게 없으니 그 어떤 의미 부여도 안 되는 까닭이다. - < 에디톨로지(SE), 김정운 > 중에서

문제는 편집이야

이렇게 좋은 시대가 있을까 싶다. 과거와 비교해 데이터에 접근하기가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쉽기만 한가? 저렴하기까지 하다. 가장 가까운 예로 음악이나 영화의 경우를 보자. 과거 특정 음반이나 영화를 감상하기 위해 들여야 했던 시간과 돈을 생각하면 지금은 그저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확실히 과거엔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나만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 편집이 문제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다.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 < 에디톨로지(SE), 김정운 > 중에서

누구나 편집을 통해 자신만의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시대다. 이 좋은 시절을 살아가면서 고작 나만의 음악 리스트만 세상에 내놓고 갈 것인가? 소비뿐만 아니라 창조(생산)에서도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되는 건 어떤가?

마무으리

저자도 책에서 밝히지만 다 읽을 필요 없다. 개인적으로 챕터3은 진짜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편집하는 방법을 알고 싶은 분들께는 비추다. 그런 내용 거의 없다. 그냥 이것도 저것도 요것도 다 편집의 결과물이라는 내용만 들어있으니 실용적인 정보가 아닌 관련 지식에만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별 다섯 개 만점에 넷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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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 - 미분부터 이해하면 수학공부가 즐거워진다
장지웅 지음, 김지혜 감수 / 미디어숲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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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추구하는 방향은 '미분 공부'가 아닌 '미분 이야기'이다. (중략)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그리고 미분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미분 입문서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막연하게 수학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나 수학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미분을 이해하는 과정은 이미 포기한 많은 수학 개념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 10p

물리학에 점점 관심이 커지다 보니 수학에도 다시 관심이 생겼다. 전형적인 수포자이기에 초딩 수학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려던 차에 이 책 <개미가 알려주는 가장 쉬운 미분 수업>(장지웅, 미디어숲, 2021)의 서평 제안을 받았다. 듣기만 해도 으스스한 미분이 소재라서 안 읽을 생각이었지만 '수포자도 단숨에 이해하는 미분 따라잡기'라는 문구에 혹해서 냅다 한다고 했다.

처음 배우는 수학 개념은 앞서 살펴본 영시와 같이 정확한 번역이 우선 되어야 한다. (중략) 처음 접하는 수학용어, 기호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필수다. (중략) 제대로 읽을 수 없다면 수학 선생님의 설명과 자신이 수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리될 수밖에 없다. - 21p

쉽다, 흥미롭다. 수학 공식 알레르기나 트라우마만 없으면 정말 누구나 미분을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다. 수학 시간에 농땡이만 피운 필자도 이해했으니 웬만한 분들은 다 이해 가능할 듯. 그러니 학창 시절에 미분을 배웠지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수포자도 이 책을 통해 미분의 개념 설명은 물론 간단한 함수 정도는 미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미분을 기억 못 할 뿐만 아니라 함수 역시도 기억 못 하는 근본 있는(?) 수포자는 미분의 개념은 이해해도 계산은 못 할 것이다.ㅎ 어찌 되었든 난 초딩 수학부터 시작하러 간다. 200페이지로 분량도 적고 설명도 쉬우니 수포자 졸업을 원하는 분들께 권한다.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넷 반.

※ 출판사를 통해 책'만' 제공받고 리뷰는 제멋대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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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영화리뷰의 달인이 되었을까?
나현갑(지무비) 외 지음 / 투나미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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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무비, 달콤살벌한 영화이야기, 미스김씨네. 영화 유튜버 3인의 글을 담았다. 읽은 이유는 영화리뷰의 달인인 저자분들이 영화 리뷰를 작성하는 방식에 대해 알고 싶어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없거나 너무 빈약했다. 책의 초점은 '영화' 보다. '유튜브 운영'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유튜브 운영 내용 역시 빈약하다.

분량 자체가 짧아서 읽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시간이 좀 아깝다.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다. 3명은 너무 애매하다. 어차피 내용 빈약한 거 영화 유튜버 한 10명 해서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나 유튜브 시작 또는 운영 간 에피소드를 짧게 담는 게 어땠을까.

지무비

참고로 지무비의 글이 상대적으로 가장 좋고 유익했다. 하지만 내가 원한 정보는 못 얻었다.


달콤살벌한 영화이야기

적절한 유머가 리뷰의 대중성을 높여준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필자처럼 기본적인 재능이 없다면 차라리 시도하지 않는 편이 독자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유머만 독자에게 재미를 주는 건 아니다.

