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3일.... 김훈 <자전거 여행>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  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잔혹한 당쟁과 사화가 중앙 정치판을 휩쓸고 지나간 뒤마다 담양 들판에는 정자들이 늘어났다. 조광조는 조선 성리학의 정치적 절정이었다. 조선 사대부들 중에서 아무도 조광조만큼 근본주의에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는 가장 완강하고 가장 순결한 복고주의의 힘으로 가장 미래지향적인 정치 개혁을 단행했다. ‘소학’의 원칙주의를 체질화 한 그는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긍정할 수 없었고, 그 간격에 안주하는 자들을 ‘소인배’라고 규탄했다. 그는 현실 속에서 왕도정치의 낙원을 건설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시골에 따로 정자를 지을 필요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조광조는 기묘사회에 죽었고, 낙원은 문을 닫았다.”

“낭가파르바트 봉우리가 눈보라에 휩싸이는 밤에, 비행 진로를 상실한 새들은 화살이 박히듯이 만년설 속으로 박혀서 죽는다. 눈먼 화살이 되어 눈 속에 꽂혀서 죽은 새들의 시체는 맹렬한 비행의 몸짓으로 얼어붙어 있다. 죽은 새들은 목을 길게 앞으로 빼고, 두 다리를 뒤쪽으로 접고 있다. 눈 속으로 날아와 박힌 새들은 비행하던 포즈대로 죽는다... 새들은 고속 돌진의 자세로 죽는다. 그것들의 시체 위에서 날개 달린 몸으로 태어난 그것들의 꿈은 유선형으로 얼어붙어 있고, 그 유선형의 주검은 죽어서도 기어코 날아가려는 목숨의 꿈을 단념하지 않은 채 더 날 수 없는 날개를 흰 눈에 묻는다.


낭가파르바트를 동행 없이 혼자서 오르는 과묵한 등반가들이 눈 속에 박힌 새의 시체를 눈물겨워하는 것은 그 유선형의 주검에서 자신의 운명을 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되 만년설에 묻힌 날개의 꿈은 그 떠도는 종족의 운명 속에서 부활하는 것이어서 모든 새들은 마침내 살아서 돌아온다.“


2005년 2월 8일.... 얀 마텔 <파이 이야기>


 “내 인생은 유럽 그림에 나오는 해골과 비슷하다. 옆에는 늘 씩 웃는 해골이 있어 야망의 아둔함을 일깨워준다.... 해골은 낄낄대면서 가까이 다가오지만 난 놀라지 않는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 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죽음은 시샘 많고 강박적인 사랑을 거머쥔다. 하지만 삶은 망각 위로 가볍게 뛰어오르고, 중요하지 않은 한두 가지를 놓친다.”


“짧은 시간에 내가 그렇게 변했다는 게 놀라운가. 날치를 담요에 싸서 죽이면서 흐느끼던 사람이 만새기를 죽이면서도 즐거운 기분으로 괴롭혔으니 당당히 설명할 수 있다. 날치를 죽일 때는 방향을 잘못 잡은 고기로 득을 보는 상황이었지만, 대단한 만새기를 낚시로 잡는 것은 흥분되는 일이었고 그러면서 과감하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데 사실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아주 단순하고 잔혹하다. 인간은 무슨 일에든 익숙해질 수 있다. 살해행위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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