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부족 동물이다. 인간은 비교적 작은 그룹에 속해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 <죽음에도 지혜가 팔요하다>

언제든 지구 반대편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시대지만, 정작 실제 얼굴을 마주할 친구는 없는 아이러니.

출산율은 세계 최하위고, 남녀노소를 막론 고독사가 일상처럼 되어버린 나라.
어느 나라보다 더 놀기 좋고 살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놓고도, 정작 자국민들은 무한 경쟁에 치여 삶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아이러니.

아마 앞으로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쉽게 나아지진 않을 것 같아. 그렇지?
그래도 나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
절대 혼자 외롭게 살다가 고독사하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언젠가는 꼭, 적당한 크기의 포근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
경쟁에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과 함께 재충전할 수 있는 그런 모임을 만들거나, 참여하고 싶어.

정말, 누구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많이 만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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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채널 운영을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하면야 당연히 좋지.

근데 솔직히 경험이 많이 있거나 담당 인력이 있는 기업이 아닌 이상 그게 가능한지 의문이야.

내 주변에도 제대로 할 거라면서 1년 넘게 첫 콘텐츠도 못 올린 사람이 진짜 한 둘이 아냐;;;

만일 첫 도전이라면 그냥 아무거나 올려보는 걸 추천해.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

어차피 첨엔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ㅎ

일단 올리면서 배워가는 게 개인에겐 가장 좋은 방법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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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AI로 글쓰기 판이 뒤집히는 걸 보면서, 솔직히 좀 무서웠어.
‘이게 맞는 걸까?’, ‘진짜 이렇게 써도 되는 거야?’ 하루에도 몇 번씩 의심했지.

근데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김성우, 유유, 2024)라는 책을 읽다가, 90년대 얘기가 나오는 거야.
원고지에 손글씨 쓰고, 타자기 두드리던 시절에서 워드프로세서로 넘어가던 그 시점 말이야.

가만 생각해보면, 그때도 사람들은 ‘이제 글쓰기 망했다’ 이런 생각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결국 다 적응했고, 글쓰기는 여전히 살아남았잖아.

그러고 보니, 지금 이 변화도 그렇게까지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다 싶더라.
AI한테 도움 받는 건 당연해지겠지만, 결국 평균 이상의 글을 쓰려면
나만의 글쓰기 근육은 계속 키워야 하는 것 같아.

그게 진짜 AI 시대에 우리가 가져야 할 경쟁력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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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여기저기서 AI가 대세라니까 챗gpt랑 몇 번 대화를 시도하세요.

그러다 이 녀석이 엉뚱한 소리를 하며 기대한 결과를 주지 못하니까 ‘이런 멍청한 놈을 어따 써?‘라며 관심을 끄시는 거예요. ㅜ.ㅜ

🔖˝인공지능을 부려 먹을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말을 유심히 듣고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마음에 새기는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요?˝ - 265p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김성우, 유유, 2024)

명령이 아니라 🫂소통하고자 하면 결과가 완전 달라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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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5-04-19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 틈에님 말씀 처럼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에 따라 인공지능의 가치가 달라 지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리함에 의존하지 않는 고민도 함께 해야 될 것 같더라구요. 행복하고 좋은 주말 되세요!

세상틈에 2025-04-20 12:36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앞으론 ai에 의지만 하는 사람과 최대한 잘 활용하기 위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사람으로 나뉠 것 같아요. 전자는 퇴화하고 후자는 오히려 더 진화하겠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한강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약 10년 전 <소년이 온다>(2014, 창비)였다. 그때 느꼈던 분노와 울컥함이 쉽게 잊히지 않아 이후 2번이나 더 읽었다.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한 뒤 <작별하지 않는다>(2021, 문학동네)를 만났고, 말로는 옮기기 어려운 상실이 문장을 타고 파도처럼 끊임없이 다가오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나에겐 <소년이 온다>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드디어 올해, 기대했던 <채식주의자>(2007, 창비)를 펼쳤다. 세 작품 중 가장 복잡하면서, 가장 조용했고, 동시에 가장 강렬했다.




<채식주의자>는 어떤 이야기?



이 작품은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세 편의 중편(채식주의자 - 몽고반점 - 나무 불꽃)이 연결된 구성으로, 한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채식을 선언하며 사회와 단절되고, 결국 자기 존재마저 거부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채식’은 그저 저항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나에게 이 작품은 삶의 전방위에서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 ‘침묵 속 몸의 저항’을 통해 살아남으려 발버둥 친 인물의 생존기다.


사실 난 제목 때문에 오해했던 독자 중 한 명이다. 건강 때문에 거의 채식 위주로 먹으면서도 채식 자체엔 관심이 없어서 오랫동안 이 책을 미뤘었다. 읽고 나서 생각하니 그 선택이 너무 아쉽다. 





읽는 동안, 마음이 서서히 바스러지다


이야기는 영혜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그녀는 작품 내내 자신의 목소리를 거의 내지 않는다. 독자는 그녀의 변화와 행위를 주변 사람들(남편, 형부, 언니)의 시선으로만 접하게 된다.


그녀를 관찰하는 동안 한국 사회에 팽배한 크고 작은 억압과 강요, 유무형의 폭력들이 때로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때로는 기괴하고 강렬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가 어릴 때부터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은 언젠가 ‘몸’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개인에 따라 멘탈의 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봐야 결국 사람, 갭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한국에서 사는 동안 내 안의 억눌렸던 감정들을 보듬게 되었다.






<채식주의자>가 나에게 던진 질문



우리는 언제부터 남과 스스로를 억압해왔나?

‘정상‘이라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비정상‘일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저항이 왜 타인의 눈에 마뜩잖게, 아니꼽게 보이는 걸까?



<채식주의자>는 위의 질문들을 내게 던졌다. 물론 말로 직접 설명하지 않고, 그저 이야기로, 장면으로, 문장이 주는 생각의 여백으로 말이다.


그래서 더 아프게 더 무겁게, 더 오래 여운이 남는 것 같다.





이런 분께 추천해요


한강 작가의 작품을 딱 하나만 읽겠다는 분

본인이 사회 부적응자라는 생각에 고통받는 분

여운이 길고 깊게 남는 소설을 찾는 분

문장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기를 선호하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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