그리고 유머도 재능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글이나 영상을 많이 보고 연구하는 등.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다수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자제하는 게 현명하다.

영화를 몇 편 추천해준다. 근데 설명이 너무 짧다. 그래도 영화리뷰의 달인인데 어느 정도 분량의 전문적 리뷰를 실어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미스김씨네

역시 추천 영화가 있다. 설명에 사진도 많고 글도 길어서 호감이 생겼지만 결국 본인 영상의 스크립트였었어 실망...




공저자 형식이라 책임감이 부족했던 걸까... 편집도 글도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 혹시나 노파심에 말씀드리자면 이 리뷰는 해당 책에 국한된 것이며 저자분들의 영화 콘텐츠와는 무관함을 미리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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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진주만
마이클 베이 감독, 마코 외 출연 / 월트디즈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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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경비행기 한 대가 하늘을 가른다. 이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스 짐머의 OST를 안 들어 본 사람은 없다는 그 유명한 테마곡이 함께 흐른다. 들어도 들어도 너무나 아름다운 선율.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는 곡이다.

실전이 필요해

파일럿을 꿈꾸던 두 사고뭉치 꼬마 레이프(벤 애플렉)와 대니(조쉬 하트넷)는 늠름한 미 공군의 장교가 되어있다. 45,000달러짜리 비행기로 홀짝 비행을 할 정도로 대담함과 실력을 갖춘 재원이지만... 비행 훈련 경력 2년 차인 건 안 비밀이다.

둘 중 특히 레이프의 비행 실력이 더 뛰어난가 보다. 독일의 공습을 막느라 여념이 없을 영국 공군에서 레이프에게 지원을 요청할 정도면 말이다. 당연히 실전 경험이 간절했던 그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영국의 지원 요청을 수락한다.

당연히 대니는 서로 떨어지는 게 싫다. 게다가 이제 막 사랑을 꽃피운 에블린은? 결국 절친과 연인을 남겨두고 영국으로 간 레이프,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는데...

사랑이 필요해

이런 유의 영화나 TV 시리즈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클리셰인 간호 장교들과의 썸씽. 하지만 신체 검사장에서 그들(레이프와 에블린의 동료들)의 이어짐이 뻔하지 않고 코믹하게 그려져서 좋았다. 기차가 증기를 뿜으며 달리는 장면부터 이어지는 신체검사 시퀀스와 건물 앞 벤치에서의 달콤살벌한(?) 키스 신은 몇 번을 다시 돌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누리는 행복한 장면들에 같이 즐거워하다 곧 그들 앞에 닥칠 딥빡치는 사건을 생각하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엄습해 온다.

수술이 필요해

마이클 베이 감독 연출작인 <진주만>(2001)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다룬 작품이다. 러닝타임이 177분으로 상당히 길지만 다행히(?) 체감시간은 2시간 반 정도로 참고 볼만하다.

작품과 따로 노는 듯한 '진주만의 흑인 영웅 도리스 밀러' 분량을 쳐내고, 진주만 공습 때 두 주인공이 전투기로 반격하는 부분도 과감히 덜어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분량을 줄인 만큼 주연 3인방의 삼각관계 이벤트에 좀 더 설득력 있게 살을 붙여주거나 가능하면 아예 수술을 하는 거다. 거기다 진주만 공습보다 마지막 두리틀 공습에 힘을 더 줬다면 좀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한다.

비교적 긴 시간임에도 지루함 없이 보긴 했지만... 자연스럽지 않았던 대니와 에블린의 관계 진전,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닌 단지 대니를 죽이기 위해 가져다 쓴 듯 느껴지는 두리틀 공습 시퀀스는 뭔가 하다 만 듯한 허무함이 밀려왔다.

전쟁이 필요해?

앞서도 말했지만, 진주만 공습에다 준 힘 좀 빼서 도리 틀 공습에다 보탰으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아무튼 요 두 부분이 아쉽다. 배우들의 연기는 다 좋았고 공습 장면도 나름 실감 나게 잘 연출했다. 영웅 놀이 자제하고 전쟁의 폭력성과 비참함에 포커스를 둔 점도 마음에 든다.

