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14일... 존 파울즈 <프랑스 중위의 여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기의 커다란 비극 가운데 하나는 시간 부족이다. 과학에 대한 사심 없는 열정이나 지혜 때문이 아니라 시간 자체에 대한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독창성과 사회의 소득 가운데 큰 몫을, 일을 보다 신속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찾는 데 투자하고 있다. 마치 인류의 긍극적인 목적이 완전한 인간성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번갯불에 가까워지는 것이기나 한 것처럼. 그러나 찰스에게, 또한 시대 사회적으로 그의 동료였던 사람들 대부분에게, 존재를 지배하는 시간의 박자는 분명 ‘아다지오’였다. 문제는 한정된 시간 속에 하고 싶은 일을 모두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남아도는 여가의 드넓은 광장을 채우기 위해 일을 일부러 질질 끄는 것이었다.”


“한때 바다였다가 지금은 물이 빠져나가 버린 곳에서 주운 암모나이트 화석에는 9천만 년 전의 지각변동이 극도로 압축되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검은 번갯불처럼 생생한 통찰 속에서 그는 모든 생명의 대등함을 깨달았다. 진화는 완전함을 향한 수직적 상승이 아니라 수평적 이동이다. 시간은 중대한 오류였다. 존재에는 역사가 없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이고, 언제나 같은 악마적 기계에 사로잡혀 있다. 현실이 눈에 뜨이지 않도록 인간이 세운 그 화려한 장막들 - 역사, 종교, 의무, 사회적 지위 -은 모두 환상, 아편에 중독되었을 때 보이는 환각에 불과하다.”


"19세기- 이 시공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격할 수 있을까?

- 여자는 신성시되었지만 여자를 한두 시간 원하면 몇 파운드, 아니 몇 실링으로 열세 살짜리 소녀를 살 수 있었다.

- 영국사 전반에 걸쳐 세워진 것보다 더 많은 교회가 세워졌지만 런던에서는 60가구당 하나가 매춘 장소였다.

- 모든 설교단과 신문 사설과 공공집회 연설에서는 결혼의 신성함이 강력히 주창되었지만, 수많은 저명인가의 사생활은 온갖 추문으로 얼룩져 있었다.

- 형벌 제도가 점차 인간다워졌지만, 채찍질이 하도 유행하는 바람에 사드 후작의 조상은 분명 영국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진지하게 조사에 착수한 프랑스 인이 있을 정도였다.

- 여자들은 몸을 꽁꽁 감추고 다녔지만 조각가들은 나부상을 제작하는 솜씨로 능력을 평가받았다.

- 뛰어난 문학작품 가운데 키스 이상의 관능적 장면을 묘사한 작품은 소설이나 희곡이나 시를 불문하고 단 한 편도 없었고, 보들러 박사는 대중의 은인으로 여겨졌지만 빅토리아 시대만큼 외설 문학이 양산된 적도 없었다.

- 배설 기능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고, 위생 설비는 너무 원시적이어서 끊임없이 배설물을 상기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집이나 거리는 거의 없었다.

- 여자는 오르가슴을 맛볼 수 없다는 설이 보편적으로 주장되었지만, 창녀들은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인간 활동의 다른 모든 분야에서는 거대한 진보와 해방이 이루어졌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근본적인 측면에서는 횡포만이 존재했다."


“찰스는 적자생존의 원칙이 만물의 기본 원리라고 믿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라임에서 그날 밤 그로건 박사와 낙천주의에 물든 토론을 벌일 때 이야기한 바 있는 적자생존의 한 측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은 자기 분석 능력이야말로 인간에게 부여된 독특한 특권이라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바로 여기서 두 사람은 인간의 자유 의지가 위험에 처해 있지 않다는 증거를 보았다. 프리먼 씨조차 동의했듯이 인간은 생존을 위해 변화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2005년 3월 20일...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우리의 임상대상은 여러분도 보다시피 강제적으로 착한 일을 하게끔 되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나쁜 일을 하도록 강요당해서 말입니다. 폭력적으로 행동하려는 의도에 동반해서 육체적 괴로움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이 고통을 물리치기 위해서 임상 대상은 극적으로 정반대되는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브로드스키 박사