벤 애플렉과 케이트 베킨세일은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보는 내내 샘나서 죽는 줄.ㅋ 케이트는 친숙한 얼굴이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언더월드>의 셀렌이었음.ㅎ 그건 그렇고 벤은 뱀파이언가? 왜 안 늙지??? ㅡ.ㅡ^

일본이 필요해?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일본인들의 사고는 정말 이해 불가다. 아무리 미국이 원유 공급을 차단해서 막다른 골목에 섰다기로서니 거기서 내린다는 판단이 기습, 그것도 미국을.ㅎ 가만 보면 이런 유의 극단적 자학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최근 백신 회사들의 상술이 맘에 안 든다며 백신을 맞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판단도 같은 맥락이다. 아무리 원수 같은 상대라지만 그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피해가 눈에 훤히 보임에도 행동에 옮기는 것이 과연 현명한 행동인지 아닌지는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마무리가 필요해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별 넷. 대니와 에블린의 관계가 급격히 후끈해질 즈음부터 집중이 흐트러졌다. 미국에 있어 워낙 중요한 소재다 보니 이것저것 다 담으려다가 되려 이것저것 다 애매해진 게 아닐까. 이 작품도 나쁘지 않지만 진주만 공습 관련 영화를 굳이 보고 싶다면 2019년 작품인 <미드웨이>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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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의 샘 2 - [초특가판]
다니엘 오떼이유 외 감독, 엠마누엘 베아르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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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의 운명의 힘. 들어도 들어도 명곡이다. 이번엔 오프닝에서 하프시코드로 연주되니 전편의 하모니카와는 또 다른 종류의 구슬픔이 전해진다. 그래도 하모니카가 더 낫다. 그래도 하모니카는 좀 더 따뜻함이 있기 때문이다.

마농의 샘 덕분에 돈을 불리고 있는 위골랭(다니엘 오떼유)은 아주 그냥 신났다.


예상치 못한 의외의 설정들

어머니를 닮은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란 마농(엠마누엘 베아르)의 첫 등장은 지질에 관심이 많은 교사 베르나르(이폴리트 지라르도)와의 만남이다. 베르나르는 분량은 짧지만 2부의 스토리 진행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농이 당연히(?) 어머니를 따라 도시로 나가 살 것이라 생각했지만 더 생각해보니 영화의 설정이 더 현실적인 것 같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사람에 대한 신물이 날 경험을 했으니 오히려 사람을 더 멀리하는게 맞는 듯. 마침 산속에 세입자가 있다는 설정도 있었으니 개연성 굿.

개인의 희생과 공동체의 안정

동네 사람들은 마농의 아빠가 '누구' 때문에 '왜' 죽었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본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지 않는 한 간섭하지 않는다. 마을과 본인 일상의 안정을 위해 불의에 간섭하지 않고 방관하는 것 정녕 공동체에 유익한 것일까?

천둥과 폭우가 치는 밤 홀로 비를 맞으며 아버지의 묘지 앞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는 마농.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삶을 상상하며 눈시울이 붉어질 뻔했는데... 연주하는 연기가 너무 티 나서 눈물이 싹 말랐다.ㅎ

짐승과 인간의 사랑

우연히 위골랭은 산속에서 목욕하는 마농의 '나체'와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나체를 강조한 것을 보면 마농에 대한 위골랭의 그것은 단지 욕망일 뿐이란 걸 의미하는 것 같다. 샘에 이은 또 하나의 소유욕. 번식을 위한 짝짓기. 그것에 타자에 대한 존중, 인간성, 양심 따윈 없다.

한 번도 마농의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이미 꿈에 그녀가 나올 정도로 호감을 느끼게 된 베르나르와 너무나 대립된다. 그는 위골랭과는 정반대로 마농을 소유물이 아닌 인격체로 대하고 있다.

위골랭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었다면 마농에 대한 감정에 오히려 더욱더 괴로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개 짐승일 뿐인 그는 좋~다고 득도 없는 어설픈 구애나 하고 앉았다. 혹자는 위골랭을 부끄럼 많고 순진한 시골 청년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순진한 게 아니라 그냥 사람이 아니무니다. 인간이라면 소중히 여겨야 할 부분이 그에겐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니 말이다.


욕망의 쳇바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샘만 확보해서 카네이션 재배만 잘 되면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다. 그래서 한 가장의 생명을 뺏고 가정을 파탄 내는 것마저 실행에 옮겼다. 그런 그가 이제 다음 목표가 생겼고 그 목표(마농)를 소유하지 못하자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이렇듯 욕망에 휘둘리면 삶의 대부분이 불행할 뿐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온전히 내 것이란 없으니까. 심지어 내 몸뚱이와 감정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양의 존재 이유

욕망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교양이다. 교양이란 인문학에 대한 이해 정도다. 얼 만큼 교양이 있는가는 얼마만큼 인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느냐다. 인문학은 쉽게 말해 나(인간)와 타자(나 이외의 모든 존재),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이다. 물론 교양이 모든 욕망을 없애주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그 욕망에 대해 생각할 재료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극 중 진정한 교양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은 보여지는 바로 마농과 베르나르 둘뿐이다. 그들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 목을 매지 않는다. 직접 소유하지 않아도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문학을 통해 쌓은 교양 덕분일 것이다.