“그 박사 놈들이 술수를 부린 탓에 감정에 호소하는 음악을 들으면 폭력을 보거나 폭력을 저지르고 싶을 때처럼 아프게 됐지. 그때 본 폭력이 가득 찬 영화에 음악이 같이 나왔기 때문이지. 특히 난 베토벤 5번의 마지막 알장이 그 끔찍한 나치 영화 속에 나왔다는 걸 기억했지. 그런데 지금은 아름다운 모차르트도 끔찍하게 들리는 거야. 난 가게를 뛰쳐나갔고, 십 대 놈들은 나를 비웃었고, 계산대 지키는 놈은 어이어이 하고 소리쳤지. 그러나 난 신경도 쓰지 않고 주위를 살필 새도 없이 비틀거리면서 길을 건넜고, 길모퉁이를 돌아 코로바 밀크바로 갔지.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넌, 내 생각에도, 죄를 저질렀어. 그렇지만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 심했어. 저들은 너를 인간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만들었어. 네겐 선택할 권리가 더 이상 없는 거지. 넌 사회에서 용납되는 행동만 하게 되었어. 착한 일만 할 수 있는 작은 기계지. 이제 똑똑히 알겠구나. 조건반사 기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음악이나 성적인 행동, 문학과 예술,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은 즐거움이 아니라 고통을 근원인 게 분명해.......내 생각으로는 이 고압적인 전부를 몰아내는 데 네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 어떤 정부라도 버젓한 젊은이를 태엽 감는 기계로 만드는 것을 승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 그건 탄압을 자랑스레 여기는 정부는 하는 짓이야.”


“그래, 그래. 바로 그거지. 청춘을 가버려야만 해. 암 그렇지. 그러나 청춘이란 어떤 의미로는 짐승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아니, 그건 딱히 짐승이라기보다는 길거리에서 파는 쬐끄만 인형과도 같은 거야. 양철과 스프링 장치로 만들어지고 바깥에 태엽 감는 손잡이가 있어 태엽을 끼리릭 끼리릭 감았다 놓으면 걸어가는 그런 인형. 일직선으로 걸어가다가 주변의 것들에 꽝꽝 부딪히지만,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청춘이라는 건 그런 쬐끄만 기계 중의 하나와 같은 거야.”



2005년 3월 21일...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1>

   

“신이 살해되면 그 시체를 뜯어먹는 게 당시의 관습이었다. 그들은 신의 육신을 먹으면 시느이 영험함이 자신에게 옮아 온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신 또는 그 대리자의 목을 벤 날엔 흥겨운 축제가 벌어졌다. 디오니소스도 그렇게 뜯어 먹혔을 게다. 유럽에서 초봄에 행해지는 ‘카니발’의 원형이 바로 이거다.”


“주술로 소망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달은 인간은 이제 신을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 이 위대한 존재의 권능에 매달리게 된다. 이렇게 해서 종교가 발생했다. 이제 신은 끝없이 위대해지고 그럴수록 인간은 끝없이 초라해진다. 예전엔 인간이 신을 죽였지만, 이젠 신이 인간을 살리고 죽인다.”



2005년 3월 26일... 김용규 <알도와 떠도는 사원 上>

 

“마기란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 계급을 칭하는 단어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연금술사, 그 중에서도 특히 마법사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게 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뿐 아니라 지금도 전세계에 퍼져 있는 비밀 결사들에서는 마기라는 호칭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신비의 지식을 비밀로  전수해 온 신비주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었다. 연금술의 원형적인 숙련자가 수제자에게 구전으로만 가르치는 것은 문자  그대로 마기의 전승, 즉 마법이었다.”


“모든 동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만큼 자신의 주위 환경으로부터 대상물을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파리와 개, 그리고 사람은 같은 실내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 인식하는 것이 다르다. 파리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불과 식탁 위에 놓인 음식만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오직 장애물로만 인식한다. 반면 개는 음식과 음료수, 그리고 그가 올라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각각 구분하고 그 밖의 모든 것.. 예를 들어 책꽂이, 옷장, 책상, 벽, 문 등은 단지 똑같은 장애물 파악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을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인간만이 전등불, 음식, 음료, 의자, 소파, 책꽂이, 옷장, 책상, 벽, 문 등을 각각 구분할 수 있다. 모든 생물체는 자신이 행동할 수 있는 만큼만 주위 대상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인간보다 더 많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생물체가 존재한다면 그는 우리와 똑같은 실내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파악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대상들을 파악할 수 있겠지. 보다 다양한 대상을 파악한다는 것은 다양한 대상물에 의해 구성된 공간으로 그 곳을 인식한다는 뜻이야.“


“마루라나를 중심으로 시작한 급진적 구성주의에 의하면, 모든 생물체는 대상을 대상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물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구성하여 인식한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대상은 생물체에게 있는 그대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물체가 파악하고 싶은 대로 파악된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3월 26일.... 김용규 <알도와 떠도는 사원 下>


  “교주님, 진화가 진보와 꼭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진화는 생물학적 개념이고 진보는 사회학적 개념이지요. 진보에는 진화와는 달리 가치 개념이 들어 있다는 거예요. 따라서 사회적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지 자연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예요. 생물학적으로는 인류를 진보시킬 수 없어요.

 

역사적으로 보아도 인류 문명은 언제나  종교, 학문, 문화 등이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들에 의해 진보했지 생물학적 진화에 의해 진보하지 않았어요.”



2005년 3월 27일...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2>


  “시는 과학보다 위대하다. 왜? 어떤 인식이 사실에 일치하려면 먼저 사실이 그 자체로서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진술이 사실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얘기할 수 있다. 예술에서는 그와 같은 알레테이아로서의 진리, 즉 근원적인 진리가 일어난다. 반면 과학은 진리의 근원적 일어남이 아니며 다만 이미 알려진 영역을 사후 정비하는 데 그칠 뿐이다. 