누가 누구보고 불쌍하다 그래?

마농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양치기를 하며 살지만, 지식인이었던 '장'의 딸답게 책에서 다양한 지식을 쌓는다. 그리고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를 닮아 춤과 음악을 즐긴다. 겉으로 보기엔 딱하고 한심해 보이는 그녀의 삶이지만 계속 지켜보면서 드는 생각은 되려 소비에 중독된 현대인의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여유 없는 삶이 더 딱해 보인다.

어필할 것이 돈밖에 없는

위골랭은 마농을 베르나르에게 뺏길 것 같으니 그제서야 한다는 짓이 돈 자랑이다. 평소와 전혀 다른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거짓말을 쏟아내며 돈 자랑을 하는 남자. 진짜 최악이다. 어필할 것이 돈밖에 없는 사람, 돈이면 무슨짓이든 하는 사람이 날 너무나 사랑한다고 외친다. 물론 돈 많은 상대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의견도 존중한다. 가치의 우선순위가 서로 다를 뿐이니까. 하지만 '소유'에 관심 없는 상대를 대할 땐 그런 행동은 분명 최악 중의 최악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마농을 악녀로 만들지 않은 부분이다. 필자는 2부 시작부터 거대한 복수를 꿈꾸며 계획을 착실히 준비해나가는 마농의 모습을 예상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한국식 막장 스토리에 너무 찌든 탓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그녀는 우연히 진실을 모두 알게 되고 이 때문에 매우 소박한(?) 복수를 실행한다.


소박한 복수의 시작

마을의 샘이 막히자 그제야 난리가 난 마을 사람들. 본인의 목에 칼이 들어오자 드디어 반응을 그것도 오스카급 리액션을 보여준다. 인상적인 장면은 어렵게 모셔온 농공 전문가의 설명을 알아들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건 재앙이다'라는 외침과 빨리 물이 나오게 하라는 억지뿐이다.

이 장면은 교양 없는 인간, '개인'이란 인식이 없었던 중세 이전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와중에 백미는 바로 위골랭의 대사다. 물이 다시 나오게만 해준다면 그게 무엇이든(원 대사에선 'progress') 찬성할 거고, 내 돈 100프랑을 전부 줄 거라는 것. 모든 것 위에 돈과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 위골랭을 아주 잘 대변하는 대사다.

많이 알기만 하는 지식인(헛똑똑이) = 일자 무식자

이 작품에선 지식인 또한 풍자한다. 지식인들은 배우지 못한 다른 이들을 줄곧 무시한다. 그런 그들은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 역시 무시하다가 샘이 막히자 태세 전환하고 성당에 들어온다. 지식인과 교양인은 다르다. 지식이 많을수록 교양인일 확률은 높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종교인이라고 다를까? 신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역시 마농의 일을 무시하다 결국 샘이 막히고서야 마농에게 미사에 함께 할 것을 부탁한다. 그들 역시 마을 사람의 일부일 뿐이다.

어쨌든 약간의 반전을 포함해 욕망의 노예였던 위골랭과 빠뻬의 최후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결국은 소유다. 소유가 최우선인 사람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게 진짜 나를 버릴만한 일일까?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 내가 그것을 가질 수 없어서 나를 버린다니... 내가 그것을 소유할 수 있어서 소중한 게 아니다. 이미 존재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마무으리

소유와 욕망, 교양과 인간관계에 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오래전 영화고 친숙하지 않은 프랑스 영화였지만 전혀 지겹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다. 이 리뷰를 읽고 '필자 넌 그럼 전혀 욕심 없는 똑똑하고 지혜로운 놈이냐?'라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럴 리가 있나.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교양을 쌓기 위해 남들보다 좀 더 노력할 뿐이다. 나와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져가며 소비와 소유 외에 또 다른 삶의 가치와 행복을 찾을 뿐이다. 내 말은 살면서 '돈'만, '소유'만 외치지 말자는 거다.

교양을 이야기하면서 기본적인 돈 공부를 천시하는 것 역시 모순이다. 돈 또한 우리 세상을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니, 말이다.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넷 반. 1부 2부 합치면 다섯 개 주고 싶다. 1부, 2부 두 편 합쳐 약 4시간 정도 되니 주말에 연달아 보시길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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