 

헤겔은 예술의 종언을 얘기했다. 그에게 예술은 더 이상 역사적 현존재를 위한 결정적 진리가 일어나는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거꾸로 철학의 종언을 얘기한다. 예술은 철학보다 위대하다. 예술은 존재의 진리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2005년 3월 28일....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3>


 

  “도구는 그저 눈앞에 잘랑 놓인 물건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품고 있다가, 볼 줄 아는 자의 눈앞에 그 세계를 펼쳐 보여준다. 우리 집 주방에 있는 스테인리스 식칼도 제 몸 안에 우리의 세계를 품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칼을 들고 파를 썰 때 언제 그런 생각을 했던가.

 

이렇게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감추어진 것, 평소에 우리에게 망각된 것을, 예술 작품은 불현듯 우리 눈앞에 열어 보여준다. 이렇게 작품의 진리는 개시의 진리, 즉 은폐의 진리를 들춰내고 망각을 일깨우는 탈은폐로서의 진리다.”


“회화는 예술이나, 영화는 기술이다. 조각은 예술이나, 건축은 기술이다.”


“예술이 놀이이고, 놀이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면, 예술가들은 화판에 그림을 그리면서 실은 각자 제 취향에 맞는 자기의 놀이를 하고 있는 셈이다. 몬드리안은 장기를 두고, 폴록은 주사위를 던지며, 베이컨은 말판 놀이를 한다. 그리고 이들의 놀이 속에서 세계는 필연의 코스모스로, 우연의 카오스로, 그리고 때로은 우연과 필연이 결합된 카오스모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2005년 3월 28일... 오토다케 히로타다 <오체 불만족>

 

  전동 휠체어의 성능에 대해 말해 주세요.

“최고속도 시속 20km, 검은색 버튼으로 미사일 발사. 좌석의 높이를 조절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것이 최대의 장점입니다.”

-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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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3일.... 김훈 <자전거 여행>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  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잔혹한 당쟁과 사화가 중앙 정치판을 휩쓸고 지나간 뒤마다 담양 들판에는 정자들이 늘어났다. 조광조는 조선 성리학의 정치적 절정이었다. 조선 사대부들 중에서 아무도 조광조만큼 근본주의에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는 가장 완강하고 가장 순결한 복고주의의 힘으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소학’의 원칙주의를 체질화 한 그는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긍정할 수 없었고, 그 간격에 안주하는 자들을 ‘소인배’라고 규탄했다. 그는 현실 속에서 왕도정치의 낙원을 건설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시골에 따로 정자를 지을 필요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조광조는 기묘사회에 죽었고, 낙원은 문을 닫았다.”

“낭가파르바트 봉우리가 눈보라에 휩싸이는 밤에, 비행 진로를 상실한 새들은 화살이 박히듯이 만년설 속으로 박혀서 죽는다. 눈먼 화살이 되어 눈 속에 꽂혀서 죽은 새들의 시체는 맹렬한 비행의 몸짓으로 얼어붙어 있다. 죽은 새들은 목을 길게 앞으로 빼고, 두 다리를 뒤쪽으로 접고 있다. 눈 속으로 날아와 박힌 새들은 비행하던 포즈대로 죽는다... 새들은 고속 돌진의 자세로 죽는다. 그것들의 시체 위에서 날개 달린 몸으로 태어난 그것들의 꿈은 유선형으로 얼어붙어 있고, 그 유선형의 주검은 죽어서도 기어코 날아가려는 목숨의 꿈을 단념하지 않은 채 더 날 수 없는 날개를 흰 눈에 묻는다.


낭가파르바트를 동행 없이 혼자서 오르는 과묵한 등반가들이 눈 속에 박힌 새의 시체를 눈물겨워하는 것은 그 유선형의 주검에서 자신의 운명을 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되 만년설에 묻힌 날개의 꿈은 그 떠도는 종족의 운명 속에서 부활하는 것이어서 모든 새들은 마침내 살아서 돌아온다.“


2005년 2월 8일.... 얀 마텔 <파이 이야기>


 “내 인생은 유럽 그림에 나오는 해골과 비슷하다. 옆에는 늘 씩 웃는 해골이 있어 야망의 아둔함을 일깨워준다.... 해골은 낄낄대면서 가까이 다가오지만 난 놀라지 않는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짧은 시간에 내가 그렇게 변했다는 게 놀라운가. 날치를 담요에 싸서 죽이면서 흐느끼던 사람이 만새기를 죽이면서도 즐거운 기분으로 괴롭혔으니 당당히 설명할 수 있다. 날치를 죽일 때는 방향을 잘못 잡은 고기로 득을 보는 상황이었지만, 대단한 만새기를 낚시로 잡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었고 그러면서 과감하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데 사실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아주 단순하고 잔혹하다. 인간은 무슨 일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살해행위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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